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로젝트 델타-492화 (492/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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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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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연합에서 왔습니다.”

준이 입을 열었다.

“여행오셨나보네요. 요즘 그쪽에 전쟁이 있었다고 들었는데.”

“얼마전에 끝났습니다. 대다수 사람들은 상관없는 일이라 뭐 일상생활에는 거의 지장이 없었죠.”

함대전이 주류인 현대의 전쟁에서 일반 시민이 직접적인 피해를 입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봐야했다. 설령 함대전에서 승리한다고 해도, 각 행성을 점령하기 위해 지상군을 내려보내는 일은 엄청난 위험을 동반해야 했고, 때문에 승리를 가지고 온 다음에는 적당히 협상을 통해서 유리한 결과를 이끌어 내는 선에서 끝내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하긴 그렇죠. 옛날에는 전쟁 한번 나면 민간인들이 수십만명씩 죽어나갔다는데 말입니다... 확실히 살기 좋은 세상이 되었어요.”

택시기사는 적당히 만족스러운 얼굴로 입을 열었다. 일자리를 가지고 있는 이상 이 나라에서는 중산층이라고 할 수 있었다.

“참 어디로 가면 될까요?”

“스타로드 호텔로 가주세요.”

“스타로드요?”

택시기사가 깜짝 놀란 표정으로 준을 돌아보았다. 스타로드는 세계적인 호텔체인업체였다. 원탑이었던 힐튼호텔이 쇠락한 이후, 수십년 간이나 최고의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 명성만큼이나 가격도 어마어마했다. 특히 VVIP룸은 하룻밤에 천만원이 넘는 엄청난 숙박료를 책정하고 있었다.

“뭐가 잘못되기라도 했습니까?”

“아, 아닙니다. 그런데 가실 분으로는 안보이셔서...”

혼잣말 처럼 말하긴 했지만 시미를 포함 세사람 모두 똑똑히 들을 수 있었다. 서은설이 픽 하고 웃었다.

“그러게 평소에 옷 좀 잘 입고 다니라니까.”

“너는 왜 빼냐.”

“그러고보니 그러네. 아저씨. 제가 그렇게 없어보여요?”

“아, 아닙니다. 두 분다 상류층으로 보이십니다.”

“에이. 너무 띄우셨다. 솔직히 그건 아닌데.”

준이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나 서은설이나 둘 다 패션감각은 제로였다. 애초에 성장환경 자체가 그런 것과 거리가 멀었다.

택시기사는 허허 웃으며 입을 열었다.

“어휴. 아닙니다. 제 눈이 귀인을 못알아 본거지요. 헌데 우리나라에는 처음 오시는 겁니까?”

“저는 처음이고 이 친구는 어릴적에 여기 살았다고 해서 여행겸 온겁니다.”

“그러세요? 어디셨는데요?”

“마포구쪽 고아원이요. 지금은 다 사라진걸로 알고 있어요.”

“그러시군요. 오신김에 관광코스를 좀 알려드릴까요?”

“어디 좋은데 있나요?”

“최근 개성쪽에 대형 테마파크를 조성하고 있습니다. 연방에서도 손꼽히는 규모라고 하니 시간나시면 들러보시는 것도 좋을 겁니다.”

스타로드 호텔에서 내린 준과 서은설은 커다란 회전문이 있는 입구로 다가갔다. 그러자 그 옆에 서 있던 경비원이 황급히 준을 제지했다.

“잠시만요. 혹시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말투는 정중했지만 미묘하게 상대를 무시하는 태도가 있었다. 10대 후반으로 보이는 준은 아무리 봐도 이런 고급호텔에 출입할 사람으로 보이지 않았다. 그건 서은설도 마찬가지였다. 그녀 역시 큰 돈을 벌고있긴 하지만 내내 알바트로스에서 지내느라 제대로 사치를 해본적이 없었고, 옷도 10만원을 넘어가는 걸 입어본적이 없었다.

일이 없는 날은 엘라를 돌보느라 그런 것에 신경쓸 여력이 없었다.

“호텔에 자러 왔지 뭐하러 왔겠습니까?”

“죄송합니다만... 신분증이나 여권을 좀 보여주실 수 있겠습니까?”

“지금 사람을 뭘로보고 그런 소리를 하는거에요?”

결국 서은설이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택시에서야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지만, 손님을 접객하는 호텔에서조차 이런 대우를 받으니 기분이 나빠질 수밖에 없었다.

다른 곳이라면 모를까, 특히 고향이었기에 더욱 화가나는 것이다.

“아시다시피 저희 호텔에는 아무나 들일 수 없게 되어있는지라. 무례인 줄은 압니다만 협조를 부탁드리겠습니다.”

“아무나라고요?”

“참아. 그냥 신분증 보여주면 그만이지 뭘 그래.”

준은 그렇게 말하며 허공에 손을 쑥 넣었다. 갑작스런 준의 행동에 놀란 경비원이 뒤로 주춤 물러섰다. 그의 눈에는 준의 손이 순간적으로 사라진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었다.

“무, 무슨...”

턱.

“신분증입니다. 확인해보시고 이상없으면 들어가도 되지요?”

“아... 자, 잠시만요.”

그는 황급히 준의 여권을 확인했다. 연합에서 발권된 생년월일과 이름, 사진이 붙어 있었다. 하지만 그것 뿐이었다.

경비원은 자신의 기억 속에서 준 알스버그라는 이름이 있는지 찾아보았다. 아무래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연합에서는 준의 이름이 제법 유명했지만 아직 연방, 특히 지구에서는 널리 알려지지 않은 때문이었다.

이런 경우는 어쩔 수 없이 본인이 스스로 판단할 수밖에 없었다. 그가 보기에 두 사람은 그저 평범한 학생커플이었다. 국내의 고위급 인사들이 가득한 호텔 내부에 들이기에 적당한 인물은 아니었다.

“죄송합니다만... 출입은 힘들 것 같습니다.”

“뭐라고요?”

서은설의 목소리가 커졌다. 준도 이쯤되니 그녀를 말릴 명분이 없어졌다. 그의 입장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또 당하는 입장에서는 화가 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여기 책임자가 누구에요? 당장 나오라고 해요.”

“적당히 하십시오. 소란을 피우시면 저희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습니다.”

“적당히 하라고? 지금 누구한테 적당히 하라는 거야?”

준도 한동안 잊고 있던 사실이 있었다. 서은설은 원래 하고싶은 대로 하지 않으면 직성이 풀리지 않는 성격이었다.

콰르르!

그녀의 몸에서 불꽃이 피어올랐다. 그녀가 마법사라는 사실을 깨달은 경비원은 깜짝 놀라며 지원을 불렀다.

“테러리스트다! 라운지 입구쪽 지원바람!”

“누가 테러리스트라고...?”

가만 뒀다가는 진짜 테러리스트가 될 것 같았다.

준이 한숨을 내쉬며 가만히 그녀의 어깨를 토닥였다.

“좀 참아라. 이 사람들이라고 뭐 일부러 그러겠냐. 거지같이 입고 온 우리도 잘못이지.”

‘거지같은’에 약간 액센트가 들어있긴 했지만, 준의 말도 일리가 있음을 깨달은 서은설이 가까스로 성질을 죽이고 불을 꺼뜨렸다.

우르르!

하지만 이미 두 사람의 주위에 십수명의 경비원들이 몰려있는 상태였다. 고급호텔인 만큼 평범한 인물들은 아니었다. 탄탄한 체격에 검을 대신하는 제압봉을 들고 있었다. 그들에게서 느껴지는 기운으로 보아선 헌터출신임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대놓고 사고를 쳤으니 각오는 되어있겠지?”

경비 책임자로 보이는 인물이 한발 앞으로 나섰다. 준은 서은설을 안은 채로 나머지 한 손으로 허공에서 카드를 한장 꺼내들었다.

인벤토리에 넣어두었던 유니버셜 갤럭시 카드였다. 갤럭시 증권에서 최상위층의 몇몇에게만 발급하는 카드였다. 일전에 갤럭시 인더스트리와 협약을 맺을때 선물로 받은 것이기도 했다.

“이, 이건...?”

아무리 준을 모른다고 해도 유니버셜 카드를 모를 수는 없었다. 경비 책임자가 갑자기 꼿꼿하게 자세를 세우더니 공손한 태도로 허리를 숙였다.

“무례를 저지른 점 사과드립니다.”

“이 친구에게 확실히 사과를 해주시겠습니까?”

“귀한 손님을 저희가 알아보지 못한 점 재차 사과드립니다. 어떤 변명으로도 할말이 없음을 알고 있습니다. 원하시는 것이 있다면 무엇이든지 들어드리겠습니다.”

“흥. 됐어요.”

서은설도 그쯤이면 됐다고 생각했다. 마음같아서는 방금 전 무례를 범한 경비원을 무릎꿇리고는 밟아주고 싶었지만, 자기 할일을 충실하게 한 사람에게 그런 심한 모욕을 주고 싶지는 않았다. 자신도 준의 옆에 있으니 대접받는 것이지 델타스피릿으로 돌아가면 가면 일개 오퍼레이터일 뿐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고 있었다.

준이 입을 열었다.

“방하나 잡아주세요. 예약안했는데 괜찮죠?”

“VVIP를 위한 방은 항상 비어있습니다.”

준이 누군지 모르지만, 유니버셜 카드는 확실한 신원보증이다. 그는 준을 라운지로 안내하고는 얼른 데스크로 뛰어들어갔다.

서은설이 가볍게 한숨을 쉬고는 입을 열었다.

“고마워. 날 말려줘서. 꼴사나웠지?”

“아니. 내 생각하느라 그런거 알아. 좋은 모습만 보여주고 싶었을텐데.”

“...너 제법 능숙해졌잖아?”

“루나에게 배웠지.”

“언니에게 절이라도 해야겠네. 그 눈치 없던 준이 이렇게 변하다니 말이야.”

“사람은 변하는 법이라고.”

“시미도 변하고 있어요!”

준의 앞주머니에서 뛰어내린 시미가 테이블 위에서 한바퀴 빙글 돌았다. 확실히 뭔가 변하긴 했다.

“머리가 길어졌구나.”

“땡. 가슴이 커졌는데요.”

“미안. 너무 작아서 잘 모르겠어.”

“우웃!”

시미가 볼을 부풀리고는 고개를 돌렸다. 나름대로 뭔가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던 모양이다. 서은설이 그런 시미의 머리를 손가락으로 가볍게 쓰다듬었다. 어디에 있더라도 그녀의 밝은 에너지는 사람을 기분 좋게 한다.

하지만 그것이 그녀의 모든 부분이 아니라는 것을 그녀는 안다.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는 시미의 일방적인 마음이 준에게 닿는 것은 언제일까.

“실례합니다만...”

그때 예의 경비책임자가 다가왔다. 그는 약간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준에게 유니버셜 카드를 돌려주었다.

“카드가 정지상태입니다.”

“아... 성상민 회장 진짜 쪼잔하네... 그거 좀 싸웠다고 카드정지를 시키다니.”

준이 투덜거렸다. 서은설이 입을 열었다.

“그거야 당연하잖아. 전쟁당사자인데. 그걸 내버려 두는 게 이상하지. 직접 안하더라도 밑에서 알아서 잘랐겠지.”

“그럼 뭘로 신분증명을 하지? 이 사람을 아무리 봐도 날 모르는 거 같은데.”

“너 진짜 안유명하구나.”

“아니. 여기가 이상한거지. 최고급 호텔이라며, 어떻게 내 이름을 모를 수 있지?”

“하긴 그렇긴 하네.”

준이 유난스러운 것이 아니다. 델타스피릿은 연합내 100대기업중 하나인 새크리파이스를 정면대결로 박살낸 경력이 있다. 성상민 회장은 별 반항도 못하고 잡혔다. 그 후유증으로 갤럭시 그룹이 사분오열되어 내전에 빠져있는 상태다.

그정도면 전세계의 정보팀들이 준에 대한 조사를 들어가고도 남았어야 할 일이다.

“아직 말단에까지 네 정보가 안내려왔나보지.”

준의 사진이 풀린 것이 겨우 몇 달 전이다. 그사이 지구의 작은 반도 지역의 호텔에까지 그의 정보가 내려오지 않았을 수도 있다는 생각은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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