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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그런데 어떻게 추적을 할 생각입니까?”
검둥이가 입을 열었다. 저쪽에서도 바보가 아닌 이상 대놓고 따라다니면 들킬 것이 틀림없다. 물론 검둥이의 후각이 좋은 편이니 잘 하면 성공할 가능성이 없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대리인을 내세워서 움직일 정도로 철저하게 비밀을 유지하고 있다면 냄새까지 지울 방법도 생각할 수 있을 수 있다.
“일차는 네가 쫓아가는 거고, 그리고 한 명을 더 부를 생각이야.”
“누구말입니까?”
“있어. 스토킹 잘하는 애.”
“아아.”
검둥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준이 누구를 말하는지 깨달은 것이다.
“일단 여기서 아이반을 감시하면서 대기하고 있어. 혹시 무슨 일 있으면 곧바로 연락하고.”
“네. 형님.”
준은 시미와, 에피알게나스, 그리고 검둥이를 남겨두고 공간이동웜홀을 열었다.
그가 간 곳은 다름아닌 란도넬 행성.
프라이어 시티에 있는 자신의 펜트하우스로 돌아간 준은 일단 제일 먼저 카심을 찾았다.
“부르셨습니까?”
“아. 별 이상은 없고?”
“네. 경비는 이상없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는 잘 빗어 넘긴 붉은 머리를 한번 쓸어넘기곤 입을 열었다. 원래는 무슨 히피처럼 하고 다니던 녀석이었는데 이제는 제법 직장인 같은 느낌이 난다. 참고로 이 녀석 예전에 무리어미를 잡으러 갈때 유일하게 준과 함께 전투를 치른 녀석이다.
그 이후로 눈여겨 보고는 프라이어 빌딩의 경비를 맡겼다. 상급헌터를 빌딩경비로 쓴다는 건 어찌보면 상당히 낭비였지만, 델타스피릿 전체에 상급헌터가 워낙 많다보니 굳이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그리고 만에 하나 빌딩에 대한 테러시도가 있을 경우 일차로 이 녀석이 저지해야 하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상당히 중요한 직책이기도 했다.
“오펜하이머는 어디에 있지?”
“아시다시피, 그 년... 아니 그녀는 제 능력으로는 찾기가 어렵습니다.”
울컥하며 욕이 튀어나오려는 걸 겨우 수습하고 말을 마쳤다. 아무래도 그 녀석이 마음대로 빌딩을 휘젓고 다니다보니 경비대장 입장에서는 상당히 골치아픈 존재이긴 한 가보다.
“그렇군. 알았어. 참. 그리고 언제든지 보직 변경을 원하면 이야기 해. 내가 신경쓸테니까.”
“전 이곳에 만족하고 있습니다. 사실 연합내에서 요즘 프라이어 시티만큼 살기 좋은 곳이 없거든요.”
“그래?”
준은 솔깃한 마음에 재차 물었다.
“요즘 평가가 꽤 좋은 가 보지?”
“아시다시피 원래 연합이라는 동네가 치안도 엉망이고 사람살기 좋은 동네는 아니잖습니까.”
“그렇긴 하지.”
“헌데 사장님께서 많이 신경쓰신 덕에 마약소굴이었던 이곳에 꽤나 정화되기도 했고, 엘라님이 열심히 활동하시면서 치안도 많이 나아진 상태입니다. 거기다가 델타폰이 본격적으로 보급된 유일한 행성이다보니까 생활도 상당히 편리해졌고요.”
“원래 네 성격상 한 군데 머무러 있는 걸 안좋아 하지 않았어?”“그렇긴 합니다만. 제가 이때 아니면 언제 이렇게 커다란 건물에서 살아보겠습니까. 하하. 사장님 덕분에 어깨에 힘도 좀 주고요. 그리고 최근에 여자친구도 생겼거든요.”
“오. 정말? 그런데 그런거라면 굳이 이곳에 살지 않아도 가능했을텐데?”
어쨌거나 카심은 상급헌터다.
이 녀석정도면 연합 내에서 1등급 인재였고, 여자를 만나는 것 정도는 밥먹듯이 쉬운 일이었을 거다.
“제가 보기보다 인기가 좀 없었습니다. 그래도 정장 빼입고 좋은 곳에서 일하다보니 어떻게든 되더라고요.”
“하긴. 너 원래 엄청 구리게 하고 다니긴 했었지. 그 머리도 이상했었고.”
“하하... 뭐, 그때도 전 나쁘지 않았다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지금이 더 마음에 드는 건 사실입니다.”
카심이 머쓱한 웃음을 흘렸다.
그와 헤어진 준은 가장 먼저 제임스의 집무실로 향했다. 오펜하이머의 방이 아니라 그곳으로 향한 이유는 간단했다.
그 녀석이 있을 가장 확률이 높은 장소이니까.
똑똑.
“들어간다.”
가볍게 노크를 하고 제임스의 방으로 들어섰다.
안에서는 제임스가 피곤한 얼굴을 하고 홀로그램 화면을 쳐다보고 있었다. 최근에 사람을 제법 많이 뽑으면서 일이 훨씬 줄었다고는 해도 여전히 혼자서 많은 일을 감당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흠흠. 바쁜가 봐?”
준은 가볍게 헛기침을 했다. 그제서야 제임스가 준을 발견하고는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 오셨습니다. 제가 지금 정신이 좀 없어서. 그런데 어느쪽 사장님입니까? 1번? 2번?”
“보면 모르냐?”
“모르니까 물어보는 거죠. 똑같은 사람인데 어떻게 구분하겠습니까.”
“끙.”
준은 뭐라고 대답할까 잠시 고민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는 걸 깨닫고 얕은 한숨을 흘리며 입을 열었다.
“...2번.”
“아. 2번 사장님이셨군요. 그런데 어쩐 일로.”
“오펜하이머를 좀 찾으려고. 이 녀석 어디있는 지 알고 있냐?”
“아마도 이 안에 있긴 할겁니다. 그런데 저는 아시다시피 별다른 능력이 없어서.”
“그러니까 레벨업을 좀 하라니까.”
“일할 체력만 있으면 충분합니다. 그 이상은 있어봐야 낭비일 뿐이죠.”
제임스가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이 녀석은 펠로우쉽 계약을 맺어 놓고도 레벨을 잘 올리지 않는 두 명중 하나였다. 나머지 하나는 물론 장민성이다. 이 녀석은 레벨로 강함을 측정할 수 없다면서 매일같이 초 하드한 트레이닝을 반복하고 있었다.
그것도 10배의 시간배율을 가지고 있는 블랙홀 던전에서.
그러니 남들 1년 동안 수련할 걸 10년동안 하고 있다고 보면 되는거다. 만약 평범한 인간의 몸이었다면 애시당초 버티지 못하고 병원에 누웠겠지만, 지금은 펠로우쉽으로 인해 아무리 육체를 혹독하게 다루어도 괜찮은 상태. 녀석이 수련하는 걸 보고 있으면 몸을 괴롭히는 걸 오히려 즐기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건 간에 세상 진지한 이 두 사람을 제외하면 나머지들은 대부분 결정체를 얻어서 열심히 레벨업을 하고 있었다.
그건 오펜하이머도 마찬가지였는데.
그러다보니 원래 상급이었던 녀석이 현재는 최상급 헌터에 이른 상태였다. 즉, 예전보다 더 기척을 감추는데 능해졌다는 뜻이다.
“이걸 어떻게 찾는다.”
일단 이 사무실 안에 있다는 확신하에 준은 가만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아예 숨소리나 심장소리 같은 걸 차단하는 능력까지 갖춘 모양이었다.
아무래도 이런식으로는 못찾겠다는 생각이 들어 그는 제임스에게로 다가갔다.
“제임스. 잠깐 협조해 줘야겠어.”
“네? 무엇을 말씀이십니까?”
“그러니까... 뭐. 이런거.”
“자, 잠깐만요!”
제임스가 당황하며 준의 팔을 잡았다.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녀석의 상의를 훌러덩 벗겼다. 집이나 다름없는 사무실에서 일을 하면서도 매일 정장을 챙겨입는 녀석이라 벗기는 게 좀 힘들긴 했지만, 그럭저럭 셔츠의 앞섶 정도는 풀어낼 수 있었다.
꿀꺽!
그리고 준은 들었다. 제임스의 정면, 그러니까 풀어헤쳐진 앞섶을 관전하기 가장 좋은 위치였다.
“거기냐!”
그는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날아 킥을 날렸다.
퍽!
뭔가 다리에 걸리는 느낌이 났고.
“꺄악!”
오펜하이머의 비명소리와 함께 녀석이 바닥에 쓰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아. 역시 있었네.”
“으극. 이러기야?”
“그러니까 찾으면 알아서 나타나라고. 이런 귀찮은 방법 동원하게 하지말고.”
“그래도. 좋은 걸 봤으니 용서해주지.”
오펜하이머의 시선이 제임스를 향했다. 그가 한숨을 쉬며 옷을 여미자, 아쉬운 듯 입맛을 다졌다.
“어쨌든 따라와. 할 일이 있어.”
“뭔데.”
“네가 제일 잘하는 거.”
오펜하이머를 데리고 다시 뉴욕지하도시로 돌아왔다.
“오펜.”
“어머. 시미. 너도 있었네.”
오펜하이머가 시미의 볼을 잡아당기며 반가워 했다.
“의외로군. 친구라곤 하나도 없는 줄 았더니.”
준의 말에 오펜하이머가 입을 비죽거렸다.
“나도 귀여운 생명체는 좋아한다고.”
“검둥이도 귀여운데.”
“저번에 물려서 싫어.”
“그러냐...”
준이 검둥이에게 시선을 돌리자 녀석이 한숨을 휘며 입을 열었다.
“개 취급을 하길래...”“개가 맞긴 하잖아. 하긴 뭐, 대충 어떤 일이 벌어진 건지 알겠다.”
검둥이가 순한 건 어디까지나 준의 앞에서였다. 다른 녀석도 아니고 안하무인인 오펜하이머라면 틀림없이 검둥이의 성질을 건드리는 짓을 했을 거다.
“내가 무슨 일을 하면 되는데?”
“잠시후에 사람 하나가 오면 그 녀석에게 따라붙어.”
“알았어.”
오펜하이머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귀찮은 사고를 자주 치는 녀석이지만 어쨌거나 일과 관련된 일이라면 시키는 일은 확실히 하는 편이다.
평소에도 이렇게 말을 좀 잘 들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왔습니다.”
아이반이 입을 열었다. 일단 준 일행은 약속장소 근처에서 몸을 숨겼다.
나타난 인물은 누가봐도 거지꼴을 하고 있는 사내였다. 하지만 자세히 보니 거지라기 보다는 마약중독자에 가까워 보였다. 가진돈을 다 쓰고 거지처럼 살고 있긴 하지만 옷이 심하게 낡은 건 아닌 것으로 봐서 얼마전까지만 해도 멀쩡한 사람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일부러 마약중독자를 만들어서 써먹는 걸까?”
에피알게나스가 입을 열었다. 준이 고개를 저었다.
“굳이 그럴 필요까지는 없을 걸. 저런 사람은 찾아보면 얼마든지 나올테니까.”
준의 말에 그녀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반이 사내에게 종이로 된 서류를 넘겼다.그 안에는 사실 별다른 내용이 없었다. 평범하게 다음 작전지시를 바란다는 것 뿐이다. 혹시나 장난질을 쳤을까봐 준이 몇번이고 확인했다.
혹시나 자신이 모르는 암호가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만약 그렇다고 해도 별 문제는 아니었다. 어차피 준이 원하는 건 ELF와 정보국의 연관고리니까. 이 서류가 어떻게 전달되고 그것이 정보국과 연관되어있다는 것만 확인하면 모든게 끝이었다.
물론 이 모든 과정은 오펜하이머에 의해 촬영되고 있었다.
그리고 곧 사내가 떠나고 아이반이 준이 숨어 있는 곳으로 돌아왔다.
그는 약간 창백해진 얼굴로 입을 열었다.
“잘 처리되었습니다. 이제 곧 저 사람은 죽겠지만요.”
“그래. 수고했다. 이제 잠시 쉬어.”
“역시 죽이시는 겁니까?”
“아니. 죽인다고는 안했는데.”
준은 그렇게 말하며 던전의 입구를 열었다.
푸른색으로 일렁이는 웜홀을 본 아이반의 표정이 더욱 창백해졌다.
“여기에 들어가면 살아서 돌아올 수는 있는 겁니까?”
“테러리스트 자식이 뭐 이렇게 겁이 많아.”
준은 피식 웃으며 녀석을 던전의 안으로 밀어넣었다. 안에 들어가면 반가운 얼굴들을 제법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보국 요원들이 제법 있으니까.
어차피 전부 엘라행성 행이니 서로 알아보든 말든 상관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