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01 ----------------------------------------------
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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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
김이 모락모락 나는 차가 테이블에 올려졌다.
“정원에서 직접 재배한 허브로 만든 거야. 건강에 좋으니까 사양말고 마음껏 들어.”
“이상한 거 넣은 거 아니죠?”
서은설이 입을 열었다.
“손님한테까지 실험용 차를 내지는 않아. 너라면 모를까.”
“끙... 진짜 처음에는 무슨 실험하려고 입양한 줄 알았다니까.”
“겸사겸사지. 덕분에 너도 이득 봤잖아.”
“이득이라니. 무슨 소리야?”
준이 차를 들이키며 입을 열었다. 강렬한 향이 얼굴 전체를 감쌌다. 그럼에도 느끼하거나 자극적이지 않은 향이다.
제법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래 내가 마나에 대한 재능이 없었거든. 헌데 스승님이 만들어 주신 차를 하루에 세잔씩 퍼마셨더니 자연스럽게 마나가 쌓이더라고. 그런 게 있다면 특허라도 받아서 팔면 제법 돈을 벌텐데 말이지.”
“마법이 왜 대중화 되지 못하는 진 너도 잘 알잖아. 전부 수제로 만드는 차라서 특허를 받아봐야 소용없어.”
“그래도 비싸게 팔 수는 있잖아요.”
“돈은 지금도 충분한데 뭐하러.”
“마나를 쌓이게 하는 차라... 어떻게 만드시는 겁니까?”
“왜. 팔기라도 하게?”
“그냥 호기심입니다.”
“알려줘도 상관없긴 한데. 방법을 알아도 만드는 건 쉽지 않을 거야.”
“무슨 이유라도 있습니까?”
“계절과 온도, 그날의 기운과 그 성격에 따라서 섬세하게 약제의 양과 물을 끓이는 시간등을 적당히 조절해야해. 실패하면 그냥 평범한 차가 되어버리지.”
“그것도 더럽게 맛없는 쓰기만 한 차로.”
서은설이 부연설명을 했다.
“적당히라... 가장 어려운 방법이군요.”
“원래 마법은 중용의 기술이거든. 그 적당히를 배우기 위해서 스승밑에서 수십년씩 배움을 청하는 거고, 그러고서도 제대로 못익히는 사람이 수두룩하게 깔려있지. 요즘 젊은 것들은 화려하고 빵빵 터지는 마법을 배우느라 이런 마법의 심오함을 모른다는 게 문제야.”
“애초에 이런거 배워봤자 외도와 싸우는 데는 별 도움이 안되잖아요.”
서은설이 툴툴거리며 입을 열었다. 실제로 서은설과 처음만났을 때 그녀의 마법실력이 그다지 뛰어난 편은 아니었다. 초급중에서도 생 초급이었고, 그 실력으로는 최하급 외도에게 약간의 데미지를 입히는 게 전부였다.
“기껏 마법을 배워놓고 왜 싸움에만 쓰려고 하는 거야? 할 수 있는게 얼마나 많은데.”
“결국 그거 때문에 계속 문제가 생겼잖아요.”
서은설이 핀잔을 주었다.
그녀의 말에 준이 의아함을 느끼고 입을 열었다.
“헌데 여기 전반적으로 집에 보안장치가 많은 편이군요. 방금 은설이의 말도 그렇고 누군가에게 위협이라도 받으시는 겁니까?”
“뭐, 늘상 있던 일이라. 신경쓰지 않아도 돼.”
“여러 기업에서 스승님 기술을 얻기 위해서 계속 찔러보는 중이거든. 헌데 아직도 그러고 있는 모양이야. 지칠때도 됐는데.”
“무슨 기술입니까?”
“뭐, 전부라고 해야지.”
서연경이 상체를 젖히며 집안을 슥 둘러보았다. 그녀의 시선을 따라 움직이자 각종 식물들과 말린 곤충, 작은 동물들의 사체들이 보였다. 처음보는 것들도 많았고, 머리가 셋 달린 도마뱀이라던가 분홍색 토끼발이라던가 하는 전통적으로 마녀들이 사용하던 것들도 보였다.
“스승님이 책을 쓰시는데, 거기에 몇가지 조합법을 넣었거든. 마나를 회복시켜주는 차라던가, 머리털이 나게 해주는 과자 같은 것들.”
“애들 장난 같은 거지.”
“애초에 탈모는 아직도 정복이 안된 분야라고요. 그거 때문에 이 난리가 난거 몰라요?”
“탈모치료제라니. 제대로 된 것도 만들 수 있으신겁니까?”
“가능하긴 한데. 아까도 말했지만 대량생산은 안 돼. 그래서 재능이 있는 아이를 키워서 기술을 전수해줄 생각이었는데 이 녀석이 도망치는 바람에 그것도 물건너 갔지.”
“도망친거 아니거든요.”
“어쨌건간에. 책이 좀 많이 팔리니까 이상한 녀석들이 꼬이더라고. 집에 뭔가 비법을 숨겨놓았을 거라고 생각했는지 심심하면 침입해 들어오곤 해서 그냥 집 전체를 트랩으로 만들어 버린거야. 최근 들어서 유독 심해지기도 했고.”
“요즘 더 심해졌다고요? 혹시 또 뭔가 이상한 짓 한거 아니에요?”
“별거 안했는데.”
“뭔가 하긴 했군요.”
“인터넷으로 방송을 조금...”
“뭐라고요?”
서은설이 한숨을 쉬며 입을 열었다.
“네가 하길래 재미있어 보여서.”
“그래서 뭘 했는데요.”
“개인방송은 컨텐츠가 중요하더라고. 그래서 성별을 바꾸는 약을 좀 썼지.”
“...잠깐만 뭐라고요?”
준이 입을 열었다. 성별을 바꾸는 약이라니 그런 건 들어본 적도 없었다.
“최근에 개발한 약인데, 부작용없이 완벽하게 남녀를 바꿔주지. 대단하지?”
“그게 가능한 겁니까?”
“하다보니 되던데. 원래는 월경을 멈추게 할 생각으로 만든 약인데 어쩌다보니 실수로 만들게 됐지.”
“그런 약이 있으면 목숨걸고 달려들 사람이 하나둘이 아니긴 하겠군요.”
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현대 의학은 암을 포함해서 고치지 못하는 질병이 거의 없는 수준이다. 외상은 물론이고 암이 정복된 것도 백년이 넘었다. 에이즈를 비롯한 바이러스성 난치병도 해결했다.
알츠하이머로 대표되는 뇌질환, 선천성 지체등도 완벽하게는 아니더라도 일상생활에 지장이 없을 정도까지는 해결되었다.
그런 상황에서 몇 가지 해결되지 않는 것들이 있는데 대표적으로 노화와 탈모다. 성전환 수술은 질병 치료라고 할 순 없지만, 이쪽도 생각보다 지지부진한 것이 사실이다. 기술적으로는 부작용 없이 시술 가능해 예전처럼 기대수명이 줄어들거나 하지는 않지만 여전히 완벽한 상대 성으로의 전환은 불가능했다. 사실상 외과적 수술로는 한계가 있다고 봐야했다.
헌데 그게 가능한 시약을 만들어 내다니. 그야말로 엄청난 돈을 끌어모을 수 있는 사업이었다.
단 하나 단점이라면 대량 생산이 불가능하다는 것.
하지만 준에게는 그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있었다.
“저기. 혹시 저와 같이 손잡고 그 시약들을 판매하실 생각은 없으십니까?”
“응? 무슨 소리야? 아까 말했잖아. 이거 전부 수제라서 대량생산은 안된다고.”
“대량생산을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필요한 건 하나면 됩니다.”
“하나면 충분하다고?”
서연경이 의아한 듯 고개를 기울였다. 검게 기른 머리칼이 부드럽게 물결쳤다. 아무리 봐도 오십대로는 보이지 않는다.
준은 입을 열었다.
“참. 그리고 혹시, 그 젊어지게 만드는 약 같은 것도 만들 수 있습니까?”
“그건 좀 어렵긴 한데... 만들어도 거의 매일 먹어야 되는거고. 사실 재료비가 엄청나게 많이 들어가거든.”
“책판돈으로 전부 그거 만들어 먹고 있어. 거기에 쓴 돈만 아니면 거의 도시 하나를 세우고도 남을 만큼 돈이 있을텐데.”
서은설이 입을 열었다.
“그렇게나 많이? 대체 무슨 책이기에...”
“아무래도 교과서로 쓸 정도니까. 연방 고등학교에는 전부 들어가 있을걸? 인세만 해도 어우...”
“그렇게 돈이 많으면 굳이 민성이가 고생을 안했어도 되잖아.”
“우리오빠 알잖아.”
“아... 그렇지.”
공짜로는 절대로 도움을 받지 않는 장민성이다. 이제와서 보니 굳이 그렇게까지 고생하지 않아도 쉽게 갈 수 있는 방법은 많았다. 그 외골수 적인 기질덕에 불가능해 보이는 미션을 달성하게 하긴 했지만, 한편으로는 엄청나게 손해보는 성격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어쨌든 하나만 있으면 된다... 그럼 그걸로 어떻게 할 생각이지?”
“일단 이것부터 봐주시겠습니까?”
준은 팔목에 찬 델타폰을 폈다. 서연경이 고개를 들어 준을 쳐다보았다. 설명을 요구하는 눈빛이다.
“이건 평범한 스마트패널이 아닙니다. 일반적인 통화기능도 가능하긴 하지만 어디까지나 델타폰 끼리만 연결되는 거라 오히려 통신장치로서의 성능은 떨어진다고 할 수 있죠.”
“폐쇄성이 강한 단말기라는 건가. 그걸로 수익을 내긴 어려울텐데.”
“현재 풀린 델타폰의 수가 수백만대를 넘어간 상태니 그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성장속도로 봐선 천만대 판매도 금방 이루어질 겁니다.”
“엄청나긴 한데, 그래서?”
심드렁한 표정을 짓고 있는 서연경에게 델타패널의 방향을 돌린 준은, 곧바로 스토어에 접속해서 상품판매 목록에 들어갔다.
스토어는 크게 몇가지 카테고리로 나뉜다.
일단은 준이 만드는 물건을 올리는 메인 스토어다. 그곳에는 여전히 잘 팔리고 있는 니들건을 포함한 각종 장비들과 차량이 업로드 되어 있었다. 구매를 선택하면 그 자리에서 바로 만들어지는 물건들이다.
두 번째로는 밥의 원거리 택배로 판매하는 일반 물품들이다. 이쪽은 기존의 온라인 마켓에서 파는 물건들을 그대로 판매하고 있었다. 다른 점은 결재가 오로지 EP로만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가격도 다른 마켓보다 비싼 편이다. 하지만 대신 구매를 하자마자 곧바로 받아볼 수 있기 때문에 EP의 여유가 많고 빠른 배송과, 배송 중 파손을 원하지 않는 사람들이 즐겨 사용하고 있었다.
이 점은 상당히 높은 메리트가 있었는데, 왜냐하면 지구와 같은 인구밀도가 높은 행성은 바로바로 물품이 배송되지만, 물류체계가 정비되어 있지 않은 거의 대부분의 개척행성들에서는 온라인 마켓의 배송날짜가 짧아도 일주일, 길면 몇 달까지 걸리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비싸더라도 밥의 상점에서 사는 쪽이 훨씬 더 이득인 경우가 있었고, 그 틈새시장을 공략해서 여전히 상당한 매출을 올리고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개인판매점이었다.
이쪽은 아무나 업로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지금도 유일하게 마스터만 요리를 판매할 수 있도록 되어 있는데, 두가지 까다로운 조건이 선행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첫 번째는 관련기술의 존재, 두 번째는 사용자의 승인이다.
마스터의 경우는 요리사라는 직업에 달린 보조기술 ‘배달요리’를 가지고 있다. 마스터가 요리점을 신청하고, 준이 승인을 해야 비로소 스토어에 개인상점을 열 수 있는 것이다.
두 번째는 문제가 안되지만, 첫 번째가 문제였다. 과연 적합한 기술을 얻을 수 있느냐가 문제였다.
하지만 준은 그 문제는 어떻게든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녀에게 적합한 기술이 뜨지 않는다고 해도 문제는 없다.
일단 그녀를 펠로우쉽에 가입시켜, 시약제조 기술을 준이 배운다음 제조법을 스토어에 올리는 방식으로 판매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준이 현재 배울 수 있는 제작관련 슬롯은 총 2개. 프로그래밍과, 건축에 하나씩 투자했으니 프로그래밍 자리에 시약제조를 넣으면 될 일이다.
준은 마스터의 요리를 하나 구매했다. 1EP가 소모되면서 준의 앞에 대형스테이크가 모락모락 김을 내며 생성되었다.
“어머?”
서연경이 깜짝 놀라며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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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500회를 돌파했네요.
축하해주신분들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