소설리스트

프로듀스 나노머신-10화 (10/124)

R&N엔터테인먼트 (3)

그가 클릭해서 내민 건 누군가가 자신의 sns에 올려놓은 것으로 짐작되는 사진이다. 그 안에 only카페를 배경으로 한 내가 환히 웃고 있다.

‘멋진 공연을 해준 오빠와 함께.’ 라는 제목으로.

“개인적인 행사나 공연은 회사와 미리 조율해야한다는 건 알고 있지? 이게 계약 위반이라는 것도.”

행사는 무슨. 이건 생계형 알바다. 먹고 살려고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피치 못할 뭐 그런 거지. 그리고 대부분 이 정도는 회사 측에서도 눈감아주고 있다. 하지만 분명 문제를 삼으려고 들면 문제 삼을 수 있다.

“하지만 이정도 알바는 다른 연습생들도 다들 하는 거 아니에요? 왜 이제 와서 저한테만 문제 삼는 건지 모르겠네요.”

“하아.”

오실장이 한숨을 내쉰다.

그러더니 들고 있는 음료수를 단숨에 들이켜고 내려놓는다.

“그냥 돌려 말하지 않고, 바로 말할게. 너 곧 5년차야. 그 정도 노력했는데도 데뷔 반도 아니고, 아직도 B반이라면 넌 재능이 없는 거라고. 스물 세 살이면 아직 뭘 해보기에도 늦은 나이는 아니니, 지금이라도 다른 길을 찾아봐. 정 할게 없으면 대학에라도 진학하든가.”

한 마디 한 마디가 송곳이 되어 가슴언저리를 콕콕 찌른다.

그동안 무수히 많이 해봤던, 그리고 스스로에게 되물어봤던 말이기도 하다. 헌데, 역시나 그것을 생판 모르는 타인, 그것도 나보고 그만두라고 채찍질을 하는 이에게 들으니 생각보다 기분이 더 별로다.

“그래도 곧 있으면 월말 평가가 있는데, 거기서 좋은 성적을 내면······.”

“내말이 무슨 말인지 아직도 모르겠어? 이미 너네 팀장님이랑 이야기 끝났다고. 어차피 이번 월말 평가만 끝내고, 오래된 연습생들 방출할 예정이라고 하시더라.”

그게 왠지 나를 지칭하는 것 같아서 내가 되물었다.

“저도요?”

“어, 너도. 그리고 말이 나와서 하는 이야긴데, 넌 영 가수 쪽이랑은 안 맞는 거 같다고 하시더라. 이건 내가 사회 선배로서 이야기해주는 건데, 아니다 싶은 길은 빨리 접고, 다른 쪽으로 알아보는 게 현명한 걸지도 몰라. 그러니까 이참에 너도 다른 쪽을······.”

속에서 뭔가가 울컥 올라왔다.

“그럴게요.”

“뭐?”

“제가 회사에서 나가면 되는 거잖아요.”

“어, 뭐. 그건 그렇긴 한데······. 진짜?”

“네. 나간다고요. 제가. 시발!”

*

꾹 다문 입술. 서늘하기 이를 데 없는 표정으로 연습실 사물함이 있는 곳으로 걸어가자 먼저 와있던 문수가 연습을 하다말고 내게 다가와 달라붙는다.

“뭐야? 너 표정이 왜 그래? 무슨 일 있었어?”

“나 여기서 나갈 거야.”

내가 전투적인 태도로, 사물함 짐을 몽땅 꺼내자 녀석의 안색이 파래졌다.

“나가긴 어딜 나가, 인마!”

“됐어. 이딴 곳. 시발!”

가방에 짐을 한꺼번에 구겨 넣고, 지퍼를 올려 닫았다. 몇몇 연습생들이 수군거렸지만, 문수처럼 다가오는 녀석은 없었다. 워낙 내 기세가 험악했어야 말이지.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나는 구름 위를 밟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두 발이 진창에 담겨져 있다 못해 얼음물을 뒤집어쓴 기분이다. 무슨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도 아니고, 기분이 아주 극과 극을 달린다.

월말평가 때 좋은 점수를 받아, A반으로 월반하고, 그리고 데뷔조로 들어가 그룹, 혹은 듀엣이나 솔로로 가수로서 데뷔를 하는 상상을 했다. 충분히 실현 가능성 있는 이야기고, 해낼 수 있는 자신감에 차 있었는데, 그럴 마음이 싹 사라졌다.

치사하고 더럽게 카페에서 알바한 것으로 발목을 붙잡고 늘어질 줄이야. 시발.

말을 안 해서 그렇지 나 말고도, 파트타임으로 노래를 부르거나, 카피 댄서 팀 댄서로 활동하는 이들은 이곳에도 쌔고 쌨다. 아마 대부분의 연습생들이 한두 번쯤은 돈 받고, 그런 알바는 다 해봤을 거다.

사실 회사에서 그러한 것들을 금지시키고는 있으나, 생활고에 시달리는 이들은 알고도 눈감아주는 것이 태반이다. 암묵적인 룰이랄까. 먹고는 살아야하니까. 연습생들이 돈이 어디 있다고. 비록 금지조항이 있기는 하지만 내가 알기론 여지껏 그 조항 때문에 불이익을 받은 연습생은 단 한 명도 없었다.

헌데, 어느 이름 모를 여자 sns에 올라가 있는 사진 한 장으로 나를 방출하려고 하다니.

회사에서 인력이 남아돌아 내 뒷조사를 시켰을 리는 만무하고, 내가 그 카페에서 돈을 받고, 노래를 한다는 것은 아는 사람은 문수와 강예슬뿐이다. 문수가 그걸 회사에 말했을 리는 없으니, 범인은 한명밖에 남질 않는다.

망할 년, 싸가지 없는 년.

잘해보라고 빌어줘도 시원찮을 판국에, 이런 식으로 나를 엿 먹이다니.

더군다나 회사에서도 그래.

잘하라고 격려해줄 때가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방출 명단에 슬쩍 이름을 올려놔?

이쯤 되자 차라리 잘됐다 싶다. 오고가다 강예슬 꼬라지를 안 봐도 좋고, 갑자기 확 달라진 실력을 어떻게 변명할까 고민도 해봤는데, 이참에 속 시원히 다 털고 나가 새 곳에 정착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싶다.

“최강민! 야!!!”

씩씩거리며 회사 현관문밖으로 나가는 나를 붙잡고 문수가 붙잡고 세웠다.

“너 진짜 어쩌려고 이래? 대체 뭐가 문젠데!?”

“막아도 소용없어. 좀 전에 계약도 파기했으니까.”

“뭐!?”

순간 말문이 막혔는지 문수가 한참동안 나를 바라보더니 물었다.

“갈 데는? 갈 데는 있어서 이러는 거야!?”

“어.”

“있어?”

“어. 있어.”

단호한 내 음성에 녀석의 두 눈이 휘둥그레진다. 아까부터 나는 호주머니 안에 있던 명함 한 장을 계속 만지작거리고 있는 중이다.

“거기가 어딘데?”

“R&N.”

“혹시 R&N엔터테인먼트?”

내가 대답했다.

“어, 거기. 나 R&N 오디션 볼 거야.”

*

R&N엔터테인먼트.

5년 전 코스닥 상장기업으로 급성장을 한 뒤, 이젠 엔터 사업 쪽에서는 힘 꽤나 주고 다니는 대형 회사. 원래는 배우 위주로 돌아가는 회사였지만, 최근 글로벌 엔터기업으로 도약하기 위해 아이돌 가수 산업에도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이름만 대면 알만한 소속 배우들이 서른 명. 가수가 일곱 명, 아이돌 그룹이 둘. 2, 3류 연예인들까지 모두 숫자를 합치면 연예인 숫자만 백 명 가까이 된다.

현재 R&N에서 가장 신경 쓰고 있는 건 아이돌 그룹 육성으로, 재작년에는 ‘본투비’란 보이그룹, 작년에는 ‘시크릿라벨’이라는 걸 그룹을 데뷔시키고, 그리고 올해 또 하나의 보이그룹을 데뷔시키기 위해 준비 제작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신인개발팀 팀장 박호영과 영상 기획팀의 팀장 한민아, 그리고 직원 세 명이 회의실에 앉아 모니터를 통해 나오는 영상을 쳐다보고 있다.

이번에 보이그룹 데뷔 반의 안무영상이다.

손대면 베어버릴 것 같은 예리한 칼 군무에 훤칠한 키, 인물도 비교적 나쁘지 않다. 인원은 총 5명. 안무가 끝나자 개별적으로 레슨테스트를 받고 있는 영상이 나온다. 하나같이 다 데뷔반이라는 말이 무색해질 정도로 훌륭하다. 훌륭한데······.

“뭔가 아쉽네.”

누군가에서 튀어나온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인다.

그 원인은 저번 회의를 통해 이미 결론 났다.

“제대로 된 애만 딱 중앙에 꽂아 넣으면 그림이 확 살 거 같은데. 6인조. 좋잖아!”

신인개발팀의 박 팀장의 아쉬운 목소리를 기획팀의 한 팀장이 받았다.

“A반에 쓸 만한 친구들 없어요? 이번에 몇 명 월반 했다면서요? 그러면 가용인원이 조금 더 있는 거 아닌가?”

“그렇지 않아도 어제 다 뒤져봤어요. A반부터 C반까지. 근데 없어요. 없어. 먹고 죽을래도 없어요.”

한 팀장이 프로필 사진 한 장을 집어 들더니 내민다.

“얘는 어때요? 얼굴 훤칠하니 괜찮네. 노래랑 춤은 어때요?”

“다 되는데 키가 작아요. 보이그룹은 센터가 생명인데, 키 작아 봐요. 다른 멤버들한테 그냥 파묻히지.”

“키가 얼만데요? 요즘에는 키 높이 깔창이다 많이 깔잖아요. 깔창을 높은 걸로 깔면······.”

“170도 안돼요.”

직원이 툭 내뱉는다.

“아, 그러면 안 되지.”

바로 수긍한다.

하이힐도 아니고, 깔창 15센티짜리를 끼고 춤을 출수는 없지.

“그럼 찬열이는 어때요? 키도 크고, 인물도 좋은데. 자고로 이런 얘들이 센터에 서주면 때깔이 그냥······”

“걘 노래가 안돼요. 요즘 음방 죄다 라이브로 가는 추세인데, 센터가 노래가 안돼봐요. 나중에 뒷말 엄청 나오지. 그리고 무엇보다 걘 인성이 안됐어, 인성이. 아주 지 잘난 맛에 사는 얘라니깐요. 센터 세우면 다른 멤버들 엄청 무시하고 다닐걸요? 안 봐도 훤하지.”

고개를 살살 흔든다.

“그럼 안 되죠. 그룹은 화목이 생명인데, 센터가 멤버들을 무시하면.”

고를 인재는 없는데, 이것저것 따질 건 많다.

“어렵네. 어려워.”

“어렵죠. 회사에서도 간만에 힘주고 있는 프로젝트인데. 아, 어디 센터감 하나 하늘에서 뚝 하고 안 떨어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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