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로듀스 나노머신-5화 (5/124)

흥이 돋아난다 (1)

“시간도 많이 남았는데, 손 좀 풀어봐!”

김민석이 무대 앞. 늘 자신이 앉던 지정석에 앉은 채 주문했다. 카페 내에 있던 몇 쌍의 눈이 꽂힌다. 나는 괜히 머쓱해져 뒤통수를 긁적였다.

“그럼, 그럴까요?”

아주 잘하는 연주는 아니지만 그래도 가수를 꿈꾸면서부터 기타레슨을 받았기에 코드는 물론, 기본적인 연주곡 몇 개는 칠 줄은 안다.

조지 윈스턴의 Wild wind, tonight, 샘해밍턴의 Row of wolves등. 물론 수준급은 연주는 아니다. 이제 막 초보티를 뗀 수준. 수준급의 기타리스트들이 연주하는 것을 몇 번 본 적이 있는데, 진짜 거짓말하나 안하고, 손이 날아다닌다.

의자에 앉아 자세를 잡고, 기타를 무릎 위로 올렸다. 잔뜩 기대하는 직원들의 표정이 보인다. 그 전에 꼭 확인할 게 있다. 나는 예의 미소를 입가에 띠운 채 복화술을 하듯 중얼거렸다.

“영삼아. 혹시 나 노래뿐만이 아니라 기타도 잘 쳐?”

-네, 물론입니다.

“어느 정도 수준으로?”

-숙련도 100을 기준으로 이전 실력이 30이라면 지금은 80정도에 도달했습니다.

“80정도면 어느 정도인데?”

-국내 정상급 기타리스트들의 수준 정도 됩니다.

그거 참 듣던 중 반가운 소리다. 아무튼 실력이 많이 좋아졌다는 거지?

무슨 곡을 쳐볼까 고민하는데, 악보 대에 올라가 있는 pink shoes dance 가 보인다.

예전에 연습해본 적이 있는데, 난이도가 상급이상이라 30번쯤은 틀리고, 박자 따라가기도 급급해 2배속으로 느릿하게 쳐야 겨우겨우 흉내만 내며 칠 수 있던 곡.

나중에 실력이 늘면 그때 제대로 쳐보려고 암보만 해놨다. 그런데 왠지 지금 치면 잘 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드는 것은 믿는 구석이 있기 때문인 걸까?

카랑대는 인트로 부분이 시작되며, 모든 이의 시선이 내 손가락에 집중된다.

분홍 구두를 신고, 신명나게 춤을 춘다는 제목 그대로, 멜로디에서 느껴지는 리드미컬적인 느낌과 역동적인 부분이 듣는 이의 어깨를 들썩이게 하는 곡이다. 연주가 시작되자 하나 둘, 직원들이 하던 일을 멈추고, 무대 위에서 서서히 퍼져나가는 기타 선율이 귀를 기울인다.

때로는 발랄한 소녀가, 어쩔 때는 수줍은 소녀가. 무대를 놀이터삼아 이리저리 춤을 추는 흥겨움에 듣는 이들의 고개가 까닥거린다.

따란-딴딴-따라라란-따라란-따라란-딴딴.

의식하지 않아도 저절로 멜로디가 머리위로 떠오르며, 리듬을 탄 손가락이 정신없이 현 위를 돌아다닌다. 퍼커시브, 해머링, 풀링오프등. 어렵다는 각종 주법이 동시다발적으로 구현되며, 손가락이 숫제 날아다닌다. 이게 내 손가락이 맞나 싶을 정도로 현란하다. 어어, 지금 얌전히 플랫을 누르고 있어야할 왼손이 7플랫까지 넘어온 것 같은데? 이건 애드리브인가? 양손 주법을 치면서도 내가 놀란다.

직원 하나가 냅킨을 접다말고, 두 눈이 동그랗게 변한다.

“이거 혹시 사장님이 최근에 연습한다고 매일 치던 곡 아냐? 멜로디가 귀에 익는데?”

옆에 있던 동료가 고개를 끄덕인다.

“맞아. 핑크 슈즈 댄스라고 꽤 어려운 곡이야.”

“이곡이 이렇게 좋았나?”

“저 사람이 잘 치는 거지. 사장님이 치면 소음인거 몰라?”

“뭔 진 모르지만, 아무튼 듣기는 좋네. 신난다.”

대답을 한 직원 한명이 구두 끝으로 바닥을 톡톡 찍으며, 박자를 맞추더니, 이내는 멋도 모르는 멜로디를 흥얼거린다.

정신없이 현을 뜯다보니, 어느새 연주가 막장에 이르렀다. 연주가 끝났을 무렵에는 몇 안 되는 관객들 사이에서 ‘와.’하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나는 기타를 내려놓았다. 끝난 건가? 정신이 하나도 없다. 이렇게 기분 좋은 연주는 처음이었다. 항상 기타로 연주곡을 칠 때는 혹시라도 틀리지 않을까, 박자를 놓칠까 전전긍긍하며 치기에 급급했다. 그런데 이렇게 정신을 놓고 기타를 칠 수도 있다니. 가벼운 흥분마저도 든다. 나도 모르게 주먹을 꽉 쥐었다.

안 그랬다면 비명을 질렀을지도 모른다. 너무 좋아서.

김민석이 커진 눈으로 나를 쳐다본다.

“연주가 많이 좋아졌네? 원래 네가 이렇게 기타를 잘 쳤나?”

외계인한테 신체개조를 받아서 그래요. 하하하.

이런 소리를 지껄이면 미친놈 소리를 듣겠지? 아마도 정신병원에 가둘지도 모른다. 나는 입술에 침도 안 바른 채 태연하게 거짓말을 했다.

“요 몇 달 동안 이것만 연습했거든요.”

그때 입구 쪽에서 말소리가 들려왔다.

“사장님! 저 친구가 오늘 우리 팀에 들어올 세컨 기타에요?”

두 명의 사내가 안으로 걸어 들어온다. 둘 다 가죽재킷에 선글라스를 끼었는데, 한 명은 등에 기타를 멨고 있었고, 한 명은 어깨에 가방을 멨다.

오늘 내가 들어갈 팀의 일원인가? 아무튼 나이는 30대 초반 정도로 보인다. 헌데 둘 다 덩치가 보통이 넘었다.

“괜찮지?”

“괜찮은 정도가 아니라 대단한데요? 실력이 형편없으면 어떻게 하나 걱정했는데.”

“설마, 내가 아무나 추천 했을라고.”

나중에 알고 봤더니 조인시켜준 밴드는 카페 사장의 지인들이다. 편하게 말을 하는 걸 보니, 꽤나 친한 사이처럼 보인다.

앞서 들어온 사내가 곧장 무대 위로 올라와 케이스에서 기타를 꺼내 든다. 바로 앞에서 보니 역시 덩치가 장난이 아니다. 목덜미에 새겨 넣은 알록달록한 문신도 보인다. 혹시 이 사람들 깡패는 아니겠지? 깡패들이라고 취미로 밴드활동을 하지 말란 법은 없으니까. 만약 그런 거라면 조금 무섭기는 한데.

“방금 그 곡 연주하는 건 많이 들어봤어도 애드립치는 건 처음 봤네. 아무튼 잘 들었어, 친구. 자네 이름이?”

앞선 사내가 기타를 꺼내들며 묻는다. 그 간단한 동작에도 팔뚝 근육이 성을 내고 있기에, 괜히 몸이 움찔했다.

“최강민입니다.”

“좋아. 한참 어린 거 같은데, 편하게 말 놓을게. 나는 김형돈. 기타포지션을 맡고 있고, 저 친구는 황동일, 건반을 담당하고 있지. 우리 보컬이랑 드럼이 아직 안 왔는데, 그 전에 우리들끼리 한 번 합이나 맞춰볼까?”

저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기타라니. 예술적 충격이다. 근육만 놓고 보면 바벨을 들고 다니면 딱일 것 같은데.

어느새 세팅되어 있는 건반 앞에 다가가 스위치를 켜고 있던 황동일이 좋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혹시 조지클락의 oh my love라는 곡 알아? 오늘 우리가 합주할 곡인데.”

세계적인 팝가수 조지클락이 밴드와 함께 다니며, 전 세계 무대를 누비며 불렀던 곡.

고개를 끄덕이자 황동일이 다시 되묻는다.

“악보는? 필요하면 한부 줄까?”

기타 둘과 드럼, 건반 포지션이 필요한 합주곡이다. 밴드 곡에 몇 번 참여해서 세컨 기타만 잡아본 내가 악보를 외우고 있을 리가 있을 리가······.

있지.

나는 복화술 하듯 또다시 입술을 달싹였다.

“영삼아, on my love곡 알아? 이것도 내가 칠 수 있을까?”

-지금 최강민님 머릿속엔 12만 8천 개의 악보가 담겨져 있습니다. 물론 가능합니다.

입이 쩍 벌어진다. 곡명을 떠올리며 집중하자 눈앞에 악보를 보듯 머릿속에 악보가 펼쳐진다. 와, 신세계다. 기억 주입 뭐 이런 건가?

생각해보면 먼저 쳤던 핑크슈즈댄스도 딱히 의식하지 않아도 손가락이 멜로디를 따라갔다. 익숙한 노래는 가사를 굳이 상기시키지 않아도, 따라서 흥얼거릴 수 있는 것처럼 악기의 멜로디 또한 마찬가지. 이른바 기억효과라는 거겠지. 역시 인간의 뇌는 대단해.

“괜찮습니다.”

내가 대답했다.

“호오, 그래? 꽤 긴 곡인데 괜찮겠어?”

“네.”

“좋아. 그러면 바로 시작하지.”

기대감 찬 목소리로 대답한 김형돈이 조율을 금방 끝내고, 현을 뜯기 시작한다. 어, 이렇게 아무 말도 없이 바로 시작하는 건가? 건반을 맡고 있는 황동일은 신호 없는 시작에 익숙한 듯 곧장 건반을 누른다.

오우, 그나저나 저 기타 치는 양반, 생긴 거와는 어울리지 않게 실력 꽤나 죽이네. 그래도 가수해본답시고, 공연장도 많이 기웃거려보고, 정상급 기타리스트들의 연주도 몇 번 들어봤는데, 저 정도면 충분한 숨은 고수라 불릴만하다. 여기가 홍대이니 홍대고수쯤 되겠지.

마치 제 실력이라도 뽐내려는 듯 화려한 인트로 부분이 순식간에 지나가고, 피크를 잡은 내 손이 기타 현을 긁어내린다.

특별한 기술도, 어려운 것도 없는 그저, 단순히 코드만 잡고 긁으면 되는 기타2의 역할.

박자만 놓치지 않으면 딱히 어려울 것도 없다. 헌데, 반복해서 치다보니 곡 전체가 왠지 심심하게 느껴진다. 드럼과 보컬이 빠져서 그런 건가?

그와 같은 궁금증을 떠올리고 있는데, 영삼이가 그 이유를 알려줬다.

-원래 이곡은 기타 3대가 필요한 곡입니다.

“3대?”

아하, 그렇구나.

코드를 잡고 긁으며, 악보를 떠올려보니 왜 연주가 밍밍한지를 깨닫게 됐다. 멜로디를 연주하는 기타의 하모니가 잘 살아나야 음이 풍부해지는데, 그 화음부분이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아니라서 기타 3의 역할을 뺐나보다.

하긴, 기타 둘에 드럼, 보컬까지 구성되어 있는 밴드에 기타 한명을 추가시켜 더 데리고 다니는 건 아무래도 그건 인력낭비겠지. 대부분의 밴드 곡은 4명으로도 어느 정도는 커버가 되니까.

“흐음. 그렇다면 어디 한번···.”

기타 3의 역할에 대해 잠시 생각해본 나는 틈틈이 비는 구간에 핑거스타일기법을 응용해서 화음을 넣기 시작했다. 기타 둘의 역할을 한꺼번에 소화하려니 손가락이 쉴 틈이 없었다. 손가락이 보이지 않은 빠르기로 날아다닌다. 대신 손가락을 희생한 대가로 소리가 조금 더 풍부해졌다.

예기치 못한 나의 애드리브가 시작되자 둘이 놀란 표정으로 나를 쳐다본다. 하지만 연주를 멈추지는 않았다.

와, 저 새끼 뭐냐?

진짜 딱 그렇게 쓰여 있었다. 둘 얼굴에.

아, 여기서 드럼한대만 딱 있으면 좋을 것 같은데, 라고 생각하는 순간 잠자코 구경하고 있던 사장 김민석이 무대에 올라와 드럼 스틱을 잡았다.

“나도 좀 끼자. 괜찮지?”

아까 전부터 몸이 들썩이는 게 몸이 근지러운가 보다. 안된다고 하면 삐쳐서 한 달 동안 말도 안 걸 기세다.

곧 이어.

둥-둥-둥.

연주에 22인치의 묵직한 베이스 드럼소리가 더해진다.

오, 저 사장형 드럼 연주하는 건 한 번도 보질 못했는데, 알고 보니 팔방미인이네. 잘 치지는 못하지만 연주에 방해가 되는 수준은 아니다.

드럼이 추가되자 확실히 좀 더 소리가 풍성해진다. 여기서 노래까지 부르면 진짜 딱일 것 같은데. 그것이 조금 아쉽다.

나는 슬쩍 고개를 돌려, 멤버들의 눈치를 봤다.

내침 김에 한번 불러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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