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17 ----------------------------------------------
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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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유성 하나하나가 준의 목을 노리는 표창. 금속으로 된 표창은 홍염의 불꽃에 상당수가 녹아내렸다. 하지만 쇳물이 되어버린 표창에는 여전히 벨트레의 마나가 담겨 있었고, 그것은 더욱 무서운 흉기가 되어 준의 숨을 앗아버리기 위해서 쏟아져 내렸다.
콰아아!
찰나의 순간. 준은 인벤토리를 열었다.
인벤토리의 모든 물건은 원하는 때에 한꺼번에 쏟아낼 수 있다.
준은 태양의 홍염과, 쇠물이 된 표창들의 앞에 거대한 방벽을 세웠다.
‘아. 이거 더럽게 비싼건데.’
준의 머리속에서 계산기가 돌아갔다.
극도로 강화된 방패(S급)
오리지널 설계로 만들어진 티타늄 방패입니다.
B급 이상부터는 특수효과가 붙습니다.
특수효과 : 피해감소(30%), 마법방어(30%)
촤촤촤촤!
수백개의 티타늄 방패가 준의 앞을 몇 겹으로 가로막았다. 신이 건물을 짓는다면 이런 식일까.
하늘에서 쏟아지는 수백개의 방패가 차곡차곡 벽돌처럼 쌓여가는 경이로운 광경에 단호의 눈동자가 더이상 커질 수 없을 만큼 커졌다.
“저게 뭐야??”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광경이었다. 최상급 헌터 두명의 필살기나 다름없는 기술을 막아낼 수는 없으리라 생각되었다. 설령 저 벽돌 한장한장이 방금 전 공격헬기의 기관총을 버텨낸 그 방패가 맞다고 해도.
‘뚫을 수 있다.’
단호는 그렇게 확신했다.
콰아아아!
수만 도의 열기로 인해 플라즈마화 된 대기가 티타늄 방패를 때렸다. 아무리 초고강고 합금에다가 물리피해 감소가 적용되어 있다고는 해도, S급 방패라고 해도 이런 열기를 버텨낸다는 건 불가능했다.
열기는 1차, 2차, 3차 방벽을 차례로 녹이며 준을 향해 접근했다.
하지만 준의 인벤토리에서는 끊임없이 티타늄 방패들이 쏟아져 내렸다.
‘아오. 이거 델타스피릿에 지급하려고 만들어 둔건데...’
S급 방패는 델타폰에서 판매하지 않는 물품들이다. 중급의 헌터가 장비를 착용하는 것만으로도 상급의 헌터와 상대를 할 수 있을 정도로 뛰어난 물건들이다. 현재 헌터양성프로그램에서 육성된 헌터들의 수는 수천명이 넘어서고 있는 상황. 그들에게 모두 지급하기 위해 짬나는 대로 만들어 둔 것들을 이번 한번에 전부 사용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티타늄 방패는 빠르게 기화되고 있었다.
프로미넌스의 열기를 뚫고 들어오는 벨트레의 표창에 티타늄 방패에 퍽퍽 구멍이 뚫렸다. 쇳물이 되어버린 표창이지만 그 안에 담긴 힘은 그대로 살아있는 것이다.
이대로라면 홍염이 사라지기 전에 방어가 뚫릴 것으로 생각되었다.
‘이걸로는 불충분해. 뭔가가 더...’
준의 최고 방어기술은 실드전개다. 절대영도의 우주공간속에서도 시전자를 보호할 수 있는 그 기술이라면 최상급 마법사의 한방앞에서도 충분히 버틸 수 있었다.
하지만 저렇게 많은 방패를 소모하고 나니 괜한 오기가 생겼다.
‘실드없이 막으려면...’
전자기장 제어가 순간 떠올랐다. 핵융합 발전에서 사용하는 토카막은 고온의 플라즈마에 강력한 자기장 드라이브를 걸어서 가두는 방식을 사용한다.
그걸 흉내낼 수 있다면 자신을 향해서 밀고 들어오는 로렌스의 홍염을 붙잡아 둘 수 있지 않을까?
‘문제는 초전도체를 사용하는 토카막을 흉내낼 정도의 강력한 자기장을 걸 수 있을까 하는건데.’
일단 해보지 않고서는 모를 일이다.
준은 전자기장 제어를 가동했다. 순식간에 엄청난 마나가 빨려나가는 것이 느껴졌다. 그렇지 않아도 방대한 마나를 사용하는 기술인데, 극단적으로 자기장을 끌어올리려니 4만에 달하는 마나가 순식간에 바닥날 기세로 소모되었다.
‘기껏해야 30초? 오래는 못버티겠군.’
하지만 저정도 화력을 뿜어내는 마법을 30초 이상 유지한다는 것도 불가능했다. 준은 마나를 아끼지 않고 티타늄 방패의 앞에 자기장 드라이브를 걸었다. 신체에서 1미터 이상 벗어난 곳에선 사용불가능한 기술이기 때문에 자칫 실수했다간 순식간에 몸이 기화될 수도 있는 위험한 선택이었다.
우웅!
주변에 널브러져 있던 각종 금속제 집기들이 티타늄 방패에 들러붙기 시작했다.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이... 이게?”
멀찍이서 지켜보던 단호의 품속에 있던 단검이 휙 빠져나갔다. 제법 먼 거리였음에도 엄청난 자기력에 이끌려 간 것이다.
“대체 무슨일이 벌어지고 있는거지?”
로렌스의 홍염과 벨트레의 낙화유성이 티타늄 방패를 계속해서 때리고 있는 와중에 갑자기 불길이 고리모양으로 똬리를 틀기 시작했다. 마치 천사의 고리 같은 그것은 티타늄 방패의 벽앞에서 점점 크기를 키워갔다. 동시에 방금전까지 기화되어 사라지고 있던 벽이 버티기 시작했다.
마법을 유지하기 위해 막대한 정신력을 소모하고 있던 로렌스에게 그 광경은 엄청난 충격이었다.
“이게 대체 무슨... 아, 이런 제기랄.”
한 번 집중이 깨지자 마법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태양처럼 불타오르던 구체가 사라지고, 뒤이어 뜨거운 홈염이 식어버리며 허공으로 흩어졌다. 벨트레 역시 모든 표창을 쏟아부은 상태였다.
“...내가 뭘 보고 있는 지 모르겠군.”
두 사람의 눈에는 시시각각 색이 변화하는 플라즈마의 고리가 보였다. 저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두 사람은 전혀 알 수 없었다. 다만 공격이 실패했다는 사실만은 확실했다.
‘슬슬 끝내야겠군.’
준은 마나가 바닥을 드러내는 것을 느끼며 자기장을 해체했다.
이걸 풀어놓으면 어떻게 될지는 이미 알고 있었다. 로렌스와 벨트레가 방심하고 있는 지금이 기회였다.
화악!
엄청난 열기가 사방으로 퍼지며 두 사람의 최상급 헌터를 덮쳤다.
반원형으로 퍼져나간 열기는 직선상으로 쭉 뻗어 나가며 걸리는 모든 것을 기화시켰다. 그것은 로렌스와 벨트레도 예외가 아니었다.
“어어?”
“이게 무슨!”
화악!
고통을 느낄 새도 없었다. 최상급 헌터 두 사람이 그렇게 기화되어 사라졌다. 핏방울마저도 이온화 된 그곳엔 사람의 흔적이라곤 조금도 남지 않았다.
그렇게 두 사람을 태워버린 열기는 그대로 뒤에서 지켜보고 있던 단호를 덮쳤다.
“헛?”
단호는 자신의 옷이 타들어 가는 걸 느끼며 건물 아래로 뛰어내렸다. 그나마 제법 거리가 떨어져 있었기에 반응할 수 있었다.
후아아아!
철컹!
수십 층을 떨어져 내린 다음에야 건물 벽에 갈고리를 박아 몸을 지지했다. 여전히 머리위로 열기가 전해지고 있었다.
‘이건... 평범한 놈이 아니다. 이런 녀석이 있다는 이야기는 어디서도 들어본적이 없어.’
마음 같아선 당장 올라가서 사형과 팀장님의 복수를 하고 싶지만, 지금으로선 능력이 부족했다. 자신이 가봐야 개죽음 당할 거라는 것 정도는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다.
“제기랄...”
탁. 탁.
그는 재빨리 건물 벽을 타고 아래로 도망쳤다.
하지만 1층까지 내려간 그는 또 다시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목격해야했다.
콰앙! 쾅!
지하층에서 부터 엄청난 폭발이 일고 있었다. 건물 옆의 맨홀에서도 불꽃이 솟아 올랐고, 건물의 지지대 전체가 뒤흔들릴 정도의 엄청난 무언가가 일어나고 있었다.
이윽고, 건물 바닥을 뚫고 헬멧과 수트를 입은 누군가가 튀어나왔다.
탁.그가 황급히 뒤로 물러나면서 건물을 빠져나갔다.
단호는 그가 빠져나온 바닥을 쳐다보았다. 아무런 손상의 흔적이 없었다. 그야말로 유령처럼 튀어나온 것이다.
콰직!
그리고 그 지점의 바닥이 갑자기 솟아오르며 커다란 주먹이 튀어나왔다. 사람 머리통만한 크기의 주먹이었다.
콰직! 콰드득!
이윽고 바닥을 부수고 나타난 것은 거의 3미터에 달하는 백인 사내였다.
“이... 이게 무슨?”
멍하니 그 모습을 쳐다보는 사이 거인과 눈이 마주쳤다. 푸른빛을 뿜어내고 있는 사내의 눈을 보는 순간, 단호는 뭔가 일이 단단히 잘못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도망가야 해!’
하지만 생각과 달리 몸이 움직여 지지 않았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온몸이 떨리고 있었다. 상급헌터인 자신이 오직 기세만으로 겁을 먹었다?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지금 자신의 몸을 옥죄고 있는 것은 거인의 기세에 눌린 것이 아니라, 녀석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어마어마한 마나에 의한 것이다.
‘이런 시팔...’
쿠웅!
거인이 자신을 향해 한 걸음을 내딛었다. 그것만으로 두 사람의 거리는 좁혀졌다. 단호의 눈에 마지막으로 비친 것은, 자신의 몸을 덮어버릴 정도로 큰 거인의 손이었다.
뿌드득!
단호의 목이 수수깡 처럼 부러졌다. 바닥에서 빠져나온 준은 혀를 차며 재빨리 건물을 빠져나왔다. 자신이 생각했던 것 보다 일이 커지고 있었다.
-야. 당장 내려와. 이거 문제가 커졌다.
-뭔 소리야? 기껏 시간 끌어줬더니.
-지하에 슈퍼솔저 프로그램이 가동되고 있었어. 겨우 셀럼은 빼냈는데 상태가 안좋아.
-얼마나?
-내려와서 보면 알거야.
준은 그렇게 말하고 엑손타워에서 최대한 멀리 물러섰다.
“대체 무슨 소리야?”
타워 최상층에 있던 준은 부서져버린 방패들을 모두 인벤토리에 집어넣고는 건물 밖으로 몸을 던졌다. 순식간에 바닥에 도착한 준은 거기에서 벌어지고 일련의 상황을 지켜볼 수 있었다. 보기에도 위압적인 3미터짜리 거인들 수십 명이 마구잡이로 주변의 건물들을 때려부수고 있었다.
살아서 걸어다니는 사람은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이게 무슨일이지?
-방금 말했잖아? 슈퍼솔저프로그램이 가동되고 있길래 조금 건드렸더니 저 사단이 났어.
-뭘 건드렸는데?
-그냥 부쉈는데?
-이런 젠장. 멍청한놈이. 그걸 그냥 부수면 어떻게해?
-너라면 안 그랬을 것 같냐?
-제기랄. 내가 한 짓이니 뭐라고 할 수도 없고.
상황은 대충 이해되었다. 슈퍼솔저 프로그램이 무엇이든 셀럼을 건드리고 있었을 확률이 높다. 그 상황에서 그냥 내버려 둘 수 없어 일단 기계를 부수고 데리고 나왔겠지. 그 사이에 다른 녀석들도 불완전한 상태에서 깨어나게 되었을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