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로듀스 나노머신-9화 (9/124)

R&N엔터테인먼트 (2)

상쾌한 아침이다.

기분 좋게 머리를 감고, 양치질을 하고, 세수도 했다. 개중에서 가장 깨끗한 옷을 골라 입고, 빨아놓은 청바지를 입었다. 절로 콧노래가 흘러나온다. 이토록 상쾌한 기분으로 맞이한 아침이 근래에 있었던가? 기억도 잘 나질 않는다. 그게 언제 적인지.

습관적으로 거울 앞에 섰다. 거울을 들여다보다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뭔가 티셔츠가 미묘하게 작아진 기분이 드는데.

-어깨가 넓어져서 그렇습니다.

영삼이가 말을 걸어온다.

“오, 그래?”

거울을 들여다봤다. 변한 건 어깨뿐만이 아니다. 비타민 팩이라도 한 것 마냥 얼굴이 반질반질하다. 뺨을 이리저리 만져보고는 웃옷을 벗어 상체를 기울였다. 그러자 아주 조금 넓어진 어깨가 보인다. 나는 왜 그렇게 여자들이 성형에 집착하는지 조금은 알 것 같은 심정이 됐다.

아, 이런 기분이구나. 신체가 변화하는 기분이란 게.

10시부터 12시까지는 안무레슨이 있는 시간이다.

회사까지는 버스를 타고, 30분이면 되지만 왠지 몸이 근질거려 평소보다 1시간정도 빨리 집을 나섰다. 빨리 가서 B반 연습생들에게 달라진 내 모습을 자랑하고 싶다. 달라진 내 모습을 보고, 과연 뭐라고 말할지를 상상하자 벌써부터 입 꼬리가 들썩거린다.

이런저런 기분 좋은 상상을 하며 회사로 들어가려는데, 순간 두 사람과 마주쳤다. 그 좋던 기분이 순식간에 바닥을 친다.

젠장.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평소오던 시간에 오는 거였는데!

한 쌍의 남녀도 오순도순이야기를 나누고 걸어 들어오다 나를 보고 인상을 찌푸린다.

바로 강예슬과 한준혁이다.

전 여친과 그 전여친의 현 남친.

강예슬이야 원래 기회주의자인걸 알았으니 그렇다고 치더라도 한준혁에 대해서는 조금 실망이다. 그래도 나름 이 바닥에서는 인지도 있는 남자배우인데, 보는 눈이 얼마나 없으면 강예슬에게 빠져 저렇게 정신없이 실실 쪼개고 다닐까 싶다.

혹시 나와 강예슬사이의 관계를 몰랐나 싶기도 했지만, 나를 의식하는 눈초리를 보아하니 꼭 그런 것만은 아닌 것 같다.

이제는 나와 아무 상관없는 사이들이라 나는 일부러 의식하지 않으려고 고개를 홱 돌려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그 광경을 보던 강예슬 얼굴에 불편한 기색이 고스란히 떠오른다. 이맛살을 찌푸리고, 툭하고 내뱉는다.

“아, 아침부터 짜증나게.”

“왜, 전 남친이라 신경 쓰여?”

한준혁이 강예슬을 쳐다보며 묻는다. 아직 연애초기라서 그런지 그녀를 쳐다보는 눈에서 아주 꿀이 줄줄 떨어진다.

“남친은 무슨. 그냥 심심해서 잠깐 만난 것뿐이야.”

“그럼 신경 안 쓰면 되잖아?”

“누가 나 때문에 그래? 오빠 때문에 그렇지. 괜히 사람들 입방아에 오빠이름 오르락내리락 거릴까봐. 사람들 수군거리는 거 좋아하는 거 오빠도 잘 알잖아. 그러다가 기사라도 터져봐. 오빠가 뭐가 되겠어?”

“음, 하긴. 그것도 그러네.”

가수에 비해서는 배우가, 그리고 여배우에 비해서는 남배우가 열애설이 비교적 자유롭다고는 하나, 비교적 자유롭다는 거지 이미지에 전혀 타격이 없다는 말은 아니다. 더군다나 가수연습생의 여친을, 유명세를 이용해서 뺐었다는 그런 뉘앙스의 기사라도 터지게 된다면 그건 그야말로 최악의 사태를 맞이하는 거다.

“그렇다고 오빠나 내가 회사를 나갈 수는 없잖아?

“그렇지.”

한준혁이 수긍하는 표정을 짓자 그녀의 목소리가 더욱 은밀해졌다.

“그래서 말인데, 쟤 여기서 치워버릴 좋은 방법이 하나 있는데. 한번 들어볼래?”

“방법?”

강예슬이 핸드폰을 꺼내 포탈검색어에 only카페라는 검색어를 적어 넣는다. 그리곤 화면에 떠 있는 누군가의 sns를 보여주며, 화면을 흔든다.

“오빠가 실장 오빠한테 슬쩍 언질만 해주면 될 것 같은데, 어때?”

*

“뭐? 멀쩡하게 잘하고 있는 연습생을 왜 내보내? 걔가 뭔 사고라도 쳤어?”

“형, 한 번만 부탁 좀 하자. 응? 내가 신경 쓰여서 그래. 나 신경 쓰이는 일 있으면 잠도 못자는 거, 형도 알잖아.”

“요즘 회사 내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리는 것 같던데, 너 설마······.”

한준혁이 입술을 꾹 맞물린 채 고개를 주억거린다.

어이쿠야. 한준혁 매니저가 관자놀이를 부여잡는다. 얘는 다 좋은데, 왜 꼭 여자만 끼면 이상하게 변하는지 모르겠다.

“사실이야? 배우 지망생 만난다는 게? 그것도 임자 있는 애를 뺏었다고?”

“가볍게 만난거래. 나 만나고 금방 정리했다니까?”

“미치겠네, 진짜! 넌 여자가 그렇게 좋냐? 헤어진 지 얼마나 됐다고 그세 또 다른 여자를 만나? 한 달이나 채 됐냐?”

“이번엔 진짜야. 처음 보는 순간 필이 그냥 팍···!”

“그 놈의 필. 저번에도 그 이야기했거든? 그런데 어떻게 됐어? 두 달도 못 채우고 헤어졌잖아!”

“아, 혀어어엉······.”

말이 안통하자 무턱대고 졸라대기 시작한다.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다. 평소에는 안 그렇다가도 꼭 여자 랑만 엮이면 애가 이상해진다. 여자 손 한번 못 잡아보고 죽은 몽달귀신이라도 씌웠나, 굿이라도 한번 해볼까 진지하게 고민했다. 그렇다고 구실 못하게 거길 확 잘라버릴 수도 없는 노릇이고.

“하아··· 내가 만약에 혈압으로 인해 쓰러지면 다 너 때문인 줄 알아. 도대체 누군데 이 난리야? 이름이나 들어보자.”

체념 섞인 한숨이 나오자 한준혁이 반색을 한다. 이쯤 되면 그동안의 경험으로 미루어볼 때 승낙한 거나 다름없다.

“최강민. 스물 세 살인데, 연습생 4년차래. 아, B반이래. B반.”

기다렸다는 듯이 내뱉는다. 거의 이정도면 아바타수준이다. 조종은 물론 그 배우지망생인지 뭔지 하는 여자일 테고. 에라이, 등신 머저리 같은 놈.

“흐음, 4년차에 B반? 꽤 오래되긴 했네.”

“그렇지? 별 재능도 없는 애라니까. 그런 애는 회사 차원에서도 그냥 방출하는 게 더 이득 아니야? 형 개발팀 팀장님하고도 친하게 지내잖아. 잘 좀 말해봐. 응? 응?”

뭔가 생각에 잠긴 듯한 표정을 지은 매니저가 이내 고개를 끄덕인다.

“알았어. 내가 팀장님하고, 이야기해볼 테니까 넌 빠져있어. 그리고 이번이 진짜로 마지막이야. 더 이상은 안 돼!”

매니저의 으름장에 한준혁이 쉴 새 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알았어. 알았어.”

*

모르는 번호로 전화 한통이 왔다.

누군가해서 받았더니, 매니지먼트 사업부에서 일을 하는 오실장이란다. 응? 이 사람이 왜 나를 찾는 거지? 사업부면 주로 데뷔한 연예인들 관리, 스케줄 조정을 하는 곳인데, 전화까지 해서 굳이 나를 찾을 이유가 없다. 이런저런 생각을 해봤지만 역시나 짐작도 가질 않는다. 궁금한 마음에 별관 휴게실로 가자 누군가가 앉아 있는 것이 보인다.

내가 나타나자 그가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선다.

전화를 걸었던 목소리와 눈앞의 인물이 오버랩 되어 겹쳐진다. 저 사람이 오실장이라는 사람인가? 굵은 목소리만큼 남자다운 굵직한 턱선을 자랑한다. 그가 나를 지그시 쳐다보며, 까칠하게 수염 난 턱을 긁적인다.

"네가 최강민이구나."

“안녕하세요. 실장님.”

나는 누군지, 왜 나를 불렀는지도 모른 채 고개를 숙였다. 그래도 실장이라는 직함은 이 바닥에서 먹이사슬 구도에서도 꽤 중상층에 포진해있는 포식자고, 나는 맨 밑바닥에서 풀이나 뜯어 먹는 초식동물, 아니 그보다 훨씬 아래 곤충쯤 되는 존재니까.

무슨 말을 하려는지 한참 뜸을 들이길래 내가 시계를 들여다보며 말했다.

“저 레슨시간 20분밖에 남지 않았어요. 하실 말씀이 있으시면 빨리···.”

“너, 이제 레슨 받을 필요 없어.”

“네?”

뭔가가 머릿속에서 툭하고 끊어졌다.

“레슨 받으러 안가도 된다고.”

그가 자신의 핸드폰을 내게 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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