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로젝트 델타-511화 (51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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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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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둥이와 시미를 옆에 앉혀두고 느긋하게 소파에 몸을 묻었다. 잠시 후, 장순경이 커피와 오렌지 쥬스잔을 올린 쟁반을 들고 응접실 안으로 들어왔다.

달그락. 달그락.

손이 떨려서인지 잔과 쟁반이 부딪히며 소리를 내었다. 보다못한 준이 입을 열었다.

“저기...”

“우, 움직이지마!”

쟁반을 앞으로 내밀며 장순경이 외쳤다. 그 바람에 잔에 담긴 음료가 왈칵 쏟아졌다.

쏟아지는 음료를 염동력으로 다시 잔에다가 담은 준은 쟁반을 자신의 손으로 끌어당겼다.

“아...”

귀신에 홀린 것 같은 표정으로 준을 바라보던 장순경이 뒷걸음질을 치며 방을 빠져나갔다. 여전히 그를 흉악한 테러리스트라고 확신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내가 누군지 인터넷에 검색 한번만 해도 금방 알 수 있을텐데...”

“여기까지 이름이 알려지진 않았으니까요. 그래도 알아보는 사람이 좀 있었다면서요.”

검둥이가 커피와 함께 나온 오렌지 쥬스를 마시며 입을 열었다.

“어. 호텔 지배인은 알아보더라고. 그런데 거기서 말고는 없었어.”

“연방사람들은 외부에 대해서 별로 관심이 없는 모양입니다. 아무리 그래도 형님을 못 알아보다니.”

“생각해보면 자기네 행성에서 잘먹고 잘사는데 굳이 바깥으로 눈을 돌려야 할 필요가 없긴 하지.”

우주개척시대는 지구의 자원이 고갈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일어날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핵융합 에너지를 상업화하는데 성공한 이후부터는 에너지 부족에 대한 문제를 느낄 이유도 없었고, 과밀화 된 인구는 적절하게 다른 행성들로 빠져나가는 바람에 지구는 상당히 살기에 쾌적한 행성이 되었다.

모든 인프라가 잘 깔려 있고, 편의시설은 어딜 가도 이만한 호사를 누릴 수 없을 정도다. 빈부격차와 같은 사회문제는 있지만 다른 국가에 비하면 양호한 편이다.

과거 황금시대의 미국과 같이 자신들이 세계의 중심이며, 세계의 전부라고 생각하고 사는 사람들이니 외부행성에서 일어나는 일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그나마 호텔지배인은 타 국가의 VIP에 대한 정보가 빠르기 때문에 준을 알아본 거다. 이런 일반 경찰관들에게서 그런 정도의 정보력을 바랄 수는 없었다.

그렇게 느긋하게 휴식을 취하고 있는데 바깥이 시끄러워지기 시작했다. 무시무시한 범죄자가 잡힌 것이 아니라면 나를 만나러온 연방요원일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잠시후 문이 열리며 검은 양복을 입은 사내 셋이 응접실로 들어왔다. 덩치가 큰 두 사람과 비교적 깡마른 사내 한 명.

로널드 안리가 준의 맞은편에 앉았다.

“연방정보부 특수3과의 로널드 안리다. 준 알스버그 맞는가?”

“맞아.”

“스스로 찾아 왔다고 들었는데.”

“서로 다 아는 이야기를 계속 할 필요가 있을까? 본론부터 이야기 하고 싶은데.”

준은 연방요원에 대해서는 그다지 좋은 감정이 없었다. 그리고 사람을 떠보는 듯 계속해서 질문을 던져대는 로널드가 마음에 들지 않기도 했다.

“본론?”

“셀럼.”

로널드가 흠칫했다.

“이곳은 그런 이야기를 하기에 적절한 장소는 아니다. 나를 따라 온다면 이야기를 들어주도록 하지.”

“뭔가 착각하는 모양인데.”

스윽.

준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덩치큰 요원 둘이 안주머니에 손을 집어 넣었다. 로널드가 그들을 향해 손을 들었다.

“그만. 어차피 이 자에게 총기는 통하지 않아.”

“으음...”

그의 명령에 요원들의 손이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준은 입꼬리를 말아올렸다.

“바보는 아니로군. 내 앞에서 총을 꺼내면 어떻게 되는지 알려주고 싶었는데.”

“너에게 당해 사라진 연방요원에 대한 이야기라면 이미 알고 있다. 그들이 어디로 갔는지 말해줄 수 있나?”

“주는 게 있으면 나도 받는게 있어야지.”

“뭘 원하나?”

“셀럼의 자유.”

준의 말에 로널드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는 연방의 소중한 자산이다. 그런 걸 함부로 내어줄 순 없지.”

콰직!

준이 소파 앞에 있는 테이블을 발로 내리찍었다. 나무파편이 튀며 로널드의 뺨을 스쳤다.

“방금 그런 거라고 했나?”

“...으음. 말 실수는 정정하도록 하지.”

로널드는 심장소리를 귀로 들으며 식은땀을 흘렸다. 준 알스버그의 성격에 대해서는 익히 알고 있었다. 수틀리면 상대방을 쥐도새도 모르게 사라지게 만들기도 했다. 실제로 시체가 발견된 적이 없으니 그가 죽었는지, 아니면 어딘가 멀리 던져졌는지는 누구도 모르는 일이다.

“만약 너에게 이 문제를 협상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면 다른 사람을 데리고 오던지.”

“셀럼의 처우를 결정할 수 있는 사람이라... 그런 사람을 이곳까지 데리고 온다는 것도 불가능하고, 그보다 그쪽의 조건을 먼저 알았으면 하는데.”

“그의 빚이 7천억이라고 들었다.”

“그걸로는 부족하다.”

“셀럼과 맺은 계약서를 볼 수 있나?”

“계약서라 그런 건 없다만.”

“법적 구속력도 없이 사람을 묶어 두고 있다는 건가?”

준이 꼬투리를 잡았다는 듯이 물고 늘어지자 로널드가 피식 웃음을 흘렸다.

“이봐. 정확히 말하면 셀럼은 이미 ‘사망’했어.”

“...그렇군.”

“게다가 그의 몸은 아직 불완전 하다. 주기적으로 적절한 처치를 받지 않으면 신체가 버틸 수 없지. 그런 상황에서 그에게 자유라는 것이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나?”

“그건 그가 판단할 문제다. 네가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있는 게 아니지.”

준의 말에 로널드가 두 손을 들었다.

“뭐, 좋아. 네가 그렇게 말한다면. 하지만 일단 협상을 하자고. 네쪽에서 줄 수 있는 게 뭔지.”

“7천억에 더해 납치된 요원을 석방하지.”

“흠. 그다지 매력적인 제안은 아니군.”

“원하는 게 있다면 불러봐.”

“잠시만 시간을 다오.”

준의 말에 로널드가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검둥이가 입을 열었다.

“뭐하러 이런 골치아픈 짓을 하는 겁니까? 그냥 그 셀럼이라는 사람을 찾아서 데리고 가면 되는거 아니에요?”

“일단 셀럼이 어디있는지 모르잖아.”

“아. 그럼 위치가 확인되는데로 데리고 튈 생각이시군요. 제가 감히 형님의 혜안을 눈치채지 못했습니다.”

“아니. 그들이 셀럼에 몸에 무슨 짓을 했는지 좀 알아봐야겠어.”

“그들이 그걸 쉽게 보여줄까요?”

“안보여주겠지.”

“그럼...”

“직접 들어가서 확인하는 수밖에 없지 않겠어?”

“하지만 연구소의 위치도 모르고, 보안도 장난 아닐텐데요.”

“일단 몇군데 의심가는 곳은 찍어뒀어. 세군데로 정도로 압축 되는 것 같아.”

준의 말에 검둥이가 눈을 반짝이며 입을 열었다.

“역시 대단하십니다. 대체 언제 그런 정보를 모으셨습니까?”

“굳이 모을 필요도 없었어.”

준은 그렇게 말하며 델타맵을 띄웠다. 지구의 전체 형태가 그려진 홀로그램이 눈앞에 떠올랐다. 세 군데에서 반짝거리는 신호가 보였다.

“조각이 있는 위치가 딱 세곳이거든.”

“조각이라면...”

“그래. 로오나의 유산이지. 연방의 과학기술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모르겠지만, 죽은 사람을 살리는 건 분명히 오파츠급 기술이라고 봐야 해. 그리고 지구에는 세 곳에 조각이 존재하지. 그렇다면 그곳에서 파생된 기술일 확률이 높아.”

“결국 그 세곳 중 한곳에 셀럼을 살린 연구소가 있을 거라는 거군요.”

“아직은 추측일 뿐이지.”

“헌데 왜 여기서 이러고 계신 겁니까? 굳이 이렇게 협상같은 거 할 필요없이 직접 그쪽으로 가면 되지 않습니까?”

“나도 원래 그려러고 했는데 말이지... 아무리 생각해도 연방과 적이 되는 건 시기상조라는 느낌이 들더란 말이지.”

현재 준 알스버그가 무역연합내에서 가지는 영향력은 지대하다. 갤럭시 그룹이 분열하고 내전상태에 빠진 상태에서 파인애플 사가 빠르게 세력을 확장하고 있긴 하지만 기업이라는 것이 국가처럼 인구를 늘이고 행성을 차지하는 식으로 덩치를 키울 수 있는 게 아니다.

결국 기업가치를 늘여야 가능한 일인데, 그런 부분에서 준의 델타 그룹의 성장세는 파인애플사의 몇 배에 이르고 있었다.

여전히 규모로만 보면 발끝에도 미치지 못하지만 이대로 10년만 지나도 델타그룹은 파인애플 사를 너머 무역연합 최대의 기업이 될 수 있을 거라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연방은 우주를 지배하는 국가다.

연방이 준을 죽일 수는 없겠지만, 준의 정상적인 기업활동을 막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했다. 그들이 움직이면 델타에서 아무리 좋은 물건을 내놓아도 팔리지 않게 만들 수 있었다. 중요하 건 그들에게 그럴 명분을 주지 않는 것이다.

“그럼 여기에 앉아서 협상하는 척 하면서 알리바이를 만드신다는 거군요.”

“그렇지.”

“그럼 연구소는 누가 터나요?”

“누구긴 누구겠어?”

준이 피식 웃음을 흘렸다.

“셀럼이... 살아있을 줄이야.”

전신수트를 입은 준은 몸을 낮추고는 조심스럽게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가 있는 곳은 미국 텍사스에 있는 교통연구소였다. A&T대학 부지내에 위치하고 있었는데, 실제로는 교통연구소가 아니라 오리진의 조각을 보관하고 연구하고 있는 연구시설이었다.

눈으로 보이는 것은 높이 3층짜리 작은 건물이지만, 그 지하에서는 수십 층 규모의 지하시설이 돌아가고 있었다. 출퇴근마저도 다른 건물을 통해서 들어가도록 철저하게 은폐하고 있었지만, 조각의 위치를 알 수 있는 준에게 그런 위장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귀찮은 일을 맡기다니... 나란 놈은 남을 부려먹는 것도 모자라서 자기 자신까지 부려먹는 건가.”

준이 쓴웃음을 흘렸다. 그는 방금전까지 스파일리 행성에서 테라포밍 작업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연방으로 들어온 과거의 자신에게 동원명령을 받은 것이다. 다른 거라면 모르지만 셀럼과 관련된 일이기에 두팔걷고 나설 수밖에 없었다.

“어디보자...”

준의 눈이 3차원 맵을 훑었다. 델타맵은 지하에 보이지 않는 지역까지 선명하게 준의 눈에 비춰지고 있었다. 조각이 잠들어 있는 연구소의 핵심지역으로 가기 위한 최단경로를 계산하고는 곧바로 땅속으로 파고들어갔다.

쑤욱!

준의 몸이 땅속을 마치 물처럼 통과하며 움직였다. 전자기장 제어를 통해 전자간의 반발력을 제거함으로서 물체를 통과하는 것이다. 아직 저쪽의 준은 사용하지 못하는 기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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