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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젝트 델타-471화 (47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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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일리 행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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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은설 때문에 그러는 거지?”

“어.”

“내가 원래 연애상담은 안하는데 딱 한마디만 할게.”

“뭔데?”

“착한척 하지마.”

“응?”

“상담 끝. 갈길 가자고.”

준과 에피알게나스, 그리고 카렌 팀이 함께 천천히 알렉스턴 연구소를 향해 걸어갔다. 준과 에피알게나스는 바닥에 직접 닿지 않고 허공에 부유한채 움직이고 있었다. 그걸 본 카렌이 부럽다는 듯 입을 열었다.

“그거 대체 어떻게 하는거냐?”

“정신력이 높아지면 염동력이라는 기술이 개방 돼. 사람에 따라서 수치가 다르긴 한데 내 경우에는 40을 찍었을 때 나왔던가?”

“흠. 쓸데없는 스탯이라고 생각하고 힘에만 투자했는데. 하지만 그거 때문에 힘을 포기하긴 아깝군.”

현재 카렌의 힘스탯은 60을 넘어서고 있는 상태였다. 준의 힘 스탯 80에 비하면 그리 높은 수치는 아니었지만, 상급헌터라고 생각해도 상당히 높은 수준인 것은 사실이었다.

“힘 스탯올라가도 스킬 나오지 않아?”

“‘초월’말이야?”

“그래. 체력과 방어력을 올려주는데.”

“맘에 드는 기술이야. 덕분에 두 배는 강해진 것 같아. 언젠가 토르를 만나면 꼭 한판 붙어보고 싶을 정도라고. 이번에는 확실히 이길 수 있을 것 같아.”

“토르도 놀고 있진 않았을 텐데.”

“상급헌터에 오르면 어지간해선 실력이 잘 늘지 않아. 그 이후부터는 재능의 영역이지.”

“애초에 상급헌터에 오르는 것 부터가 엄청난 재능이 필요하지 않아?”

“그 안에서도 또 갈린다는 거지. 세상 참 엿같지?”

“그런 말 할 입장은 아닌거 같은데.”

“원래 가진놈이 더 가지고 싶어하는 거야.”

“뻔뻔하긴 하지만 틀린말은 아니네.”

“하여간 재능빨로 강해지는 놈들 보면 배가아파서 견딜수가 없다니까.”

“그러면서 날 보는 건 뭐냐? 난 애초에 아무재능없다고.”

“흠. 넌 운이 좋은 케이스인가.”

“뭐. 그렇지.”

“그쪽이 더 질이 나쁘다는 생각은 들지만. 애당초 비교가 안되니 뭐.”

함께 다닌지 1년이 넘었지만 카렌은 아직도 준의 모든 능력을 가늠할 수 없었다. 육체적 능력과 기술만을 가지고 싸우는 일대일 대련에서라면 얼마든지 이길 자신이 있지만, 실전이라면 그를 이긴다는 건 불가능했다. 애초에 싸움 자체가 성립되지 않기 때문이었다. 골렘류의 소환물도 있고, 검둥이나 펄 같은 외도를 제외하더라도 니들건과 식스팩, 레일건 등 그가 사용할 수 있는 무기는 무궁무진했다. 어떻게든 접근을 한다고 해도 핵폭탄에서도 버텨내는 실드를 뚫어낸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재능이라면 카심은 어때? 그녀석도 한 재능 하는 것 같은데.”

“아. 그 빨간머리 찌질이?”

“그 녀석 평소에 보면 딱히 훈련을 하는 것 같지가 안더라고.”

“그래. 그런 놈들이 제일 열받지. 그래도 나보단 약하니까 상관없어. 헌데 그 녀석은 이번에 안데리고 온거야?”

“아. 경비대장이잖아. 상급헌터 하나 정도는 남겨두고 와야겠다 싶어서.”

카심의 원래 직책은 비서겸 프라이어빌딩의 경비 책임자였다. 요인의 경호를 위해서는 실력자 하나쯤은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 그에게 프라이어 빌딩을 맡겨 놓고 온 상황이었다.

본인도 멀리 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터라 란도넬에 남는 것에 선뜻 동의했다.

“제법 신뢰가 있는 모양인데? 부인과 딸이 있는 곳에 녀석만 덜렁 남겨 놓고 오다니.”

“성격이 좋은 녀석은 아니지만 또 허튼 짓을 할 녀석은 아니어서.”

“하긴. 실력치곤 간이 작은 녀석이라. 그런 타입은 어지간해선 배신 같은 건 못하지.”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오다보니 어느새 알렉스턴 연구소의 정문에 도착했다. 문은 활짝 열려있었고, 안쪽은 어두컴컴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지금까지 숨구멍으로 들어가다가 문으로 들어가려니 영 기분이 이상하군.”

“기다렸다는 듯이 문이 활짝 열려있잖아. 그러면 당당히 들어가야지.”

카렌이 먼저 걸음을 뗐다. 그녀의 뒤로 10명의 팀원들이 줄줄이 따라서 움직였다. 하나같이 카렌과 함께 십수년을 함께 전투를 치러온 실력있는 헌터들이었다. 개중에는 스카라 몬테인처럼 상급헌터도 있었다.

준은 에피알게나스와 함께 그녀의 뒤를 따랐다.

틱.

카렌을 포함 열명의 팀원들의 어깨에 달려있는 조명등이 빛을 밝혔다. 라이트세이버를 꺼내려던 준은 머쓱한 표정으로 조용히 그녀의 곁에서 함께 움직였다.

“어디로 가야되는 지는 알지?”

카렌의 질문에 준이 맵을 열어 그녀의 맵과 동기화를 시도했다. 카렌이 잠시 눈을 깜박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맵성능은 내게 더 좋을 테니까 지금부터는 내가 안내하지. 나머지는 에피알게나스를 보호해줘.”

“걱정마. 이 예쁜 계집애는 내가 잘 챙겨놨다가 돌려드릴게.”

카렌의 거친 말투에 에피알게나사의 눈썹이 삐죽 솟아올랐지만 화를 내거나 하지는 않았다. 자신이 전투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 다는 사실도, 그런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 제법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는 사실도 알기 때문이었다.

“어머. 제법 인내심이 있는 아이네.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앤 줄 알았는데.”

“모르긴 몰라도 제법 나이가 있을 걸.”

준이 입을 열었다. 에피알게나스의 정확한 나이는 준도 모른다. 하지만 로오나의 기술력과, 그녀가 탈출선단에서 제법 중요한 역할을 맡았다는 걸 생각해보면 아주 어리지는 않을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카렌이 고개를 돌려 에피알게나스를 향해 되물었다.

“비밀이야.”

“별로 궁금하지도 않아 이것아.”

카렌이 에피알게나스의 이마를 가볍게 때렸다. 가볍다고는 하지만 에피알게나스의 몸이 순간적으로 휘청거릴 정도의 타격이었다.

“날 죽일 생각이야?”

“미안. 나도 모르게 본심이 나와버렸네. 너같이 예쁜 것들을 보면 화가나서 말이야.”

카렌은 머쓱한 표정으로 사과했다.

“사과라는 생각이 안들어.”

“뭐, 일일이 따지지 말자고.”

“성격 엄청 나빠. 예절교육은?”

“나는 원래 그런 거 안키워. 내키는 대로 행동하는 게 내 철학이거든.”

“깡패.”

“갑자기 고 나불대는 예쁜 입을 한 대 때려주고 싶어지는데 어떻게 하지?”

“협박은 싫어.”

두 사람은 지구라트의 안이라는 사실조차 잊은 듯 서로 투닥거리며 걸었다. 준은 의외라는 듯 에피알게나스를 쳐다보았다. 평소에 목적이 뚜렷한 대화가 아니면 거의 하지 않는 그녀였다.

“두 사람 의외로 잘 맞는 모양이네.”

“아니야.”

“아니거든!”

“뭐. 어쨌거나. 그래도 조심해 주지 않겠어? 언제 외도가 나타날지도 모르는데.”

“하하. 걱정말라고. 뭐든지 나타나면 내가 다 처리해 줄테니까.”

“그럼 저것부터 처리해줘.”

준이 손가락으로 통로 반대쪽을 가리켰다. 빛이 닿지 않아 아직 어두웠지만 그 안에서 불길한 기운이 퍼져나오고 있었다. 카렌은 눈을 가늘게 뜨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등에 메고 있던 검을 풀었다.

“뭐가 있긴 한 모양이네. 내가 앞장설테니까. 천천히 따라와.”

카렌을 필두로 천천히 움직이자, 곧 복도가 끝나고 넓은 방이 나타났다. 외도들의 크기가 크다보니 녀석들이 제대로 싸우기 위해서는 커다란 공간이 필요했고, 이곳 역시 그런 방들 중 하나로 보였다.

팟!

갑자기 방안이 환하게 밝혀졌다. 순간적으로 터져나온 밝은 빛에 준은 눈을 찡그리며 재빨리 주변을 훑어보았다. 방의 크기는 거의 가로세로 50미터는 될 정도로 넓었다. 넓은 강당 같은 구조였고, 원래 연구소에서도 강당으로 쓰던 용도였던 것 같았다. 그리고 강당 반대편 단상위에 하얀 가운을 입은 한 사람이 이쪽을 바라본 채 서 있었다.

그는 마이크를 통통 두드리고는 입을 열었다. 두꺼운 안경을 쓴 초췌한 인상의 청년이었다.

[아. 아. 들립니까?]

“넌 누구지?”

카렌이 먼저 한걸음 나서서 입을 열었다. 외도를 만날거라고 생각한 곳에서 돌연 인간을 만나니 약간은 당황스러운 듯했다.

[전 알렉스턴 연구소의 수석연구원인 박기원이라고 합니다. 손님이 오셨다는 이야기를 듣고 직접 맞이 하러 나왔습니다. 아무래도 서로 통성명은 해야하지 않겠습니까?]

“닥치고. 용건이 뭐야?”

[그건 우리가 여쭤봐야 할 것 같습니다만. 저희 연구소에 찾아오신 목적이 뭔지 물어도 되겠습니까?]

카렌이 고개를 돌려 준을 바라보았다.

“묻기는 네가 물어놓고 왜 날 쳐다봐.”

“우리가 여기 왜 오는지 이야기를 안해줬잖아.”

“됐어. 내가 이야기 할게.”

준은 고개를 돌려 하얀가운의 사내를 향해 입을 열었다.

“조각 있지?”

[화이트 크리스탈을 말씀하시는 거라면 있습니다만.]

“그래 그거. 내놔. 그럼 돌아가지.”

[아하. 그러니까 일행분들 께서는 저희 연구소에서 보유하고 있는 화이트 크리스탈을 강탈하기 위해서 오신 거로군요.]

“강탈이라고 하면 좀 그렇고. 정중하게 돌려받는다고 하는 쪽이 맞겠군. 그거 원래 내거야.”

‘뭐. 어차피 오리진은 하나였으니 아주 틀린말도 아니지.’

준은 그렇게 생각하며 입을 열었다.

[그렇군요. 원 주인이 찾으러 왔으니 돌려드려야 하는게 맞습니다만. 그냥 줄 수는 없고 약간의 테스트에 도움을 좀 주셨으면 합니다.]

“테스트?”

[그렇게 어려운 것은 아닙니다. 저희 알렉스턴 연구소에서 진행하는 몇가지 연구에 반드시 필요한 일입니다. 일종의 최종테스트라고 할까요? 지금까지는 마땅히 실험을 할 대상이 없었지만 일행분들께서는 충분히 도움이 될 거라는 예감이 드는 군요.]

“뭔데?”

[저희 연구소에서는 외도의 유전자를 분석해서 결합 및 변이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외도에게서 추출한 여분의 엑조틱에너지를 결합할 경우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질것인가에 대한 것이죠. 그러니까 쉽게 말하면...]

“인위적으로 상위의 외도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인가에 대한 거겠지?”

가만히 듣고 있던 에피알게나스가 입을 열었다.

[제법 식견이 있으시군요. 여자란 모두 멍청한 생물일거라고만 생각했습니다만.]

“오호라. 아주 죽고 싶다고 발악을 하는 구만?”

쿵.

카렌이 검끝으로 바닥을 내리 찍으며 으르렁 거렸다. 박기원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사내가 움찔 했지만 이내 침착한 태도로 바뀌었다.

[그럼 곧 실험을 시작할테니 대기해 주십시오.]

“누가 그딴거 기다려 줄 줄 아냐!”

카렌이 허벅지에 감춰둔 단검을 빼어들고는 빠른 속도로 박기원을 향해 던졌다.

쐐애액!

티이잉!

거의 총알처럼 빠른 속도로 날아간 단검이었지만, 곧 그것은 보이지 않는 막에 의해서 튕겨나갔다.

“뭐야?”

[초고강도 합성수지로 만들어진 방어벽입니다. 아무리 상급헌터라고 해도 뚫을 수 없지요. 그럼 테스트 시작하겠습니다. 부디 좋은 결과를 보여주시길.]

키이잉-

박기원은 그렇게 말하고 마이크를 내려놓았다. 순간적으로 엄청난 고음의 하울링이 스피커를 통해 터져나왔다. 하지만 그 하울링 소리는 작아지기는커녕 점점 커져갔다.

‘스피커에서 나는 소리가 아니다?’

그리고 준은 그것이 단순 하울링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키이이잉-

그리고 강당의 바닥이 천천히 열리면서 시커먼 연기가 아래에서부터 피어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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