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로듀스 나노머신-4화 (4/124)

영삼이가 내게 왔다 (4)

“······맙소사.”

다른 종류의 노래를 내리 5곡이나 부른 뒤 나는 멍한 표정으로 지으며 허공을 쳐다봤다. 세상에 맙소사. 영삼이가 말한 것은 결코 거짓말이 아니었다.

내 귀가 그래도 막귀는 아니거든.

마지막 곡은 내가 직접 핸드폰을 통해 녹음까지 했다. 녹음파일을 재생시키자 싸구려 핸드폰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오는 목소리가 내 것이 아닌 것 마냥 듣기 좋기 그지없다. 세상에, 음색까지 바뀌었다. 저걸 내가 불렀다고?

혹시나 해봐서 춤도 춰봤다. 안무가 선생님한테 매일 뻣뻣하다고 욕만 먹는 내 육체가 이렇게 유연해질 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평소에 되지도 않는 웨이브가 오늘따라 왜 이리 잘 되는 건지. 누가 보면 연체동물인줄 착각하겠다.

“하, 말도 안 돼.”

거짓말 조금 보태서 이 말만 백번쯤은 한 것 같다. 천 번을 해도 모자라다. 지금 그게 딱 지금의 내 심정이니까.

멍청한 표정으로 한참을 그러고 있는데, 테이블위에 올려놓은 핸드폰이 울린다. 발신자를 보니 김민석형이었다.

홍대에 위치한 카페 사장형. 고마운 사람. 그 형을 보는 내 심정이 딱 그랬다. 전화를 받자 익숙한 목소리가 핸드폰너머로 들려온다.

-어, 일어났냐?

“네, 아침부터 무슨 일이세요?”

-오늘 카페 오는 날인 거 알지?

매주 일요일은 ‘only’라는 카페에서 3곡정도 노래를 부른다. 일요일은 유일하게 레슨이나 연습이 없는 날이다. 물론 공짜로 노래를 부르는 건 아니다. 곡당 만원의 돈을 받는데, 합주 같은 경우는 30분씩 끊어서 연주비를 받기도 한다. 이게 은근히 쏠쏠하다. 딱히 다른 수입원이 없는 나 같은 경우에는 대부분 이곳에서 받는 돈으로 월세를 충당한다.

“물론, 알죠. 6시까지 가면 되잖아요.”

-오늘은 조금 더 일찍 와줄 수 있어?

“무슨 일 있어요?”

-단체 예약손님이 생겨가지고, 오픈을 조금 더 일찍 하려고. 이 사람들이 연주나 노래도 듣고 싶다네.

“몇 시까지 가면 돼요?”

-4시까지. 가능해? 페이는 1.5배 쳐줄게.

원래대로 줘도 감사해서 절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인데, 1.5배라니.

“정말요?”

나도 모르게 되물었다.

핸드폰 너머로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어떤 돈 많은 여자애가 돈 자랑을 하고 싶었는지, 카페를 통째로 빌렸어. 걱정하지 말고 늦지 않게끔 와. 그리고 너 기타도 좀 칠 줄 알지?

“칠 줄은 아는 데, 그건 왜요?”

-너 말고도 무대 올라갈 팀 3팀 더 불렀는데, 한곳에서 시간이 안 맞았는지 세컨 기타 한명이 비나봐. 별로 어려운 곡은 아니고, 급하게 코드 긁어줄 사람정도를 구하던데, 가능하면 그것도 해볼래? 한다고 하면 내가 그쪽 팀한테 한번 이야기 해보고.

메인기타도 아니고, 세컨이라면 별로 힘든 건 아니다. 기타를 만질 줄 아는 어지간한 사람이라면 누굴 세워놔도 충분한 정도. 일부러 나한테 이런 기회를 주는 것은 늘 생활비에 쪼달리는 나를 걱정해주는 탓이겠지.

“고마워요. 형.”

이건 진심이다.

-고맙긴. 조금 있다가 보자.

통화를 마치고, 시계를 들여다봤다.

오전 7시 50분. 4시가 되려면 한참이나 남은 시간이다.

하지만 그 시간 전까지 할 일이 있다.

그것은 바로 전단지 알바.

평일 날은 보컬트레이닝이다, 안무 연습이다, 매일이 전쟁이고, 유일하게 시간이 나는 일요일은 알바와의 전쟁이다. 이래나 저래나 나는 하루하루가 전투병 인생이구나. 그래도 먹고는 살아야하니까···.

욕실로 들어가 간단하게 머리를 감고, 세수를 마친 나는 셔츠를 한 장 위에 걸치고, 거울을 들여다봤다. 헌데, 늘 입던 옷 핏이 미묘하게 달라진 것은 나만의 착각일까?

“뭐지? 체중이 조금 줄었나?

-신체적인 변형이 와서 그렇습니다.

아이씨, 깜짝이야.

예고도 없이 튀어나온 목소리에 나는 흠칫했다. 형체나 기척도 없이 갑자기 목소리가 툭 튀어나오니 이건 이거 나름대로 고욕이다. 헌데 신체적인 변형? 이건 또 뭔 소리야.

“무슨 변형?”

-프로그램과의 동기화 과정 중에 생긴 최소한의 신체적인 변화를 말합니다.

“조금 더 알아듣기 쉽게 말해줄래?”

-일명 연예인 몸매라고 해서 사람들이 대중적으로 좋아하는 몸매, 안무를 추는데 필요한 근육, 옷을 입었을 때 멋스러움이 두드러지는 라인 등. 이것들을 객관적인 데이터를 통해 수집, 그것을 최강민님 신체에 적용시킨 걸 말합니다.

흠. 그런 거였나? 나는 웃통을 벗어, 다시 한 번 거울을 보며 확인했다. 확실히 어제는 잘 보이지 않던 복근이 도드라져 보이고, 어깨 골격도 조금 더 넓어진 것 같다. 기분 탓인가 싶었는데, 설명을 들으니 그 변화가 눈에 들어온다.

이런 몸을 갖기 위해서 도대체 웨이트 트레이닝을 얼마나 해야 하더라? 또 먹어 치워야하는 닭 가슴살의 양은 또 얼마고? 원래도 그다지 후진 피지컬은 아니었지만, 작은 차이가 명품을 만든다고, 그 차이는 데뷔에 가까워질수록 더욱 선명해질 것이다.

이건 분명히 좋아해야하는 일이다. 좋아해야하는 일이 분명한데도 이상하게도 낯설다. 하긴 바로 납득하는 게 이상한 걸지도.

문득 한 가지 궁금증이 일었다.

“혹시 아놀드 슈왈제네럴 형님처럼 우락부락한 근육으로도 변환이 가능할까?”

-동기화 시간이 오래 걸리기는 하지만 가능합니다. 하지만 급격한 신체의 변화는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또한 매니저로서 그 같은 몸매는 춤을 추는데 불편할 뿐이니, 추천 드리지 않습니다.

“알아, 알아. 그냥 한번 해본 소리야. 나도 그런 몸은 사절이라고.”

다시 셔츠를 몸에 걸치고, 모자를 푹 눌러썼다. 냉장고를 열어 며칠 전에 사놓은 식빵 한 조각을 입에 물었다. 열쇠를 챙겨들고, 문을 잠그고 집밖을 나섰다.

늘 맞이하는 일요일의 아침.

유난히 햇볕이 따갑게 내리쬔다.

여태껏 맞이해왔던 아침과는 조금, 아니 많이 달라진 아침이라는 점에서 나는 긴장과 흥분 속에서 그 첫발을 내딛었다.

*

전단지 알바를 끝내고, 홍대에 위치한 카페에 예상보다 조금 더 일찍 당도했다.

중심가에서 조금은 벗어난 지하건물에 위치한 only 카페.

문을 열고 들어가자 여기저기에서 부산스러운 움직임이 보인다. 종업원들이 이른 출근을 해서 테이블을 들고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불필요한 테이블을 한쪽 벽면에다가 밀어놓고, 커다란 공간을 만들려는 것처럼 보인다. 혹시 카페를 빌렸다는 이들이 여기가 나이트클럽이라고 착각하는 건 아니겠지?

“어, 왔어?”

카페 사장인 김민석이 나를 발견하고 손을 흔든다.

내가 다가서며 물었다.

“이게 뭔 난리래요?”

“난들 알아? 이렇게 해 달래는 걸. 뭐, 춤이라도 출건가 보지. 헌데, 생각보다 빨리 왔네?”

“알바가 빨리 끝나서요. 뭐 좀 도와드릴까요?”

“됐어. 음향세팅은 다 끝내놨으니까 연습이나 조금 하든가. 아, 그 세컨 기타구한다는 팀도 곧 온다니까 오면 합주 한 번 맞춰 보고.”

“네. 신경써주셔서 감사합니다.”

나는 고개를 숙였다.

두툼한 그의 손이 내 어깨 위를 툭툭 두드린다.

“나중에 데뷔하면 잊지 말고 홍보나 잘해줘. 종종 놀러 와서 공짜로 노래 몇 곡 불러주면 더 좋고.”

“하하, 꼭 그럴게요.”

이건 진심이다. 한때 가수를 꿈꿨다는 김민석 사장은 나를 볼 때면 자신의 옛날 모습을 보는 것 같다며, 오늘처럼 이것저것을 잘 챙겨줬다. 무대에 올라가는 대가로 받는 돈이지만, 이것 또한 음악을 좋아하는 아웃사이더들에게는 치열한 일자리 중 하나다. 그 기회를 줬다는 것만으로도 굉장히 고마운 일이다.

무대 위에 당장 사용할 수 있는 건반, 드럼, 기타가 이미 세팅되어 있었다. 베이스, 기타는 휴대가 용이하기에 연주자들이 직접 들고 다니며 관리하는 편이나, 드럼과 건반은 미리 세팅되어 있는 가게 걸 빌려서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진짜 수준급 연주가들은 차에 자신의 악기를 싣고 다니기도 하는데, 이런 작은 홍대 카페지하실에서 연주를 하는데 그렇게까지 공을 들이는 이들은 아직 보지 못했다.

나는 가지고온 기타가 없기에 무대 위에 올라 세워놓은 기타를 들고, 줄을 뜯어 조율을 했다. 디리링- 하는 기타소리가 좁은 공간속을 헤집다 흩어진다.

그 사이 테이블 정리가 끝나고, 소일거리를 찾아 돌아다니던 직원들이 기타소리가 들리자 일제히 내 쪽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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