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09 ----------------------------------------------
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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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 대체 네놈은 누구냐?”
“아예 이름표를 달아놓고 살아야겠군.”
한두번 들어보는 이야기도 아니었다. 그럴 때마다 매번 내가 어디의 누구요라고 이야기 하는 것도 지칠 지경이었다.
준은 가볍게 한숨을 쉬고는 입을 열었다.
“내가 누군지는 알필요없고. 네가 이렇게 날뛰는게 MST케미컬과 관련이 있는 것 같은데 맞냐?”
“이 자식이...”
철컥!
이철희가 권총을 장전하고는 준에게 겨누었다.
하지만 염동력을 이용해 슬쩍 놈의 손을 비틀자, 힘없이 권총을 떨어뜨렸다.
“크윽...”
“널 여기서 풀어주면 또 이런 녀석들을 잔뜩 몰고 들어오겠지?”
“죽일테면 죽여라.”
“각오 하나는 마음에 드는 군. 남을 죽이려고 왔으니 자기가 죽는 것 까지 생각하고 왔다는 건가?”
“어차피 여기서 물러서면 난 더이상 갈곳이 없다. 지금 회장님에게 무언가 실적을 보여주지 않으면 앞으로 후계구도에서의 내...”
“됐고. 네 사정 하나도 궁금하지 않으니까 그쯤에서 닥쳐줬으면 좋겠어.”
흔한 기업의 후계구도에서 일어나는 다툼때문에 생기는 문제인 모양이다. 그런 이야기는 드라마에서나 흥미롭지 실제 상황이 되면 피비린내 나는 골치아픈 일일 뿐이다.
MST케미컬 정도의 기업이면 시가총액만 수십조 단위가 넘어가고, 그런 곳의 경영권을 쥔다는 건 수십만명의 생사여탈권을 손에 쥐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거의 현세대의 왕이 되느냐, 아니면 그저그런 귀족정도로 떨어지느냐의 싸움.
갤럭시그룹 정도로 규모가 커지면 아예 함대전을 할 정도로 지독한 것이 또 이런 싸움이다.
일단 준은 바닥에 쓰러진 녀석과 이철희까지 전부 4번 던전에 넣었다. 길을 막았던 차량들은 모두 인벤토리에 집어넣었다. 그렇게 하자 방금전까지 무슨일이 있었냐는 듯이 거리가 깔끔하게 정리되었다.
서연경의 집을 밀어버릴 기세로 닥쳐들었던 녀석들은 결국 총 한번 쏴보지 못하고 전부 준의 손에 사로잡힌 셈이다. 집문을 걸어잠그고 창문을 통해 몰래 훔쳐보고 있던 사람들은 그와 시선을 마주치자 깜짝 놀라며 블라인드를 내렸다.
조만간 소문이 퍼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연방정보부에도 곧 이야기가 흘러들어가겠군.’
이런 지방도시에서 일어나는 일이라고 해도 인터넷의 힘을 생각하면 금방 이야기가 퍼진다. 웹스파이 프로그램을 상시로 돌리는 연방정보부의 정보수집력을 생각하면 내 이름이 직접 거론되지 않더라도 금방 준이 이곳에 있다는 걸 알아낼 수 있었다.
“안간다니까.”
“스승님. 더이상은 무리에요. 이전처럼 어설픈 놈들이 아니라고요. 이철희가 용의주도한 녀석이라면 모르겠지만, 만약 어딘가에 조금이라도 정보를 흘렸다면 MST뿐만 아니라 다른 곳에서도 찾아올 거라고요. 대기업에서 끼어들기 시작하면 스승님의 힘으로도 막는 건 한계가 있어요.”
서은설이 적극적으로 그녀를 설득했다. 골자는 란도넬로 가서 안전을 확보하자는 거다. 그녀의 집이 식충식물들을 통해 완벽하게 방어되고 있다고 해도 방금처럼 수십명의 헌터들이 밀고 들어오면 결국 뚫릴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야 별볼일 없는 놈들이 그녀를 노리고 접근했다지만 이쯤 되면 스케일이 달라진다. 개인의 힘으로 기업을 당할 수는 없었다.
준이 입을 열었다.
“그렇게 이 곳을 고집하시는 이유가 있습니까?”
“정든 고향을 떠나는 게 그리 쉬운 줄 아는거냐?”
“친구도 없으시잖습니까.”
지난 한달간 서연경을 관찰했다. 그녀는 집안에 틀어박혀 연구를 하는 것 외에는 거의 집밖을 나가지 않았다. 생필품은 모두 드론택배로 해결하고 있었다. 나중에는 그것도 귀찮아졌는지 델타폰을 얻은 이후에는 모든 것들을 델타스토어에 의존하고 있는 상태였다.
“...야. 니 남친 대박인데?”
서연경이 입을 딱 벌리며 입을 열었다.
“쟤 원래 막말 쩔어요.”
“다시 생각해봐야겠다. 저런 남자에게 내 천금같은 딸을 내어줄 수는 없지.”
“기분 상하셨다면 죄송합니다만. 여기서 고집부려봐야 서로가 힘들어질 뿐입니다.”
“됐다. 난 안가.”
“그러시다면 어쩔 수 없군요.”
준은 어깨를 으쓱하고는 1번 던전을 열었다. 갑자기 집안에 생성된 웜홀을 본 서연경의 눈동자가 그 어느때보다도 커졌다.
“이건...”
“안가신다고 하니 힘으로라도 할 생각입니다.”
“건방진 줄만 알았더니 행동력도 장난 아닌 녀석이었네. 너도 같은 생각이니?”
서연경이 은설을 바라보았다.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결국 서연경도 항복할 수밖에 없었다.
“알았다. 하지만 지금 바로 가기는 힘들어. 챙겨야할 장비들도 많고, 마당에 심어놓은 작물들도 전부 옮겨심어야 하니까. 이것저것 준비 하려면 한달 정도는 시간이 걸릴거다.”
“제가 도와드리면 오늘 안에 끝낼 수 있습니다.”
“오늘 안에? 네가 염동력을 사용할 수 있다는 건 알지만 그건 불가능해. 섬세한 장비들도 많고 장기간 이동을 위해서 포장을 하려면 한달로도 빠듯하다고.”
실제로 서연경의 집은 저택수준으로 넓다. 그런 규모의 집에 빈방하나 제대로 남아 있지 않을 정도로 각종 장비와 실험체들로 가득했다. 그 모든 걸 정리하려면 사람을 수십명을 쓴다고 해도 한달이 빠듯할 지경이었다.
하지만 준에게 그렇게 복잡한 방법은 필요가 없었다.
“집을 통째로 옮기면 됩니다.”
“...이게 무슨 소리야?”
“이게 대체...”
서연경은 자신의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보고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방금 전까지 분명히 존재했던 자신의 집이, 깜쪽같이 사라져버린 것이다.
지하층까지 깔끔하게 사라진 눈앞에는 깊은 구덩이와, 잘려진 수도관에서 뿜어져 나오는 물만이 방금전까지 이곳에 집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려줄 뿐이었다.
“잠시 다른 차원에 집을 옮겨두었습니다. 그대로 다시 불러낼 수 있으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살면서 이런 광경을 보게 될 줄은 정말 상상도 못해봤어.”
“앞으로는 더 자주 보실 수 있을 겁니다.”
준은 서연경이 자신을 보는 눈빛이 완전히 달라졌다는 사실을 느꼈다. 그냥 돈이 상당히 많은 사윗감 정도로 생각했다가, 그런 수준이 아니라는 걸 깨달은 것이다.
“야... 쟤 인간 맞지?”
“아마도요.”
“아마도는 뭐야?”
“하는 짓이 어지간히 상상을 초월해야 말이죠.”
“꼬추는 제대로 서고?”
“스승님!”
“얘는 귀청떨어지겠다. 나 귀안먹었어. 니들 여기 머무는 동안 내가 밤마다 귀를 틀어막느라고 얼마나 고생한 줄 아냐?”
“꼭 그런말을 해야겠어요?”
“못할말했나. 요즘 세상에 그런 얘기가 뭐 대수라고.”
두 모녀가 투닥거리는 동안 준은 조용히 웜홀을 열었다.
잠시 후, 준 일행이 공간이동웜홀을 통해 사라진 곳에 거대한 수송용 셔틀이 나타났다. 연방정보부에서 준 알스버그의 위치를 파악하자마자 투입한 특수부대였다.
그 안에는 특수3과의 팀장 로널드 안리가 탑승하고 있었다.
“저게 뭐야...?”
준 알스버그가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곳에 마치 거대한 삽으로 떠낸 것 같은 커다란 구멍이 있었다.
로널드가 황당한 표정을 요원들을 쳐다보았다.
“뭐, 외도라도 나타났나보죠.”
“그게 말이라도 된다고 생각하는 건가? 이런 곳에 외도가 나타나게 되면 딱 저곳만 증발할리가 없어.”
“특별한 능력이라도 있겠지요.”
정보부 요원들도 황당한 건 마찬가지다.
로널드의 표정에 짜증어 서렸다.
“제기랄. 대체 그 자식 뭐하는 녀석이야?”
“팀장님도 잘 모르십니까?”
“보안등급이 1등급이다. 국장급이 아니면 제대로 된 정보를 얻을 수가 없어.”
준 알스버그에 대해 공개된 정보는 극히 미미했다. 알려져 있는 사실을 제외하면 거의 모든 부분이 극비. 애초에 연방에서는 인지도가 높은 인물이 아니다보니 이슈조차도 되지 못한 인물이지만, 중요하지 않은 인물이라면 보안등급이 저렇게 높을 이유가 없다.
‘슈퍼솔져 프로그램과 연관이 있는 인물일까?’
셀럼에 대해서는 어느정도 알고 있다. 그는 인간의 육체를 뛰어넘는 최강의 헌터를 인위적으로 만들어 내기 위한 중간과정이었다. 연방의 자본과 기술력이 집적 되어있는 총제라고 할 수 있었다.
연방은 다른 국가에 비해 비교적 외도를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적다. 그러다보니 뛰어난 헌터들은 연합이나 혹은 더 외곽 지역에 있는 행성들로 차츰 빠져나가는 중이었다. 게다가 최근들어 무리어미라는 새로운 적의 등장으로, 그 현상은 더욱 가속화 되고 있었다.
갈수록 줄어드는 헌터의 숫자에 위기감을 느낀 연방에서 내놓은 해결책이 바로 슈퍼솔져. 인위적으로 강력한 헌터를 만드는 방법이었다.
‘어쩌면 저 녀석이 연방의 슈퍼솔져 기술을 탈취하려고 온 것일지도... 아니, 그렇다면 굳이 이쪽에서 셀럼을 접촉시킬 이유는 없을텐데?’
로널드는 부족한 조각들을 이리저리 짜맞추려 노력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만족스러운 대답은 나오지 않았다.
‘대체 저 녀석이 연방에 온 이유가 뭘까?’
가장 커다란 의문점은 바로 이것이었다. 이것에 대해서는 어떤 결론을 내기가 어려웠다.
준이 단순히 휴식을 위해서 온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다.
란도넬 행성으로 돌아온 준은 일단 서연경이 살 수 있을 만한 대지를 골랐다. 준이 여러곳의 대안을 제시했지만 결국 그녀가 최종적으로 선택한 곳은 다름아닌, 이스카야 행성의 알파시티였다.
은설은 가급적이면 자신과 자주 만날 수 있는 곳에 자리 잡길 원했지만 그녀는 한사코 그곳을 고집했다.
사람들이 많지 않고, 연구를 할 수 있는 외도의 수가 많다는 점이 마음에 든 모양이다.
“이 녀석에게 말만하면 언제든지 올수 있잖아.”
“그거 돈 엄청 많이 든단 말이에요.”
“얼마나 드는데?”
“백억 정도입니다.”
준이 입을 열었다.
“우리 사위 돈 많잖아? 그정도야 네가 부탁하면 들어주겠지.”
“그래도...”
은설이 준의 눈치를 살폈다. 준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은설이 원한다면 언제든지 공간이동웜홀을 열 생각이었다. 지금 준에게 10만EP정도는 어렵지 않게 쓸 수 있는 액수였으니까.
서연경의 집을 알파시티 안에 설치하고, 전기와 수도를 연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