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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젝트 델타-538화 (538/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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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이렇게 실제로 마주뵙게 되어서 영광입니다.”

정보국 부국장인 도널드 셰어가 차를 권했다.

준은 약간 얼떨떨한 기분으로 그의 맞은 편에 앉아 있었다. 흑인 직원이 안내한 응접실에 기다리고 있으니 10분도 걸리지 않아서 이 사람이 나타난 것이다. 아무래도 웨스트윙에서 업무보고 중이었던 것 같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렇게 빨리 도착할리가 없으니까.

“영광이랄 것 까지는 없고요.”

“그런데 무슨 일로 여기까지...?”

잠시 이곳이 시청이고, 자신이 민원을 해결하기 위해서 온 것인가 하는 착각이 들었다. 그만큼 도널드 셰어의 태도가 정중했다.

‘만나자 마자 권총을 들이밀고 체포를 하길 기대한 건 아니었지만, 이건 좀 심한데.’

도널드의 입장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지금 이 상황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리고 있었다. 준 알스버그에 의해서 추정되는 피해가 실로 어마어마한 만큼 비공식 적으로 잡아들여서 고문을 하거나 이런저런 짓을 할 생각을 하기는 했다.

하지만 이렇게 대놓고 찾아올거라는 생각은 조금도 해본적이 없기에 어떻게 준을 대해야 할지 혼란이 온 것이다. 그렇다고 대놓고 체포하기에는 너무나도 명분이 부족했다.

실제로 준은 연방법에 걸릴 정도의 큰 죄를 저지른 적이 없으니까.

물론 대한민국에서 경찰조사를 받다가 도망친 적은 있지만, 그 사건 자체가 유죄로 확정난 사안도 아니었다.

게다가 그게 아니더라도 강제로 그를 구속하기에는 현재로선 방법이 없었다.

총을 들이밀고 수갑을 채운다 한들 그를 잡아둘 수 없다는 것 정도는 그가 더 잘고 있기 때문이었다.

“아. 일단 여러가지 용건이 있긴 한데. 이걸 먼저 보시겠습니까?”

준은 아이반에게서 얻은 서류를 건넸다. 분리주의자들과 연방정보국과의 관계를 입증할 수 있는 문서였다.

그걸 죽 읽어보던 도널드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이, 이걸 어떻게...”

“어떻게 하다보니 구했습니다만.”

“제이슨 요원, 문 잠그게.”

“넵.”

찰칵.

동시에 준이 있는 응접실의 바깥쪽으로 검은 양복을 입은 요원들이 우르르 몰려 경계를 섰다.

이정도쯤은 예상한바라 별다른 감흥은 없었다. 도널드 셰어가 심각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이걸 보여주는 이유가 뭐지?”

“이제 좀 이야기를 할 분위기가 된 것 같네.”

“말돌리지 말고, 원하는 걸 이야기 하지 그러나?”

도널드가 으르렁 거리며 준을 위협했다.

시미가 주머니에 머리를 내밀었다.

“그래봤자 무섭지도 않은 걸.”

“으음...”

“사람 무안하게 그러는 거 아니야.”

“쳇. 나는 준 생각해서 그런 건데.”

시미가 투덜거리더니 다시 주머니 속으로 머리를 집어 넣었다.

준이 쓴웃음을 짓고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뭘 어떻게 하겠다는 생각은 없습니다. 제가 이 먼 연방까지 와서 분란을 일으킬 생각도 없고요.”“그럼 왜...?”

“그냥. 이걸로 서로 골치아픈 일을 서로 묻고 갔으면 하는 생각에서 찾아온 겁니다.”

셀럼에 대한 문제, 정보국 요원 납치에 대한 문제, 그리고 건물파괴나 슈퍼솔저 등등... 준이 친 사고는 생각보다 크다. 이제와서 아무런 일도 없다는 듯이 하하 웃으며 악수나 하고 헤어질 사이는 아니라는 뜻이다.

하지만 저쪽에도 약점이 있다면.

서로 불편한 감정을 가지고 있더라도 모른척 하고 넘어갈 수는 있는 것이다.

“으음...”

도널드 셰어의 표정이 복잡하게 변했다. 정보국 입장에서 준 알스버그는 그냥 내버려 둘 수 없는 인물이다. 그로 인해 돈으로 환산 할 수 없을 정도의 피해를 입었다. 거기다가 분리주의자와의 관계가 틀어지게 된 것도 엄밀히 말하면 손해인 셈이다.

자기네들에게 손해만 입혀놓고서 그만 털고 잊어버리자고 하는 셈이다.

속이 쓰릴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별것도 아닌 녀석 하나에 이렇게 휘둘려야 하나...’

하지만 이 문제는 정말로 크다. 연방에 준이 피해를 얼마나 입혔던 간데 그것이 그의 자리를 위협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 건이 밖으로 새어나가면 정보국 전체가 박살날 위험이 있다. 자리를 보전하는 건 둘째치고 자칫 잘못하면 감옥으로 끌려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었다. 그의 입장에서는 이 정보만큼은 절대로 알려져선 안되는 것이다.

‘죽일 수 있을까?’

지금쯤이면 특수부대가 이곳으로 달려오고 있을 것이다.

그중에는 최상급 헌터도 여럿이다. 지금까지 준 알스버그를 잡기 위해서 많은 전력을 투입했지만 한번도 성공하지 못한 건 사실이다.

하지만 이곳은 워싱턴 한 복판.

준 알스버그도 마음껏 날뛰지는 못할 것이다.

‘죽여...?’

마음이 조금씩 기운다. 여기서 이 녀석을 잡으면 자존심도, 실리도 모두 챙길 수 있다. 거기다가 잠재적인 적이라고 할 수 있는 델타 그룹의 핵심 인물을 제거할 수도 있다. 생각하면 생각할 수록 이득만 남는 일이다.

그때 준이 입을 열었다.

“여기서 로버를 꺼내면 어떻게 될까?”

도널드가 눈을 가늘게 떴다. 가장 생각하고 싶지 않은 시나리오다.

“연방과 전쟁을 할 생각인가?”

"아무것도 못하고 죽는 것 보다는 낫겠지.“

준은 탁자위에 둔 서류를 인벤토리에 집어넣었다. 순간적으로 도널드의 얼굴에서 아차하는 표정이 스쳐지나갔다.

“그렇게 아쉬워 하지 않아도 돼. 어차피 복제본은 얼마든지 있으니까.”

“그런 걸 가지고 연방을 뒤흔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건가? 물증이 없는 서류는 얼마든지 조작할 수 있어.”

“나도 그게 문제라고 생각하고 열심히 뒤지는 중이야.”

준은 순순이 시인했다. 그의 목적은 이곳에서 시간을 끄는 것이다. 정보국의 모든 시선이 자신에게 쏠려있다면, 그만큼 오펜하이머가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었다. 델타맵으로 확인해보니 녀석은 지근거리에 있었다. 같은 건물은 아닌 것으로 보아, 이 근처에 또다른 숨겨진 정보국 건물이 있음은 틀림없어 보였다.

어쨌거나 백악관 인근은 어지간한 건물들이 모두 정부의 기관들이다. 그 중 어느곳에 오펜하이머가 있든 간에 녀석이 물어오는 정보는 제법 쓸만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준의 말에 도널드 셰어의 표정이 다소 느긋해졌다.

“네 녀석이 이곳에 온 이유를 알겠군.”

“오. 정말인가?”

준이 놀란 눈을 하자 도날드가 의기양양한 얼굴이 되었다.

“이 서류를 보고 나서 내가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확인하려고 한 것이 아닌가? 이것을 감추려고 하면 할 수록 더더욱 이 서류가 진짜라는 걸 확인해 주는 거겠지. 하지만 애초에 그런 시시한 수작에 당할 정도로 우리가 우습게 보이던가?”

“그렇긴 한데, 만약 내가 이 대화를 녹음하고 있다면 어떻게 할 건데?”

“이 공간 안에서 도청기를 사용할 수 있을거라고 생각하나?”

도널드의 말에 준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별달리 느껴지는 것은 없었지만 저만한 자신감을 가지고 있는 이유는 있을 것이다. 준은 가지고 있던 일반 스마트 패널을 꺼내들었다. 확실히 전원은 켜지지 않았다.

델타폰이라면 지장없이 켜지겠지만, 굳이 그걸 꺼내어 경각심을 주고 싶진 않았다.

“EMP장인가... 괜히 멀쩡한 기계만 못쓰게 되었군.”

“걱정하지 않아도 돼. 여길 나가면 다시 멀쩡하게 작동될테니까.”

“선택적 교란이라. 신경 많이 썼군.”

“이 건물에도 전자제품은 많으니까. 함부로 기기를 고장낼 순 없지.”

도날드의 말에 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쨌거나 기계를 다루는 사람 입장에서 EMP장은 여러모로 정이 안가는 기술이었다. 싸구려 기술이라면 그냥 기계를 망가뜨리는 수준에서 끝냈겠지만, 그래도 연방 정보국 쯤 되니 최고급 사양으로 사용하는 모양이었다.

도널드가 말을 이었다.

“어쨌거나 이렇게 얼굴을 맞대고 만났으니, 우리쪽 제안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건 어떤가?”

“정보국 요원들 석방 말인가?”

“거기에 피해보상, 그리고 연방법에 의한 재판까지.”

“사람을 바보로 아는 건가?”

애시당초 정보국 요원도 석방할 생각이 없었다. 적어도 10년간은 준이 어떤 식으로 범죄자들을 구금하고 처리하는지 바깥에 알릴 생각이 없었으니까.

일단 던전에 들어간 이상 그들이 자유의 몸이 되는 것은 최소한 10년은 후였다.

연합법으로 따지면 자신을 공격한 이상 그들의 생사여탈은 준 자신의 의사에 달린 것이다. 그들을 10년간 노예로 부려먹든 죽여버리든 그것은 그의 마음먹기에 달린 것이다.

“결국 협상 결렬인가.”

“애초에 협상을 할 마음은 있었던 건가?”

“상식적인 선에서 제안했다고 생각한다만.”

두 사람은 마치 당장이라도 서로를 죽일 듯이 쏘아붙였다. 하지만 그 내용은 사실상 아무런 의미가 없는 대화의 연속이었다.

도날드는 준을 제압할 헌터들을, 준은 오펜하이머를 기다리고 있다보니 생긴 일이었다.

그리고 준은 곧 자신들을 에워싸는 강력한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오펜하이머보다 정보국 요원들이 먼저 도착한 것이다.

‘귀찮게 됐군.’

오펜하이머가 증거를 가져오지 못하면 어쩔 수 없이 워싱턴 한복판에서 로버를 끄집어 내야 할 판이다.

어쩔 수 없으려나 생각하고 있는데, 오펜하이머의 목소리가 귓가에서 들려왔다.

“왔어.”

준은 깜짝 놀라며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정말 검은 고딕풍 드레스를 입고 있는 오펜하이머의 모습이 보였다. 마치 처음부터 그자리에 있었던 것 같은 느낌이었다.

‘이렇게 까지 근접했는데도 눈치채지 못하다니. 제임스에게 이 녀석 확실히 잡아두라고 이야기 해 둬야겠군.’

혹시라도 다른 세력에 포섭되기라도 하면 상당히 골치가 아파질 수도 있었다.

만에 하나 그렇게 된다면 제 1순위 제거대상으로 놓아야 할 정도로 위험인물이라고 할 수 있었다.

“누, 누구지?”

도널드가 뒤늦게 오펜하이머를 발견하고는 입을 열었다.

준이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

“네가 원하는 증거를 가지고 온 사람이지.”

그는 그렇게 말하며 오펜하이머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녀가 시큰둥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뭐 어쩌라고.”

“증거 가지고 온 거 아니냐?”

“없어. 애초에 난 컴퓨터 쪽은 젬병이고.”

“끙... 널 믿은 내가 잘못이다.”

준이 한숨을 내쉬자, 그제서야 상황파악을 완료한 도날드가 웃음을 흘렸다.

“네가 믿고 있던 것이 이 계집이었던 건가? 뭔가 일이 생각대로 안풀린 모양이니, 이제는 내가 패를 보여줄 차례군.”

그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손을 들었다.

하지만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그는 당황하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몸에 심은 골전도 통신칩을 통해 요원들이 건물에 도착했다는 소식을 분명히 들었다. 그래서 재빨리 신호를 보낸 것인데 아무런 반응이 없는 것이다.

“아. 밖에서 서성대던 애들이라면 내가 일단 재웠는데.”

오펜하이머가 대수롭지 않다는 듯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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