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로젝트 델타-495화 (495/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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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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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음....”

고소한 냄새에 서은설은 감은 눈을 떴다. 밝은 햇살이 커다란 창을 통해 넓은 침실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전날의 기억이 떠올랐다.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주변을 둘러보니 시미가 창가에 있는 물이 담긴 투명 유리잔 안에서 눈을 감고 광합성을 하고 있었다.

조심스럽게 자리에서 일어나 바닥에 내려섰다.

휘청.

다리에 힘이 풀리며 넘어질 뻔 했다. 그녀는 침대를 지지대 삼아 조심스럽게 거실로 걸어나갔다. 준이 탁자위에 갓 구운 빵과 우유를 준비하고 있었다.

“일어났어?”

준이 미소를 지었다. 햇살에 비친 그의 모습이 이상하게 평소보다 두배는 잘생겨 보였다. 머리가 어떻게 된 걸까.

“호텔서비스?”

“아니. 델타스토어에서 산거야. 요즘 마스터가 빵에 심취하고 있나 보더라고. 파티쉐로 전업할 생각인가.”

“요즘 빵집 아가씨랑 연애중이야. 서른 살 차이라던가?”

“헐... 몰랐는데. 근데 그거 완전 범죄 아닌가...?”

“마스터 요즘 많이 젊어졌는데. 못 본지 오래됐지?”

“그야... 스파일리에 간 뒤로는 못 봤으니까. 그러고보니 란도넬에 갔을 때 인사라도 하고 올걸.”

“서운하면 통화라도 하던가.”

“얼굴보고 이야기 하는 게 낫지. 전화는 무슨. 오히려 화낼걸.”

“마스터라면 그럴만도 하겠네.”

“그나저나 서 있는게 불안해 보이는데 괜찮아?”

“아, 아무것도 아니야. 얼른 먹자.”

“시미는?”

“햇빛을 맛있게 드시고 계시는 중.”

준과 은설은 식사를 마치고 휴식을 취했다. 은설이 적당한 핑계를 대고는 호텔밖으로 나가지 않으려 했기 때문이다. 영문을 모르는 준으로서는 호텔이 마음에 들어서 그런가 할 뿐이었다.

띠리리-

준이 가지고 있는 델타폰에서 신호가 울렸다. 누군가 싶어서 확인해 봤더니 정체를 알 수 없는 곳에서 온 전화였다. 물론 그래봤자 준의 눈을 피할 수는 없다.

-시스템. 이거 어디서 온거야?

-연방 정보부입니다.

호텔로 전화할 줄 알았더니, 곧바로 델타폰으로 연락을 해왔다. 자신들의 정보력을 과시하려는 속셈일 것이다.

전화를 받은 준이 먼저 선수를 쳤다.

“정보부에서 무슨 일이지?”

[...어떻게 아셨습니까?]

“그 말은 내가 하고 싶은데. 이 번호는 아는 사람이 몇 명 없거든.”

처음 델타폰을 만들 때 준의 전화번호는 1번이었다. 하지만 너무 단순한 번호는 잘못걸려오는 전화가 많을 수 있어서 일부러 10자리 숫자로 교체한 상황이다. 게다가 이 번호로 지금 두 개가 개통되어 있었다. 스파일리의 자신과, 지구에 있는 자신이다. 거리에 관계없이 걸리는 델타폰의 특성상 두 군데 동시에 전화가 걸렸을 확률이 있다.

-이거 혼선 되는 거 아니야?

-시스템에서 직접 구분해서 신호를 연결하고 있습니다.

-기준은?

-거리입니다.

-그러면 다행이고.

델타시스템에서 가까운 거리에 있는 델타폰으로 구분해서 연결해준다니 이쪽에서는 편한 일이다. 레벨을 한참 올렸더니 AI의 수준이 엄청나게 올라 있었다. 이쯤되면 인간비서를 아득하게 넘어섰다고 봐도 된다.

[아브락사스 탈취미수사건에 연관되셨다는 정보를 입수했습니다.]

“묻는 말에나 대답하지?”

[연방 정보부에서 모르는 일은 없습니다. 델타스피릿 정도 기업의 대표가 무슨 대단한 지위인양 생각하시는 건 아니겠지요?]

“흐음... 연방에서 이렇게 나오니 확실히 겸손해 지긴 하는 군.”

-내 번호, 어디서 유출 됐는지 알 수 있겠어?

-정보가 부족합니다. 현재로선 추측이 불가능합니다.

‘어쩔 수 없나.’

아무리 델타시스템이라고 해도 모든 것을 알수는 없는 노릇이다. 현재로선, 이라고 말하는 걸로 봐선 또 여지를 남겨놓는 것 같긴 하지만 당장 안되는 것이 집착할 필요는 없다.

[현명하시군요. 이번 아브락사스 사건으로 협조를 요청드리기 위해 전화 드렸습니다.]

“물어볼 게 있으면 내일 호텔로 직접 와.”

[저희 쪽에서 셔틀을 보내겠습니다.]

“그러던지.”

준이 퉁명스럽게 대답하자, 저쪽에서 잠시 대답이 없었다. 연방의 정보부가 협조요청을 하는데 이렇게 비협조적으로 나올거라곤 생각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준의 입장에서는 물에빠진 사람 구해줬더니 보따리 내놓으라는 식이다. 원래 협조할 생각이었지만 이렇게 나오면 기분나빠서라도 입을 다물 수도 있다.

[이 사안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모르시는 모양입니다.]

“연방와 중화제국의 사이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는 건 나도 알아.”

[알면서 이렇게 나온다면 저희로서도 강제적인 방법을 취할 수밖에 없습니다.]

“궁금한데? 마음대로 해봐.”

준은 전화를 끊었다. 마음대로 델타폰으로 전화를 걸어온 것도 마음에 들지 않는데 협박을 하다니.

“무슨 일인데? 전화를 왜 그렇게 받아?”

“아. 연방 정보부. 협조를 해달라네.”

“거절했어?”

“좀 건방지게 나와서.”

“그래도 연방인데...”

서은설의 표정에 근심이 떠올랐다. 겉으로 드러난 규모로만 따져도 델타스피릿은 연방의 발톱의 때만큼도 되지 않는다. 막말로 연합도 연방에는 몇수나 접어줘야 하는 판에 연합의 일개 기업대표가 연방 정보부에 개긴 것이다.

상식적으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연방이든 제국이든 어쩔거야. 전쟁을 하려면 직접 연합까지 오라고 해.”

“우리는 지금 연방에 있는데.”

“무슨 상관이야. 언제든 튈 수 있는데.”

“...하긴 그렇네.”

은설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준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었다. 오랜만에 두 사람이 오붓한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게 욕심이었을 지도 모른다.

그는 어딜 가든 시선을 끌고, 관심을 받는다. 이번에야 말로 순수하게 여행을 위해서 온 것이었을 텐데도, 세계구급 사건에 휘말린 것이다.

은설이 재차 입을 열었다.

“그래도 도울 수 있는 거라면 돕는게 낫지 않을까? 많은 사람들의 안위가 걸린 문제일 텐데.”

“남에게 협박을 해서 얻을 수 있는 안위라면, 없는게 낫지. 어차피 우리나라도 아닌데 내가 상관할 바도 아니야.”

연방은 정말로 여행을 위해 온 것이다. 준이 돕는 것은 어디까지나 선의에 의한 행동이다. 그런 것을 협박이라는 행위로 걷어차버렸으니, 준도 더 이상 상관할 마음이 생기지 않았다.

‘중화제국이랑 싸우던 말던.’

물론 그정도 일로 전쟁이 일어나진 않을 것이다. 대신 정보부가 몇배는 바빠지겠지. 어느쪽이든 신경쓰고 싶지 않았다.

지금은 그저 이 평온한 기분을 즐기고 싶을 뿐이다. 서은설의 머리에서 좋은 향기가 났다. 전날밤의 기억이 떠오르자, 그녀의 모습이 더욱 사랑스럽다.

준이 가볍게 그녀게 입을 맞추었다.

“으음...”

가볍게 시작한 입맞춤이 키스로 변하는 것은 찰나. 두 사람의 혀가 강하게 얽히고 달뜬 숨소리가 울려퍼졌다.

스윽.

준은 자신의 옆구리에 파고드는 손길을 느끼며 식은 땀을 흘렸다. 시미가 자신의 등에 얼굴을 파묻고는 꼭 끌어안은 것이다.

‘이 녀석 언제...’

아무리 은설과의 키스에 열중했다고 해도 전혀 기척을 느끼지 못했다. 결정도가 높은 것과 기척을 죽이는 것은 별개.

“아...?”

뒤늦게 시미를 발견한 은설이 얼굴을 붉혔다. 시미가 조용히 얼굴을 내밀고는 은설을 향해 입을 열었다.

“새치기 햇어.”

“아, 아니... 그게 아니라.”

“새치기 햇대요.”

“이게 무슨 소리야...?”

영문을 모르는 준으로서는 두 사람의 대화를 이해할 수 없었다. 은설이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시미를 데리고 사라졌다.

졸지에 혼자 남게된 준이 머리를 긁적이고는 델타폰을 펼쳤다. 뭔진 모르겠지만 지금 자신이 끼어들때는 아닌 것 같았다.

‘흠... 그런데 생각해보니 시미 녀석 날 수 있었던 것 같은데...’

본인이 아니라고 했지만, 시미에게는 요정의 날개가 있었다.

‘란도넬 행성에서도 그 능력으로 날아다녔던 것 같은데... 헌데 왜 못 날아다닌다고 했지...?’

잠시 생각하다가 고민을 멈추었다. 시미의 행동을 일일이 생각해봐야 골치가 아픈 건 이쪽이었다.

오랜만에 접속한 델타포럼이었지만 그리 달라진 것은 없었다. 여전히 시덥잖은 일로 싸우고 있었다. 그중에 눈에 띄는 것은 준 자신의 목격담이었다.

-주인장이 지구에 있다는데?

-그럼 여기 있는 주인장은 누구야?

-글쎄. 인증샷까지 올라왔는데 믿어야 하지 않을까?

-동시에 지구하고 스파일리 행성을 왔다갔다 한다고? 그게 말이나 됨?

-주인장 순간이동 같은거 하지 않음? 나 그런 얘기 어디서 들은 적 있는 것 같은데.

-주인장이라면 가능할지도 모르지. 인간이 아니잖아.

-솔직히 인간은 맞지. 애도 있잖아.

-그 애도 인간이 아니라고 합니다. 고도로 정밀하게 만든 안드로이드라는 소문이 있어.

-배스커빌 중학교에 입학했다는데. 까놓고 말해서 주인장 얼굴에 중학생 딸이 말이 되냐?

-혼란하다! 혼란해!

역시나 준의 떡밥은 항상 월척이었다. 순식간에 수십개의 댓글들이 실시간 채팅 처럼 달리고 있었다. 자기 이야기를 하는 걸 싫어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준은 가볍게 눈팅을 하면서 댓글을 달았다.

=델타스피릿 대표다. 월에 1억 번다. 궁금한 거 있으면 물어봐.

-어. 진짜다. 근데 1억밖에 못범? 한 몇 천억 벌어야 하는거 아님? 매출 장난 아니던데.

=1억맞음.

물론 경험치를 말하는 거지만.

=그나저나 델타스피릿 주식회사도 아니라서 기업공개 안하는데 매출은 어떻게 알음? 너 직원이지? 죽을래? 내부정보 떠들고 다니면 잘라버린다?

-죄송합니다... 팬이에요. 사장님. 사랑합니다!

신원을 까볼까 하다가 귀여워서 봐주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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