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83 ----------------------------------------------
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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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긴...”
준이 새로 만든 숙소내부였다. 방안에는 장민성의 것으로 보이는 물건들이 보였고, 창문을 통해 푸른 숲이 보였다. 밖으로 나가는 길에 막스를 만났다.
“어? 너 벌써 왔냐?”
“내가 어디갔는데?”
“무슨 질문이 그래? 방금 전에 테라포밍한다면서 밖에 나갔잖아.”
“흠. 어느쪽으로?”
“저쪽.”
막스가 서쪽을 가리켰다. 준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몸을 띄웠다. 관성제어까지 사용해 허공으로 치솟아 오르자, 멀리 테라포밍중인 대지가 보였다. 그곳에서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는 누군가 있었다. 인정하긴 싫지만 그것이 자신이라는 점을 부정할 수 없었다.
“후. 이거 만나도 되는지 모르겠네.”
자기 자신을 만난다는 건 초유의 경험이다. 지금까지 별의 별 사건을 겪었지만 지금처럼 떨린 적은 없었다. 공포스럽기도, 설레기도 한 이상한 감정이다. 무엇보다도 두 사람이 만나도 괜찮을 걸까 하는 걱정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일단 준은 자기 자신을 마주하기 전에 AI에게 질문을 던졌다.
-내가 지금 저기 있는 나 자신을 만나도 타임패러독스에 걸리지 않을까?
-문제없습니다.
-계산도 안해보는 거야? 즉답이라니.
-계산은 필요없습니다. 타임패러독스는 일어나지 않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확신하는거야?
-우주는 절대로 오류를 일으키지 않습니다. 시간축이 다른 두 존재의 마주침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일이 벌어지더라도 오류는 자연적으로 수정되며 그것이 심대한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는 없습니다.
-무슨 대답이 그래?
-더 복잡한 대답을 원하십니까?
-일단 해봐.
준은 곧 후회했다. 그가 그렇게 대답하자마자 곧바로 수천페이지에 이를 정도의 어마어마한 수학공식들이 좌르를 스크롤 되기 시작한 것이다. 수학에도 어느정도 조예가 있는 준이었지만, 지금 그의 눈앞에서 펼쳐지는 것들은 듣도보도 못한 공식체계까지 사용하고 있었다. 아마도 로오나의 방식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스톱. 됐어. 말로 설명해 주면 안되냐?
-수학만큼 정교한 언어는 없습니다. 일반적인 언어는 엄밀하지 못해 반드시 오류를 일으킵니다.
-알았어. 어쨌든 문제없다는 거지?
-그렇습니다.
-오케이. 그럼 주저할 것 없지.
준은 속도를 내어 자신을 향해 날아갔다. 순식간에 두 사람의 거리가 가까워지고, 준은 테라포밍을 시전하고 있는 자기 자신의 등뒤에 내려앉았다.
“왔어?”
그가 입을 열었다. 준은 당황하며 입을 열었다.
“내가 온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건가?”
“그야. 내가 했으니까. 모를 리가 없잖아.”
“아. 그런거군. 좀 이상하긴 하지만... 네가 미래의 나라는 건가?”
“그런 셈이지. 아. 좀 궁금하긴 하네. 지금의 내가 너에게 돌아가지 말라고 하면 어떻게 될지.”
“돌아가지 말라고?”
“뭐. 나는 지금 이대로 돌아가서 로오나를 잡고 다시 정상시간대로 돌아오는데 성공했거든. 하지만 만약 네가 돌아가지 않고 이대로 이 시간축에 남게 되면 나는 돌아올수가 없게 되는 거잖아.”
“그렇긴 하겠지?”
“헌데 AI는 우주의 질서에는 오류가 없다고 했단 말이야. 그게 좀 이해가 되지 않았거든.”
“그래서 지금 나보고 돌아가지 말라고 권하는 건가?”
“아니. 네가 가지말라고 해서 안갈 놈도 아니고... 누구보다도 널 잘아는 건 나니까.”
그는 재미있다는 듯 입을 열었다. 준은 의아한 듯 입을 열었다.
“나는 이 시간대에서 또다른 내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고서 여기로 들어왔다. 너의 경우에는 어떻게 되었지?”
“없었어. 내가 첫 번째. 그리고 네가 두 번째가 되겠군.”
“그게 말이 되는 건가? 말이 좀 이상하긴 하지만, 넌 내가 여기에 올 것을 미리 알고 있었다. 그렇다는 이야기는 너도 또다른 자신을 만났다는 이야기 아닌가?”
“아니. 안만났어.”
그는 다시 고개를 저었다. 준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아 재차 질문을 던졌다.
“그렇다면 대체 어떻게 된거지?”
“간단해. 기억을 가지고 있거든.”
“기억?”
“그래. 나의 경우는 분명히 나를 만나지 않았어. 내가 도착했을때는 난리가 난 상황이더군. 델타포럼이 멈춘 것 뿐만 아니라 델타시스템에 기반한 모든 것이 올스톱 되어 있는 상태였어. 그야말로 아비규환 상태였지. 그래서 나는 재빨리 과거로 돌아가서 로오나를 잡고 제시간으로 돌아온 거지. 다행히 내가 과거로 갔던 시점에서 돌아왔어. 그래서 너와 이렇게 만나는 약간의 시간차가 생긴거지.”
“기억이 생겼다는 게 무슨 소리냐고.”
“아. 그걸 이야기 안했네. 말 그대로야. 난 분명히 나를 만나지 않았지만, 만났던 기억을 가지고 있는거지. 제 시간대에 돌아온 순간 알겠더군. 아마도 그런 식으로 오류수정을 하는 것 같아.”
“우주가 나서서 도와준다는 말인가?”
“말하자면 그런 것 같긴 한데. 정확한 매커니즘은 아직 모르겠어. 그게 그렇게 이상하게 생각되지가 않거든. 지금 난 한 시간대에 두 개의 시간축이 겹쳐 있는 상황이잖아?”
“그렇지.”
“그게 당연하게 여겨진다는 거야. 기억이라는 건 그렇잖아. 전혀 이상할 것 없지.”
“그런가...”
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한 시간대에 두 곳의 시점을 가지고 있다. 하나는 자신이 없던 현재공간에 나타나 혼란스러워 하는 사람들을 달래고 돌아간 것. 또 하나는 자기자신을 만나 지금처럼 대화를 나누던 기억일 것이다.
그리고 기억이라는 건 그 두가지를 동시에 가지고 있어도 딱히 충돌을 일으키지 않는다.
“내가 뭘 했지 하고 고민할 필요도 없더라고. 두 가지 행동 모두를 한 거니까.”
“재미있군.”
준은 웃음을 흘렸다. 미래의 자신을 만나 대화한다는 게 생각보다 재미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잠시 놀다 가도 될까? 어차피 제 시간대에 돌아가기는 어렵지 않은 것 같으니까. 여기서 한동안 시간을 보내도 될 것 같은데.”
“마음대로 해. 헌데 사람들이 헷갈려 할까봐 걱정인데.”
그가 입을 열었다. 준도 그 점은 걱정이었다. 하지만 뭐 어떠랴 싶었다. 어차피 둘다 자기 자신이고, 지금의 자신이 중요한 명령을 내리지만 않으면 되었다. 두 사람의 자신을 보고 놀라는 사람들을 보는 것도 제법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놀다가 갈게. 사람들에게는 알리는 건 네가 해. 나는 아무런 권한을 행세하지 않을테니까.”
“그건 좀 나중에. 이렇게 재미있는 일을 다 알려버려서야 의미가 없잖아.”
“그건 그렇군.”
“일단 이거나 좀 도와줘. 내가 할 수 있는 건 다할 수 있을테니까.”
“그거야 어렵지 않지.”
준은 그렇게 말하고 테라포밍을 시전했다. 경험치가 빠져나가며 방대한 지역의 사막이 천천히 녹지화 되기 시작했다. 문득 생각났다는 듯 준이 입을 열었다.
“잠깐만. 그러면 경험치는 어떻게 되는거지? 지금 내가 설정해 놓은 대로라면 십일조를 포함해서 온갖 경험치와 결정체들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을텐데.”
“네가 직접 확인해봐.”
그의 말에 준은 인벤토리와 경험치를 확인했다. 경험치와 결정체의 숫자는 과거로 돌아간 시점에서 멈춰있었다.
“아. 나한테는 안들어오는 구나.”
“시간축이 서로 달라서 그런 모양이더라고.”
“그렇군. 좀 아쉽네. 두 배로 경험치를 받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허술해 보여도 법칙이라는 게 정상적으로 작동한다는 거지. 아무것도 없는데 갑자기 경험치가 두배로 뻥튀기되지는 않는다는 거야.”
“타임슬립도 되는데 경험치 뻥튀기가 안되다니...”
준은 피식 웃음을 흘렸다.
“어라? 너 왜 여기에 있는거야? 방금전까지 지상에 있었던 것 같은데?”
준은 셔틀을 타고 알바트로스로 향했다. 그가 이곳에서 잠시 머무르기로 결정한 이후 곧바로 이곳으로 온 것이다.
“지금도 있을걸?”
“무슨 개소리야?”
“봐봐. 궤도영상으로 확인해 보면 되잖아.”
준은 자꾸만 웃음이 새어나오려는 것을 참으며 입을 열었다. 준의 말에 영상을 확인하던 서은설의 눈이 커졌다. 화면을 보고 준을 보고 화면을 본 그녀가 심호흡을 하고는 입을 열었다.
“너 뭐야? 이제는 분신술도 할 줄 아는거야?”
“분신 같은 건 아니야. 그것도 나고, 지금 여기에 있는 것도 나고.”
“이해 좀 시켜줄래?”
“설명하자면 좀 긴데. 네 머리로 이해할 수 있겠어?”
“재수없는 걸 보니까 준이 맞긴 하네.”
서은설이 피식 웃으며 준의 옆에 앉았다.
“자 설명해봐.”
준은 서은설에게 지금까지 있었던 이야기를 설명했다. 가만히 듣던 그녀가 믿을 수 없다는 듯 입을 열었다.
“타임슬립이라니. 뭔가 엄청난 거 같은데. 그거면 과거로 돌아가서 지금까지 후회했던 일을 전부 되돌릴 수도 있는거 아니야?”
“350만년 전으로 돌아가서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네안데르탈인 구경하는 것 정도일까. 딱히 재미는 없을 것 같은데.”
“하긴. 어쨌든 당분간은 여기서 지낼거라는 거지?”
“그럴 생각이야. 어차피 일은 저기에 있는 내가 할거고. 언제든지 돌아갈 수 있으니까.”
“만약 네가 돌아가면 어떻게 되는거야. 저 아래에 있는 네가 이 모든 걸 기억할 수 있을까?”
“당연하지. 잘은 모르겠는데 내가 한 행동들 전부 기억으로 남는다고 하더라고.”
“오호. 그거 신박하네.”
서은설은 그렇게 말하며 싱긋 미소를 지었다.
“그러니까 말인데.”
준은 헛기침을 하고 말을 이었다.
“오랜만에 데이트나 할까?”
“어...?”
서은설의 눈이 커졌다. 진심으로 놀란 표정이었다.
“왜 싫으냐?”
“싫기는. 그보다 너 데이트 신청한거 이번이 처음이라는 거 알아?”
“그랬나? 그래도 가끔 둘이서 놀았던 거 같은데.”
“그건 그냥 어쩌다보니 둘이 있게 된거고. 어쨌든 일단 말했으니 무르기 없기. 근데 내가 여길 비우고 어딜 가긴 좀 그런데.”
“괜찮아. 한동안 별일 없을거고. 오퍼레이터일을 대신 해줄 사람이라면 네 동생도 있잖아.”
“걔 동생 아니거든.”
“창만이랑 동갑이었나?”
“응. 이제 스물 세 살. 그러고 보니 벌써 3년이 넘게 지났네. 그때는 파릇파릇한 스무살이었는데.”
서은설이 회상에 젖어 입을 열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달라진 건 없어.”
“정말? 아직도 파릇파릇한거야?”
“아니. 그 성격말이야. 윽.”
준은 옆구리를 붙잡으며 신음을 흘렸다. 서은설이 입을 열었다.
“그 입이 문제라니까. 그것만 아니었으면 아마도...”
“아마도 뭐?”
“됐어. 그보다 이왕 이렇게 된 거 가보고 싶은 데가 있어.”
“어디?”
“지구에 가보고 싶어.”
“뭐?”
“어릴 때 살았던 고아원이랑... 기왕이면 부모님을 찾고 싶기도 하고.”
“데이트하자고 했더니.”
“네가 나한테만 시간을 낼 수 있는게 이번기회가 아니면 없을 거잖아. 어차피 너랑은 어디에 있어도 좋으... 아니 그렇다 치고 지구에 가는 건 쉽지 않으니까.”
“좋아. 그런데 나도 지구에는 가본적이 없어서 공간이동으로는 못가는데?”
“시간 많다며? 천천히 가지 뭐. 나 지난 2년간 휴가 낸 적이 없으니까 좀 오래 쉬어도 괜찮겠지?”
“그건 저 아래 있는 사장님에게 결재 받아. 내 소관 아니야.”
“죽을래? 너나 쟤나.”
“공식적으로 나는 아무 권한이 없거든. 뭐, 내가 말하면 들어주긴 하겠지만.”
준은 그렇게 말하며 웃음을 흘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