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로젝트 델타-459화 (459/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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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일리 행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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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사태의 심각성을 모르는 모양이군.’

만약 저 중에서 새크리파이스 출신의 함장이 하나라도 있었다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쳤으리라 확신했다. 물론 저들은 당시의 전투정보를 모두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직접 경험하는 것과 데이터 덩어리로 보는 것은 다르다. 아직도 이길 수 있다고 착각하는 듯한 저 행동이 그렇다. 준이 탑승한 알바트로스를 1개 함대로 파괴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적어도 로버급의 병기라도 나타나지 않는 이상은.’

준은 잠시 그 가능성을 떠올려 보았다. 어쩌면 저들은 로오나의 유적에서 로버를 발견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내 그 가능성을 지웠다. 그 확률이 지나치게 낮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그랬었다면 지구라트에 수폭을 퍼붓는 대신 자신처럼 로버를 투입해 연구자료나 조각을 회수하려 들었을 것이다.

“냉각 완료! 재충전 시작합니다!”

“완료대는 대로 발사해. 브륜스타트를 제외한 나머지.”

“수폭은요?”

“정밀타격이 안되잖아. 성상민 회장은 살려둬야지.”

“알겠습니다.”

서은설이 빠르게 준의 명령을 입력하자 메인 컴퓨터에서 자동으로 목표물을 지정했다. 알바트로스의 주포 로즈마리는 함선 전체를 관통하는 거대한 구조물이었다. 때문에 방향을 조정하기 위해서는 함선 자체의 전진 각도를 틀어야 했다.

알바트로스에 자세제어가 끝나기를 기다린 서은설은 완료메시지가 뜨자마자 발사명령을 입력했다. 그러자 밝은 빛과 함께 최우측의 적함이 또 하나 파괴 되었다. 현시창에 보이는 적함은 8기. 브륜스타트를 제외한 전투함은 7기였다.

적함의 전진을 저지할 수 없었다. 발레리안은 창백하진 표정으로 디스플레이의 떠오른 메시지들을 확인해싸. 3번 구축함 코로나 반파. 7번 전함 템페스트 전파. 9번 전함 아폴로 항행불능... 계속해서 이어지는 피해소식에도 불구하고 적함은 전혀 피해를 입은 모양새가 아니었다.

“대체 뭐냐...”

발레리안은 성상민 회장의 표정을 살폈다. 그의 표정은 딱딱하게 굳은 채로 조금의 미동도 없었다. 하지만 그 역시 자신처럼 동요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성상민 회장이 발레리안의 시선을 느끼고는 입을 열었다.

“이길 수 있는가?”

“불가능합니다. 적의 EX필드를 관통할 수가 없습니다. 게다가 수폭의 타격순간에 보이는 육각형모양의 실드는 처음보는 종류입니다.”

“우리에게도 감추었던 신 기술인가.”

“그러리라고 생각됩니다. 만약 눈으로 보이는 것 처럼 손상이 없다면, 더이상의 전투는 의미가 없습니다.”

“얼마나 나쁜 상황이지?”

“최악입니다.”

디스플레이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던 발레리안은 알바트로스에서 은백색의 작은 물체가 빠져나오는 것을 확인했다. 자세히 분석하지 않아도, 이 자리에 있는 이들은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로버였다.

“정정합니다. 지금이 최악입니다.”

“자리를 지켜주게.”

성상민은 짤막한 명령을 내리고는 함교에서 빠져나갔다. 어차피 성상민이 있어봐야 전투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로버를 이용해 브륜스타트를 점거하려는 적의 의도가 뻔히 보이는 상황에서 가만히 기다리고 있는 것은 바보짓이었다.

“부디 무사하시길.”

발레리안은 그의 뒷모습을 눈에 담고는 다시 전면의 디스플레이로 시선을 돌리며 소리쳤다.

“스트라이더 출격시켜! 전부!”

“스트라이더 출격합니다!”

발레리안의 명령에 브륜스타트에 탑재되어 있던 함재기들이 한꺼번에 빠져나왔다. 전투용 마더쉽이 아니다 보니 함재기의 숫자가 비교적 적긴 했지만 지금은 그거라도 필요했다. 빠른 속도로 움직이는 로버를 양전자포로 맞춘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속도가 느린 수폭으로 맞춘다는 것도 불가능. 결국 함재기에서 발사하는 광학레이저나 원자탄이 아니면 상대할 방법이 사실상 없다고 봐야했다.

쿠웅! 쿵!

진동이 계속해서 울려 퍼졌다. 우주속에서는 스트라이더가 어지러운 궤적을 그리며 로버를 향해 접근했고, 로버도 빠른 속도로 움직였다.

콰앙!

스트라이더들은 별다른 힘을 쓰지 못했다. 하지만 그들의 목적은 로버를 파괴하는 것이 아니다. 오직 성상민 회장의 탈출을 위해 시간을 버는 용도였다.

로버는 함재기들을 따돌리며 브륜스타트로 향했고, 함선의 외부에 달라붙은 로버를 향해 플루토늄이 가득한 원자탄을 날릴 수는 없었다. 그리고 로버가 브륜스타트의 착륙장을 향해 들어가자, 함재기들도 빠르게 그 뒤를 따랐다.

콰앙!

브륜스타트의 함교문이 박살나며 안으로 준 알스버그가 뛰어들었다.

타타탕!

그러자 사방에서 권총탄이 쏟아졌다. 준은 가만히 서서 총격이 멎을 때까지 기다렸다. 실드를 전개한 상태에서 권총탄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혹시 몰라 에피알게나스의 앞을 가로막은 상태였다.

철컥! 철컥!

총탄이 모두 소모되고 준은 천천히 함교안을 둘러보았다. 성상민 회장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준은 가장 직위가 높아보이는 중년의 사내를 향해 입을 열었다.

“성회장은?”

“글쎄. 내가 말 해줄 필요가 있을까?”

“탈출했군. 젠장.”

준은 그제서야 성상민 회장이 함선을 빠져나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하지만 어떻게? 셔틀로 빠져나갔다면 레이더에 잡혔을 것이다.

‘탈출포드인가?’

로버의 스캔에 걸리지 않을 정도로 작은 탈출포드로 도망간 것이 틀림없었다.

준은 브륜스타트의 현시창을 통해 황갈색의 스파일리 행성을 바라보았다. 그곳 어딘가로 성상민 회장이 빠져나갔다. 그를 잡아야 했다. 그를 놓친다면 갤럭시 인더스트리와 델타스피릿은 지루한 장기전을 벌여야 했고 그것은 아직 기반이 취약한 델타스피릿으로서는 최대한 피해야 할일이었다.

탈출포드의 크기는 세로 2미터 가로 1미터. 이정도 크기면 위성보다도 작았고, 지금도 스파일리 행성 주변을 돌아다니는 수천 개의 초소형 소행성 보다도 작았다. 레이더는 그런 소행성들이 보내오는 신호를 제거하기 위해서 일정 이하 크기의 신호는 모두 잡음으로 처리하고 있었다.

준은 일단 브륜스타트의 함교에 있던 인물들을 1번 던전에 밀어넣고는 다시 로버를 타고 우주공간으로 빠져나왔다. 브륜스타트는 생명유지장치만 켜진 상태로도 몇달은 버틸 수 있다. 그 안에 남아있는 승무원들은 나중에 처리할 생각이었다.

“로버. 레이더의 역치를 최대한으로 낮춰.”

[괜찮겠나? 이 일대는 소행성의 이동이 잦은 편이다. 찾기는 힘들텐데.]

“일단 지푸라기라도 잡아봐야지.”

[알겠다.]

로버가 레이더의 민감도를 높이자 3차원 디스플레이를 통해서 수천개의 작은 신호들이 화면을 밝혔다. 예상보다 많은 신호에 준은 미간을 찌푸렸다. 저것들 하나하나가 위성 혹은 초소형 소행성들이었다.

“젠장. 여기는 무슨 지뢰밭인가.”

준은 레이더를 유심히 살폈다. 맨눈으로 성상민 회장의 탈출포드를 찾는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하지만 다행이도 이쪽에는 몇가지 단서가 있다.

‘아무것도 없는 곳에 떨어지려고 하지는 않았을 거야. 궤도를 이탈해서 우주공간으로 간다는 건 더 불가능하고.’

워프드라이브가 없는 탈출포드로 항성계를 탈출한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가장 가까운 행성으로 가는데만도 몇개월은 걸릴 것이다. 그렇다면 결국 탈출로는 스파일리 행성에 착륙하는 것 뿐이다.

게다가 탈출포드의 크기 상 그를 지켜줄 다른 인원이 탑승하는 것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렇다는 이야기는 반드시 갤럭시 인더스트리의 기지 근처로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준은 레이더를 살피며 스파일리의 중력권을 빠져나가는 신호들을 모두 제거했다. 그렇게 하니 대부분의 신호들이 사라지고 남은 것은 수백개. 그중에서 예상 착지 지점 근처에 갤럭시 인더스트리의 기지 100킬로 미터 안쪽으로 설정하니 거의 대부분이 사라지고 10여개의 신호가 남았다.

“이쪽이야.”

준은 그 중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지상으로 돌입하는 신호 하나를 찾았다. 탈출포드인 만큼 저궤도 운동을 하면서 서서히 착륙하지는 않을 것이다.

로버가 빠르게 그 물체를 향해 접근했다. 거리는 대력 3백 킬로미터. 최대한 속도를 낸다면 15분 안에 랑데부 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되었다. 그 시간이만 지상에 도착하기 전에 낚아 챌 수 있었다.

“가자!”

준은 로버의 속도를 높여 신호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전속전진했다. 다행히 스파일리의 중력도 도와주었다. 그렇지 않아도 로버의 속도는 동급의 셔틀에 비해서 훨씬 빠른 편이다. 그런데다가 중력까지 도와주니 평소 속도의 거의 두 배 이상으로 움직일 수 있었다.

콰아아-

조금씩 대기가 있는 곳으로 진입하기 시작하자 로버의 온도가 서서히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옅다고는 해도 초속 수 킬로미터로 날아가고 있는 상황에서의 공기저항은 무시할만한 것이 아니었다. 관성제어도 공기저항만큼은 어떻게 하지 못했다.

“얼마나 남았어?”

준이 에피알게나스를 향해 물었다. 레이더의 세세한 정보를 체크하는 콘솔은 모두 그녀가 앉아 있는 뒤쪽에 몰려있었다. 준의 자리는 가급적 전투에 집중하도록 되어있기 때문이었다.

“1분. 곧 도착.”

“금방인가.”

준은 천리안을 켰다. 레이더에도 잡히긴 하지만, 그 전에 눈으로 확인해 보고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천리안으로는 수백킬로미터 거리에 있는 탈출포드를 확인할 수 없었다.

“로버. 레이더에 잡히는 물체를 확대해 줄 수 있어?”

[이런 속도로 움직이면서는 불가능하다. 대기의 진동 때문에 깨끗한 영상을 얻을 수 없다.]

“떨림방지 기능도 없는 거냐?”

[나는 전투형이다. 그런 기능이 왜필요하지?]

“그건 기본... 아니 됐다. 어차피 곧 도착하니까.”

하지만 준은 곧 낭패감을 느껴야했다. 그의 시야에 보이는 것은 탈출포드가 아니라 불타고 있는 유성 조각이었던 것이다. 2미터짜리 별똥별은 크기가 절반 이하로 줄어들어 쪼개지기 일보직전이었다.

“젠장.”

준은 레이더에 잡힌 신호 중 하나가 급격히 속도를 높여 방향을 바꾸기 시작한 것을 보았다. 탈출포드 안에서도 간단한 조작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생각헤보면 저 움직임은 분명히 자신이 추적할 것을 계산에 넣은 것이다.

“쉽게 잡히지는 않겠다 그건가.”

제 시간에 그를 잡기는 어려워 보였다. 준은 탈출포드가 향하는 곳을 확인했다. 그곳은 갤럭시 인더스트리의 육상병력들이 집결하는 장소였다.

애초에 탈출할 확률이 가장 높은 곳이기도 했다.

“어떻게 할거야?”

“잡아야지. 이제와서 놓칠수는 없잖아.”

“괜찮겠어? 사용된 EP가 백만을 넘었어.”

에피알게나스가 에너지 사용량을 체크하고는 입을 열었다. 일억을 얻은 시점에서 백만이 무슨 대수냐고 하겠지만, 로버에 탑승한지 채 30분도 지나지 않았다는 걸 생각해보면 엄청난 소모였다. 무리하게 가속을 한 때문인 듯 했다.

“어쩔 수 없지. 가진 경험치를 전부 쓰더라도 저 녀석은 잡아야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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