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로젝트 델타-499화 (499/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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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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뚜벅뚜벅.

커다란 레이벤 선글라스를 낀 흑인이 테이블로 다가왔다. 키는 거의 2미터에 달했고, 온몸은 근육으로 꽉 차 있는 듯한 느낌이다.

“설마...”

준은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났다.

낯이 익은 사람이다. 한동안 만나지 못했고, 이제는 다시는 만나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고 있던 사람의 모습과, 지금 준의 눈앞에서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사람의 얼굴이 겹쳤다.

“셀럼?”

“아아. 오랜만이다. 준.”

그가 손을 내밀었다. 억세고 단단한, 아주 커다란 손.

준은 떨리는 손으로 그 손을 맞잡았다.

수라드 행성에서 실종되었다고 알려진 셀럼이 전혀 뜻밖의 장소에서 나타난 것이다.

“아는 사람이야?”

서은설이 입을 열었다. 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몸을 돌려 그를 가리켰다.

“예전에 일하던 곳에서 알던 사람이야. 꽤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는데... 설마 이런 곳에서 만날 줄은 몰랐어.”

“셀럼이라고 합니다. 서은설 양 맞으시죠?”

그는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준이 기억하던 셀럼은 좀 더 호탕하고 남자다운 성격의 사람이었다. 그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의 모습이 어색한 것만은 사실이었다.

“일단 앉아서 이야기 하죠. 거기 검은 양복들. 의자 하나만 가져다 줘.”

“내가 가져오지.”

셀럼은 그렇게 말하고는 근처에서 커다란 의자 하나를 끌어왔다. 몸이 워낙 크다보니 일인용 의자에는 앉을 수 없어서 2인용 대형 의자를 가지고 왔다.

준이 입을 열었다.

“헌데 셀럼이 어째서 여기에... 아니. 그보다 먼저 어떻게 된 거에요?? 그동안 연락도 안되고. 전 당신이 죽은 줄로만 알았어요.”

“크게 다르진 않아. 정확히 말하자면 죽었다가 살아났다고 해야겠지.”

“그게 무슨 말이에요?”

“내가 마지막으로 갔던 곳이 어딘지는 기억하지?”

“네. 수라드 행성에서 외도사냥을 나간 거잖아요.”

“거기에서 파란색 외도를 만났어. 일행은 전멸하고, 나도 죽었다고 생각했는데 눈을 떠보니 처음보는 곳에 와 있더군.”

“그게...”

“연방에서 운영하는 외도연구소였어. 정확히 말하면 죽었던 육체를 부활시키는 작업을 하고 있었던거지.”

“자, 잠깐만요. 지금 뭔가 엄청 난 걸 들은 거 같은데.”

준은 당황하며 입을 열었다. 죽었던 사람을 살린다고? 그건 델타에게도 불가능한 일이었다. 심지어 스파일리 행성에 있던 온갖 종류의 과학자들도 그런 시도를 한 사람은 없었다.

100미터짜리 외도를 만드는 녀석도 있었지만, 죽은 사람을 부활시키는 것은 완전히 다른 영역이었다.

“신기해?”

“그야... 죽은 사람을 되살린다니. 그건 마치...”

“좀비같지?”

“좀비보다는 사람같지만요.”

아무리 봐도 지금 셀럼의 모습은 살아있을때와 별 차이가 없었다. 목소리도, 강인한 육체도, 반짝이는 눈동자까지. 완벽하게 살아있는 사람의 모습이었다.

“영화처럼 썩어서 사람을 먹거나 하진 않는다고?”

셀럼이 너스레를 떨며 어깨를 으쓱했다. 그제서야 조금 예전의 모습이 나온 것 같아, 준은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 죽었다가 살아났든, 뭐가 되었든 간에 지금 눈앞에 있는 사람은 과거 자신의 목숨을 살려준것이나 진배없는 바로 그였다.

“하하. 어쨌든 이렇게라도 다시 볼 수 있어서 다행이에요. 좀 놀라긴 했지만요.”

“놀란건 너보단 내가 더하지. 수송선의 애송이 엔지니어가 어느새 연방에까지 유명세를 떨치는 기업가가 되었을 줄이야.”

“기업가라기 보단. 그냥 날백수에 가깝지만요.”

준은 머리를 긁적였다. 셀럼을 만나니 마치 예전의 자신으로 돌아간 듯한 기분이다. 그때의 삶이 행복하지 않았던 것과 별개로, 셀럼과의 기억은 항상 좋은 이야기들로만 가득차 있었다.

그는 준이 유일하게 믿고 의지할 수 있었던 사람이다.

하지만 그래도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애써 미뤄두고 있던 이야기를 준이 먼저 꺼냈다.

“어쨌든 오랜 친구를 만나자고 여기까지 오신 건 아니겠죠?”

“친구라고 여겨주니 고맙군.”

“셀럼은 언제나 제 친구였어요.”

말을 뱉는 입맛이 썼다. 어쨌든 그는 지금 연방의 일원으로 무언가 자신에게 요구를 하기 위해서 찾아온 것이다. 이런 자리가 아니라 다른 곳이었다면 좀 더 순수하게 기뻐할 수 있었을 텐데.

“오랜만의 해후가 이런 식으로 이루어지게 되어서 안타깝긴 한데. 나도 할 일은 해야하니까.”

철컥.

셀럼이 허리춤에서 대형권총을 꺼내어 준의 미간에 겨누었다. 셀럼이 들고 있음에도 커보일 정도다. 저정도면 코끼리도 한방에 죽일 수 있을 화력이 나올 것 같았다.

준의 입장에서는 반응할 시간도 충분했고, 막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가만히 앉아 셀럼의 눈을 바라보기만 할 뿐 별다른 표정의 변화를 보이지 않았다.

“의미를 물어도 될까요?”

“세가지 요구를 할 거야. 첫째. 납치된 요원의 석방. 둘째, 연방에 대한 무조건적인 협조. 셋째, 연방산하 연구기관과의 공조.”

“하나도 들어줄 수 없는 이야기네요.”

“그럼. 어쩔 수 없지.”

셀럼은 방아쇠를 당겼다.

끼릭.

타아앙!

준의 이마에 명중한 탄환이 그대로 튕겨 건물의 천장을 부수었다. 거의 천에 이르는 체력이 날아갔다. 이 정도면 서은설에게는 제법 위협적일 수 있는 데미지였다.

준은 가볍게 눈살을 찌푸렸다. 셀럼의 뒤쪽에 늘어선 검은양복들도 하나같이 그와 비슷한 커다란 권총을 두손으로 쥐고 이쪽을 향해 발사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역시. 죽지 않는 구나.”

“뭐. 그렇게 됐습니다.”

준은 어깨를 으쓱했다. 보고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는 모르겠지만, 일전의 격투에서 있었던 이야기가 벌써 흘러나간 모양이었다.

하지만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놈들은 현재 성상민 회장과 함께 사이좋게 4번던전에 들어가 있는 상태다. 그곳에서는 펠로우쉽 통신을 제외한 어떤 통신수단도 정상적으로 이루어지지 못한다.

“헌데 혹시 일전에 왔던 녀석들... 녹화중이었던 겁니까?”

“실시간으로 영상을 받았지.”

“어떻게요?”

“요즘은 안구이식기술이 잘 발달되어서 말이지. 비밀요원이라면 그 정도는 기본아닌가?”

“거기까진 생각못했어요.”

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셀럼이 자신의 머리에 총을 갈겼지만 그다지 기분이 나쁘거나 하진 않았다. 애초에 죽일 생각이 없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준과 그 주변의 인물들이 총격 몇 방으로는 사망하지 않는다는 정보를 눈으로 확인하는 과정이었던 것이다.

“그럼 내 할 일은 끝이군. 전부 해산.”

셀럼이 그렇게 말하며 손을 휘젓자, 검은양복들이 썰물빠지듯 물러났다. 갑작스러운 상황변화에 어리둥절한 건 준이었다.

사람들이 모두 사라지고 단 네 명만 남은 테이블에서 준이 입을 열었다.

“대체 뭐에요?”

“나는 할 일을 했고, 실패했으니 그 다음은 연방에서 결정할 문제이지.”

“그럼 이 쇼가 다 그거때문이었어요? 위에서 내려온 명령을 수행해야 한다는?”

“그런 셈이지. 연방에 큰 빚을 지고 있는 입장에선 말을 듣지 않을 수 없거든.”

“대체 얼마를 빚진 건데요?”

“목숨빚이라고 하니 돈으로 측정할 수 없을 정도겠지만, 나름 이런저런 계산을 해서 주더라고. 약 7천억 정도라고 하니 내가 죽을때까지 벌어도 갚을 수 없는 돈이지.”

“그거 노예계약아닌가요?”

“그런 것 치곤 적당히 대우해 주는 편이야. 돈이 많이 들어간 실험체라나 뭐라나. 여하튼 빚도 커지니까 나름대로 무기가 되더군.”

셀럼이 웃음을 터뜨리며 입을 열었다. 듣는 입장에서는 어떤 부분이 웃긴지 알수 없었지만, 적어도 그가 여전히 유쾌한 사람이라는 점은 확실했다.

“그럼 오랜만에 회포나 풀겸 해서 술이나 거하게 하자고.”

“일이야기는 안하는 거에요?”

“그 이야기는 끝난 걸로. 어쩌면 다시 찾아오게 될지도 모르겠지만, 오늘은 그냥 이대로 즐기자고.”

“그거도 좋지만, 더 궁금한게 있는데요. 대체 어떻게 살아난 거에요?”

“너도 알잖아? 가는게 있으면 오는게 있어야하겠지.”

“흠... 연방도 제법 머리를 굴리네요. 힘으로 안될 것 같으니까 이런 식으로 회유를 할 생각인 모양이죠?”

“딱히 그럴 생각은 아니었는데. 단지 내가 이야기 해줄 수 있는 건 없다는 것 뿐이야. 내가 과학자도 아니고 나조차도 이해하지 못하는 걸 말할 수는 없잖아.”

“하긴 그것도 그렇겠네요.”

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죽었다가 살아났다고 주장하는 셀럼과 그동안 밀린 대화를 나누었다. 워낙 많은 행성을 다녔고 많은 외도를 사냥했던 경험이 있다보니 서은설과 시미도 그의 이야기를 재미있게 들었다. 지구에 오자마자 여러 트러블이 생긴 탓에 하루도 마음편할 날이 없었는데 오늘은 오랜만에 즐거운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다음날.

셀럼의 말에 의하면 곧 다시 찾아오게 될 거라고 했지만 언제 찾아올 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기 때문에 정해진 일정을 소화하기로 했다. 서은설의 스승님을 만나러 가기로 한 것이다. 현재는 서울이 아니라 조용한 소도시에 자리를 잡고 살고 있다고 했으니 택시를 타고가기 보다는 셔틀을 타고 움직이는 쪽이 빠를 것이었다.

지구는 워낙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는 곳이다 보니 수라드나 란도넬처럼 허가없이 셔틀을 띄울 수 없게 되어 있었다. 그 과정이 상당히 복잡하긴 하지만, 호텔의 도움으로 쉽게 처리할 수 있었다. 아무래도 첫날 있었던 일 때문에 준의 일이라면 즉각적으로 움직이도록 위에서 언질을 받은 모양이었다.

“헌데 셔틀은 언제옵니까?”

착륙장 관리인이 준을 향해 입을 열었다.

가볍게 웃으며 대답했다.

“안 옵니다.”

“네? 안오다뇨? 원래 이시간에 출발하시기로 한거 아닙니까?”

“그런 걱정은 안하셔도 돼요.”

서은설이 입을 열었다. 굳이 이런 걸로 실랑이 할 이유는 없었기에 준은 얼른 셔틀을 꺼내들었다. 갑자기 나타난 20인승 셔틀에 놀란 관리인의 눈이 커졌다.

“이, 이게 무슨...”

“그럼 수고하세요.”

당황한 얼굴의 관리인을 버려두고 얼른 셔틀에 탑승했다. 정신을 차리면 어떻게 한거냐는 둥 질문이 많아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서은설과 시미가 자리에 앉자 곧바로 셔틀을 띄웠다.

“그래서 어디라고 했지?”

“네비 찍어둘게요.”

서은설이 콘솔을 조작해 위치정보를 입력했다. 정확한 좌표가 입력되자 셔틀은 자동으로 날아가기 시작했다.

그사이 준은 셔틀 내부의 대형 디스플레이에 외부전경을 띄웠다.

곧 바로 서울시내의 풍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며칠 정도만 있었을 뿐인데... 이 도시는 정말 엄청나군.”

“아직도 인구가 육백만 가까이 사는 곳이니까요. 그거 알아요? 이 나라 전체 인구가 란도넬 행성의 인구보다 많다는 거요.”

“알긴 한데... 실제로 보고도 믿겨지지가 않을 정도야. 대체 저렇게 좁은데서 어떻게 이 많은 사람들이 사는 건지.”

란도넬의 수도인 프라이어 시티도 인구 100만이 넘는 대도시다. 그곳만 해도 엄청나게 붐비는 곳이라 약간은 답답하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600만이라니. 게다가 수도권을 포함하면 천만을 가뿐히 넘어간다.

“그럼 그많은 사람들은 대체 어디에 사는거야?”

“흠... 대체로 모듈형 아파트에 거주할거에요. 이삽십층 짜리 아파트 보이시죠?”

“아아. 안그래도 신경쓰였어.”

준은 디스플레이 전체를 차지하는 사각형의 멋대가리 없는 건물들을 살펴보았다. 플라스틱에 가까운 강화소재로 만들어진 저 건물들은 짓는데 한달도 걸리지 않는 초저가 건물들이다. 건설비의 상당수는 지대에서 나오고, 시공비도 한달이라는 짧은 시간 덕에 극도로 줄일 수 있어서 인구밀도가 높은 도시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저런 성냥갑 같은 집에서 산다는 것이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냥 조금만 도심을 벗어나도 되잖아. 요즘같은 시대에 출퇴근이 빡세다고 수도권에 산다는 건 말이 안되고.”

“그렇긴 한데. 그래도 복작복작한 맛이 있잖아요.”

“난 이해가 안되지만.”

준은 고개를 저었다. 스팅스의 좁은 엔진실 내에서 먹고 살고 했던 적이 있는 입장에서 일부러 그런 환경에 자신을 밀어넣는 다는 게 도저히 상상이 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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