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로젝트 델타-465화 (465/540)

0465 ----------------------------------------------

스파일리 행성

*

*

*

“검둥이 사고쳤어? 왜?”

시미가 입을 열었다. 검둥이가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그냥 적당히 타이르기만 하려고 했는데, 어쩌다보니.”

“상태보니까 치료비 많이 나오겠던데.”

펄이 재미있다는 듯 웃으며 입을 열었다. 학교에 온 이후로 처음으로 생긴 재미있는 일 이었다.

“어디 맞은 데는 없어?”

엘라가 검둥이의 얼굴을 이리저리 돌려보았다. 검둥이는 그녀가 하는 대로 가만히 내버려 두었다.

“휴. 다친데는 없네.”

“별 걱정을 다한다. 저 녀석이 어디가서 맞을 애야?”

펄이 핀잔을 주자 엘라는 고개를 저었다.

“검둥이는 다치면 안돼. 아빠가 나보고 돌봐달라고 했단 말이야.”

“그 반대겠지.”

“아니거든. 그치 검둥아?”

“학교에서는 그렇게 부르지 말라니까.”

검둥이가 한숨을 쉬며 입을 열었다. 일단 사고는 쳐놨으니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찬찬히 두고봐야 했다. 사실 딱히 걱정이 되지는 않았다. 먼저 시비 건것도 저쪽이니 만큼 어설프게 고소를 할 수도 없을거고 한다고 해도 손해보는 건 저쪽이었다.

검둥이가 블록을 때려눕혔다는 사실이 학교에 퍼지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제임스 패거리가 배스커빌 중학교에서 저지르고 다니는 악행은 제법 유명했고, 녀석들에게 시달리던 아이들이 전부 검둥이의 주위로 몰려들었다. 그리고 그 대부분은 여자아이들이었다.

“저기... 검둥이라고 불러도 돼?”

“안 돼.”

“혹시 번호 좀 알려줄 수 있어?”

“안 돼.”

“나랑 사귈...”

“안 돼.”

엘라는 연신 부러운 눈으로 검둥이를 쳐다봤지만 본인 입장에서는 귀찮기만 할 뿐이었다.

“역시... 이벤트가 있어야 하는 거구나.”

엘라가 눈을 반짝이자 겨우 여학생들을 전부 떼어낸 검둥이가 불길하다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제발. 아무것도 하지마.”

엘라의 행동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심심하다는 이유로 자경단을 만들어서 프라이어 시티의 치안을 끌어올린 것만해도 그랬다. 물론 연합 전체를 뒤흔들고 있는 준에 비해서는 부족했지만, 적어도 그녀가 움직이면 프라이어 시티를 들어다 놓을 수준은 되었다.

“하지만 나도 친구 많이 사귀고 싶은걸.”

“시미도 있고, 펄도 있고, 나도 있잖아.”

“친구는 많을수록 좋은거야.”

“그렇게 많이 사귀어서 뭐하려고.”

“조직을 만들거야.”

“...뭐?”

“보니까 학교내에는 어둠의 조직이 하나씩 있더라고. 나도 하나 만들어서 뒤에서 학교를 조종하는 숨은 보스가 될 생각이야.”

“드라마지?”

“응.”

엘라가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엘라의 계획에는 큰 문제가 있었다. 일단 학생들이 그녀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일부러 잘난척을 하는 타입은 아니지만, 그녀의 지나치게 높은 지능은 다른 아이들이 거리를 두기에 충분했다. 어지간한 언어는 하루만에 일상회화가 가능 할 정도로 마스터하고, 수학의 경우에는 자신이 공식을 만들어서 문제를 풀 레벨인데다가, 암기는 책 한권을 한 번 보고 통째로 외워버리는 수준이었으니 그녀 입장에서는 자신을 제외한 다른 아이들이 금붕어와 비슷한 레벨로 보이는 것이 당연했다.

하지만 그녀는 포기하지 않고, 어둠의 조직을 만들 계획을 차근차근 실행시켜 나갔다. 우선적으로 할 일은 학교내에 조직이 활동할 수 있는 부실을 얻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학교 뒤편에 있는 버려진 창고를 통째로 개조해버렸다. 놀이공원 하나를 통째로 만들어낸 전력이 있는 그녀였다.

그리고 학교 알림판에 조직원을 모집하는 공고를 내걸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배스커빌 중학교에서 흑막에 가담할 세력을 모집합니다. 외계인, 헌터, 외도 대 환영. 관심있는 사람은 구교사 뒤편 창고로 오기바람.

“대체 이런 걸 보고 누가 찾아온다고.”

펄이 전단지를 보며 투덜거렸다. 그들은 현재 창고 지하에 만들어 놓은 대형 사무실에 앉아 시청각 영상을 보고 있었다. 물론 최근 엘라가 즐겨보는 드라마였다.

“애초에 이 발상이 문제라고 생각하지는 않는거냐?”

검둥이가 입을 열었다.

“그건 재미있어 보여서. 수업 땡땡이 치기도 좋고.”

“그러냐.”

“여긴 어둡고 축축해서 마음에 들어.”

시미가 입을 열었다.

“지하니까. 애초에 지하실이라니. 창고에 이런 게 있었나?”

“아니. 내가 만들었는데. 흑막이라면 지하실에 있어야 하는거 아니겠어?”

“의미를 모르겠다. 그래서 무슨 일을 하려는 건데?”

“당연하잖아? 악을 조종하는 거지.”

“대체 어디에 악이 있다는... 모르겠다. 알아서 해라.”

엘라가 하려는 일에 일일이 태클을 걸다가는 이쪽이 먼저 지쳐나가떨어질 것이다. 검둥이는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쉬었다.

그렇게 수업이 끝난 후에 흑막창고에서 세 시간 동안 드라마를 시청했지만 결국 그날은 아무도 지원자가 오지 않았다. 엘라는 아무래도 홍보가 부족하다며 애드벌룬을 띄우자고 건의했지만 다행히 그 건은 기각되었다.

다음날. 블록 건 때문에 한바탕 난리가 날 거라고 생각했지만 의외로 학교측은 매우 조용했다. 학교 내에서 폭력사태가 일어났음에도 조용한 것은 둘 중 하나였다. 제임스가 손을 썼거나, 제임스가 손을 썼거나. 전자는 중학교 2학년 제임스였고, 후자는 델타스피릿의 제임스다.

검둥이가 궁금해 하고 있는데, 질리지도 않는지 제임스가 또다시 다가왔다.

“왜 네가 무사한지 궁금하겠지?”

“솔직히 말하면 조금은.”

“내가 직접 학교에 말했지. 그건 그냥 우연히 블록이 물탱크에 부딪힌 거라고.”

진지하게 그런 말을 믿는 사람이 있다면 교사로서의 자격이 없는 거다. 하지만 제임스와 그의 배경은 그 말도 안되는 이야기를 믿게 만들만한 힘이 있는 모양이었다.

“그렇군. 어째서?”

“네가 마음에 들었다.”

“미안. 난 남자에게 관심이 없어.”

“그건 나도 마찬가지야. 다만 너의 그 힘에 관심이 있는 거지.”

“영광이군. 그래서 나를 블록처럼 네 부하로 쓰겠다는 건가?”

“그정도는 아까워. 블록이 비록 최하급이라고는 해도 또래에서는 상대를 찾을 수 없는 강자야. 그런 녀석을 한방에 날릴 정도의 실력이라면 다른 쓰임새가 있지.”

“뭔데.”

“나와 손잡고 전국제패를 하지 않겠어?”

“...너도 드라마 보냐?”

제임스는 제법 집요했다. 녀석은 검둥이를 이용해서 이름을 드높일 생각인 모양이었다. 하지만 애초에 그런 귀찮은 일을 할 이유가 없었다.

“다시한번 생각해봐. 전국의 일진들 사이에서 유명해 질 수 있는 기회라고. 모두들 네 이름을 떠받을 거야. 여자들이 수백 수천명이 달라붙을거라고.”

“제발 좀 꺼져주라. 귀찮게 굴지말고.”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 다는 말도 모르는 거냐?”

“이럴 때 쓰는 말은 아닌 거 같은데.”

“젠장. 조만간 전국일진대회가 열린 단 말이다. 원래라면 그때 블록이 출전했어야 하는데 네가 때려눕혔으니 책임져 줘야지.”

“...잠깐. 무슨 대회라고?”

검둥이는 잠시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전국일진대회라고. 초등부, 중등부, 고등부, 성인부로 나뉘어서 누가 제일 쎈 가 겨루는 유서깊은 대회인데.”

“진짜 이 동네는 밥먹고 할 짓 없는 인간들이 많구나.”

“우습게 보지마. 해마다 사망자가 나오는 위험한 대회라고.”

“그런 바보같은 대회에서 죽는 사람이 나온다고?”

“바보같다니. 작년 성인부 우승자가 이번에 델타스피릿에 들어간 거 몰라?”

“그런인간이 있었나?”

“있어. 볼테르라고. 엄청 강한 형이었지. 참. 나 사인도 있는데 보여줄까?”

“아니. 제발. 그러지마.”

“잠깐. 그거 재미있게 들리는데?”

가만히 듣고 있던 펄이 흥미를 보였다.

“꺼져. 여자는 안받아.”

서걱.

제임스의 앞머리가 무참히 잘려나가며 허공에 흩뿌려졌다. 펄이 귀에 손을 대고 다시 입을 열었다.

“미안. 뭐라고 했어?”

“...나 잠깐 화장실 좀.”

제임스는 그렇게 말하고 황급히 교실을 빠져나갔다. 검둥이가 펄을 향해 입을 열었다.

“쓸데없는 생각하지마. 그리고 엘라에게는 절대로 말하지마.”

“벌써 들었답니다.”

“헉.”

검둥이는 자신의 뒤에서 나타난 엘라를 보며 숨을 들이켰다.

“대체 내가 왜 그런 델 가고싶어한다고 생각한거야?”

“그야. 바보같으니까?”

“애완동물 주제에 밥주는 사람을 모욕하다니.”

“밥은 스위니가 주는데.”

“그 언니한테 밥주라고 하는 사람이 나거든?”

“스위니 월급은 형님이 주는데.”

“아빠는 내꺼거든?”

“애냐.”

“애 맞는데?”

“엘라 승.”

펄이 엘라의 손을 들어주었다. 굉장히 분한 기분이 들었다. 이런 거에 분하다는 것이 더욱 분했다.

“어쨌거나 좋은 정보이긴 해. 드디어 우리가 할 일을 찾은거 같아.”

“뭐가?”

“일진대회라면 나쁜 녀석이 모이는 곳이잖아. 그런 곳에 흑막이 빠질 수는 없지.”

“젠장.”

검둥이가 나지막이 욕설을 내뱉었다. 귀찮은 일이 점점 커져가고 있었다.

스파일리 행성. 성상민 회장과 갤럭시 인더스트리의 일만명에 달하는 사람들을 전부 4번 던전에 밀어넣은 준은 다음 행보를 생각하고 있었다. 일단 목표는 정해진 상태였다. 성상민 회장이 자신을 피해 가려고 했던 곳에 대한 정보를 입수한 것이다.

“알렉스턴 연구소라. 정말 그곳에 로버를 상대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다고 했단 말이지?”

“그렇습니다. 여러명이서 똑같은 말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거짓은 아닌 듯 합니다.”

심문을 담당한 파비안이 입을 열었다. 알카트뢰즈에서도 함께 일했던 적이 있는 인물로 지금은 막스의 수족처럼 움직이는 인물이었다. 배정현이 복귀한 지금은 두 사람이 함께 막스의 개인비서 역할을 하고 있었다.

원래라면 고문이든 뭐든 해서 교차심문을 해야했지만, 워낙 헌터들이 협조적이라 딱히 그런 심문과정이 필요가 없었다. 심문을 하려고 하면 간이며 쓸개까지 빼다줄 듯이 구는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나저나 왜 이렇게 다들 정보를 더 알려주지 못해서 안달인거야? 미안해질 지경이잖아.”

“원래 헌터가 그렇습니다. 사실 좋은 대우를 받는 것 같아 보여도, 회사내부에서는 대부분 배척당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임원들과의 사이가 매우 좋지 않습니다. 상급헌터를 제외하고는 대놓고 무시당한다고 하더군요.”

“보통 사람들이 헌터를 좋아하기 쉽진 않지.”

아무래도 인간이상의 힘을 보여주는 헌터는 보통 사람들에게는 질시의 대상이 되기 쉽다. 사실 헌터총기제한법 같은 것도 이런 부분의 연장선상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헌터를 잠재적인 정부전복세력으로 보는 것이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