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22 ----------------------------------------------
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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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비스들은 실로 강했다. 준이 놈들을 찾으러 다니는 순간순간에도 수없이 많은 도시와 마을을 파괴했다. 그로 인해 생긴 인명피해도 점점 늘어나고 있었다.
결국 준이 로버에 탑승한 채로 이족보행로봇 A-10, ‘아영’이를 대량제작해서 뿌릴 수밖에 없었다.
이것 덕분에 인명피해가 늘어나는 숫자는 줄어들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상 이상의 피해가 발생한 것은 사실이었다.
준은 1번 준에게 메시지를 넣었다.
‘어째서 내가 2번인건지.’
약간은 억울했지만 남들이 그렇게 부르니 그게 편한 것도 사실.
-인명피해가 상당히 커지는데, 너도 와서 돕는 게 어때?
-알아서 잘 하고 있더만 뭘.
-너도 책임은 있잖아.
-내가 너고 네가 나... 아니, 뭐 어쨌든 내 덕분에 거기에서 끝난거지. 루나에게 내가 빼돌린 데이터를 넘겼는데 이거 결론적으로 실패할 수밖에 없는 기술이라고 하더라고. 만약 완성이라도 되었으면 더 큰 참사가 날뻔한거야.
-에피알게나스는 된다고 하던데? 자기네들 역사에서는 이미 한번 거쳐간 기술이라고.
-그거야 그쪽의 기술수준이 높으니까 그런거고. 오리진의 조각에서 추출한 불완전한 기술로는 결국 슈퍼솔저들을 통제할 수 없다는 결론이 나왔어.
오리진의 조각과 에피알게나스의 지식, 그리고 지구라트의 두뇌였던 오버시어의 협력을 통해서 현재 델타스피릿의 과학수준은 연방을 아득히 뛰어넘고 있는 상태였다.
거기에 본래 외도학 박사였던 루나의 끊임없는 연구를 통해서 인위적으로 EX필드를 생성하는 기술을 만들어 낼 정도에 까지 이른 상태.
그녀 정도의 수준이면 슈퍼솔져 프로젝트의 허점을 찾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진 않았을 것이다.
다만 그걸 알아내는데 걸린 시간이 상당히 짧다는 게 놀라울 뿐이었다.
-그거 훔친지 며칠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나온거야?
-루나의 개인 연구실이 던전에 하나 있잖아.
-아. 그랬지. 어쨌거나 연방녀석들은 결국 삽질 한 거나 마찬가지인 거네?
-그렇지. 우리가 아니었으면 지구가 완전히 박살날 뻔한 거야. 만약 네가 거기에 없었으면 신경도 쓰지 않았을 테니까.
-이거 10조로는 부족하겠는데...
사안의 중대성에 비하면 피셔국장이 제시한 금액은 거저나 다름없는 액수였다. 하지만 일단 약속을 그리 했으니 아쉽더라도 일은 해결 봐야했다. 대신 다른 방법으로 돈을 뜯어낼 방법을 생각해 냈다.
다름아닌 아영이를 판매하는 것이다. 인명구조용으로 만든 A-10들은 공격무기를 완전히 제거한 상태였기 때문에 전투용으로 사용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녀석들의 인공지능은 현세대 로봇들에 비해서도 월등히 뛰어나기 때문에 충분히 구매할 가치가 있는 물건들이었다.
‘이런 것도 다 공짜 광고지.’
연방에서는 최대한 준과 관련된 정보를 차단하려고 애썼다. 하지만 아영이들의 대활약이 이어지는 와중에 우연히 방송을 타게 되었고, 이와 관련되어 인터넷에서는 아영이들의 영상이 본격적으로 떠돌기 시작했다.
당연하게도 로봇들의 겉에는 'DELTA INDUSTRY'라고 선명하게 박혀 있었다. 연방에 있는 기업이 아니었기 때문에 더더욱 관심이 쏠렸다. 연방국민들에게 있어 자신들이 본 적도 없는 최첨단 인공지능 로봇이 연방의 영역 밖에서 있는 기업의 물건이라는 것은 상당히 신선한 충격이었던 것이다.
물론 준은 그 와중에도 자비스들을 착실하게 잡아들였다. 레일건을 사용해 때려잡는 방식이 익숙해지자 공격술이라고는 몸으로 부딪히는 것 밖에 모르는 놈들을 잡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결국 일주일 동안 12마리의 자비스를 모두 잡아서 던전에 처박아 넣는데 성공할 수 있었다. 전투는 대부분 30분 안에 끝났지만 정작 시간을 많이 잡아먹은 것은 자비스의 추적이 제대로 이루어 지지 않은 때문이었다.
자비스들을 추적하는 방식은 준을 추적하는 방식과 비슷했다. 위성카메라와 나노드론을 이용한 정보수집이었다. 하지만 근처에 가기만 해도 자비스가 뿜어내는 에너지에 나노드론은 먹통이 되어버렸고, 위성카메라들은 놈들의 모습을 제대로 잡지 못했다.
이것들은 보통 강력한 외도들에게서도 마찬가지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강력한 에너지장이 카메라의 영상까지도 왜곡시켜버리는 것이다.
그 와중에도 피셔국장은 로버의 기술을 어떻게든 훔쳐보기 위해서 각종 데이터를 수집하고 있었다.
준도 그 사실을 알면서도 적당히 눈감아 주고 있는 판이었다. 어차피 기술 자체가 현 시대의 과학력으로는 따라잡을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훔치려고 해도 훔칠 수 없는 것들이었다.
“이제 마지막이군.”
준은 멀리 보이는 불빛을 보며 로버의 속도를 높였다.
마지막 자비스는 라스베이거스로 향하고 있을 것으로 추정 되었다. 자비스들의 움직임이 워낙 빠른 탓에 놈들의 예상이동경로에 있는 도시들에 대피명령을 내린다고 해도 모두가 안전하게 도망칠 수 는 없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사막 한 가운데에 있는 라스베이거스를 반드시 지나쳐 갈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고, 이미 도시는 완전히 비워진 상황이었다.
“불은 켜져 있는 건가.”
시간은 새벽 3시. 어둠속에서 대낮처럼 빛나는 도시가 보였다. 모든 사람이 대피했지만, 여전히 그곳은 불야성이었다. 일부러 눈에 잘 띄게 하기 위해서 일부러 불을 켜놓은 것도 있다. 자비스를 그곳에 묶어두기 위해서였다.
이곳에서 준이 마지막 자비스를 처리하면 마침내 미대륙 전체를 공포로 몰아넣었던 자비스들을 완벽하게 정리할 수 있는 것이다.
콰앙!
그리고 도시 한곳에서 불꽃과 함께 거대한 폭발이 일었다.
“나타났군.”
준은 입맛을 다셨다. 저게 마지막이었다.
메인거리. 스트립.
100층이 넘는 초고층 빌딩들이 줄을 지어 늘어서 있는 이곳은 눈이 돌아게 만드는 몇십미터 짜리 대형 홀로그램 전광판들이 환상적인 광경을 연출하는 것으로 유명한 거리였다. 달마다 메인테마를 바꾸어 가면서 도시의 모습을 바꾸는 데 지금은 바닷속 광경을 홀로그램 영상을 이용해서 재생하고 있었다.
사람이 아무도 없는 거리지만 라스베이거스의 하늘은 수십만 마리의 물고기 떼가 유영하고, 초대형 흰수염고래가 너울거리며 헤엄을 치고 있었다.
에피알게나스가 입을 열었다.
“정말로 바닷속 같아.”
“나도 이런 건 처음 보는 군.”
쿠웅!
묵직한 땅울림과 함께 도시 반대편에서 또 다시 폭발이 일었다. 벨라지오 호텔이 있는 위치였다. 수백미터가 넘는 높이로 물을 쏘아올리는 초대형 분수쇼로 유명한 호텔이었다. 이걸로 몇백년 역사를 자랑하는 살아있는 유적하나가 사라질 지도 모를 일이었다.
‘뭐, 나랑은 상관없으려나.’
어차피 사람들은 모두 대피했다. 뭐가 부서지든 준에게는 별로 중요한 일이 아니었다. 건물은 부서지면 다시 지으면 그만이니까.
에피알게나스가 입을 열었다.
“11시 방향 5킬로미터 지점이야.”
“오케이.”
에피알게나스가 가리킨 방향으로 빠르게 로버를 움직였다. 곧 어둠속에서 조명을 받은 자비스의 모습이 로버의 영상에 잡혔다.
“응?”
준은 눈을 가늘게 떴다. 이번 개체는 지금까지 상대했던 녀석들과는 제법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다. 일단 덩치가 5미터 정도로 컸다. 거기다가 남성체였던 다른 자비스들과 달리 유일하게 여성의 몸을 하고 있었다.
가장 다른 점은, 그녀가 육체적인 타격이 아니라 마법을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구구궁!
콰앙!
그녀가 손을 뻗자, 커다란 푸른색 구체가 날아가며 단번에 건물을 무너뜨렸다. 파괴력만으로 따져도 최상급 헌터였던 로렌스의 몇배에 달하는 파괴력이었다.
“저건 대체 뭐지...?”
최초에 보고받았던 대로라면 저런 식으로 기술을 사용하는 녀석은 없었다. 에피알게나스가 입을 열었다.
“진화를 한 모양이야.”
“진화? 어떻게?”
외도도 다른 외도를 잡아먹고 진화를 하기도 하니 그것 자체는 이상한 것이 아니다. 하지만 지구에는 외도가 없다. 다른 자비스를 잡아먹었다면 그러려니 하겠지만 이미 탈출한 자비스들은 전부 죽여서 무중력 던전에다가 처박아 놓았다.
그렇다는 건 저 녀석이 자체적으로 진화를 했다는 이야기.
대체 뭘 먹고 스스로 힘을 키웠는지 알수가 없었다.
“글쎄. 보통은 방대한 엑조틱 에너지를 먹고서 진화를 하는데.”
“엑조틱에너지? 그런 게 근처에 있을리가...”
현 시점에서 엑조틱 에너지를 흡수 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보통은 결정체나, 결정체를 정제해서 특수제작된 엑조틱 탱크에 저장하는 식이다. 결정체는 시간이 지나면 자연적으로 분해되기 때문에 대부분은 후자의 방식으로 저장된다.
“잠깐만... 설마 그러면 자비스들이 도시를 파괴한 이유가 혹시 엑조틱 탱크때문인가?”
“글쎄. 그건 나도 몰라.”
아직 확실한 건 없었다. 준은 가만히 생각에 잠겼다. 에피알게나스가 그런 준을 향해 의아한 듯 입을 열었다.
“안 잡을 거야?”
“아니. 잠깐만 기다려봐. 저 녀석이 뭘 하는지 궁금해졌어.”
준은 가만히 서서 자비스의 파괴행위를 지켜보았다. 어차피 도시에 남아있는 사람은 없다. 그럼에도 자비스는 계속해서 도시를 부수었다. 푸른색의 구체를 날려 눈에 보이는 건물들을 죄다 부수고 한걸음 한걸음 착실하게 걸어나갔다.
“저정도로 건물을 꼼꼼하게 부수는 이유가 뭘까.”
“뭔가를 찾는 것처럼 보여.”
“내 생각도 마찬가지야.”
최초, 엑손타워에서 도망칠때는 녀석들에 의해서 직접적으로 피해를 입은 사람들이 있었다. 하지만 그때 사망한 사람들을 제외하면 이후에는 파괴행위에 따르는 피해일 뿐이었다. 놈들은 직접적으로 사람을 죽이려 들지 않았다.
그들이 하는 것은 오로지 눈에 보이는 거대한 건물을 닥치는 대로 부수는 것.
처음 전투를 할때만 해도, 직접 공격을 하지 않으면 자신을 쳐다보지도 않을 정도였다. 그렇다면 녀석들에게는 확실한 목표가 있다는 뜻이다. 로버를 보고도 움직이지 않을 정도로 절실한 것.
‘저 놈들은 엑손타워를 중심으로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그렇다면 그들이 찾는 것이 한 곳에 있는 건 아니라는 뜻이야. 목표가 고층 빌딩이라는 건 그정도의 커다란 건물이 아니라면 찾을 수 없는 거라는 건데...’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특별히 고층빌딩에 뭔가 존재할 이유는 없다.
‘역시 엑조틱 탱크를 찾는 건가?’
하지만 엑조틱 탱크는 도시에 없다. 대부분 도심과 떨어진 외딴 곳에 숨겨져 있으니까.
그것도 아니면 플랫폼이나.
‘플랫폼...?’
문득 준은 고개를 들어 하늘을 쳐다보았다. 지구에는 플랫폼만 수백개가 있다. 선명하게 눈에 보일 정도로 커다란 것 부터, 별 처럼 작게 보이는 것 까지 그 크기와 종류도 다양하다.
그리고 각 플랫폼은 각기의 궤도 엘리베이터와 연결되어 있다.
라스베이거스도 마찬가지. 그리고 가만히 생각해보면 자비스들이 공격했던 도시들에는 공통적으로 궤도엘리베이터가 있었다.
이런 대도시에 엑조틱 탱크가 없다는 것도 어디까지나 준의 상식이다.
궤도엘리베이터가 있는 도시라면 다를 수 있었다.
준이 입을 열었다.
“궤도엘리베이터야.”
“그건 왜?”
“플랫폼에 올리는 수화물들에는 분명히 엑조틱 탱크도 섞여 있을거야. 외부에서 들어가는 것도 있겠지만 일부는 이 도시에 저장되어 있는 것들도 있을거고.”
“그러면 도시 어딘가에 있는 엑조틱 탱크를 찾는다는 거야?”
“그렇지. 그리고 그 물건들의 중요도를 생각해 봤을때, 가급적이면 은밀히 숨겨져 있을 확률이 높지. 크기에 비해 고가이면서 안전하게 숨겨야 한다면 보안시설이 잘 되어 있는 고층건물밖에 없지. 주로 지하금고에 숨겨져 있을거야.”
“가능성 높은 추측이네.”
“루나가 왜 저 녀석들을 통제할 수 없다고 한지 이제 알겠어.”
“그건 왜?”
“놈들이 나타나자 하는 일이 엑조틱 탱크를 찾아 다니는 일이라면, 게속해서 에너지를 공급해주지 않으면 버틸 수 없다는 뜻일거야. 스스로 결정체를 만들 수 없으니, 소모되는 에너지는 재충전 할 수 없고, 그렇다면 결국 외부에서 에너지를 계속해서 주입해야 하니까.”
자비스들에는 결정체가 없었다. 그게 녀석들이 실패한 결정적 인 이유였다.
반대로 말하면, 결정체가 없어도 신체를 유지할 수 있다면 굳이 저런 파괴행위를 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덜컥!
준은 로버의 가슴을 열었다. 에피알게나스가 가볍게 미간을 찡그렸다.
“뭐하려고?”
“결정체가 없는 외도. 뭔가 생각나는 거 없어?”
“펠로우쉽?”
“그래. 시미도, 검둥이도 몸속에 결정체가 없어. 그거라면 불완전한 녀석을 완전하게 만들 수 있을거야. 그럼 갔다올게.”
“조심해. 위험해지면 곧바로 돌아오고.”
“걱정해주는 거야?”
“네가 죽으면 다른 남편감을 찾아야 하니까.”
“...그래.”
준은 가볍게 한숨을 쉬고는 로버에서 뛰어내렸다.
그가 로버에서 내린 이유는 자비스에게 위협을 주지 않기 위해서였다. 로버의 방대한 힘은 녀석에게 경계심을 일으킬 수 있었고, 그만큼 펠로우쉽 계약을 실패할 확률이 높았다. 약간의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준이 직접 녀석과 대면하는 편이 유리할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