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로듀스 나노머신-1화 (1/124)

재능없는 4년차 연습생에게 찾아든 행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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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3차원 세계, 종교, 귀신, 영혼, 외계인 등······.

나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절대 믿지 않는다. 그래서 믿는 종교도 없다.

‘보이는 것만이 진실은 아니다.’ 라는 말이 있다.

보이는 것조차도 진실이 아닐 때가 있는데, 어떻게 보이지도 않는 것을 믿을 수가 있지?

나는 오히려 그걸 믿는 사람들이 더 신기했다.

헌데, 어느 날 그것이 내 눈앞에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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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삼이가 내게 왔다 (1)

삼일동안 바쁘다며 연락이 없던 여자 친구에게 대뜸 전화가 왔다. 회사 앞 카페에서 잠깐 좀 만나자고.

그때 난 직감했다. 아, 올 것이 왔구나.

전화를 받고 나가니, 카페 창가로 스키니 청바지에 흰색 티셔츠를 입고 있는 그녀가 보인다. 긴 생머리를 늘어트리며, 새초롬한 표정으로 골똘히 뭔가를 쳐다보는 있는 모습. 누가 배우 지망생 아니랄까봐 분위기만큼은 화보 백번쯤은 찍은 모델 같다. 하긴, 나도 처음에는 저 분위기에 반했지.

배우 지망생 강예슬. 배우를 지망하는 그녀와 달리 가수 연습생 신분으로, 둘 다 같은 D&M엔터테인먼트 소속이다. 종종 지하연습실에서 만나 안무를 같이 배우는 과정에서 친해졌는데, 오늘까지 교제를 시작한지 딱 300일이 됐다.

문을 열고 카페로 들어가자 핸드폰을 들여다보고 있는 그녀가 슬그머니 고개를 든다. 깜빡거리는 눈이 나를 따랐다. 맞은편에 앉는 사이 그녀가 머리카락을 쓸어 넘겼다. 차분하게 가라앉은 머리가 흐트러진다.

“왔어?”

목이 말랐는지 아니면 꺼내놓아야 할 말의 무게 때문인지, 얼음이 동동 띄워진 오렌지 주스를 한 모금 마시고는 나를 쳐다본다.

나는 인사 대신 입을 꾹 다문 채 그녀를 응시했다. 어디 해보고 싶은 말이 있으면 해보라는 표정으로.

한참만에야 그녀의 불그스름한 입술이 달싹인다.

“같이 지내보니, 우린 좀 안 맞는 거 같아.”

별로 놀랄 일도 아니다. 예상했던 말이다.

불편한 침묵이 맴돈다. 물끄러미 나를 쳐다보고 있던 그녀가 짧게 숨을 들이쉰 뒤 입술을 달싹인다.

“그거에 대해서 오빠는 어떻게 생각해?”

“헤어지자고?”

“응? 으응. 아무래도 그러는 게 서로에게 좋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끄집어내는 그녀의 말에 나는 대뜸 고개부터 끄덕였다.

“그래.”

오히려 놀란 쪽은 상대다. 그녀의 눈이 화등잔 만하게 커진다.

“그래? 그···으래에? 헤어지자는데 할 말이 고작 그게 다야?”

“어.”

“더 할 말은 없고?”

“무슨 할말? 헤어지자고 네가 말했고, 나는 알았다고 대답했는데.”

잠깐 경직됐던 그녀의 표정이 서서히 일그러진다. 얼굴에는 불쾌함이 떠오른다. 분하겠지. 이별에 대한 이야기는 네가 먼저 꺼내놓았는데, 분위기가 왠지 네가 떨어져나가는 모양새 같으니까. 혹시 내가 울고불고, 질질 짜며 매달리는 그런 장면이라도 상상했다면······.

“이유는 안 물어봐?”

“물어봐야 되니?”

그녀가 입술을 질근질근 깨문다. 그 모습에 며칠 전 늦은 밤 그놈 승용차에서 내리는 걸 봤다는 말을 꺼내놓지 않은 게 얼마나 잘한 일인지. 작은 통쾌함마저도 느껴진다.

예전부터 그녀는 늘 그랬다. 현재의 위치에서 할 수 있는 것을 하기보다는 늘 닿지 못하는 곳을 동경했고, 자신을 그 위치까지 데려다줄 왕자님을 기다렸다. 오죽하면 가장 좋아하는 동화가 신데렐라일까. 어쩌다보니 나와 애인관계가 되었지만, 그녀도, 나도. 내가 왕자감은 못 된다는 걸 둘 다 잘 알고 있다.

그런 그녀 앞에 자신의 위치를 단번에 상승시켜줄 왕자님이 나타났으니, 내가 눈에나 들어올 리가 없다.

“좋네, 깔끔하니. 오빠가 이렇게 쿨한 남자인줄 알았으면 내가 다시 한 번 생각해 봤을 텐데!”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나 나를 한번 홱 쏘아보더니, 이내 성큼성큼 밖으로 나간다. 나는 그 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뭘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겠다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녀에 대한 내 마음은 며칠 전 그날 밤. 서서히 사그라들기 시작해서 지금은 조금의 미련조차도 안 남았다.

정이 안 들었다면 그것은 거짓말이겠지만, 차라리 이렇게 되니 오히려 신경 쓸 곳이 없어진 것 같아 마음이 홀가분해졌다.

* * *

D&M엔터테인먼트.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S&N, Y&G, JYG같은 손꼽히는 대형 연예기획사는 아니지만 그래도 ‘탑보이’와 ‘미드나잇’같은 남자 아이돌 그룹을 배출해낸 중견 급 기획사.

장소라, 홍유리 같은 탑 스타급 여배우들을 간판으로, 최근에는 개그맨, MC등의 영역에도 폭넓은 확장을 꽤하고 있다.

탑 보이, 미드나잇 그룹이 한류 열풍에 동참을 한 가운데, D&M에서는 그들을 이을 새로운 남자 아이돌 그룹을 만들기 위해 박차를 가하고 있다.

새로운 한류의 열풍을 몰고 올 주인공이 될 그룹을.

별관에 위치한 지하연습실.

티셔츠에 온통 땀내가 절은 남자들이 젖은 빨래감 마냥 바닥에 널브러져 있다. 누워있는 놈도 있고, 벽에 기대에 있는 놈도 있고, 자세는 가지각색이다.

90분 연습 끝에 짧은 휴식시간이 주어졌지만 웬일인지 다들 내 눈치만 설설 보고 있다.

뭐지? 싶은데, 누군가가 내게 다가와 옆에 털썩 앉는다. 문수였다. 나와 같이 19살 때 연습생으로 들어와 4년차가 된 동갑내기.

뺨에 녀석의 시선이 와 닿는 것이 느껴진다.

“예슬이 걔, 그렇지 않아도 연습생들 사이에서는 벌써 소문 다 났어. 요즘 한준혁 만나고 다닌다고. 차라리 잘 헤어졌어. 따지고 보면 네가 아깝지.”

아, 왜 이리 내 눈치만 보나 했더니 그거 때문이었구나.

이놈의 바닥은 어찌된 게 비밀이라는 게 없다. 차였는지 차고 온 건지도 모를 일이 벌어지고, 불과 3시간도 채 되지 않았는데.

“그건 또 어떻게 알았어?”

“그게 중요해?”

하긴, 그게 무슨 상관이랴.

“너 데뷔하고 빵 뜨면 아마 예슬이 고것 배 아파서 죽으려고 들걸? 솔직히 막말로 네가 한준혁보다 꿀릴게 뭐가 있냐? 키 크지, 인물 좋지, 성격 좋지. 안 그래?”

“네가 한준혁 성격을 어떻게 알아?”

“꼭 겪어봐야지만 아냐? 척 보면 답 나오지.”

그 말에 나는 피식 웃었다.

“나도 성격 좋진 않아. 그리고 걘 스타잖아.”

그 말에 어쭙잖게 위로하려던 문수의 말이 쏙 들어갔다.

스타. 그 말 한마디면 모든 게 정리가 된다. 나는 벌써 4년차가 된 연습생신분이고, 한준혁은 탑 스타 테크를 차례차례 타고 올라가고 있는 유망주다. 아무 여자나 붙잡고 한번 물어봐라. 남자 친구 자동차가 벤츠가 좋겠어, 아니면 겨우 굴러가는 똥차가 좋겠어? 하고.

백이면 백 질문 같지도 않은 걸 물어본다고 대답하겠지.

“저녁에 소주나 한잔 하자. 더럽고 치사해서 빨리 뜨던가 해야지.”

얼마 전 비슷한 상황으로 여자 친구와 헤어진 문수가 내 어깨를 툭툭 두들기며 일어선다. 그러더니 거울을 보며 방금 전 췄던 춤들을 다시 연습한다.

그래, 이 바닥에서 성공하려면 연습과 노력만이 살길이긴 하지.

하지만 4년이 다 되어가도록 데뷔는커녕 아직도 B반에서 춤 연습을 하고 있는 나와 문수는 어쩌면 스타는커녕 데뷔조차도 글렀는지 모른다.

그걸 생각하니 조금 우울하긴 한데.

그리고 그날 밤.

위로해주겠다고 한 문수가 나보다 훨씬 더 취한 듯 느껴져 녀석이 집에 들어가는 것을 확인하고, 나도 자취집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제길, 그러고 보니 집에 예슬이가 왔다갔다하면서 놓아놓은 생활품과 물건들이 잔뜩 일 텐데 들어가서 그걸 본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썩 좋진 않다. 빨리 집에 가서 물건들부터 안보이게 싹 치워버려야겠다고 생각하던 그때.

“어, 저게 뭐지?”

반사판을 수백 개는 댄 듯한 하얀 물체가 내 머리위에 번쩍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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