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로듀스 나노머신-6화 (6/124)

흥이 돋아난다 (2)

스트랩을 어깨 위로 두르고, 스탠딩 마이크 앞에 걸어갔다. 내가 돌연 의자에서 일어서자 멤버들이 의아한 눈으로 쳐다본다. 내가 마이크를 걸자 두 눈이 휘둥그레진다.

-저, 미친놈이 저 상태서 노래까지 부른다고?

딱 그 표정이다.

네, 되요. 지금이라면 될 거 같아요. 느낌이 그래요.

마이크 스위치를 올렸다.

가사를 아느냐고요? 몰라요. 헌데, 그냥 될 거 같아요.

I feel love when I see you.

Oh my angel. Oh my angel.

입을 열자 자연스럽게 가사가 자연스럽게 흘러나온다. 그것도 죽이는 본토 발음이다. 내가 들어도 발음이 예술이다. 순간 세 사람의 시선이 동시에 내게 날아와 꽂힌다.

이곡의 장르는 록 발라드다.

창문가에 앉아 있는 여자를 본 순간 운명적인 이끌림을 느껴, 나의 천사 어쩌구 하면서 다짜고짜 고백을 하는 말도 안 되는 노래.

처음 만나는 여자를 노래로 꼬시려는 수작남의 노래인데, 질척여도 안 되고, 그렇다고 거만하게 보여서도 안 된다. 달콤하게 속삭이면서도 담백한 진심을 전해주는 절제미. 세련된 감성 또한 노래의 중요 포인트 중 하나다.

실제라면 정신 나간 놈이 개수작이네. 하면서 뺨을 맞았을지도 모른다.

허나 이 곡을 부른 사람은 무려 조지 클락이다. 공연 때마다 셔츠를 3개씩 풀고, 가슴을 반쯤은 드러내고 노래를 부르는 세계적인 팝가수. 10년 전 조지 클락이 전성기였던 시절. 이 노래를 공연장에서 부르면, 여자들은 거의 눈이 반쯤은 뒤집혀 난리도 아니었다.

근데, 어째 노래를 부르는 막바지에 가서는 나를 보는 다른 이들의 눈이 조지 클락의 공연을 보는 여자의 표정과 비슷해졌다. 특히 내 앞에서 테이블을 닦던 여직원은 넋을 잃고 있는 게, 꼭 사인이라도 해달랄 것 같은 표정이다.

“You are my angel.”

반복된 후렴구를 두 번 부르고나서야 노래가 끝났다. 잠시 동안의 여운을 즐긴 멤버 세 사람은 마치 짜기라도 한 듯 나를 쳐다봤다. 그러고 보니 카페 안에 있던 대부분의 직원들의 시선은 나에게로 못 박히듯 고정돼 있다. 그중에서도 특히 김민석의 얼굴이 제일 볼만했다. 마치 귀신이라도 본 표정.

“강민이 너어···.”

김민석이 다가와 내 양쪽 어깨를 잡는다. 그의 얼굴에 가벼운 흥분이 일렁거린다.

“혹시 약 빨았냐? 방금 그거 뭐야?”

굳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말하지 않아도 알만하다. 그나마 이 공간에 있는 사람들 중 내 실력을 객관적으로 가장 잘 아니 놀란 만도 하겠지. 사실은 나조차도 놀랐다. 될 것 같긴 했지만 정말 되는 구나. 팔뚝에 살짝 소름도 돋았다.

“제가 제일 좋아하는 곡이라서요.”

어깨를 으쓱했다. 천연덕스러운 거짓말이 나온다.

이러다가 거짓말 선수 되겠다. 이런 쪽으로는 영 재능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와···씨. 그래도 그렇지. 그리고 기타편곡은 또 어떻게 된 거야? 즉석연주? 아니면 알고 있던 곡? 못 본 사이 실력이 늘어도 너무 많이 늘었는데?”

외계인 덕분이에요. 하하하.

미심쩍어하는 표정은 그대로였지만 다행히 더 캐묻지는 않는다. 다만 나를 보는 눈초리가 조금은 달라졌다. 황제인줄 모르고 친구 먹었다가 훗날 황제의 신분인걸 알고 난 무림민초 같은 얼굴이랄까.

“강민이라고 했지? 실력이 대단한데?”

“그러게. 기타연주도 수준급인데, 노래까지? 이미 아마추어가 아닌데? 너 정말 아마추어 맞아?”

두 사람까지 합세하자 나는 쑥스러워져 뒷목을 긁적였다.

“저 연습 생이에요. 그것도 4년차.”

“와, 도대체 어디 기획사길래 너 같은 놈을 4년 동안이나 썩혀뒀어? 거기 연습 생들은 무슨 괴물들만 모아놨대?”

더 이상 대답했다가는 거짓말만 늘 것 같아서 나는 입을 다물었다.

“드럼만 있으면 예술이겠다. 용환이 언제 도착한대?”

“거의 다 왔을 걸? 이러고 있을게 아니라 우리끼리라도 한 곡 더 연습을··· 어, 잠깐.”

입구 쪽을 힐끔거린 김형돈이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저기, 우리 드럼 왔네.”

그의 말대로 한 남자가 입구에서 들어오고 있었다. 남자치고는 비교적 긴 머리를 한 중단발의 남자. 앞선 두 사람에 비해서는 가냘프다할 수 있는 체격. 저게 보통 남자의 체격이건만 유난히 팀 내 근육맨들이 많아 상대적으로 체구가 작아 보인다.

두 사람만 봤을 때는 무슨 보디빌더 팀인가 싶었는데, 꼭 그런 것만은 않구나.

그가 곧장 무대 위로 걸어 올라온다. 헌데,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도 아니면 원래 표정이 저러한 건지 표정이 별로 좋지가 않다. 마치 썩은 동태를 씹고 있는 표정. 일그러진 표정이 뭔가 할 말이 잔뜩 있어 보이는 얼굴인데···.

“뭐야? 표정이 왜 그래?”

김형돈이 그의 어깨를 툭 치며 묻는다.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던 그가 ‘에이씨.’소리와 함께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형, 준영이 안 올지도 몰라.”

“뭐?”

준형이? 혹시 오기로 한 보컬을 말하는 건가?

“그놈 안 올지도 모른다고.”

“왜?”

“나랑 대판 싸웠거든.”

“야! 너는 하필 공연 날에···. 휴, 됐다. 내가 전화해볼게.”

김형돈이 한숨을 내쉰다.

모양새를 보니 이런 적이 한 두 번이 아닌가본데?

말을 늘어놓고 싶은걸 참는 얼굴로 핸드폰을 손에 쥔 김형돈이 어딘가에 전화를 건다. 아마도 그 준영이라는 사람에게 전화를 거는 모양이다. 하지만 상대 쪽에서 받질 않는지 이내 체념하듯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는다.

“안 받네. 아예, 전화기 꺼놨어.”

옆에서 뚱한 표정을 짓고 있던 황동일도 한마디를 보탠다.

“야! 너는 애 좀 달래라고 붙여놨더니, 뭐라고 긁었기에 공연에 안 온대?”

애? 나이가 비교적 어린 편인가?

“나도 참으려고 했지, 참으려고 했는데, 그 자식이··· 말을 더럽게 싸가지 없게 하잖아. 형들 뒷담화도 막 까고.”

“그래도 그렇지··· 하필, 공연 날.”

“됐다, 됐어. 얘가 뭔 죄야.”

김형돈이 중재를 위해 끼어든다. 하지만 황동일은 기어코 한마디를 더 내뱉었다.

“휴, 그 새끼도 그래. 어떻게 공연을 코앞에 두고, 이렇게 펑크를 내? 연습 때도 잘 안 나와서 말썽이드만······ 하아, 시발.”

꿔다놓은 보릿자루마냥 서 있던 나는 그들의 대화를 통해 몇 가지를 알 수 있었다. 보컬이 가장 나이가 어리다는 것과 이들 셋과는 달리 밴드에 합류한지 얼마 안됐다는 것, 그리고 엄청 불성실하다는 것 정도?

“그나저나 우리 어떡해요? 보컬 없는데 공연을 어떻게 해요?”

동시에 두 쌍의 시선이 소리 없이 내게 꽂힌다.

조용환은 말을 하다말고, 팀 네 두 형의 시선이 나에게로 향해 있는 걸 보고 그제야 내 존재를 확인했다. 뭐야, 이 사람들이 왜 이런 타이밍에 나를 쳐다보고 있는 건데?

“그런데 이분은 누구? 혹시 오시기로 한 세컨 기타 분?”

“예. 안녕하세요.”

멀뚱하고 서 있기 그래서 그의 질문에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러셨구나. 헌데, 죄송해서 어쩌죠? 들으셨겠지만, 저희 보컬이 없어서요. 공연이 어쩌면 취소될 수도······.”

그의 말에도 여전히 김형돈, 황동일의 눈은 나를 향해 있다.

얼핏 보면 넋을 놓고 있는 것 같기도. 자포자기했다고 생각했는지 조용환이 뭐라도 해보겠다는 심산에 핸드폰을 꺼내 손에 쥐었다. 그리곤 주소록을 누르고, 목록을 뒤진다.

“제가 전화라도 돌려볼게요. 혹시 잘하면 근방에서 놀고 있는 보컬 한 명 정도는···.”

“보컬이랑 쌈질해서 공연 펑크 나기직전이라고 광고라도 할래? 그리고 당장 공연이 코앞인데, 어디서 보컬을 구해?”

“그렇다면 형이라도 어떻게 불러보시면··· 형 왕년에 노래 좀 하셨다면서요.”

“인마! 관객들한테 욕 쳐 먹을 일 있어?”

“아, 그러면 우리 어떻게 해요! 진짜!”

자기 탓에 상황이 이렇게 됐다고 생각했는지 조용환은 거의 울기 일보직전이다.

“넌 좀 가만 있어봐. 강민씨.”

대답을 한 김형돈이 나를 쳐다보며, 내 이름을 부른다.

강민씨? 좀 전까지만 해도 신나게 반말을 하더니, 웬 존대? 나를 부르는 그의 두 눈에 기묘한 기대감이 서린다. 여자도 아니고, 덩치가 산만한 남자가 저런 눈으로 쳐다보니 기분이 조금 이상한데.

“괜찮다면 우리랑 노래 몇 곡 하지 않을래? 듣자하니, 우리 앞무대에서 노래도 세 곡 부른다며?”

“네, 그건 그런데···.”

“그 세 곡 우리가 반주 쳐줄게. 우리 곡 불러주면 보컬 몫으로 돌아갈 페이도 전부 주고. 어때?”

김형돈이 넌지시 물어놓고, 침을 삼킨다.

제안이 구미가 당기긴 하지만, 내가 부를 곡은 전부 발라드다. 조용하고 잔잔해야할 발라드에 드럼과 베이스를 입힐 순 없지. MR이면 충분하다. n분의 1은 조금 구미가 당긴다. 그래서 반주는 거절하고, 보컬제안은 받아들였다. 사실 내가 돈이 조금 궁핍하기는 하다. 그래서 이 자리에 돈 벌려고 나온 거니까.

“좋아요.”

내 승낙을 받아낸 김형돈과 황동일이 조용히 주먹을 움켜쥔다. 상심어린 표정이 사라지고, 어느새 둘 얼굴에 미소가 번진다. 이 자리에 이와 같은 상황에 의아함을 품은 것은 늦게 온 조용환뿐이다.

그가 고개를 갸웃한다.

“웬 노래? 저 친구 세컨 기타로 아니에요?”

“인마. 모르면 넌 좀 가만이나 있어.”

“뭔데요? 나 오기 전에 뭔 일 있었어요?”

그런 그를 두고, 둘은 웃기만 했다.

“아, 뭔데! 나도 좀 알자!”

“넌 걱정 붙들어 매고, 놀랄 준비나 해. 아마 깜짝 놀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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