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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일리 행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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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무장의 경우는 두가지 종류가 있었다. 하나는 물질형, 하나는 비 물질형이었다. 특징은 간단했다. 물질형의 경우에는 인벤토리에 넣고 다녀야 했고, 비 물질형의 경우는 라이트세이버처럼 자체적으로 소환했다가 없앴다가를 자유롭게 할 수 있었다. 편의성면으로 따지면 비 물질형의 경우가 압도적으로 높았다. 이경우는 단순히 인벤토리의 공간을 하나더 차지하느냐 그렇지 않느냐가 아니다. 왜냐하면 갑옷을 꺼내어서 입는 다는 불필요한 과정이 필요없이, 입고 있는 상태로 소환이 가능하기 때문이었다.
‘중요한 건 능력치인데...’
무기는 라이트세이버가 있으니 커뮤니티 소드가 필요없었다. 하지만 귀찮다는 이유로 갑옷을 전혀 입지 않는 준에게 소환을 할 수 있는 아머는 제법 쓸모있는 물건이었다.
물론 위급상황에서 실드전개 능력이 있긴 하지만, 몸을 보호하는 가장 원시적인 방법인 갑옷은 맨몸으로 적을 맞이했을 때 여전히 유효한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괜히 카렌이나 막스같은 탱커들이 갑옷을 덕지덕지 입고 다니는 것이 아니다.
‘검이나 방패는 필요없고... 갑옷을 좀 살펴봐야겠군.’
가격은 10만 EP에 달했다. 비물질화 된 갑옷은 그 두 배인 20만 EP였다. 레벨업을 하고도 5천만에 가까운 경험치가 남아있었기에 별달리 부담은 없었다.
비물질형 커뮤니티 아머(A급)
간단한 소환의식을 통해 착용할 수 있는 갑옷입니다. 높은 탄성과 함께 충격을 흡수할 수 있는 합성세틸라이트 소재로 만들어져 있으며 엑조틱에너지를 비롯한 비물리적 공격에도 강인한 내구성을 자랑합니다.
물리력에 대한 방어력이 50퍼센트 상승합니다.
비물리적 현상에 대한 방어도가 50퍼센트 상승합니다.
“어때?”
준은 커뮤니티 아머를 장착하고는 서은설을 향해 물었다. 기본적으로 탄성체라 빈곳이 없게 몸을 잘 보호해주면서도 움직이는데도 거추장스럽지 않았다. 부피도 크지 않아 커뮤니티 아머를 입은 채로 우주공간에서 활동하기 위한 강화복을 입어도 될 정도였다.
머리를 제외하고는 온몸을 빈틈없이 감싸주고 있기 때문에 일상복 대용으로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소환을 하고 해제할때마다 원형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세탁이 필요없다는 점도 중요한 포인트였다.
“은갈치 같아요.”
서은설이 입을 열었다. 커뮤니티 아머는 은색이었고, 얼핏보면 무슨 방사능 실험실에 들어가기 위해 입는 실험복 처럼도 보였다.
“끙. 그렇게 이상해?”
“뭐, 그렇게까진 나쁘진 않아요. 일상복으로는 약간 어색하긴 하지만 미친놈 취급받을 정도는 아니고...”
“그 정도면 양호하지. 분홍색이 아닌게 어디야.”
준은 자신이 델타스토어에 올려두었던 분홍색 갑옷을 떠올렸다. 제법 방어력이 준수한 편인데도 인기가 높지 않았다. 아무리 목숨이 소중해도 인격말살 수준의 갑옷을 제정신으로 입고다니기에는 어려운 모양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뭐에요? 패션쇼?”
“아. 이거 갑옷이야. 제법 방어력이 높아. 소환도 가능하고.”
“델타스토어에 올릴 거에요?”
“아니. 이건 나만 살 수 있는거야. 다른 사람은 못쓰는 것 같아.”
엑조틱 스토어의 물품은 오직 허락된 사람만 사용할 수 있었다. 그 조건은 비교적 간단하면서 어려웠다. 20레벨의 제한이 붙어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현재 델타스피릿에서 20레벨을 돌파한 것은 준이 유일했다. 그외에 가장 레벨이 높은 것은 루나였는데, 15레벨 조차도 돌파하지 못한 상황이었으니 사실상 준 외에는 아무도 사용할 수 없다고 봐야했다.
마지막으로 살펴본 것은 오리진의 조각에 대한 정보였다. 탐지범위가 100광년으로 늘어나자, 생각보다 많은 수의 조각들이 우주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코앞에서 반짝거리고 있는 스파일리 행성의 조각들을 제외하고서라도 현재 준이 확인할 수 있는 조각의 수는 약 100여개에 달했다.
‘탐사대를 하나 조직해야겠군.’
일일이 대규모 병력을 움직일 필요는 없었다. 일단 스파일리 행성의 조각들을 전부 회수하고 나면 정예들만 모아서 인근의 항성계를 죽 훑을 생각이었다. 별다른 문제만 없다면 100억에 가까운 경험치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백억이라... 몇레벨 까지 올릴 수 있을까.’
레벨이 오를 수록 경험치 요구량이 많아지고 있기 때문에 생각보다 많이 올리지는 못할 수도 있었다. 그래도 최소한 40레벨 정도까지는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 준의 생각이었다. 그리고 그 정도가 되면 갤럭시 인더스트리든 뭐든 눈치를 볼 필요는 없을 것이었다.
‘연방을 상대로 이길 수 있을 지도 모르지.’
어쨌든 현 시점에서 가장 강한 집단은 모행성인 지구를 소유하고 있는 연방이었다. 그들은 전체 일류의 절반에 해당하는 200억의 인구를 보유하고 있으며, 사회, 경제, 외교, 군사 측면에서 다른 모든 국가를 압도하는 힘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국가들이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것은 전쟁으로 인한 방대한 인적, 물적 낭비에 대한 여론이 좋지 않기 때문이었다. 국민 상당수가 부유한 시민으로 구성되어 있는 연방은 군인이 사망할 경우 들어가게 되는 어마어마한 보상금 때문에라도 쉽게 전쟁을 일으키지 못한다. 게다가 전쟁이 장기화 될 경우 나빠질 여론까지 의식하다보면 사실상 연방은 국가 존망의 심각한 위기상황이 아니고서야 제대로 된 전쟁을 수행하기 어렵다고 봐야했다.
때문에 상당수의 국가들은 연방을 가장 멀리 두고 그 사이 연합을 완충지대로 놓은 상태에서 국가를 움직인다. 거리가 멀면 멀수록 전쟁수행에 대한 비용이 커지기 때문이다. 대다수의 국가들은 그렇게 해서 독립성을 유지할 수 있었다.
가장 돈이 많다는 파티마제국 조차도 연방을 두려워하고 있으니 두말할 것조차 없었다. 연방은 인류의 아버지 같은 존재였고 나머지 국가들은 거기에서 파생된 적자 혹은 사생아들이었다. 그들은 아직 충분히 성장하지 못했고, 아버지의 헛기침 한 번에도 두려워 할 수밖에 없는 존재들이었다.
저번 파티마 제국과 갤럭시 인더스트리와의 전쟁에 연방이 끼어들긴 했지만, 소수의 병력지원에 그쳤던 것도 연방의 여러 가지 사정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쟁은 갤럭시 인더스트리의 승리로 돌아갔다.
준의 도움도 컸지만 그에 앞서 연방의 병력지원이 결정적이었다고 할 수 있었다.
“갤럭시 인더스트리의 구축함 잉베스트 미속전진 중.”
그때 디스플레이를 주시하던 서은설이 큰 소리로 외쳤다. 상념에서 깨어난 준이 곧바로 지시를 내렸다.
“현 시각부로 갤럭시 인더스트리를 ‘적’으로 규정. 전투 준비로 들어간다.”
“전투인원이 충분치 않습니다.”
“젠장. 다시 꺼내려면 시간이 걸리는데.”
승무원이 부족하면 모든 것을 컴퓨터 제어에 맡길 수밖에 없다. 하지만 자동제어로는 스파르탄과 같이 불규칙적으로 움직이는 함재기를 잡을 수가 없었다. 22세기 말을 향해서 달려가고 있는 현시점에서도 인간의 판단력을 쫓아갈만한 AI는 완성되지 않은 상황이었다.
“전 포대 자동제어로 돌려. 주포만 사용해도 충분히 이길 수 있어.”
“전 포대 자동화. 주포 로즈마리에 충전을 시작하겠습니다.”
기이잉!
알바트로스에 설치된 델타엔진이 빠른 속도로 전력을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서은설이 놀랄 정도로 순식간에 충전이 완료되었다. 기존 원자력 엔진에 비해서 거의 열 배 가까이 되는 속도였다. 전투 준비는 이로서 완료되었다.
“잉베스트에서 통신회선을 연결해왔습니다. 받을까요?”
“일단 받아. 뭐라고 하는지 들어나 보자고.”
준은 가볍게 인상을 찡그리며 입을 열었다. 먼저 공격한 것은 저쪽이다. 뭐라고 변명하는지 말 정도는 들어보고 싶었다.
[알바트로스. 여기는 갤럭시 인더스트리의 잉베스트. 방금 전 델타스피릿의 대표인 준 알스버그가 수폭의 폭발로 인해 사망한 것으로 확인 되었다. 항복하라. 다시 말한다. 항복하라. 그렇게 하면 목숨과 지위는 지켜주도록 하겠다.]
준은 잉베스트의 함장으로 보이는 중년의 사내를 한심한 듯 쳐다보았다. 통신회선이 연결되어 있다는 건 저쪽에서도 이쪽의 얼굴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내가 죽었다고?”
[다시 말한다. 델타스피릿의 준 알스버그는 이미 사망... 무슨 소리인가? 준 알스버..... 잠깐. 뭔가 착오가...]
잉베스트의 함장의 눈빛이 크게 흔들렸다. 그는 마이크를 끈 채로 누군가에게 황급히 뭔가를 지시했다. 준은 심드렁한 얼굴로 가만히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입을 열었다.
“잉베스트. 더 이상 접근하면 양전자포 날아간다.”
[다, 당신 죽지 않은 건가?]
“아아. 성상민 회장에게 안부좀 전해줘. 조만간 얼굴볼일이 생길거라고도 해주고.”
[어떻게 그 폭발에서 살아난 거지?]
“기업 비밀이야. 어쨌건 난 경고했다.”
[목숨이 질긴 녀석이군. 그냥 그곳에서 죽는 것이 나았을 텐데.]
팟-
통신은 거기까지였다. 서은설이 입을 열었다.
“잉베스트 내부에서 고밀도의 에너지파가 감지됩니다. 양전자포를 충전하는 중 인 듯합니다. 어떻게 할까요?”
“날려버려.”
“선제공격을 먼저 기다렸다가 공격하는 쪽이 정당방위를 입증하기 좋지 않을까요?”
서은설의 말에 준이 살짝 고개를 저었다.
“선제공격은 이미 당했어. 더 이상 기다려 줄 이유는 없어. 우습게 보이는 것도 한계가 있거든.”
“알겠습니다. 주포 로즈마리 충전 완료. 발사 카운트 다운 10. 9. 8...”
10초는 길지 않았다. 빛이 번쩍 하며 현시창을 가득 메웠고, 디스플레이에 떠있던 잉베스트 구축함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구역이 통쪠로 뜯어져 나가며 불꽃을 뿜어내었다.
“주포! 명중했습니다. 잉베스트 침묵. 전투수행은 더 이상 불가합니다.”
폭발하지는 않았지만 그것도 시간문제였다. 잉베스트에서 십여기의 탈출 선들이 빠져나왔고 잠시 후 완전히 붕괴하여 우주의 먼지가 되었다.
쾅.
“그 녀석이 살아있다고?”
“네. 방금 잉베스트로부터 영상이 도착했습니다. 보시겠습니까?”
성상민 회장은 멀쩡한 얼굴로 알바트로스에서 통신을 하는 준 알스버그의 얼굴을 보았다. 방금전까지 지상에 있던 녀석이 어떻게 해서 궤도상의 우주선 까지 간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걸 궁금해 할때가 아니었다.
“잉베스트는?”
“파괴 되었습니다. 함장을 비롯, 승무원의 7할이 사망했고 나머지는 탈출선을 통해 방금전 브륜스타트에 도착했습니다.”
“현재 이 항성계에 있는 함선의 수가 어떻게 되지?”
“2개 함대가 주둔중입니다.”
“브륜힐트는?”
“3기의 브륜힐트는 모두 이곳에 배치되어 있습니다.”
브륜힐트는 준이 갤럭시 인더스트리에 만들어다 준 우주선이었다. EX필드가 달려있고, 준이 판매한 델타엔진으로 교체하여 기존 함선에 비해 몇 배는 더 강력하다고 할 수 있었다. 스펙상으로는 알바트로스보다 더 좋으면 좋았지 나쁘다고 볼 수 없었다.
“그걸로 녀석을 제거할 수 있을까?”
“단순 전력으로 봤을 때는 가능합니다만...”
“뭔가?”
“브륜힐트에 문제가 생길 가능성도 있습니다.”
“문제라고?”
“그 함선들은 모두 델타스피릿에서 제작을 한 물건입니다. 우리는 아직 그 함선의 모든 것을 파악하고 있지 못합니다. 제가 만약 준 알스버그였다면 브륜힐트를 팔 때 그냥 넘겨주지는 않았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