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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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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는 해도, 보는 입장에서 저 광경이 제법 장관이라는 점은 인정해야했다.
저 작은 사각형의 건물 하나하나에 천명이 넘게 살고 있다고 생각하니, 또 그런 광경이 이곳뿐만 아니라 지구 전체에 걸쳐서 볼 수 있다고 하니 새삼 연방의 힘이 느껴졌다.
“지구 인구가 40억 정도라고 했던가...?”
“전성기 때는 100억이 넘었으니까. 많이 빠져나갔다고 봐야겠지.”
“그래도 40억명은 너무 많긴 하다. 어후...”
란도넬 행성의 인구는 4천만 가량이니 지구에는 그 백배에 달하는 인구가 살고 있었다.
“워낙 사람들이 많나보니 각종 인프라가 잘 깔려 있어서 오히려 살기는 좋아. 오토파일럿 시스템은 몇몇 상업용을 제외하면 거의 전 차량에 장착되어 있고, 튜브를 통한 고속전철로 지구반대편 까지 세 시간이면 도착할 수 있어. 안드로이드와 드론시스템은 실시간으로 물류를 수송하고 있고. 힘들게 쇼핑을 하러 돌아다닐 필요도 없지. 제법 좋지 않아?”
“사람이 그렇게 안 움직이면 병나.”
“의료시설도 잘 되어 있거든. 물론 부자들에 한해서지만 그래도 일반보험만 있어도 어지간한 질병은 치료가 가능해. 적어도 이 땅에서 굶어죽거나 병들어 죽는 사람은 없다고 보면 돼. 가난한 사람은 좀 있지만.”
사실 서은설도 그 가난한 부류에 속했다. 돌봐줄 부모도 없이 고아원에서 자랐고, 이 나라에 대해 좋은 인상을 가지고 있을 리 없음에도 고향이라는 생각때문인지 자신도 모르게 좋은 점만 찾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렇게 좋으면 여기서 살지 그래.”
“질투하는거야?”
“질투는 무슨. 사람들을 돼지처럼 배불리기만 해가지고선 무슨 발전이 있다고. 사람이 열심히 몸을 움직이기도 하고 그래야지.”
“그런 것 치곤 준도 엄청 게으른 거 알지? 그 놈의 염동력인가 뭔가 때문에 일이 없는 날에는 하루종일 누워서 움직일 생각을 안하잖아.”
“대신 일이 있을 땐 빠릿빠릿하게 움직이니까 비긴 걸로 하자.”
“칫. 말이나 못하면.”
제법 험준한 산맥을 하나 넘어 도착한 곳은 인구 약 10만이 살고 있는 소도시였다. 시청사 바로 뒤에 있는 셔틀 착륙장에 도착하자, 곧바로 시청에서 사람이 나와 준 일행을 반겼다.
“델타스피릿에서 오셨다고 들었습니다. 저희 도시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사십대 중반 정도의 계장급 공무원이었다.
그 역시 준이 셔틀을 인벤토리에 넣는 장면을 보고 한동안 말을 잊지 못했다. 준에게는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그는 아마 태어나서 처음 보는 광경일 것이다. 티비나 영화에서도 본적없는 장면일지도 모른다.
시청에서 내려 택시를 타고 이동했다. 깔끔한 건물들과 함께 안드로이드로 보이는 로봇들이 거리 청소를 하고 있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지나다니는 차량들은 거의 없었고 오히려 자전거가 상당히 많이 눈에 띄었다.
“이 동네는 차가 거의 없네.”
“걸어서 다녀도 도시 끝에서 끝까지 이십분이면 가는 곳인데 뭘. 차보다는 자전거가 훨씬 편해. 차량을 사용하는 건 도시밖으로 여행을 갈 때 아니면 거의 없지.”
“난 이동네가 더 마음에 든다.”
프라이어 시티도 붐비는 편이긴 했지만, 그래도 서울의 정신없음에 비하면 훨씬 더 사람 사는 곳 같았다.
거리를 다니는 사람들의 얼굴에는 웃음이 걸려있었고, 아이들 만큼이나 많은 수의 동물들이 눈에 띄었다. 유기견인가 싶어 자세히 살펴봤지만 전부 목에 인식용 칩을 달고 있었다.
“시에서 관리하는 동물들이야. 개체수 조절도 자동으로 해주니까 딱히 문제는 없다고 하더라고.”
“이런 건 처음보네.”
“뭐, 먹고 살만한 동네니까.”
“고아라고 해서 엄청 가난하게 살아왔는 줄 알았는데 이런 도시에서 큰 거야?”
“뭐야. 그 이상한 표현은. 내가 좀 유난히 운이 좋은 케이스였거든.”
“다행이라는 거지. 고생을 엄청한 줄 알았거든.”
“스승님 덕이지 뭐.”
“공기가 엄청 좋아요. 시미는 이 동네가 마음에 들어요.”
“프라이어 시티보다?”
“음... 거긴 엘라가 있으니까... 거긴 빼고.”
란도넬도 전체적으로는 환경파괴가 거의 일어나지 않은 행성이지만, 대도시인 프라이어 시티는 제법 대기오염이 있는 편이다. 일단 아직도 내연기관을 사용하는 차량의 수가 제법 많았고, 화력발전소와 화학공장등에서 뿜어내는 독성물질들이 상당했다.
지금에 와서는 천천히 델타엔진을 이용한 장비들로 거의 교체가 완료되었지만, 그것도 최근에 와서의 일이다.
택시를 타고 천천히 이동한 끝에 도착한 곳은 넓은 정원이 딸린 집이었다.
“아파트가 아니라서 다행이군.”
“마법사가 어떻게 아파트에 살아요. 폭발사고라도 일어나면 어쩌려고.”
“그건 그렇네. 그런데 네 스승님이라는 분은 무슨 일을 하시는 거야? 저렇게 큰 집을 유지하려면 기본소득이나 연금만 가지곤 안될텐데.”
“고등학교 선생님이에요.”
“선생님이 저렇게 큰 집을 유지하는 거야?”
“책을 썼는데 그게 대박이 나셨다고 하더라고요. 일반인도 배울 수 있는 마법이라던가, 뭔가 하는 거였는데 저도 그걸로 배웠어요.”
마법을 학교에서 가르친다는 것도 놀랍지만 그 내용을 책으로 써서 대박을 냈다는 것도 제법 놀라운 일이었다.
애초에 마법이 그렇게 쉬운 학문이 아닌 만큼 일반인이 접근하기란 상당히 허들이 높기 때문이었다.
과학으로 따진다면 최소한 양자역학급의 난이도를 기본베이스로 깔고 가는 것이다. 그래서 마법사는 머리가 좋아야 하고, 거기다가 선천적으로 마나를 움직이는 재능을 가지고 있어야 했다. 그러다보니 헌터중에서도 마법사는 드문 편이었다.
어린나이에 상급헌터 실력을 가진 오펜하이머가 그래서 더욱 대단한 것이다. 정신적으로 약간 문제가 있긴 하지만 그 정도야 뭐,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범위 내였다.
딩동!
-누구세요.
인터폰에서 흘러나온 목소리는 훨씬 젊은 여성의 것이었다.
고등학교 선생님이었다고 하지 않았나?
거기다가 서은설을 보호자로서 어릴 때부터 가르쳤다고 했으니 아무리 어려도 40대는 넘어야 했다.
“스승님. 저에요.”
-미친년이... 당장 안 꺼져?
“아하하... 오랜만인데 여전하시네요.”
“...너 이 분하고 무슨 원수졌냐?”
-뭐야? 손님이 계셨어?
“다 보고 있었으면서 딴청피우지 마세요. 저기 카메라 있는거 다 알거든요.”
-끙... 그래 들어와라.
철컹.
강철문이 열렀다.
준은 정원으로 들어가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시미가 준과 서은설의 곁을 날아다니면서 신기한 듯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러다 갑자기 고개를 갸웃거렸다.
“여기 좀 이상해요.”
“뭐가?”
“자연적으로 자란 애들이 아니에요. 전부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애들이라고 해야하나...?”
“그거 전부 마법생물이야. 잘못건드리면 제법 짜릿할걸? 방범용으로 만들어 놓은 거니까 별로 신경쓰지 않아도 돼.”
서은설이 입을 열었다.
“그래요? 그런 것 치곤 엄청 공격적인 거 같은데...? 애들이 완전히 바짝 긴장해 있어요.”
“그런 것 까지 알 수 있는거냐?”
준이 입을 열었다.
“같은 식물이니까요.”
“왠지 납득가면서도 납득이 안가네.”
준은 고개를 저었다.
그녀가 그렇다면 그런거겠지.
“내 살아생전 요정을 보게 될 줄은 몰랐구나.”
정원의 끝에서 우리를 맞이한 사람이 있었다.
준은 두 가지 점에서 놀랐는데, 첫 번째는 나이가 이십대 중반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상당히 미인이라는 점이었다.
“스승님이 생각보다 젊으시구나.”
“저거 다 마법으로 억지로 노화를 늦춘거야.”
“이년이 기껏 키워줬더니 배은망덕한 소리를 지껄이고는.”
“준 알스버그라고 합니다. 이 녀석과는... 연인관계입니다.”
“기생오래비 같은 걸 데리고 왔네. 돈은 좀 많냐?”
“짱 많아욧!”
대답한 것은 시미였다.
“재미있는 친구들이네. 서연경이다. 나이는 스물 셋이고...”
“쉰 셋이야.”
“죽을래?”
“늙었으면 곱게 늙어야지. 왜 그렇게 젊음에 미련을 못버리는 거에요? 그거 때문에 맨날 고생하는 거 아니에요.”
“나처럼 청춘을 마법연구에 전부 꼴아박아봐야 네가 날 이해하지. 아. 손님들을 밖에 세워두기만 했네. 일단 안으로 들어와. 아. 그 발판 밟지말고. 그거 끈끈이 주걱으로 만든거라 밟으면 안떨어지거든.”
“...네.”
준은 허공에 발을 디뎠다. 마치 보이지 않는 계단이라도 있는 것처럼 그 곳을 넘어가는 준을 보고는 서연경이 시선을 서은설에게 돌렸다.
“실력 좋죠?”
“뭐, 소문대로.”
“뭐야. 관심없는 척 하면서 뒷조사 한 거에요?”
“그래. 이년아. 불만있냐? 엄마가 그런 것도 못해?”
“으앗... 제발 엄마란 소리 하지 말라고 했죠? 닭살 돋으니까.”
“됐고. 얼른 들어오기나 해.”
준은 이 기묘한 스승과 제자를 보면서 웃음을 흘렸다. 마치 진짜 친모녀를 보는 것 같았다.
-생각보다 사이가 좋네?
준은 펠로우쉽 통신을 통해 서은설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워낙 많이 싸우다 보니까 정이 들어서 그래.
-집도 좋고, 이정도면 그냥 여기서 살아도 됐을텐데.
-민성오빠가 혼자 고생하는 걸 어떻게 봐.
-오. 저 분이 허락해 준거야?
-아뇨. 몰래 도망쳐 나왔는데.
-너다운 행동이네.
-그게 무슨 소리야? 내가 그렇게 막나가는 사람으로 보여? 나올 때 편지도 쓰고 나왔거든?
-아니. 그게 문제가 아닌 것 같긴 하지만. 어쨌든 그래서 처음 만났을 때 저렇게 화를 낸거야?
-뭐, 그렇지. 거의 5년만에 만난거니까.
“뭐어?”
준은 자신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
“무슨 문제라도...?"
서연경이 입을 열었다.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야. 너 집나온뒤로 한번도 안와본거냐?
-연방까지 오려면 돈이 얼마나 드는지 아는거야? 민성오빠 따라 다니는 것만해도 벅차거든?
-하아... 그러냐. 어쨌든 알겠다. 그래도 지금이라도 와서 다행이다.
-네가 아니었으면 아마도 돌아오는 데 10년은 더 걸렸겠지.
-내가 알카트뢰즈에 있을때라도 좀 다녀오지.
-그때는 빚진거 갚느라고 그럴 정신이 없었어.
서은설이 말을 이어나갔다.
어린나이에 장민성이 연방을 돌아다니면서 동생들을 모으고, 한 곳에 살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선 막대한 돈이 든다. 그 돈을 헌터일로 어떻게든 만들었지만 충분하진 않았고, 그러다보니 상당한 빚을 지게 되었다고 했다.
준을 만난 덕에 금방 회복할 수 있었고, 특히 델타스피릿에 들어온 이후로는 완전히 빚을 청산할 수 있었다고 한다.
전혀 몰랐던 이야기다. -진작 이야기 하지 그랬어? 그냥 내가 다 갚아줄 수 있는 건데.
-나야 그러고 싶었지. 근데 우리 오빠 알잖아. 너한테 신세지는거 엄청 싫어하잖아.
-이미 충분히 신세지고 있는데.
-뭐 내 생각도 그렇긴 한데. 그래도 공짜로 뭔가를 받는 건 싫었던 모양이야. 자존심 하나는 더럽게 세니까.
-하긴. 그 녀석이라면 그럴법도 하지.
아직도 준을 이겨보겠다고 일이 없는 시간에는 수련에 매진하고 있다. 3번 블랙홀 던전의 10대1 시간 비를 이용한 수련은 정말로 혹독해서, 그를 따라하려던 수많은 헌터들이 있었지만 지금에 와서는 단 한명도 남아있는 사람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