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로듀스 나노머신-3화 (3/124)

영삼이가 내게 왔다 (3)

어디서 들려오는 지도 모를 목소리와 한참동안 떠들어댄 나는 몇 가지 정보를 알아냈다.

알바트로이 행성에 살고 있는 외계인들에 의해 T-032가 프로그램화 되어 내 몸속에 들어왔다는 것. 이 외계인들은 한국의 엔터테인먼트 쪽에 상당히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는 것. 그리고 자신을 통해 여러 가지 엔터테인먼트 쪽의 전반된 데이터를 수집하고, 그것을 배우고 싶다는 등의 말도 안 되는······.

하아, 근데 내가 지금 무슨 소리를 지껄이고 있는 거냐. 지금 이걸 나보고 다 믿으라고? 그렇다고 내 몸속에서 말을 걸어오는 영삼이가 있는데, 안 믿을 수도 없는 노릇이고.

아, 모델 번호가 032모델이라길래 아무래도 부르는 이름정도는 있어야 될 것 같아서.

“그렇다면 내 몸을 네가 마음대로 컨트롤 할 수 있다는 거야?”

-아닙니다. 제가 최강민님의 신체를 직접 컨트롤하기 위해서는 최강민님의 동의를 받도록 프로그래밍 되었습니다.

“지랄.”

나도 모르게 튀어나온 욕설이다. 몸에 들어와 있는 것부터 동의 없이 들어와 놓고 이게 무슨 개소린가 싶다. 그래도 꽤나 신사적으로 이야기를 하는 건 마음에 든다. 어쨌든 이제부터는 뭘 하더라도 내 동의가 필요하다고 하니, 그건 그나마 다행이다.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몸이 제멋대로 생각한다고 생각하니 끔찍하기 그지없다.

“그래서 내가 앞으로 향후 할 일들에 대해서 매니저 역할을 해주겠다고?

-네, 그렇습니다.

“정확히 그 역할이 뭔데?”

-능률적으로 연예계의 활동에 임할 수 있게 계획, 통제, 관리, 생산 활동 등에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가수로서 활동 시 딕션, 발성, 고음 처리등 소리를 내는 기관에 직, 간접적으로 관여하여 보정효과를 낼 수 있습니다. 춤을 출 때 동기화된 부분들을 신체에 적용, 본 것과 똑같은 이미지를 구현시킬 수 있고. 그밖에도 활동에 필요한 정보수집, 예측, 활용도 적용시켜······.

“자, 잠깐! 그러니까. 한마디로 지금 내가 노래를 한다면 원래 실력보다 더 좋게 만들어줄 수 있다는 거지? 보정효과로? 게다가 춤까지 잘 출 수 있게 해 주고?”

-네, 그렇습니다. 그 밖에도 필요한 모든 자원에 무궁무진한 지원을······.

뒤로 이어지는 개소리는 하나도 들리지가 않았다.

나는 생각에 잠겼다. 생각이 아니라 어쩌면 멘붕 상태에 빠져있는 건지도.

말도 안 되지. 내가 로봇도 아니고, 그게 가능하다고?

가만. 영삼이는 슈퍼컴퓨터 같은 존재이고, 지금 내 몸속에 들어와 있으니, 얼핏 말이 되는 건가? 와, 무슨 SF영화를 보는 것도 아니고, 순간 소름이 돋는다.

하하하. 내가 진짜 미쳐가나? 이걸 납득하고 있다니. 젠장, 젠장!

“이게 무슨 개 수작질이··· 어?”

순간 내 목에서 나는 목소리가 평소와는 다르다는 것을 느끼며, 고개를 갸웃했다. 방금 뭔가 미묘하게 달라진 것 같은데, 착각인가?

“지금 뭘 한 거야?”

-믿지 않으시기에 목소리 보정을 해봤습니다.

“언젠 내 동의 없이 아무것도 못한다며?”

-유사시 제 판단으로 신체의 10%정도는 사용할 수 있습니다. 약관에도 나와 있는 내용입니다.

“애초에 허락도 없이 내 몸에 들어와 놓고 약관 운운하는 거야? 만약 내가 내 몸속에서 나가라고 한다면?

-그건 제 의지와는 상관없이 이루어진 일입니다. 또한 프로그램을 종료하기 위해서는 최강민님의 육체가 물리적으로 사망상태에 도달해야합니다.

빼박인가.

“좋아, 그렇다고 쳐. 그런데 방금 그거, 아니 지금도 내 목소리가 바뀌어 있네? 이거···. 이거 어떻게 한 거야?

조금은 목소리가 더 근사해진 것 같기도 하다. 톤이 조금 낮아진 것 같기도 하고. 딕션도 좋아지고, 억양도 귀에 확 꽂힌다.

어지간한 남자 아나운서들보다도 목소리가 좋다.

-인위적으로 인두, 구강, 비강 성대를 조금 조정한 것뿐입니다. 아주 간단한 원리입니다.

“하나도 간단하지가 않아! 그냥 이런 게 쉽게 된다고?”

-저는 최근에 개발된 6세대 업그레이드 된 T-032 모델로, 인간의 신체의 70%이상을 관여할 수 있도록 제작된 프로그램입니다. 참고로 전 모델인 T-030모델은 최대 적용치가 50%에 불과했습니다.

영삼이의 설명이 이어졌지만 나는 이 말도 안 되는 능력을 사용하는데 있어서 뒤따라올 대가에 대해서 생각을 했다.

누군가 말을 했지.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고.

“그래서 대가는? 혹시 죽으면 내 영혼이 그쪽 행성으로 팔려간다던가 아니면 내 육체를 가져가서 해부를 하든가 그래?”

-아닙니다. 임상실험 중이라 대가는 신체를 제공하는 것으로 끝이 납니다. 대신 신체활동에 의해서 수집되는 데이터는 전부 알바트로이사로 귀속됩니다. 사망과 동시에 계약은 종료됩니다.

“이게 다 공짜라고?”

-그렇습니다. 약관에 나와 있습니다.

정신이 없기는 하지만 나는 생각을 가다듬었다. 따지고 보면 이건 나에게 굉장히 좋은 일이다. 그것도 아주 많이.

“그 약관이라는 것 좀 볼 수 있을까?”

-가능합니다. 앞에 보이는 벽에다가 띄워드리겠습니다.

프로젝트에서 쏟아내는 빔 마냥, 벽면에 빼곡한. 알아볼 수도 없는 지렁이 글자가 벽면을 깨알같이 가득 메운다. 말 그대로 외계어다. 알바트로이 행성에서 사용하는 언어인가? 오, 신기해. 도대체 이건 무슨 원리로 보이는 거지?

-간단합니다. 망막에 상을 맺히는 원리를 이용하여, 제가 직접 그것을 뇌에서 인식하게끔 명령을 내리는 겁니다.

적응 안 되네. 진짜.

“한국어로 바꿔줘. 지금 나 엿 먹이려는 거지? 외계어로 써놓으면 내가 볼 수나 있겠어?”

-예, 한국어로 변환시키겠습니다.

벽에 쓰여 있는 글자가 잠깐 깜빡거리고 외계어에서 보기 좋은 한글로 변환된다. 근데, 많아도 너무 많다. 하루 종일 읽어도 다 못 읽겠는데?

“글자가 총 몇 자나 되지?”

-이용약관에 쓰여 있는 글자는 총 152330자입니다.

됐다, 됐어. 무슨 약관내용이 소설책 장편 시리즈 분량이네. 그것도 그거지만 지금 당장 나는 목소리가 변환되는 기적을 체험한 뒤 그 보정기능이라는 것이 궁금해졌다.

“약관은 됐고, 어쨌든 내가 노래를 하면 훨씬 더 잘 부를 수 있다는 거지?”

-그렇습니다.

“춤도 지금 보다 훨씬 잘 출수 있고?”

-시각적으로는 그렇습니다.

지금도 일반인들에 비교하면 제법 노래도, 춤도 비교적 괜찮은 편이지만, 4년이 다 되도록 아직도 B반 연습생신분인걸 보면 재능이 없는지도 모른다. 만일 가수가되고 싶은 갈망이 크지 않았다면 진즉에 때려 쳤을 지도.

헌데, 그 재능을 단번에 끌어올릴 수 있다는 데 혹하지 않으면 그건 사람이 아니다.

“그러면 지금 당장 해줘. 그거.”

그리고 농담이 아니라 1초도 걸리지 않았다. 말 떨어지기가 무섭게 대답이 튀어나왔다.

-적용되었습니다.

이렇게나 빨리?

나는 크게 심호흡을 하고, 마른 입술을 핥았다. 가느다란 떨림과 흥분. 기분 좋은 긴장감에 침을 삼켰다.

아, 떨린다. 큼큼. 목을 가다듬고, 입을 천천히 벌렸다. 최근 연습중인 노래 topboys의 all yesterday의 첫 소절이 내 입을 통해 천천히 흘러나온다.

그리고 이내 감미롭고, 편안하고 듣기 좋은 노래가 옥탑방안을 천천히 잠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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