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04 ----------------------------------------------
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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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호기심은 대단했다. 성전환을 시켜주는 트랜스포션이 시약스토에서 판매량 1위로 등극했다.
“아아. 세상엔 변태가 너무 많아.”
서은설이 그 결과를 보고는 쓴웃음을 지었다. 준이 입을 열었다.
“아니. 뭐 호기심에서라도 한 번쯤은 사용해 볼 법한 물건이라고는 생각하는데.”
“너도 관심있어?”
“딱히. 그래도 그걸 쓰는 사람을 변태로 매도할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
무역연합내에서는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은 거의 없는 편이다. 워낙 자기마음대로 사는 게 익숙하기도 하고, 남의 인생에 신경을 안쓰는 게 기본 정서로 깔려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연방 출신인 서은설은 아직도 그런 쪽에 대한 편견이 제법 있는 모양이었다.
특히나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는 상당히 보수적인 색채를 띄고 있는 곳이었다. 연장자에 대한 예의를 극도로 강조하는 점만 보아도 연합출신의 준이 이해하기에 힘든 부분이 있었다.
나이와 관계없이 서로 대등한 시점으로 바라보는 것이 익숙한 준에게 이런 부분은 이해하기 어려운 점이었다.
“그러면 한 번 먹어보는 건 어때?”
“별로. 딱히 그쪽으로는 호기심이 없거든.”
“어차피 두 번 먹으면 원래대로 돌아오는데 재미로라도 해 볼 수 있는 거잖아?”
“그래도 그건 좀...”
준이 고개를 저었다. 서은설의 눈이 가늘어졌다.
“즉, 아닌 척 하지만 너도 나처럼 편견이 있다는 거지."
"...아니거든. 그럼 너부터 먹어보던가.“
“정말? 그래볼까? 대신 내가 먹으면 너도 같이 먹는 걸로.”
서은설이 눈을 반짝이며 입을 열었다.
준이 식겁하며 얼른 손을 내저었다.
“아니. 됐어. 안 하는게 좋을 것 같다. 남자가 된 널 보고 나면 어쩐지 기분이 이상할 것 같아.”
친남매가 아니니 장민성을 닮거나 하지는 않겠지만, 어쨌든 남자인 서은설은 보고 싶지 않은 기분이었다.
“흠. 좀 아쉽네. 이번 기회에 준을 괴롭혀보고 싶었는데.”
“지금도 충분히 괴롭히고 있어.”
“아니 그런 거 말고.”
서은설이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준을 쳐다보았다. 시선이 몸에 달라붙는 느낌이다. 중년아저씨의 시선을 받는 느낌이랄까.
딱.
“으앗. 왜 때리는 거야?”
“니가 무슨 중년아저씨냐? 방금 굉장히 성희롱 당하는 기분이었거든.”
“뭐, 아니라고 할 수는 없지만.”
“됐고. 어쨌든 잘팔린다니 그걸로 됐어.”
어쨌든 트랜스포션의 흥행으로 델타폰의 판매고도 올라가고 있었다. 아무래도 물건이 물건이다보니 홍보효과가 엄청났던 것이다. 서연경에게 준 델타폰 10개도 순식간에 동이났고, 며칠이 지나니 10개였던 델타폰에 100개가 넘어갈 정도로 순식간에 퍼져나가고 있었다.
반도의 작은 도시에서 시작된 델타폰 열풍이 어디까지 갈지도 궁금했다.
지금까지 델타폰이 많이 팔리지 않은 것은 헌터에게 최적화된 물건이라는 한계때문도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준의 거점에 인구가 많지 않다는 것이 컸다. 델타스피릿 산하의 행성중 가장 큰 곳이 란도넬이고 그곳의 인구가 4천만 정도니까 많이 팔아봐야 그 한계가 뚜렷했던 것이다. 하지만 지구는 다르다.
여기서 란도넬에서 팔린 정도의 비율로만 팔아도 그 숫자는 순식간에 억단위까지 올라갈 수 있었다. 그렇게 되면 하루에 벌어들이는 EP가 천문학적으로 늘어날 수 있다.
-사장님.
-응? 무슨 일이야?
제임스가 펠로우쉽 통신을 통해 연락을 해왔다. 그가 먼저 연락을 하는 경우는 좀처럼 없었다. 항상 준이 먼저 괴롭히는 편이었지.
-트랜스포션 그거 계속 파실 겁니까?
-아아. 그런데 왜?
-다소 문제가 되는 곳이 있어서 말입니다.
-문제라니...?
-알카트뢰즈 말입니다.
-아. 그러고보니.
알카트뢰즈는 남성 수용자들만을 위한 행성이다. 물론 여자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간부들을 위한 술집이 따로 존재했기에 직업여성들이 상시로 거주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 건은 다르다. 수십년 씩 갖혀 있어도 여자는 그림자 조차도 보지 못하는 놈들이 널려 있었다. 그런 곳에 트랜스포션이 풀리면 무슨일이 일어날지 불보듯 뻔했다.
-현재 알카트뢰즈 내에서 납치 및 폭력이 빈번해지고 있다고 합니다. 무슨 말씀인지 아시겠죠?
-아아. 납치해서 억지로 약을 먹인다음에 여자로 만든다는 건가?
-아직은 며칠 되지 않아 심각한 문제는 아닙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감옥행성의 운영에 심각한 문제를 일으킬 겁니다.
-그럼 일단 거기만 막으면 되지 않을까?
-가능하십니까?
-문제없어.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통신을 마친 준은 시스템을 불렀다.
-시스템. 현재 행성 알카트뢰즈에 있는 델타폰의 숫자가 어떻게 되지?
-약 2만 3천개 가량입니다.
상당히 많은 편이라고 할 수 있었다. 현재 알카트뢰즈의 인구가 10만명을 조금 넘는 수준이니 다섯명 중에 한 사람이 가지고 있는 것이다. 델타폰 자체가 알카트뢰즈에서 제한하고 있는 많은 것들을 제공하다보니 많이 풀린 모양이다.
그래도 관리소 측에서 보면 델타폰 사용은 일종의 일탈에 가깝기 때문에 대놓고 판매하거나 사용하는 것은 불법으로 규정짓고 있었다. 하지만 이미 퍼질대로 퍼진 터라, 정말 눈앞에서 꺼내지 않는 이상에는 대충 눈감아주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 기기들에 한해서만 시약 스토어 차단할 수 있을까?
-알카트뢰즈 행성에 위치한 모든 델타폰에 시약스토어를 차단하겠습니다.
생각보다 편하다. 성능이 증가한 시스템은 특히나 델타시스템에 있어서 준이 손대지 못하는 많은 부분들을 컨트롤 해주고 있었다.
준은 제임스에게 통신을 넣었다.
-방금 처리했어.
-이미 벌어진 일이라 한동안은 시끄럽겠지만... 어쨌든 감사합니다.
일종의 해프닝이었지만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심각한 문제로 변질될 가능성도 있는 일이었다.
델타폰의 파급력에 있어서 다시한번 생각해볼 수 있게 해주는 일이기도 했다.
모두가 잠든 밤. 아무도 없는 지하 시약실에 조용히 스며들어오는 인영이 있었다.
그 인영은 어두운 지하실에서 두 눈을 밝히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허공에 떠있는 그녀의 등에는 투명한 날개 네 장이 달려 있었다.
“흠... 어디에 있지...?”
시미가 시약들을 살펴보며 입을 열었다. 시간은 새벽 세 시. 준과 서은설이 잠든 것을 확인하고 요정상태로 빠져나왔으니 준이 눈치를 챌 리가 없다.
그녀는 계속해서 위아래로 몸을 띄웠다 내렸다를 반복하며 시약에 붙어 있는 이름표들을 확인했다. 이미 일고 있는 약들도 있었고, 처음보는 것도 있었다.
모두가 알고 있는 것과 달리 그녀는 제법 영악한 편이다. 만드라고라 자체가 인간의 이목을 속이고 땅속에 숨어서 기회를 노리는 식물이다. 요정의 영향으로 성향이 바뀌었고, 준의 펠로우쉽 계약을 통해 인간에게 호의적인 감정을 갖긴 했지만 그렇다고 그녀가 겉모습 처럼 순진해빠졌다던가 멍청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적어도 그녀가 원하는 것을 찾기 위해 남들의 이목을 속이는 일 정도는 아무렇지 않게 해낼 수 있었다.
문제는 항상 그 시도가 약간 어설프다는 것에 있었다.
“불.”
서연경의 목소리와 함께 지하실이 환하게 밝혀졌다.
“으앗.”
눈을 찌르는 빛에 인상을 쓰며 시미는 소리가 나는 쪽을 향해 몸을 돌렸다. 그곳에는 팔짱을 끼고 벽에 기대어 있는 서연경의 모습이 있었다.
“거기서 뭐하는 거냐?”
“어, 어떻게 알았어요?”
“내 작업실에 누가 침입하는데 그걸 모르는 마법사가 있을거 같냐?”
“그런... 시미는 어리석었군요.”
“이제라도 알았으니 다행이지. 그나저나 뭘하고 있었냐고 묻는데?”
“그, 그것이...”
“말하기 곤란한거냐? 하지만 난 알아야겠어.”
“꼭 말해야 하나요?”
“그게 아니라면 너를 준이 보낸 스파이라고 생각하지. 겉으로는 도움을 주는 척 하면서 뒤로 내 시약제조법을 훔치려고 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 않겠어?”
“그, 그건 아니에요.”
시미가 목이 부러질 정도로 격렬하게 고개를 저었다. 어디까지나 이건 자신의 문제지, 준에게 피해를 주면 안되는 일이었다.
서연경이 은근한 미소를 지으며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러니까 말해. 대체 여기서 뭘 하려고 했던 거지?”
“그, 그게...”
그녀의 입술이 오물거렸다.
준은 자신의 몸을 짓누르는 무게감을 느끼며 정신을 차렸다. 은설인가 싶어 눈을 떠보았더니, 처음보는 여자가 가슴위에서 준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처음? 아니...’
곧바로 알아챘다.
“시미냐?”
“어떻게 알았어요? 엄청 다른데.”
“일단 그 녹색 머리칼부터 어떻게 하지그래. 확실히 얼굴은 좀 달라지긴 했어. 못알아볼뻔했네.”
갑자기 성장해버린 시미의 모습은 알아보기 힘들 정도였다. 요정을 닮은 아름다움은, 성인이 되자 에피알게나스에 비할 수 있을 정도로 신비로운 분위기를 내었다.
만약 보통의 사람이라면 정신을 차릴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준은 시미라는 걸 깨닫고는 웃음을 흘렸다. 성인이 된 시미라니, 아직은 보고 싶지 않았다.
준은 가볍게 녀석의 머리를 쓰다듬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벌써 일어나는 거에요?”
“너 때문에 깼잖아. 그나저나 너 그거 언제 돌아오는 거냐?”
아무리 시미라고는 해도 신체는 완전한 성인의 그것이다. 예상 이상으로 볼륨있는 몸에 준은 하체가 단단해지는 것을 느꼈다.
‘이 녀석은 시미다...’
머리속으로 몇차례 되뇌이자 다행히 조금 가라앉을 기미가 보였다. 헌데 시미의 표정이 묘해지더니 그녀의 손이 준의 옷 안쪽으로 슬며시 파고들었다.
“스톱. 더 하면 혼난다.”
“저도 할 수 있어요.”
“안 돼. 하지마.”
“왜요?”
“음...”
준은 뭐라고 해야할지 고민했다. 그녀가 준에게 소중한 존재인 것과는 별개로, 남녀사이로 그녀를 생각한다는 건 아무래도 어려웠다. 아직 시미는 준에게 어린소녀일 뿐이다. 몸만 자랐다고 해서 갑자기 그녀를 동등한 성인으로 바라볼 수 없는 것이다.
“그보다 너 그거 어떻게 된거야? 왜 갑지가 몸이 자란거지?”
“언니 엄마가 도와줬어요.”
“서연경씨가...? 성장의 시약같은 건 없었던 거 같은데.”
“준. 일어났어?”
벌컥.
방문을 열고 서은설이 들어왔다. 그리고 그녀는 시미가 준을 끌어안고 있는 모습을 보고는 표정을 굳혔다.
“뭐, 뭐하는 거야? 누구야? 그 여자는?”
“누구긴. 보면 모르냐?”
“설마... 시미야?”
“응.”
“어떻게 된거야 그 모습은?”
“언니 엄마가 도와줬어요.”
“식물생장 마법... 진짜 이 할망구가.”
쾅.
그녀는 방문을 거칠게 닫으며 아래층으로 내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