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이 돋아난다 (3)
3시 30분. 손님이 하나둘 입장한다. 카페를 하루 종일 통째로 빌렸다길래 어느 부잣집 애들인가 싶었는데, 풋풋한 여대학생들이 득실거린다. 대략 30명 정도인데, 어느 여대생이 메고 온 가방에 삼화여대라는 글씨가 쓰여 있다.
특이하게도 그들 중에는 30대로 보이는 남자도 한명 끼어 있다. 여대생들과 어울리지는 않고, 가장 안쪽 구석자리에 덩그러니 앉는다. 그리고는 그곳이 자기 자리인 마냥 자리 잡고, 핸드폰을 들여다본다. 뭐지? 왕따 인가? 아니면 혹시 학교 교수님?
내가 김민석의 어깨를 툭 건드리며 물었다.
“형, 오늘 카페 빌렸다는 사람이 삼화여대생들?”
“어, 내가 말 안했던가?”
공기 중에 은은하게 떠도는 샴푸와 향수냄새들, 눈앞에서 살랑거리는 원피스와 플레어스커트들의 향연, 보기만 해도 웃음이 지어지는 상큼한 꽃 미소들까지. 어두침침한 카페 안에 여대생들이 가득하니 절로 분위기가 환해진다.
“와, 오늘 공연하는 맛 나네.”
“그치?”
나는 잔뜩 치켜 올라가는 입 꼬리를 열심히 가렸다.
카페에서 마련된 휴게실에서 일명 양동이 밴드라고 불리는 세 명의 남자와 함께 차를 마시다 4시에 무대 위에 올랐다. 오프닝이라고 부를 수 있는 첫 라이브 무대.
주어진 시간은 총 15분. 노래만 부르기엔 밋밋하니 인사와 자기소개. 곡에 담긴 스토리를 적당히 버무려서, 15분 동안 3곡을 나눠서 부르기만 하면 된다.
“안녕하세요. 최강민이라고 합니다.”
마이크를 잡고, 인사를 하자 삽시간에 시선이 집중된다.
대학 새내기들인가?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무대를 올려다보는 것이 꽤나 귀엽다. 와, 오늘 관객 물이 진짜 좋구나.
내가 오늘 준비한 곡은 ‘추억의 옛 사랑’, ‘let me love you’, ‘햇볕이 좋은 봄날’이다. 아무래도 칙칙한 노래보다는 조금이나마 밝은 노래가 좋겠다는 생각에 준비한 곡인데, 관객들 연령대를 보니 비교적 무난할 것 같다.
“첫 곡으로 추억의 옛 사랑을 불러 드리겠습니다. 아, 그리고 오늘 누구 생일날이신 거 같은데 축하드립니다. 부디 이곳에서 좋은 추억 쌓고 가시기 바랍니다.”
언뜻 보니 생일이라는 말이 오고가고, 케이크도 있는 것 같아서 누군지도 모를 생일도 축하해줬다. 말 몇 마디 하는 게 돈 드는 것도 아닌데 그 정도야 뭐.
잠깐 동안의 적막이 흐르고, MR이 흘러나온다.
호흡을 들이쉬는 짧은 숨소리와 함께 얇지도, 그렇다고 굵지도 않은 깊은 울림을 품은 목소리가 마이크를 타고, 서서히 카페를 뒤흔든다.
추억의 옛 사랑은 90년대 중반 김진표가 작사, 작곡. 최훈이 노래를 불렀다.
아름다운 피아노 소리와 가사말이 일품인 곡.
-옛 사랑이 떠올라서, 우두커니 창가에 서서, 오늘도 나는 지난 추억에······.
노래가 시작되자 술을 따라 마시던 사람들도, 옆 친구와 수다를 주고받던 사람들도, 모두 하던 것을 멈춘다. 그리고 홀리듯 무대 위에 서 있는 한 남자에게로 시선을 돌린다. 어느덧 현실의 경계너머, 첫 사랑을 떠올리는 그녀들의 얼굴에는 아련함과 애틋함이 가득 물든다.
그리고 이내.
“와아······.”
누구로부터 시작됐는지 모를 감탄성이 여기저기 흘러나온다.
가만 보니 무대를 쳐다보고 있는 이가 모두가 비슷한 표정을 짓고 있다.
1절이 끝났을 무렵, 조용환이 옆에 앉아 있는 두 형을 발로 툭툭 치며 물었다.
“형! 형형. 쟤 뭐야?”
얼굴에는 놀라움이 가득했다.
그 같은 반응에 황동일이 웃으면서 말했다.
“인마. 내가 말했잖아. 깜짝 놀랄 준비나 하라고. 잘 봐도. 쟤 머지않아 제2의 잭 윈스턴이니, 뭐니 같은 칭호가 붙을지도 모르니. 훗날 쟤와 같이 한 무대에 섰다는 것만으로도 커리어가 쌓이는 그런 날이 올지도 몰라.”
1993년에 첫 앨범을 시작으로 2010년까지 세계적으로 사랑을 받았던 팝 아티스트 잭윈스턴. 팝의 황제라고 불리는 그의 앨범은 지금까지도 많은 대중적인 사랑을 받고 있다.
노래를 듣기전이라면 말도 안 되는 헛소리로 치부했을지도 모른다. 허나, 그 엄청난 이름이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수긍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첫 번째 곡은 성공적으로 끝났다.
그리고 연이은 두 번째 곡도, 세 번째 곡도.
영삼이가 내 몸 안에 들어오고 처음으로 여러 사람들 앞에서 불러보는 노래다. 이전에도 종종 카페에서 노래를 불러봤지만 이렇게 관객들이 높은 집중력을 보이는 것은 처음이라 나로서도 조금은 얼떨떨하다.
인사를 하고, 무대에서 내려오려는데 여기저기에서 질문이 쇄도한다.
“오빠, 혹시 가수세요?”
“아뇨, 지망생인데요.”
“말도 안 돼. 이렇게 노래를 잘하는데요?”
“잘 부르려고 노력 중이에요.”
“앵콜곡 이런 거 없어요? 설마 이게 끝?”
“5분만 쉬고, 뒤에 대기하고 있는 팀과 3곡 더 부를 거예요.”
“아.”
좋아한다. 좋아해. 붙임성 좋게 말을 걸어오는 여대생을 보자 괜히 마음이 뿌듯해진다. 내 노래를 이렇게 좋아해주다니.
“그러면 전 잠시 후에 다시 나올게요.”
아쉬워하는 시선들을 뿌리치고, 나는 직원휴게실 겸 대기실로 사용하고 있는 장소에 들어갔다. 그러자 양동이밴드가 나를 반갑게 맞이해준다. 그들 중 제일 호들갑스러운 것은 드럼 치는 조용환이다.
“노래 잘 들었어요. 진짜 잘 부르네. 근데 영어 발음이 원래 그렇게 좋아요? 혹시 외국 살다 왔나?”
외국은 고사하고, 비행기도 한 번 못 타봤다. 그 흔한 제주도도 한번 못 가봤지. 그 동네 흑돼지 맛이 그렇게 좋다던데. 언제 한번 먹으러 가긴 가야할 것 같은데.
“아뇨. 다 앰프 빨이에요. 여기 음향시설이 워낙 좋아서 그래요.”
“아, 그런가?”
그걸 보고 김형돈이 딱하다는 듯 혀를 찬다.
“인마, 그걸 납득하면 어쩌자고. 외국어 잘하게 하는 앰프 봤냐? 이놈 이러고도 음악 한답시고, 스틱잡고 있는걸 보면 용하네.”
“아씨, 형은 맨날 나만 보면 뭐라고 하더라.”
“널 봐라. 뭐라고 안하게 생겼나.”
양동이밴드를 보니 딱 보니 대충 굴러가는 모양세가 눈에 들어온다. 베이스를 맡고 있는 김형돈은 밴드의 리더. 기타포지션에 황동일과는 동갑내기 친구고 둘 다 나이는 서른둘이다. 그리고 드럼을 치는 조용환이 스물일곱.
보컬과 세컨 기타는 주기적으로 충원했다 사라지는 것이 반복되고 있는 것 같다. 실력은 셋 중에서 기타를 치는 황동일이 제일 낫고, 그 다음이 김형돈, 조용환 순서다.
“강민이, 너 혹시 밴드에 관심 있어?”
김형돈이 묻는다. 그와 동시에 두 사람의 시선이 내게 꽂힌다. 다들 눈들이 반짝반짝하다. 이 양반들이 내가 오기 이전에 무슨 이야기를 나눈 거야?
“밴드요?”
“너 팀도 없는 것 같은데, 이참에 우리 밴드 보컬로 정식으로 들어올래?”
“에이, 거기 보컬 있잖아요.”
“준영이? 그렇지 않아도 잡음 많아서 탈퇴시키려고 했어. 잠수도 한 두 번이여야지.”
“이런 적이 많았나 봐요?”
“어휴, 말해 뭘 해.”
토해낸 그의 한숨을 들었을 뿐인데, 그동안의 고통이 느껴진다.
“너만 오케이하면 우리도 다 괜찮다고 합의 봤는데. 페이는 이전 보컬이 받는 만큼, 아니아니, 조금 더 쳐줄게. 내 몫을 떼서라도.”
“내 것도.”
드럼 조용환도 가세했다. 기대감으로 그의 눈이 반짝반짝하다.
하고 싶다. 하고 싶기는 한데, 문제가 있다.
“제안은 감사한데, 고정 멤버는 조금 그래요. 연습생 신분인지라, 고정 스케줄을 빼기가 힘들거든요. 회사 눈치도 보이고.”
“아.”
탄식을 하는 세 사람의 얼굴에 아쉬움이 가득하다. 나도 안타깝다. 알바하나만 제대로 잘 잡아놔도, 전단지 알바는 당장이라도 그만둬도 상관없을 텐데. 하지만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지.
“아쉽지만 할 수 없지.”
“죄송해요.”
“죄송할 게 뭐 있나. 아쉬워서 그렇지.”
“자자, 5분됐다. 이제 나가자.”
밖에 분위기를 살피던 김민석이 들어와 밖으로 손짓한다.
그 말을 시작으로 나와 양동이 밴드는 우르르 무대 위로 올라갔다.
mr을 틀고 혼자 노래를 부르는 것과 밴드와의 합주공연은 확실히 많은 차이가 있었다. 혼자 조용히 노래를 부를 때는 그저 반쯤은 넋 놓고, 바라만 보던 소녀 떼들이 드럼과 베이스가 추가되자 머리를 흔들기 시작한다.
아이씨, 깜짝이야.
덕분에 나는 앞을 쳐다보다 심장마비 걸릴 뻔했다. 어두운 곳. 조명아래 흰 얼굴만 둥둥 떠다니는 긴 머리를 늘어트린 여자들이 머리를 흔들고 있으니 모양새가 꼭 귀신같다. 나만 놀란 건가? 밴드활동을 하려면 간도 커야하는 구나. 꼭 꿈에 나올 것 같네.
내가 부르고 있는 곡은 대중적으로 유명한 ‘music in my life’다. 원래는 싱어 송 라이터인 ravi라는 가수의 노래였는데, 몇 번의 편곡을 거쳐, 한국에까지 건너와서 지난 10년간 국민들의 사랑을 받았다.
강렬한 비트와 리듬감, 그리고 거기에 노래가 더해지자 제자리에 앉아 얌전하게 맥주만 홀짝이던 이들은 아무도 없었다. 양의 탈을 쓴 귀신 떼들의 눈이 번뜩거린다. 잘 들리지는 않지만 입술을 달싹이는 게 따라 부르는 건가 싶기도 하고.
아, 이런 게 바로 밴드의 힘인가? 혼자 노래를 불렀을 때와는 또 다른 재미가 있다.
관객들과 하나가 된 것 같고, 마음이 간질간질한 게 희열감도 느껴진다.
아, 이래서 밴드를 하는 거구나.
이거 자칫하다가는 중독되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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