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69 ----------------------------------------------
스파일리 행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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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거야 나도 알지.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델타폰에서 판매하는 물건들이 선을 넘은 지는 제법 됐잖아. 니들건도 그렇고 이번 크리스탈런처도 그렇고. 화기가 아닐뿐이지 실제 총화기보다 더 화력에 세단 말이지. 이거 규제할려고 마음만 먹으면 칼같이 들어올걸?”
“그렇게 일처리가 빠른 놈들은 아니야.”
“자기네들이 손해보는 일이 생겼을 때 백인회가 얼마나 빨리 움직이는지 몰라서 그래.”
“지금까지는 별 문제 없었잖아.”
“그거야. 아직 큰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해서 그렇지.”
“괜찮아. 어차피 로켓런처는 갤럭시에서도 만들고 있던거니까. 그리고 이번일만 끝나면 백인회에 출두해서 법개정을 요청할거야.”
“총기규제법을?”
“응. 요즘세상에 말도 안되는 법이잖아.”
“그건 연방에서 가만히 있지 않을걸? 애초에 총기규제법은 연방에서 시작된거고, 그걸 다른 국가에서 받아들인 거니까.”
“그래?”
연방이라니. 연합만 생각했던 준으로서는 전혀 생각지 못한 일이었다. 하지만 이 방법을 통해서 벌어들이고 있는 결정체 수익이 상당하기 때문에 준으로서는 절대로 통과시켜야 하는 법이었다. 만약 연방이 끼어들게 되더라도 무슨 방법을 써서라도 총기규제법은 통과시켜야 했다.
그리고 준은 그들이 쉽사리 방해하지 못할거라고 생각했다.
‘녀석들도 크리스탈런처가 필요할 테니까.’
가격이 비싸다는 것만 제외하면 크리스탈런처는 완벽한 무기였다. 심지어 외도를 상대로 일반군대가 사용할 수도 있었다. 니들건과 크리스탈런처로 무장한 군대라면 굳이 헌터의 도움 없이도 외도를 처리할 수 있었다.
아무리 연방이라도 자신들의 국가가 아닌 먼곳에 있는 다른 항성계의 일에서 벌어지는 일을 위해서 자신들의 이익을 포기할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응? 저게뭐지?”
준의 시선에 땅이 움직이는 것이 들어왔다. 마치 파도처럼 대지가 일렁이는 것이 뭔가 땅속으로 움직이는 녀석이 있는 것 같았다.
“조심!”
촤아악!
그때 준이 타고 있는 전차의 앞에서 땅이 불쑥 튀어올랐다. 붉은 가시가 땅속에서 튀어오르며 전차를 공격한 것이다. 전차의 가장 약한 부분인 아랫부분을 정확히 노린 공격이었다.
촤악! 촥!
그리고 기다렸다는 듯이 사방에서 가시가 튀어 올랐다. 땅속으로 기어들어와 공격하는 가시는 전차로는 상대하기가 상당히 까다로운 공격이었다.
콰득!
하부장갑이 한번에 뚫릴 정도는 아니었지만, 몇몇 전차의 궤도가 끊어지면서 기동을 멈추었다. 일단 땅위로 모습을 드러낸 가시들은 그대로 전차를 향해 돌격했는데, 자세히 보니 가시가 아니라 날카로운 뿔을 가진 날렵한 몸체의 외도였다.
“일단 후퇴시켜!”
준이 외치자, 막스가 파티채널을 통해서 명령을 내렸다. 전차들은 명령이 떨어지자 마자 일사분란하게 움직였다. 대부분 신병들이었음에도 명령체계는 잘 작동하고 있었다. 스파일리 행성까지 오면서 빡세게 훈련을 굴린 보람이 있는 모양이었다.
“저건 어떻게 하지?”
피격을 당해 기동력을 잃은 전차를 가리키며 막스가 입을 열었다. 총 다섯 대였는데, 다른 전차들이 일제히 후퇴기동을 하자 가시외도들이 그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어쩌긴. 구해와야지. 포격지시해. 전차가 파괴되어도 상관없어.”
“오케이.”
막스의 지시가 내려지자 전차들이 일제히 레일건의 불을 뿜었다. 조준사격이라고는 하지만 이동하면서 쏘는 포격을 정확하게 맞춘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콰앙!
그리고 레일건 하나가 전차 한대의 옆구리를 치고 지나갔다. 아무리 공격불가 옵션이 걸려있다고 해도, 레일건의 운동량을 생각하면 그 안에 탑승하고 있던 인원들이 걱정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준은 태평한 모습이었다.
“가지고 있는 화력 전부 쏟아부어. 크리스탈런처 나눠준거 있지?”
“알았어.”
출발전에 크리스탈런처를 전차 한 대에 한 기씩 나눠주었다. 가격대가 어마어마한 물건이다 보니 인당 하나씩 지급하기에는 무리였다. 총 150대의 전차에서 발사하는 레일건과, 크리스탈런처에서 뿜어대는 화력이 다섯 대의 전차와 그곳을 향해 몰려들고 있는 가시외도들을 향해 발사되었다.
콰아아아!
엄청난 화력의 빗줄기가 멈춰져 있는 전차들 위로 쏟아져내렸다.
위이잉! 위잉!
덜컥! 덜컥!
“제기랄! 이거 왜 안움직이는 거야!”
위웅비가 핸들을 내리치며 소리질렀다. 가시외도의 공격이 시작되고 나서 갑자기 쇠가갈리는 소리가 나더니 전차가 멈춰버린 것이다. 사방에서 외도가 공격하고 있는 상황에서 해치를 열고 밖으로 나갈 수도 없었다.
“어떻게 하죠?”
장이삼이 당황한 얼굴로 되물었다. 전차에 타고간다고 어린애 처럼 좋아하던게 바로 얼마전이다. 이런 상황에 처할거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것이다. 아무리 지옥같은 훈련을 받았다고 해도 아직 하급헌터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 지금 전차들을 공격하는 녀석들의 결정도를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적어도 이 전차안에 있는 이들을 순식간에 찢어발길 정도의 힘은 가지고 있을 것이다.
“잠깐만. 통신 들어오고 있어.”
위웅비가 파티채널로 들어오는 통신에 귀를 기울였다. 모두가 숨죽인 상태로 그의 입을 바라보았다. 잠시 눈을 감고 있던 위웅비가 무거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다들 최대한 웅크리고 머리 보호해.”
“무슨 상황입니까?”
레일건을 맡고 있던 란테르트가 아래쪽으로 고개를 내밀며 입을 열었다.
“이쪽으로 화력집중한대. 전차는 포기할 생각이야. 죽지 않기를 바라야지.”
“포, 포격을 이쪽으로 날린다고요? 우릴 다 죽일 생각이랍니까?”
“죽지는 않을 거라고 하더라고. 정말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리 그래도 포격에서 버틸 수 있을까요?”
란테르트가 입을 열었다. 모두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공격불가 옵션에 대해서는 그들도 잘 안다. 진검을 들고 목숨을 건 대련을 해본경험이 있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치명적인 상처를 입혀도, 일정 체력 이하로는 절대로 떨어지지 않는다. 그리고 그 상태에서는 애시당초 공격 자체가 먹히질 않는다.
즉, 목이 날아가거나, 심장을 찌르는 등의 치명적인 상처를 입힐 수 없는 것이다. 델타시스템에서 보호를 해주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레일건을 맞고 버틸 수 있을지는...”
장이삼은 잔뜩 겁먹은 얼굴이었다.
“시끄러 임마. 위에서도 생각이 있으니까 하는거겠지. 혹시 모르니까 머리 정도는 알아서 보호하라고.”
“레일건이 날아오는 데 별 의미는 없을 거 같은데요. 그냥 포기하고 상황을 지켜보자고요.”
유관덕이 입을 열었다. 어차피 현 상황에서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콰앙!
바로 옆에서 들리는 폭발음과 함께 전차가 크게 휘청였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꽈앙! 꽝! 콰지직!
“으악! 살려줘!”
“시끄러 임마!”
장이삼이 참지 못하고 해치를 열고 나가려는 걸 란테르트가 억지로 잡아서 눌렀다. 그리고 그자리에 직격으로 레일건이 명중했다.
뻐엉!
위웅비와 일행들이 타고 있던 전차에 커다란 구멍이 뚫리며 내부가 드러났다. 전차가 반파되며 공간확장이 풀렸고, 순식간에 전차가 해체되며 그 안에 있던 일행들이 밖으로 튕겨나왔다.
“크윽...”
순간적으로 일어난 일에 위웅비가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바닥을 뒹굴었다. 가까스로 혼란을 수습하고 고개를 들었을때,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거의 백여발이 넘는 결정체폭탄들이었다.
“이런 젠장!”
콰아아앙!
엄청난 폭발이 일어나며 위웅비와 일행들을 그대로 집어삼켰다.
“휴. 대충 정리 된건가?”
준이 먼지로 자욱한 포격 현장을 보며 입을 열었다. 수십마리에 달하던 가시외도들은 더이상 보이지 않았다. 캐터필러가 고장나 움직이지 못하는 전차를 미끼로 두고, 그곳으로 몰려드는 외도들을 향해 포격을 하는 것은 제법 나쁘지 않은 작전이었다.
한가지 걱정인 것은 그 안에 있던 아군병사들의 상태였는데, 준은 그들이 안전할 거라고 확신했다. 지금껏 델타시스템이 자신을 실망시킨 적이 없기 때문이었다. 공격불가라고 설정되어 있다면, 반드시 제대로 그 시스템이 작동할 거라고 생각했다.
시간이 지나 먼지가 가라앉자, 포격현장의 참혹한 모습이 드러났다. 다섯대의 전차들은 거의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엉망이 되어 있었다. 포신이 녹아내려 엿가락 처럼 휘어진 채로 떡이 되어 주저앉은 것도 있었고, 완전이 폭발하여 산산조각이 난 기체도 있었다.
다섯기 모두 완파되었다. 다행히 근처에 살아서 움직이는 외도도 없었다. 땅에서도 진동이 느껴지지 않는 것으로 보아 살아있는 외도는 없을거라고 생각되었다.
“생존자 확인하라.”
막스가 명령을 내리자 가장 가까이에 있던 전차에서 병사들이 내려 조심스럽게 부서진 전차쪽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곧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존했다는 것을 확인했다.
“32명 중 30명을 찾았대.”
“나머지 두명 은?”
“수색중이야. 아마도 폭발에 휘말려서 멀리 날아간건 아닌가 생각하는 모양인데. 그보다 문제가 좀 있어.”
“뭔데?”
“30명 중에서 여섯명 정도가 부서진 전차에 끼어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어.”
“그건 내가 해결해야겠군.”
준은 곧바로 구조현장으로 향했다. 가까이 다가가서 보니 다들 멀쩡한 상태였다. 전투중이 아닐때는 50퍼센트, 전투중일 때는 100퍼센트로 체력수치를 조정할 수 있기 때문에 현재는 아군에게는 전혀 피해를 입지 않는 상태로 조절 해둔 상태였다.
다만 모두들 정신을 잃은 상태였는데, 체력적으로는 문제가 없어도 사방에서 날아오는 포격의 충격과 열기 등에서 제정신으로 버티기란 힘들었을 것이다.
어차피 훈련중에 수십번은 죽어본 녀석들이었으니 이정도로 정신에 문제가 생기기란 어려운 일이다.
준은 반쯤 녹아내린데다가 무언가에 눌린 것 처럼 압축되버린 전차를 보고는 라이트세이버를 들었다. 어차피 전차에서 사람을 빼내려면 조각조각 해체하는 수밖에 없었다.
서걱.
준이 라이트세이버를 휘두르니 통짜 쇠로 된 전차가 두부처럼 잘려나가기 시작했다.
2번 지구라트는 알렉스턴 연구소 위에 지어진 건축물이었다. 기존의 지구라트와는 달리 인간의 건축물에 추가적으로 여러 구조물이 덧붙여진 형태로 되어 있었는데, 삼각뿔 형태가 아니라 여러개의 건물이 연결되어 거대한 구조물을 이루고 있었다.
다만 새로 덧붙여진 구조물들의 색은 검은 색으로 되어 있어 기존 건물과 확실히 차이가 있었다. 준은 천리안을 거두고는 천천히 전차들을 전진시켰다. 남은 거리는 대략 1킬로 미터. 벌써부터 수만마리의 외도들이 진을 치고 준을 기다리고 있었다.
“먼저 공격해 올줄 알았는데 의외로구만.”
막스가 망원경에서 눈을 떼고는 입을 열었다.
“이 근방의 녀석들은 직접적으로 지구라트의 통제를 받을테니까. 우리가 더 깊숙히 들어오기를 기다리고 있을 거야. 찔끔찔끔 보내서는 상대가 안된다는 걸 알았을테니, 주변의 외도들이 더 모일때까지 기다리고 있는 거겠지.”
“그러면 지금 들어가야 하는 거 아닌가? 괜히 시간을 줬다가 더 많은 놈들을 상대해야 할 수도 있잖아.”
“들어갈 필요가 뭐 있어? 시야를 가리는 것도 없겠다. 그냥 쏴버리면 되지.”
일반 전차의 사거리만 해도 1킬로미터는 가뿐히 넘는다. 하물며 전차에 달린 소형 레일건의 경우는 사거리가 10킬로미터를 가뿐히 넘었다. 문제라면 곡사로 쏠 수 없다는 것 정도지만 지금처럼 시야가 완전히 확보되었을 경우에는 이야기가 달랐다. 굳이 안으로 들어가서 공격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