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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일리 행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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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상민 회장의 유서를 얻어내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어차피 죽을 거라고 생각한 그는 이쪽의 요구 중 어떤 것도 듣지 않으려고 한 것이다. 마법을 이용한 정신조작까지 고려했지만, 다행히 성기용이 나섬으로서 해결되었다.
성상민은 준 알스버그에게 수폭을 날렸다. 당시에는 성기용이 스파일리 행성에 없다고 생각해서 내린 결정이었지만 그가 이곳에 있는 이상, 그에 대해서 마음의 빚을 지고 있는 상황이었다.
성기용은 그 점을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기본적으로 성격이 나쁜데다가 남의 약점을 파고드는 데 탁월한 재주가 있는 그는, 친아버지를 상대로 자신의 재능을 펼쳤고 결국 성상민으로 하여금 그가 보유하고 있는 갤럭시 인더스트리의 지분을 자식들에게 공평하게 분배한다는 유서를 남겼다. 물론 유서가 없더라도 그의 죽음이 확인되면 법적으로 자녀들에게 분배되는 재산은 똑같다. 하지만 이 유서가 중요한 것은, 그룹 전체를 지배하는 갤럭시 인더스트리의 지분을 공평하게 나눈다는 데 있었다. 게다가 성상민은 혹시모를 나중을 위해 죽이지 않고 고성이 있는 4번 던전에 둘 생각이었다. 시신없이 사망선고를 빨리 내리기 위해서라도 유언장이 필요했다.
델타스피릿에 의해 납치된 성상민 회장이 오랫동안 돌아오지 않으면 굳이 시체가 없더라도 유언장은 시행된다. 당연히 죽었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이 정상이기 때문이다. 거기다가 유언장까지 있으면 예상보다 빠르게 상속이 이루어질 수도 있었다.
그리고 갤럭시 인더스트리를 지배하는 것이 갤럭시 그룹 전체를 지배하는 것이기 때문에 누구도 그 지분을 양보하지 않으려고 들 것이다. 그리고 만에하나 성찬용에 의해서 빠르게 분위기가 정리될 것을 우려해, 준은 성기용을 본사로 돌려보낼 생각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그다지 가고 싶지 않은데요. 애초에 거기가도 반겨줄 사람도 없고.”
“사람은 만들면 되지. 친구도 있잖아. 볼테르라고 했던가.”
“윽. 그 녀석이 무슨 친구라고.”
“어쨌든 이번은 전과 다를걸? 네 정당한 지분을 주장할 수 있으니까 적어도 예전처럼 무시하지는 못할 거다. 게다가 하급헌터가 되었으니 개인적으로 무시하는 녀석들에게 한방 먹여줄 힘도 있잖아.”
“그렇긴 합니다만. 솔직히 거기가서 자리잡으면 내가 뭔 짓을 할지 모르겠는데요. 아시다시피 전 성격이 그리 좋은 놈이 못됩니다.”
성기용이 입을 열었다. 두 사람 사이의 악연은 딱 한번이었지만 그로 인해 성기용의 인생은 180도 변했다.
긍정적인 변화라고 할 수 있지만 그게 준에게 느끼는 악감정은 여전히 남아있었다.
“내가 원하는 건 갤럭시 그룹 자체를 뒤흔드는 거야. 네가 그 역할을 훌륭하게 해준다면, 나중에 나에게 복수하겠다고 마음먹는다고 해도 별 상관없어.”
“엄청난 자신감이로군요. 만약 제가 갤럭시 그룹을 재건하게 되면 그리 만만한 상대는 아닐텐데요.”
“바보냐. 네가 정말 성상민 회장보다 더 뛰어난 인간이라고 생각한 건 아니겠지?”
화를 낼 법도 한 준의 말이었지만 성기용은 분노를 터뜨리는 대신 웃음을 흘렸다.
“틀린말은 아니군요. 사실 찬용형님을 상대하는 것만으로도 힘들겠지요. 혹시 도망쳐오면 다시 받아줍니까?”
“펠로우쉽 계약을 유지하고 있다면.”
“그거 아무리 봐도 족쇄같다는 느낌이 드는군요.”
“스스로 끊어도 되는 족쇄야. 나는 강요하지 않아.”
“제 정신이 박힌 녀석이라면 계약을 스스로 해지하지는 않을 겁니다. 그리고 이왕 돌려보낼 거면 선물 하나만 주시면 안되겠습니까?”
“뭘?”
“인벤토리 말입니다. 그거 좀 부럽던데. 열칸까지는 사용할 수 있잖습니까.”
“아. 그렇군. 네가 말하지 않아도 그렇게 할 생각이었어.”
“정말입니까?”
“아아. 아마도 펠로우쉽 계약자들 중에서 5레벨을 넘어선 이들에게는 전부 10칸씩 지급될
거야.”
“저만 주는 게 아니었군요.”
“특별 대우를 원하면 레벨을 더 올리라고. 그러면 100칸까지 줄테니까.”
“그정도야 뭐. 상속받는 재산으로 결정체만 모아도 20레벨 정도는 찍을 수 있을 겁니다.”
“그렇게 까지 멍청하지는 않을거라고 생각한다.”
“압니다. 어쨌든 성찬용 형님을 견제하는데 도움을 주실거라고 생각합니다.”
“관련업무는 제임스랑 해. 직통라인을 연결해둘테니까.”
준은 변호사와 함께 성기용의 손에 유언장을 들려 보내었다. 볼테르도 그와 함께 갔는데, 자발적으로 갔다기 보다는 억지로 끌려가는 듯 보였다. 하지만 녀석은 정말로 싫다면 누굴 하나 죽여서라도 가지 않았을 녀석이다.
“이게 맞는 선택일까.”
“현재로선 최선이지.”
준이 입을 열자 곁에 있던 막스가 대답했다. 성상민 회장이 사망했다고 여겨질 경우 갤럭시 인더스트리에서 전 병력을 이끌고 델타스피릿과 전면전을 벌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었다. 그것을 막기 위해서 유언장과 함께 성기용을 보냈다. 그가 제대로 휘저어 준다면 델타스피릿을 향한 공격은 그만큼 지연될 것이다. 정말로 운좋게 녀석이 승계다툼에서 승리한다면 어쩌면 우호관계를 가지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녀석이 뒤통수를 칠 가능성도 없진 않지만, 적어도 펠로우쉽 계약이 맺어져 있는 상황에서는 그걸 가능성이 낮았다.
“일단 란도넬과 이스카야, 그리고 수라드 행성 주변의 감시를 좀 더 강화해야겠어.”
“그래봐야 항성계안으로 워프해 들어오는 것 까지 막지는 못해.”
“조금이라도 일찍 녀석들의 움직임을 파악할수는 있겠지.”
준은 제임스를 통해 전 항성계에 비상경계경보를 내렸다. 적어도 한달 정도는 유지할 생각이었다. 갤럭시의 내부사정은 계속해서 성기용이 보고하겠지만, 그가 모르게 일이 진행 될 수도 있기 떄문이었다.
[현재 스파일리 행성에서 벌어진 전투는 갤럭시 인더스트리와의 분쟁으로 이어지고 있으며 델타스피릿의 준 알스버그 대표는 지배권을 행사하고 있는 세 행성에 비상경계경보를 내렸습니다. 이에 각 행성의 시민들은 불안에 떨고 있으며, 란도넬 행성의 상당수 시민은 델타스피릿의 무리한 확장정책이 이런 사단을 불렀다며 당장 전쟁을 그만 둘 것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엄마. 아빠가 또 사고쳤어.”
TV를 보던 엘라가 입을 열었다. 루나가 그런 엘라의 머리를 쓸어내리며 부드럽게 입을 열었다.
“괜찮아. 제임스님이 있잖니. 그분이 알아서 해주실거야.”
“그렇구나. 그럼 우리는 걱정 안해도 되는거야?”
“적어도 네가 걱정할 일은 일어나지 않을거야.”
말은 그렇게 했지만 걱정이 되는 것이 사실이었다. 새크리파이스와의 전쟁은 어떻게 잘 넘어갔다고 하지만 과연 갤럭시 인더스트리와의 분쟁이 그때처럼 해결 될 것일까? 하지만 지금으로선 준을 믿는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과학자였지 정치가도, 군인도 아니었다.
“얼른 학교나 가. 늦겠다.”
“아. 맞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엘라는 얼른 아래층으로 내려가 시미와 펄을 깨웠다. 그 뒤로 검둥이도 눈을 비비면서 일어났다. 이 네 사람은 이번에 같은 중학교 2학년으로 편입한 상태였다. 이들이 학교에 가게 된 것은 어느날 하이스쿨 드라마를 보던 엘라의 한마디 때문이었다.
“학교갈래.”
그리고 그 떄문에 시미와 펄, 그리고 그들을 호위할 검둥이까지 졸지에 학교로 끌려가게 되었다. 엘라야 더 이상 배울게 없었지만 나머지 세 사람은 거의 공부라곤 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중학생으로 입학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하지만 이곳은 란도넬이고, 돈이면 안되는 것이 없는 도시였다. 세 사람은 프라이어 빌딩에서 제법 가까운 배스커빌 중학교 2학년으로 동시 입학했다. 같은 반으로 배정받은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배스커빌 중학교는 란도넬에서 제법 부유한 집안의 아이들만 입학 가능한 학교였다. 물론 공식적으로 신분제가 없는 사회인만큼 누구든 원하기만 하면 문은 열려있었지만, 등록금 자체가 서민들이 감당하기에 불가능했다.
학교에서는 갑자기 등장한 전입생들의 등장에 관심이 제법 쏠려있었다. 어쨌거나 하나같이 외모가 준수한 편이기 때문이었다. 엘라도 준보다는 루나를 닮았고, 시미도 요정의 피를 물려받은데다가 펄마저도 뭔가 범접할 수 없는 매력을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의외로 가장 인기 있는 것은 검둥이였다. 특히 여학생들에게 인기가 많았는데 그 이유랴는 것이 개를 닮은 귀와 꼬리 때문이었다.
여학생들은 매일 같이 쉬는 시간마다 검둥이를 둘러싸고는 말을 걸었다. 검둥이는 일일이 대응하지는 않았다. 인간여자아이는 그에게 귀찮은 존재일 뿐이었다.
그리고 그런 검둥이를 고깝게 보는 녀석들도 당연히 있었다. 갑자기 나타나서 여자아이들의 관심을 독차지 하는 게 영 보기 싫은 것이다. 게다가 그 녀석이 새로 전입한 여학생들과도 친밀한 관계라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검둥이는 델타폰을 들고 포럼에 접속한 상태였다. 수업시간을 포함해 하루종일 그런 상태였는데, 굳이 수업을 받을 필요를 느끼지 못한 때문이었다. 이제와서 공부라니 스스로 생각해도 웃긴 노릇이었지만 어쨌거나 엘라의 곁에서 떨어지지 말라는 준의 명령이 있었기에 싫더라도 수업은 듣는 편이 나았다. 같은 교실안에 있는 것이 그녀를 보호하기에 가장 편한 것이다.
‘갤럭시 인더스트리와 분쟁이 생겼다면 혹시 모를 납치극이 있을 수도 있고.’
물론 엘라도 완전히 무력하지는 않다. 어느정도는 전투력이 있고, 인벤토리에는 오리지널 프렌이 들어있어서 그녀를 보호해 줄 수도 있다. 하지만 아직 그녀는 어렸고 경험이 적다보니 판단력에도 한계가 있었다. 가장 어른이면서 가장 경험이 많은 자신이 곁에 있어줘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따지고 보면 펄과 시미가 나이가 더 많았지만 그 두 녀석은 성인이라고 보기에는 무리였다.
‘엄청나게 쳐다보는 군. 뭐하러 학교를 나온다고 해서...’
하루종일 엘라와 시미, 그리고 펄을 쳐다보는 시선들이 상당히 많았다. 물론 평범한 중학생이 납치범일리는 없었지만 그래도 신경이 쓰이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리고 그 시선들 중 몇 개는 자신을 향하고 있다는 것도 느꼈다. 결코 호의적이지만은 않은 시선이었다.
‘귀찮다...’
자신의 주위를 둘러싼 여학생들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전혀 관심도 없는 여학생들 때문에 골치아픈 일에 말려들고 싶진 않았던 검둥이가 고개를 책상에 파묻고는 자는 척을 했다. 그의 주변에 모였던 여학생들은 그제서야 어쩔 수 없다는 듯 분분이 흩어졌다.
수업이 시작되기 전까지 엎드려서 자는 척을 하던 검둥이는 얼굴을 쿡쿡 찌르는 강렬한 시선에 슬그머니 눈을 떴다. 교실 뒤쪽의 의자에 앉아 자신을 쳐다보는 남자 아이 하나가 있었다. 중학생 치고 제법 큰 키를 가진 녀석이었다.
검둥이와 눈이 마주친 녀석은 무어라 말을 하는 것처럼 입을 벙긋거렸다. 가만히 그 뜻을 추측하던 검둥이는 피식 웃음을 흘렸다.
‘끝나고 남으라고...?’
아무래도 검둥이가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었다. 애들이라 그런지 또 절대로 마음에 안드는 것은 참지 못한다. 며칠이라도 참았던 게 오히려 신기한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