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로젝트 델타-463화 (463/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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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일리 행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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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둥이는 한숨을 쉬었다. 교사들은 학생들이 심각하게 수업방해를 하지 않는 이상은 학생들을 건드리지 않는다. 이곳의 학생들은 하나같이 고위공무원이나 대기업의 자녀들이 다니고 있기 때문이었다.

검둥이는 자신을 향해 무서운 눈초리를 보내고 있는 남학생에게서 시선을 거두었다. 딱히 위협도 되지 않는 녀석에게 관심을 두는 것 자체가 낭비였다.

검둥이는 수업에서 관심을 끄고 델타포럼에 접속했다. 어차피 호위역할로 따라온 것이었기 때문에 애초에 공부를 할 생각은 없었다.

델타포럼은 언제나 최신의 화제가 가장 먼저 올라오는 곳이다. 현장에서 취재하는 기자는 없지만 대부분의 델타스피릿 소속 헌터들에 쉬는 시간에 델타포럼에 접속하기 때문이었다. 준이 딱히 정보통제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번 일에 대한 경과가 비교적 상세히 올라온 상태였다.

-갤럭시 인더스트리에서 먼저 주인장에게 미사일을 날렸다는데. 이거 정말임?

-믿을 만한 정보통에 의하면 사실임. 내 지인 중 하나가 지금 델타스피릿 소속 헌터로 들어갔는데 직접 봤다더라. 수폭 서른 기 정도가 떨어졌다는데.

-그런데 어떻게 살아난거야?

-글쎄. 죽었다가 부활했을 수도 있고. 아니면 땅속 깊숙이 들어갔을 수도 있겠지. 아니면 하늘을 날아서 도망쳤을 수도 있고. 공간이동을 했을 수도 있고.

-공간이동 크크크. 차라리 부활했다는 말을 믿겠다.

-주인장이 뭐 말이 되는 짓 하는 거 봤음?

-하긴 주인장.

-하긴 주인장(2)

-어쨌거나 그럼 이제 어떻게 되는 거냐? 새크리파이스 작살낸지 얼마나 됐다고 이번에는 갤럭시야? 무슨 우주정복이라도 하려고 그러는 거야?

-글쎄. 아무리 주인장이라도 갤럭시 그룹 전체와 전쟁을 하지는 못할텐데.

-파인애플 사에 손을 빌리려는 거 아닐까? 그쪽이랑 갤럭시랑 사이가 안좋잖아.

-좋은 방법이긴 한데. 주인장이 원래 남이랑 손잡는거 별로 안좋아하잖아. 게다가 물리적으로 거리가 제법 먼데. 파인애플이랑 갤럭시는 연합내에서도 제법 먼 곳에 위치하고 있거든. 직접적으로 함대를 보내는 게 쉽지는 않을걸.

-저번 전쟁때는 연방에서도 오지 않았음?

-연방이야... 자기네 병력의 극히 일부만 가지고 온 거고. 걔네들은 뭘 해도 됨.

-하긴. 미국이 아직도 건재한 나라니까.

개척시대 이전, 지구는 미국이라는 초강대국이 전 세계를 지배하고 있었다. 당시의 영향력은 아직도 연방에 강하게 남아있어, 미국은 여전히 초강대국의 지위를 유지하고 있었고 거의 모든 최신 기술을 뿜어내는 산실이었다.

그리고 그런 미국이 이끄는 연방은 막대한 예산을 국방에 편성해 수백 개 함대를 전우주에 흩뿌려 놓았다. 그 중 몇 개 함대가 저번 전쟁에 참여한 것이고, 그것만으로도 파티마제국은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인구의 대부분이 지구에 있는 연방은 주 에너지를 화석연료가 아닌 핵융합을 통한 전기에너지로 충당하고 있기 때문에 파티마제국의 견제도 먹히지 않았다. 지구는 인구밀도가 높다보니 첨단 기술을 마음껏 적용할 수 있었다. 궤도엘리베이터는 물론 초고속 자기부상열차가 전 대륙에 걸쳐 깔려있었고, 기후마저 통제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어 홍수나 가뭄같은 재해마저도 과거의 일이 되어 있었다.

-어쨌거나 갤럭시랑 전면전을 벌이면 주인장이야 어떻게든 살아서 도망간다고 해도, 우리는 어떻게 하지? 폭격이라도 맞으면 좆되는 거 아니야?

-그러게 나도 지금 걱정임. 도망친다면 어디로 가는게 좋을까?

-나는 이스카야로 갈려고 생각중임.

-거기 아무것도 없잖아.

-그러니까. 적어도 폭격은 받지 않을거 아냐. 기껏해야 인구 몇 만 도시 하나밖에 없는데. 설령 폭격이 떨어진다고 해도 잠깐 도시 밖으로 도망쳐 있으면 되고.

-거긴 알파시티 외에는 사람이 숨어있을 만한 곳이 없는데. 폭격에 죽기 전에 외도에게 죽을 걸. 네가 어디사는 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너희 동네에 수폭이 떨어지지 않기를 비는게 최선일거다.

-그런가. 하긴 아무리 그래도 민간인 지역에 폭격을 하지는 않겠지.

-나도 같은 생각. 어차피 현대전은 함대함 전투가 끝아님? 플랫폼만 점거하면 끝나는데 굳이 민간인 지역을 건드릴 이유는 없다고 생각한다.

-로버 전투영상 떴다. 보러가기<- 클릭

-오. 정말이냐?

-정말이네. 이거 어디서 싸운거냐?

-옷입은걸로 봐선 갤럭시 애들이 찍은 거 같은데?

검둥이가 델타폰의 소리를 완전히 끄고 영상을 재생하자 대형웜과 싸우는 로버의 모습이 나타났다. 영상 처음부분은 갤럭시 인더스트리의 정복을 입은 헌터들이 있었다. 그들은 모두 한 곳을 쳐다보고 있었는데, 곧 카메라가 돌아가자 로버가 등장해서 대형웜과 전투를 하는 장면이 나타났다. 20미터가 넘는 대형 웜 두 마리와 전투를 벌이고 있었는데 5분이 채 걸리지 않아 두 마리 모두를 제거했다.

-야... 저거 파란색 외도 아니냐?

-에이. 파란색 외도가 이렇게 쉽게 죽겠냐? 난 덩치만 큰 노란색이라고 본다.

-헌데 웜종류는 외도도감에 잘 나와있는 편 아니야? 누가 확인 좀 해봐.

-내가 방금 봤는데 20미터가 넘는 놈들은 파란색이라고 하던데.

-장난 아니네. 파란색 외도를 때려잡는다고...? 저거 저 로봇 대체 얼마나 할까?

-돈으로 살 수 있는 물건은 아닌거 같은데. 연방에도 저런건 없잖아.

그 뒤로는 전부 로버에 대한 이야기로 가득했다. 검둥이는 영상을 보면서 한숨을 쉬었다. 편하게 쉬는 것도 나쁘진 않지만, 이왕이면 준의 곁에서 같이 싸우고 싶었다. 엘라의 안전을 위해서 남겨진 것이긴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여기서 할일이 딱히 없었다. 델타스피릿이 지배하고 있는 란도넬 행성에서 감히 누가 엘라를 납치하려고 하겠는가.

하지만 또 자신이 없다고 생각해보니 남는게 시미와 펄이다. 그 두사람에게 엘라를 맡기는 것도 영 불안한 일이었다. 하나는 세상물정을 모르고, 하나는 내버려두면 무슨 사고를 칠 지 모르는 녀석이다.

‘보모노릇도 지겹구만.’

그나마 기분전환으로 자경단 노릇을 하고 있지만 그것도 최근에는 시들해지고 있었다. 워낙 로봇을 많이 만들어서 뿌려놓은 덕에 치안이 제법 좋아졌기 때문이었다. 커다란 조직들은 아예 눈에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꽁꽁 숨어버렸기 때문에 심심풀이로 하는 자경단으로서는 녀석들을 찍어내기가 어려웠다.

엘라가 학교에 가겠다고 한 것도 아마 자신과 비슷한 이유에서 였을 것이다. 그것도 그렇게 오래갈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녀에게 중학교 수업은 아무런 의미가 없기 때문이었다. 물론 책을 들여다보면서 식은땀을 흘리고 있는 시미와, 아예 스마트패널을 가지고 다니지도 않는 펄은 예외였다.

수업이 끝나고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는 검둥이에게 남학생 들 몇이 다가왔다. 중학생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건장한 신체를 가지고 있는 녀석들이었다. 유전자 조작이라도 한 건 아닐까 싶었다. 새크리파이스가 장악하고 있던 란도넬 행성이라면 부모들이 자식들의 성장을 위해 DNA에 손을 대었을 가능성도 없진 않았다. 불법적으로 그런 일들이 이루어 지고 있다는 것을 들어본 적이 있었다.

“너 이름이 뭐라고 했지?”

“줄리앙.”

검둥이는 이곳에서 본명을 사용했다. 인간시절의 이름은 거의 기억나지도 않았고, 사실 그다지 애착도 없었지만 그래도 검둥이라는 이름을 학적부에 올릴 수는 없는 일이었다.

“옥상으로 따라와.”

“먼저 가 있어. 이거 정리하고 갈테니까.”

“어? 검둥아. 벌써 친구 사귄거야?”

그때 엘라가 그들 사이로 끼어들었다.

“글쎄. 친구가 될지 뭐가 될지는 모르겠는데.”

“당연히 친구지. 우리는 할 이야기가 있으니까 먼저 가봐.”

가장 덩치가 큰 아이가 검둥이의 어깨에 손을 올리면서 엘라를 향해 입을 열었다. 검둥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아직 친구를 하나도 못사귀었는데. 역시 대단하네.”

엘라는 약간 시무룩한 표정으로 돌아섰다. 엘라, 시미, 펄의 삼각편대 사이로 끼어들 남자아이들은 거의 없었고, 여자아이들도 먼저 다가오는 아이들은 없었다. 약 스무명이 공부하는 반에 하나 정도는 먼저 말을 걸 이들도 있을 법했지만, 역시 펄이 문제였다. 엘라에게 접근하려다가 펄의 사나운 눈초리에 자신도 모르게 움츠러드는 것이다.

“말해.”

아무도 없는 학교 옥상에 올라간 검둥이는 자신을 둘러싼 세 명의 아이들을 보며 입을 열었다. 이름도 물어보지 않았다. 굳이 친구가 되고 싶지도 않았고, 적이 될 가치도 없는 이들이라 이름을 아는 것도 무의미했다.

셋 중 리더로 보이는 가장 큰 녀석이 검둥이를 향해 입을 열었다.

“너 그거 귀랑 꼬리 진짜냐?”

“묻고 싶은 게 그거냐?”

“아니. 그건 아닌데. 너무 신경쓰여서.”

“진짜야.”

“한번 잡아당겨봐도 돼?”

“안 돼.”

“새끼가...”

두 번째로 큰 소년이 검둥이의 귀를 향해 손을 뻗었다. 검둥이가 슬쩍 뒤로 물러서자 녀석의 손이 허공을 휘저었다. 발끈하며 달려들려고 하는 소년을 가운데 있던 아이가 저지했다.

“됐어. 코스프레든 뭐든 그건 나중에 알아봐도 돼.”

“쳇. 알았어.”

“그래서 뭐. 물어볼거 있으면 빨리 물어봐.”

“너. 엘라랑 친해보이던데. 혹시 사귀냐?”“아니.”

“잘 됐다. 그러면 혹시 연결 좀 시켜줄 수 있냐? 만약 잘 되면 내가 사례는 확실하게 할게.”

“너 임마. 운좋은거야. 제임스네 집안이 알아주는 기업이라고. 어쩌면 너희집안이 이 녀석 덕분에 필지도 모른다고 알아?”

델타스피릿의 제임스 맥어보이와 이름이 같은 소년은, 팔짱을 낀 자세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버지가 무슨 일 하시는지 모르겠지만 말만해. 너도 보통 집안은 아닐테지만, 우리 아버지가 도와주면 훨씬 더 큰 도움을 받을 수 있을거야.”

제임스의 말에 검둥이가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그래? 그럼 갤럭시 인더스트리와 전쟁 하는데 도움이 좀 되려나?”

“무슨 개소리야?”

제임스는 약간 당황하더니 팔짱을 풀었다.

“아니. 별 거 아니야. 그나저나 엘라라... 미안하지만 안되겠는데?”

“뭐? 남자친구도 아니라며.”

“내 임무가 그 녀석 주변에 이상한 놈들이 얼씬거리지 못하게 하는 거거든.”

“뭐라고?”

검둥이의 태도가 너무 당당했던 탓에 제임스가 잠시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하지만 곧 얼굴을 붉히며 검둥이의 멱살을 쥐었다. 비교적 가벼운 검둥이의 몸이 바닥에서 한뼘이나 떠올랐다.

검둥이는 잠시 고민했다. 상대는 헌터도 아니고, 겨우 중학생일 뿐이었다. 시비를 걸면 화가 나야되는데 그냥 웃기지도 않았으니 딱히 뭘 어떻게 해야겠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흠... 어떻게 해야하나... 때려눕히면 다음부터 귀찮게 안할려나?’

하지만 말을 들어보니 저 녀석도 제법 있는 집 자식이었다. 물론 문제를 일으키면 델타스피릿 측에서 알아서 하겠지만 학교에 간 첫 날부터 루나에게 신경쓰이게 하고 싶지 않았다. 가능하면 이런 문제는 당사자들끼리 조용히 해결하는 편이 나았다.

‘가볍게 훈계해야겠다.’

검둥이는 그렇게 생각하고 제임스를 향해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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