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91 ----------------------------------------------
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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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물어볼게 있는데.
-어느 쪽 사장님이십니까?
-지구로 온 쪽이야.
-아. 2번이시군요.
-너도 짝퉁 취급하기냐...?
-그게 아니라 구분하기 편하게 하기위한 나름의 방법이라고 생각해주십시오. 아무래도 헷갈리니까요. 기왕이면 다음번에는 ‘나 2번이다’라고 말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니들이 아주 신이 났구나.
-무슨 그런 말씀을. 전 언제나 사장님을 존경하고 따르고 있습니다.
아무리봐도 놀리는 데 재미들린 것이 틀림없다. 이때가 아니면 언제 그를 놀리겠는가 싶은 모양이다.
-어쨌든 물어볼게 있어서 연락했어. 혹시 최근 중화제국과 러시아연방쪽에서 정보 들어온거 없어?
-글쎄요. 이쪽에서는 너무 멀어서. 연합보다는 연방쪽에 가까운 국가지 않습니까? 둘 다.
-아. 그래. 헌데 이쪽에서 수상쩍은 정황이 포착됐거든.
-설명좀 부탁드리겠습니다.
준은 간단히 아브락사스에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 했다. 자료를 찾는지 뭔지 제임스쪽에서는 한참동안이나 연락이 없었다.
-최근 자원문제 때문에 트러블이 있다고는 합니다. 하지만 그건 늘상 있는 일이라... 그것때문이라고는 확신하지 못하겠군요. 러시아 연방에서 조작한 사건이라는 게 확실한 겁니까?
-아직 몰라. 그냥 그렇지 않을까 하고 생각중이야.
-파티마제국의 석유자원은 위치상 연방을 거쳐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 때문에 중간에 경유지 세금을 떼게 되어있고, 그로 인해 두 국가 모두 불만이 있는 상황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그렇다고 중화제국을 칠건 없잖아. 연방에 항의라도 하던지.
-제 예상입니다만, 델타엔진의 판매량 증가와도 연관이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건 왜?
-델타엔진은 결정체를 이용해서 전력을 수급합니다. 그 효율이 석유에 비해서도 월등히 좋은 편이죠. 거기다가 소형화가 가능해서 전 산업분야에서 사용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러다보니 석유가격이 조금씩 요동치고 있습니다. 완만하지만 계속해서 떨어질 것으로 파악하고 있죠. 파티마 제국측은 이에 대비해서 석유감산을 예정중이라고 합니다.
-이쪽과 별개로, 파티마제국에서는 별 움직임이 없어?
-얼마전에 갤럭시와 붙었다가 깨지지 않았습니까? 그러다보니 당장 큰 움직임은 없습니다. 물론 위기감을 느끼고 있는 것 같긴 합니다. 조만간 도발이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예상은 하고 있습니다. 그에 대한 대비도 철저히 하고 있고요. 하지만 이쪽은 1번 사장님이 계시니 걱정안하셔도 됩니다.
-오냐. 그래 그럼 그것과 이쪽은 무슨 상관이냐?
-석유를 감산하게 되면 결국 파티마 제국과 가장 먼 국가들이 큰 피해를 보게 됩니다. 연방은 여전히 많은 화석연료를 소모하고 있고 대부분은 그쪽에서 소비되니까요. 그러다보니 두 국가에서 석유가격이 최근 상당한 기세로 치솟고 있다고 합니다.
-아. 그래서 연방과 중화제국의 사이를 이간질 하려고 하는 거구나.
-네. 석유공급루트를 차단하게 되면 잉여의 석유를 러시아연방에 팔 수밖에 없으니까요.
그렇게 되면 러시아쪽에서는 손도 안대고 코를 풀 수 있게 되는 셈이죠.
-알았어. 대충 그림이 그려지는 군.
-추측일 뿐이니 더 자세한 것은 직접 알아보셔야 할겁니다.
-나 놀러 온건데.
-놀면서도 일은 하실 수 있습니다.
-남이 노는 걸 못보겠다는 거냐... 어쨌든 알았어. 수고해.
-몸건강히 돌아오시길 바랍니다.
제임스와의 통신을 마친 준은 일단 서은설과 시미가 있는 객실로 돌아갔다. 큰 소요가 있었고, 승객들 가운데서도 부상자가 제법 있었다. 대부분은 대피하던 도중에 깔린 사람들이었다. 사망자가 없는 것이 다행이었다.
객실에 돌아오자 서은설이 입을 열었다.
“어떻게 됐어?”
“일단은 수습했어. 피해는 좀 있지만.”
“그 놈들 정체는 알아냈고?”
“중화제국과 연방, 그러니까 자유총연방(FSLU, the Federated States of Liberty Unions)을 이간질 하려는 러시아쪽 인물들 일 확률이 높아.”
“이유는?”
“아직 확답을 들은 건 아닌데, 최근 자원문제 때문에 좀 다툼이 있는 것 같더라고. 하지만 자세한 건 더 알아봐야지.”
“흠. 알아보게?”
“뭐, 지구에갔다가 러시아도 구경하고 좋지.”
“네 뜻이 그렇다면, 사실 뭐 대단한 걸 보려고 지구에 가는 건 아니니까. 애초에 고아원이 있던 곳은 다른 건물이 들어섰으니까.”
말은 그렇게 해도 가보고 싶긴 할 것이다. 예전의 모습이 모두 사라졌다고 해도, 기억을 더듬다보면 그때의 추억들은 남아 있을테니까.
“시미도 고향에 가보고 싶어요.”
“음. 거기는 지금 당장이라도 갈 수 있긴 한데.”
“쓰지마 그거. 비싸잖아.”
“경험치 10만이라고 생각해. 그럼 좀 나을거야.”
“그러고 보면 1레벨도 못올리는 숫자구나. 생각해보니까 나도 엄청나네.”
11레벨에 필요한 경험치는 15만에서 20만 정도 사이. 이미 그녀도 현금으로 따지면 엄청난 돈을 꿀꺽 한 셈이다.
“시미도 레벨 올려주세요.”
“넌 더 크면 행성파괴급이라서 안 돼.”
“치이.”
퐁.
녀석을 들어서 물컵에 담았다. 불만있던 표정이 금새 행복한 얼굴로 바뀌었다. 이 녀석은 다루는 법이 편해서 좋다. 물속에만 담궈놓으면 알아서 큰다니까. 무슨 콩나물같네.
며칠동안 4번 던전을 찾아가 대장을 괴롭했다. 어차피 죽여도 죽지 않는 곳이라 무슨 짓을 해도 상관없었다. 혼자서는 끝까지 버티기에 다른 부하들을 같이 보내주자, 결국 얼마 버티지 못하고 항복선언을 했다.
밖에서야 며칠이지만 안에서는 보름이 넘게 지난 후였다.
“이름이 뭐라고?”
“러시아연방 특작부대 SVR(해외정보국)소속 이반 클류체프스키 상위다...”
“상위면 어느정도인거야?”
군부대의 계급은 저마다 다르다. 델타스피릿은 따로 계급이 없이 전원 일반병으로 지정되어 있고, 그중에서 직급에 따라 나누어 계급체계가 정해져 있다. 군대조직보다는 일반 기업에 가까운 형태의 부대인 것이다. 쓸데없는 위계질서를 싫어하는 준의 의사가 반영된 결과였다.
하지만 뭐가 되었든 국가의 형태를 띄고 있는 곳은 자신만의 고유한 군조직도를 가지고 있는 것이 기본이었다.
“중위보다 한 계급 높지.”
“아. 현장에서 뛰기 딱 좋은 계급이로군. 헌데 왜 이런 자살작전에 투입된거지?”
“나를 싫어하는 인간들이 몇 떠오르는 군. 네 말이 사실이라면 이번 기회에 날 제거하고 싶었던 거겠지.”
“뭐, 개인사는 관심없고. 너희들은 정말로 아브락사스에 성상민 회장이 있다고 생각했다는 거지?”
“그렇다. 설마하니, 여기에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지.”
“벌써 인사를 한건가?”
“네가 없을 때 몇이 다녀갔다. 여기서 왕노릇을 하더군.”
“그것도 오래 못갈거야.”
행성 엘라에 가면 똑같이 고생하는 건 마찬가지다. 그곳에서 외도와 목숨을 걸어가며 실력을 쌓은 헌터들이 총기를 잃은 군인에게 당할리는 없으니까.
러시아 연방에서 벌인 일이라는 걸 확인했으니, 슬쩍 한번 찔러볼 생각이었다. 그쪽에서 어떻게 나오는지 반응을 보고 어떻게 행동할지 결정할 생각이었다.
국가간의 외교는 민감한 부분이었다. 특히나 대놓고 별인 이런 공작은 자칫 전쟁으로 이어질 공산이있었다. 그런 위험을 감수하고서 까지 석유가 필요했나 싶은 생각을 해보니, 뭔가 다른 이유가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전에.
원래의 목적을 잊어선 안된다.
애초에 지구에 온 목적은 여행이지 복잡한 외교전이 아니었다. 사람이 죽긴 했지만, 군인들은 전부 실종되었고 그들의 정체도 밝혀지지 않았다. 물론 연방에서 가만히 있지는 않을 것이다. 그 때문에 함장에게 연락처를 남겼다. 며칠안에 연락이 올것으로 기대했다.
그동안은 느긋하게 휴가를 보낼 생각이었다.
“후아.”
푸른 하늘이 일행을 반겼다. 지구에 도착해서 궤도엘레베이터를 타고 옛중국의 땅인 북만주 스페이스센터에 내렸다. 거기서 비행기를 타고 도착한 곳이 인천공항이었다. 만들어진지 거의 2백년이 넘는 역사적인 공간이었다.
“진짜 옛날 방식이네. 여기.”
준이 신기한 듯 주변을 둘러보았다. 전체가 콘크리트로 된 거대한 구조물이었다. 준이 만든 숙소보다 몇 배는 더 컸다.
“콘크리트 건물이 어떻게 2백년이나 버틴걸까.”
준이 다시 입을 열었다.
“아. 그런게 아니라 몇 번이고 개축을 한거야. 예전 모습을 본따긴 했지만 많이 달라졌지.”
“그런건가. 왠지 약긴 김이 빠지네. 뭔가 대단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나저나 여기가 갤럭시 인더스트리의 본산이 있는 곳이었지?”
“응. 연합의 양대 축 중 하나인 갤럭시의 모기업이 이 나라 출신이니까. 지금도 갤럭시에는 한국인 혈통을 지닌 사람들이 많아. 성상민 회장이 대표적이지.”
서은설이 대답했다.
“아시안의 순혈주의는 가끔 이해하지 못할때가 있어.”
“그러는 너도 아시안이긴 하잖아. 이름으로 봐선 여기 출신일 확률이 높은데?”
“뭐, 확실하지는 않지만 아마도.”
준의 성은 영어로 썼을 때 ‘JUN'이다. 한국식으로 하면 ’전‘씨가 되는 것이다. 확실하지는 않지만 할아버지가 지구출신이라는 말은 들었던 것 같았다.
애시당초 지구출신이 아닌 인간이 없긴 하겠지만.
하지만 준은 그런 것에 별로 관심이 없었다. 연합인은 대체로 국가에 소속감을 가지지 않는 편이다. 국가보다는 좀 더 작은 집단, 기업이나 가정같은 곳에 집착하는 경우가 많았다. 때문에 소속 기업이 달라지면 아예 외국인 취급을 하는 경우가 많다. 무역연합이 하나의 국가임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자주 분쟁이 일어나는 이유이기도 했다.
공항에서 자기부상열차를 타고 서울로 향했다. 곧바로 고아원을 찾아가거나 하지는 않았다. 어차피 변할만큼 변한 지역이고, 온김에 느긋하게 관광이나 할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택시를 타고 강남의 갤럭시 타워로 향했다. 높이만 250층에 달하는 초고층 빌딩으로 한국에서 가장 높은 빌딩이었다.
“어디서 오셨어요?”
택시기사가 입을 열었다. 무인자동차가 당연한 이 시대에도 절반은 인간이 택시를 운전하고 있었다. 일종의 일자리 정책이었다. 로봇과 AI로 인해 많은 일자리가 사라진 지금도 기본소득제는 운용되지 않았고, 그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길거리에 나섰다.
하지만 그것도 어디까지나 케이스 바이 케이스였다. 연방은 각 국가의 자치를 허용하고 있었고, 프랑스나 서유럽 쪽 국가들은 기본소득제를 잘 운용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즉, 이 나라가 문제인 거지 연방자체의 모순이라고 보긴 힘들었다. 그래도 연합보다는 사정이 나으니 욕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연합은 그야말로 승자독식. 소수의 부자와 대다수의 빈곤층으로 계층분할이 이루어진 상태였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