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18 ----------------------------------------------
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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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은 일단 엑손타워에서 최대한 멀리 떨어졌다. 거인들은 미친 놈들 처럼 날뛰고 있었고, 두 명의 최상급 헌터를 잃은 연방정보국은 놈들을 통제할 힘이 없었다. 아니, 저걸 보니 설령 그 두 사람이 있었다고 한들 막을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미래의 준은 일단 셀럼을 데리고 스파일리 행성으로 돌아갔다.
-셀럼을 치유하는 건 나에게 맡겨.
-설마. 지금 셀럼도 저 녀석들과 비슷한 상태인거야?
-그것까진 모르겠고, 상태가 안 좋은 건 맞아. 최소한 제정신은 아니지.
-고칠 수 있겠어?
-봐야지. 에피알게나스가 있으니까 어떻게든 되지 않을 까 싶긴한데.
-하긴 그 녀석이라면 일말의 가능성이 있을지도.
에피알게나스의 치유능력은 죽어가던 인간도 살려낼 정도다. 거기다가 계약자에게 무조건 적인 호감을 이끌어내는 펠로우쉽 계약을 시도하면 어떻게든 셀럼을 고쳐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일단 셀럼은 너에게 맡길게.
-너는?
-나도 일단 돌아가야지. 여기에 있는 게 알려지면 안되니까.
-그리고 나서는?
-그건 저쪽에서 어떻게 나오냐에 따라 달라지겠지.
가까스로 밖으로 대피한 피셔국장의 얼굴에 암담함이 떠올랐다. 건물과 차량을 부숴대고 있는 3미터 크기의 슈퍼솔져들은 연방정보국과 외도연구소의 합작으로 오랜기간 준비해 온 대형 프로젝트였다.
그 보안을 유지하기 위해서 엑손타워 지하에 실험실을 마련했고, 10년이 넘도록 그 비밀은 지켜져왔다.
그리고 곧 그 결과를 눈으로 볼 수 있는 날이 얼마남지 않은 시점이었다. 드디어 연방이 한 단계 더 도약할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을 거라고 확신했다.
그 모든 꿈이 한순간에 좌절 된 것이다.
절망감이 얼마나 컸던지, 한참동안이나 지금 상황을 정리할 수 없었다. 그리고 조금 이성이 회복되자 가장먼저 떠오른 것은, 대체 누가 이런 짓을 한 것인가에 대한 것이었다.
시작은 세 군데에 나뉘어져 있던 화이트 크리스탈을 누군가 탈취한 것 부터였다. 생각해보니 그곳의 연구자료들은 슈퍼솔져 프로그램과 밀접한 연관이 있었다. 세 곳의 정보를 모두 합친다면, 엑손타워의 지하에 슈퍼솔져를 위한 연구소가 있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알아낼 수 있었을 것이다.
‘대체 어떤 놈이 저지른 거지...?’
여러각도로 생각을 해봤다. 가장 혐의가 짙은 것은 역시 분리주의자들이었다. 연방의 해체를 주장하는, 그러면서도 연방이라는 거대한 국가가 내어주는 권리를 포기하려고 들지 않는 골칫덩어리들이었다.
실제로 연방이 해체되면 가장 많은 피해를 입을 녀석들이었지만, 그들은 조직의 유지를 위해서 틈만나면 테러 시도를 멈추지 않았다.
‘하지만 그 놈들이 벌이기에는 사안이 너무 커.’
분리주의자들을 전부 모아보아도 한줌에 불과하다. 분리주의자의 영웅인 아이반 펠릭스라는 자가 있지만, 그의 능력으로는 연방정보국은 커녕 그냥 경찰서 하나를 터뜨리는 것도 쉽지 않다.
이정도 스케일로 사고를 치려면 독자적으로는 불가능했다.
‘그놈인가...?’
최근들어 자신의 머리를 가장 복잡하게 만드는 인물인 준 알스버그의 이름이 스쳐지나갔다. 본인의 주장으로는 그저 여행을 위해서 이곳에 왔다고 했지만, 벌써부터 연방요원을 납치하는 등의 사고를 치고 있었다.
이런저런 조작을 거치면 얼마든지 잡아들일 수는 있지만, 연합의 VVIP를 굳이 잡아서 국제적인 문제를 일으키고 싶지 않아 내버려 둔 것 뿐이었다. 게다가 지금 그 자는 로널드 안리와 함께 대한민국에 있었다. 그 자가 갑자기 미국까지 날아와서 엑손타워를 부순다는 건 생각하기 어려웠다.
이미 준이 로널드와 요원들을 던전에 집어넣고 이곳에 와있다는 것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콰앙!
으아악!
사람들의 비명소리, 건물이 부서지는 소리등이 사방에서 울려퍼졌다. 삐이잉! 하는 요란한 소리와 함께 경찰특공대가 나타났다. 하지만 피셔는 알고 있다. 총으로는 슈퍼솔져를 잡을 수 없다. 애초에 그러기 위해서 만든 전투병기들이니까.
이대로라면 인명피해만 늘어날 뿐이다.
“제기랄... 벨트레와 로렌스는 어디간거야?”
타워 옥상에 올라간 최상급 헌터 두 명의 행방이 묘연했다. 그 둘이라면 제압하지는 못하더라도 일단 피해를 최소화 할 수는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두 사람이 죽었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 군대가 몰려와도 죽일 수 없는 이들이니까.
서울로 돌아 간 준은 일전에 묵었던 호텔방을 다시 잡아 휴식을 취했다. 티비를 켜니 엑손타워에서 일어난 테러사건이 중점적으로 보도되고 있었다.
“단순 테러인가...”
슈퍼솔저 프로젝트에 대해선 아직 나오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만약 그들을 제압하는데 실패한다면 계속 해서 감출 수는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준이 봤을때 그들 하나하나는 최소한 파란색 이상의 외도에 필적하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상급헌터만으로 이루어진 10인 팀 하나는 있어야 파란색 외도를 잡는다.
로렌스나 벨트레 같은 녀석이라면 혼자서도 상대할 수 있지만, 문제는 슈퍼솔저의 숫자다. 준이 서울로 돌아오기 전에 목격한 녀석들만 최소한 셋. 그리고 나중에 스파일리 행성의 준에게 들은 이야기로 따르면 실험실 안에 존재하던 슈퍼솔저의 존재는 셀럼을 제외하고 모두 열 셋이라고 했다.
외도에 필적하는 마나량을 지니고 있는 그들을 단순 화기로 제압하기 위해선 얼마나 많은 전력이 소모가 될지 상상조차 할 수 없을 지경이다.
‘하지만 연방이니 뭐... 어떻게든 하겠지.’
연합에 비해서 경제규모만 열배 이상이 큰 국가다. 그런 곳에서 마음만 먹으면 못할게 뭐가 있겠나 싶었다. 셀럼을 구출하겠다는 목적도 달성했겠다. 준에게 있어 연방은 더이상 있을 의미가 없는 지역이었다.
결국 다음날 떠나기로 하고 여객선 예약을 잡았다. 생각같아선 그냥 웜홀을 타고 이동하고 싶지만 이 행성을 떠났다는 표시를 확실히 남기기 위해서였다.
다음날. 결국 연방정보국에서 정보통제를 포기하고 뉴스를 내보냈다.
[도심 한복판에서 나타난 인간형 외도인 ‘자비스’가 현재 필라델피아 등지에서 난동을 부리고 있다고 합니다. 해당 지역 시민 분들께서는 가급적 집밖으로 나가지 마시고, 폭발음이 들릴 시에는 지하실 같은 대피소로 몸을 숨기시길 바랍니다.]
생각보다 상황이 악화되고 있었다. 적당히 상황을 보다가 그냥 지구를 떠날 예정이었던 준의 입장에서는 전혀 예상밖의 상황이 펼쳐지고 있었다.
‘뭐지? 이 녀석들 저거 하나 제대로 통제가 안되는 건가?’
여객선의 시간에 늦지 않기 위해서 슬슬 일어나려는 데 스마트패널의 벨이 울렸다.
띠리리!
삑.
“누구지?”
[준 알스버그 인가?]
“누구냐고 먼저 물었던 것 같은데.”
[피셔 국장이다.]
이건 좀 많이 의외였다. 국장급이 직접 연결을 할 정도면 상당히 급한 일이라는 증거였다
‘혹시 내 정체가 들킨 걸까?’
엑손타워에서 벌인 일이 자신의 짓이라는 게 밝혀졌다면 이 사람이 직접 통화시도를 한 것이 납득이 된다. 하지만 한편으로 그럴거라면 굳이 전화를 할 시간에 특수부대를 보내는 편이 낫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었다.
혼자서 아무리 생각해봐야 답이 나오지 않았다. 일단 입을 열었다.
“정보국의 수장이시로군. 헌테 무슨 일이지?”
[...도와다오.]
“뭐라고?”
[셀림을 찾고 싶다고 했지?]
“그래.”
이걸로 상황이 대충 이해되었다. 연방은 슈퍼솔저에 대한 통제에 실패했다. 아니, 적어도 당장은 실패다. 시간과 병력을 투입한다면 어떻게든 막아낼 수 있겠지만 준을 이용해서 빠르게 사태를 수습하고 싶어하는 것 같았다.
그의 능력에 대해서는 그 쪽에도 상당수 정보가 흘러들어가 있을테니, 놈들을 제압할 수 있을 거라고 판단했을 가능성이 높았다.
“알았다. 곧 그리로 가도록 하지.”
[도와 줄 건가?]
“당신 정도 인물이 직접 연락을 해왔다면 정말로 중요한 일이겠지. 그런 일을 거절할 정도로 멍청하진 않아.”
준은 그렇게 말하며 전화를 끊었다.
로널드 안리나 다른 요원들에 대한 언급은 없다. 이번일만 돕는다면 굳이 그 부분에 있어서 피해를 묻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필라델피아에 도착한 것은 세시간 후였다. 연방에서 제공한 셔틀을 타고 움직이느라 좀 오래 걸린 감이 있었다. 멀리 날 기다리고 있던 피셔 국장이 천천히 먼지바람을 뚫고 다가왔다.
“피셔 국장일세.”
“준 알스버그.”
간단히 답하자 그의 미간이 살짝 꿈틀거렸다.
“가는 곳 마다 사고를 치는 이유를 대충 알겠군.”
“사람을 불러놓고 그런식으로 나오면 서로 불편할텐데?”
준이 피식 웃으며 입을 열었다. 애초에 먼저 무례하게 군건 연방 쪽이었다. 저쪽에서 뺨을 때리는 데 이쪽에서 웃으면서 화답해 주길 기대한다면 그게 오히려 더 비정상이었다.
“뭐, 좋아. 어쨌던 서로 골치아픈 이야기는 묻어두는 걸로 하지. 로널드 건을 포함해서 말이야.”
준의 눈이 살짝 커졌다.
“그렇게 고마워 할 것 없어. 우리쪽에선 일단 이 일을 어떻게든 빨리 해결하고 싶은 것 뿐이니까. 대충 오면서 정보는 들었겠지?”
그가 손을 들어 반대편 하늘을 가리켰다. 도심쪽에서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화끈해서 좋군. 하지만 보상문제부터 해결하고 가야 할 것 같은데. 만약 내가 저 들을 제압하게 되면 나에게 어떤 이득이 있지?”
“셀럼을 구하려는 게 아니었나? 저들 중에 하나가 있다.”
“그건 별개고. 하나 잡을 때마다 1000억.”
“좋네.”
“흠? 너무 쉽게 승낙하는 걸? 그 10배로 하지.”
“...현재 우리가 제시할 수 있는 최대를 주겠네. 정확히 10조의 예비금액이 있으니. 그걸 주도록 하지.”
“뭐, 나쁘지 않아.”
남아 있는 거인은 총 13명. 밤 사이에 한 명도 잡지 못했다. 그 가장 큰 원인은 물론, 준 때문이었다. 최상급 헌터인 로렌스와 벨트레가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지구에 남아있던 최상급 헌터는 그 둘이 전부였고, 다른 이들은 급히 소환중이었지만 다들 최소 일주일 이상 걸리는 타 행성에 나가 있는 상황.
상급헌터들도 급히 끌어모으고 있는 중이었지만 슈퍼솔저의 공격에 수십명이 사망하고서도 별다른 소득을 얻지 못했다.
결국 미사일 까지 동원한 공격까지 실패하고 나서야 준을 데리고 오기로 결정한 것이다.
따지고 보면 준이 일을 저지르고, 오히려 돈을 버는 상황이 되었다. 어떻게 보면 사기꾼 같은 짓이긴 하지만 그의 생각은 달랐다.
‘애초에 슈퍼솔저 프로그램같은 걸 돌린 쪽이 잘못이지.’
지금 생기는 피해보다는, 슈퍼솔저 프로그램이 정상궤도에 올라갔을 경우 생길 피해가 더 막대할 수 있다. 불완전한 인간의 육체를 인위적으로 초인으로 만드는 방법은 결국 시간이 지날 수록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었다. 만에 하나 단체로 통제권을 잃어버리게 되면 지금보다도 훨씬 더 끔찍한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었다.
‘이런 놈들이 수천, 수만이 되면 아무리 나라도 감당이 안되지.’
그럴땐 그냥 행성을 포기하는 게 현명할 정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