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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일리 행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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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여기에 있는데?”
“모르지. 널 못찾아서 일 수도 있고.”
그 헌터는 고개를 젓고는 다른 무리들과 함께 자리에 앉아 휴식을 취했다. 3번던전에 들어온 인원은 약 백명이었고 그 중의 누군가가 마법을 이용해 조명을 켰다. 반경 백여미터까지 밝힐 수 있을 정도로 제법 큰 등불이었지만 보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운좋게도 외도는 보이지 않았다. 3번던전의 안에는 아직 준이 처리하지 못한 외도들이 상당수 있었지만, 녀석들도 이동이 자유롭지는 않아 원하는대로 돌아다닐 수는 없는 듯 했다.
“이 양반이... 내가 여기있는 걸 알면서도 수폭을 날렸다고?”
“버린 자식 취급만 하는 줄 알았더니 정말로 버린 모양이군.”
볼테르가 옆에서 화를 돋궜다. 하지만 화를 낼 기운도 없었다. 델타스피릿에 들어온 이유는 힘을 키워서 준에 대한 복수를 하기 위해서였다. 누가 봐도 불가능한 일이었지만 적어도 성기용은 진지했다.
그를 위해서 엄청나게 노력했고 수없이 많은 죽을 고비를 넘겼다. 아니, 실제로도 많이 죽었다. 그런 자신의 노력을 전혀 모르고 있다는 생각이 들자, 준에게 향했던 분노가 이번에는 아버지인 성상민에게로 옮겨갔다.
“영감탱이가 늙더니 판단력이 제대로 흐려졌나보군. 내가 이대로 가만히 있을 것 같아?”
“가만히 안있으면 뭐 어쩌려고.”
“복수해야지.”
“갤럭시 회장에게? 준 알스버그에게 복수한다는 것보다 더 황당무계한 소리군.”
볼테르가 대놓고 빈정거렸지만 성기용은 화를 내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지금 볼테르는 안중에도 없는 상황이었다. 그는 제법 단순한 인간이었고, 지금은 아버지에 대한 쌓인 분노가 그의 가슴을 휘저어놓고 있었다.
전 병력이 모두 던전에 들어가는 데 5분은 아슬아슬한 시간이었다. 준은 마지막으로 막스가 던전에 들어가는 것을 확인하고는 공간이동을 위한 입구를 열었다. 막사나 전차까지 인벤토리에 넣을 시간은 없었다. 수폭이 터지고 나면 방사능 등의 이유로 전부 써먹지 못할 물건들이었다.
‘아깝긴 하지만...’
저걸 건지자고 목숨을 걸 수는 없었다. 어차피 시간과 재료만 있다면 넘치는 경험치로 얼마든지 제작할 수 있는 물건들이었다. 준이 웜홀안으로 들어가자, 수폭이 지면에 충돌하며 지층폭발을 일으켰다.
번쩍!
“휴. 엄청나네.”
전면의 대형 스크린을 보고 있던 서은설이 가벼운 탄식을 흘렸다. 지층에 수폭이 터지면서 순식간에 수킬로 미터 반경을 뒤덮는 폭발을 일으켰다. 연쇄적으로 지반이 침하되었고, 유정에서 뿜어져 나온 석유들이 수억도에 달하는 온도속에서 순식간에 증발했다.
뒤이어 엄청난 위력의 후폭풍이 지면을 강타했다. 주변을 어슬렁 거리던 외도들이 수십킬로미터가 넘는 거리를 날아 바닥에 내동댕이 쳐졌다.
“상황은 어때?”
그때 서은설의 뒤편에서 준이 나타났다. 준은 이동하는 물체, 그러니까 알바트로스 같은 우주선에도 공간이동을 할 수 있었다. 적어도 그 우주선이 그가 알고 있는 우주를 지나쳐 온다는 전제하에서 말이다.
함교에 있던 장교들이 준을 향해 경례를 붙였다. 서은설도 경례를 하고는 입을 열었다.
“폭발지점 일대의 지반이 완전 침하되었어요. 유정이 파괴되고 외도들도 모두 사라졌고요.”
“그 녀석들이 죽었을리는 없으니 어딘가에서 굴러다니겠군.”
“아마도 그럴거에요.”
“8번 지구라트는?”
“폭심지점에서 20킬로미터 떨어진 지점에서 계속 이동 중이에요. 폭풍에 휘말렸음에도 문제없이 순항중입니다.”
“무게만 해도 수십만 톤이 넘을테니까 그정도 폭풍으로는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하겠지.”
“항력이 있으니 애초에 별다른 피해를 주지 못했을 거에요.”
“나도 알아. 결국 나를 죽이려고 발사한 무기인데. 인사라도 해야하나.”
“정말로 함장님을 죽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을까요?”
“반반이라고 생각했을거야. 실패해도 지구라트를 제거하기 위해서라는 핑계를 대려고 한 거겠지.”
“파티마제국에서도 가만히 있지는 않을 것 같은데요. 전번의 전쟁에서 승리를 가져오긴 했지만 다시 전쟁을 벌이기에는 갤럭시 인더스트리도 부담이 상당할 겁니다."
서은설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 입을 열었다.
수폭은 분명히 갤럭시 인더스트리의 영역에서 터뜨렸다. 하지만 그 여퍄는 거의 수백킬로미터에 달한다. 파티마제국이 점유하고 있는 지역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게다가 폭발의 여파가 가라앉은 이후에는 파괴된 유정에서 뿜어져 나오는 유독가스가 전 행성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겨우 유정 하나의 불을 끄는 것도 준의 실드전개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정도니, 최소한 수십킬로미터는 뻗어나갈 유정의 대형화재를 끌 수 있는 방법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준은 고개를 저었다.
“항의 정도는 하겠지. 하지만 이 사태가 파티마제국에서 보기엔 그다지 나쁠 것이 없으니까 전면전으로 가지는 않을거야. 스파일리 행성에서 석유를 뽑아낼 수 없게 되면 유리한 건 파티마쪽이니까.”
“그렇겠군요.”
서은설이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이번 일을 통해서 얻어 낼 수 있는 것은 얻어내려고 하겠지. 어쨌든 간에 사전에 협의없이 행성에 수폭을 터뜨린건 상대국의 이익을 침해하는 행위니까. 성상민 회장 입장에서는 그런 손해를 봐가면서까지 나를 제거 하고 싶었던 거겠고. 그만큼 지구라트의 비밀을 지키고 싶어했던 것일 수도 있어.”
“뭐 대단한 거라도 나왔나요?”
“로오나의 기술을 연구하던 기술진을 제거하고 자신쪽 사람들로 채워넣으려고 했다는 정도. 그게 내 손에 들어가게 내버려 두지는 않겠다는 거겠지.”
“어떤 기술인데요?”
“엑조틱에너지를 외도에게서 추출하는 방법인 것 같아.”
“그리 대단해 보이지는 않는데요. 지금도 얼마든지...”
“아니. 살아있는 녀석들에게서 뽑아내는 것 같아.”
준은 어두운 지하에 죽은 듯이 잠들어 있던 수백마리 외도의 모습을 떠올렸다. 연구진을 보내면 곧 알게 되겠지만 그것을 통해서 지구라트는 에너지를 공급받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일종의 생체 발전기로군요.”
“그런 것 같아. 만약 외도를 이용해서 그런 식으로 엑조틱에너지를 생산할 수 있게 되면 무리해서 사냥을 하지 않고도 많은 양의 경험치를 뽑아낼 수 있을거야. 그런 시설을 대량으로 건조할 수 있게 되면 무리하게 사냥을 하지 않고도 충분한 양의 엑조틱 에너지를 얻을 수 있겠지. 갤럭시 인더스트리에서 탐을 낼만하다고 봐.”
“중요한 건 오리진의 조각이 아니었던 거군요.”
“참. 그러고보니...”
준은 지구라트를 떠나기전에 얻었던 시그마의 조각을 떠올렸다. 이미 보유하고 있는 종류의 조각이었기 때문에 새로운 특수능력은 생성되지 않았지만 대신 방대한 양의 경험치를 얻었다. 1억이라는 수치는 지금까지 준이 가져 본 적 없는 양의 경험치였다. 하지만 그것도 겨우 1레벨을 올릴 수 있는 경험치에 불과했다.
그래도 일단 준은 레벨업을 시행했다. 5레벨 단위로 새로운 능력이 개방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다지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그래도 늘어나는 체력과 마나, 그리고 추가 스탯치는 1억이라는 경험치를 투자할 만큼의 가치가 있었다.
-23레벨에 도달하셨습니다. 체력과 마나가 상승합니다. 추가 능력치가 10부여됩니다. 펠로우쉽의 통제인원이 증가합니다. 델타OS의 영향권이 증가합니다.
그다지 특별할 것은 없었다. 다만 펠로우쉽과 델타OS의 능력이 상승했다는 점이 고무적인 부분이었다. 하지만 거기서 끝난 것이 아니었다. 시스템은 계속해서 새로운 메시지를 토해내었다.
-오리진의 탐사범위가 100광년으로 증가합니다. 새로운 조각의 위치가 발견되었습니다.
-레벨업 경험치가 1억을 돌파했습니다. 엑조틱 상점이 개방됩니다. 상점은 오직 EP를 이용해서만 구입할 수 있습니다.
-새로운 인벤토리 시스템이 적용됩니다. 인벤토리의 제한이 사라지는 대신 한번에 넣을 수 있는 물체의 크기가 제한됩니다. 크기제한은 EP를 사용하여 확장할 수 있습니다.
“오.”
준은 짧막한 감탄사를 내뱉었다. 기대하지 않았던 능력들이었다. 하나하나 유용한 능력들이라 중요하지 않은 것들이 없었지만 그중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다름아닌 인벤토리 시스템의 변경이었다.
-인벤토리에 넣을 수 있는 물건의 최대 크기가 얼마지?
-현재 인벤토리는 100만 큐브 크기의 물건까지 넣을 수 있습니다. 그 이상으로 확장하기 위해서는 같은 가격의 100배에 해당하는 EP가 필요합니다.
100만 큐브라고 하면 가로세로높이 100미터 짜리 크기의 물건을 말함이었다. 적어도 알바트로스는 충분히 들어가고도 남을 크기였기 때문에 준은 안도했다. 인벤토리의 크기를 넓히기 위해서 필요한 경험치가 상당했기 때문이었다.
‘같은 크기의 100배라고 했으니 100만큐브를 넓히기 위해서 1억EP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로군.’
말도 안되는 수치였다. 하지만 1레벨에 필요한 경험치가 거의 1억에 육박하다보니 또 어떻게 생각해보면 그렇게 불가능한 숫자는 아니었다. 어찌되었든 오리진의 조각을 얻으면 1억에 가까운 경험치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어쨌든 이론적으로 준은 100만큐브 이하의 물건은 무엇이 되었든 무한으로 인벤토리에 저장할 수 있게 되었다.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또 한가지가 있었다.
‘펠로우쉽 계약자들에게 제공하는 인벤토리에도 제한이 없게 되는 건가?’
준은 곧바로 시스템이 그부분에 대해서 질문했고, 시스템은 준이 원하는 대답을 내어놓았다. 인벤토리의 크기에 제한이 없기 때문에 아무리 많은 수의 헌터들에게 인벤토리를 열어주어도 저장공간이 줄어들거나 하지는 않는다는 것이었다. 다만 한가지 아쉬운 점은 인벤토리를 제공하는 만큼, 준이 사용할 수 있는 최대크기가 줄어든다는 점이었다.
즉 1만명의 펠로우쉽 계약자에게 10칸의 인벤토리를 제공하게 되면, 준은 10만 칸에 달하는 크기를 손해보게 된다는 것이다. 현재 100만이니 90만 큐브의 크기가 준이 인벤토리에 넣을 수 있는 크기 제한이 되는 것이다.
이전과 비교해서 생각해보면 그래도 조금 나은 듯도 싶었다. 어쨌든 간에 제한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어느정도 크기를 희생하는 대신 저장공간에는 제한이 없기 때문이었다.
다음은 엑조틱 상점이라는 것을 들여다 보았다. 사실 그것이 준의 관심사에서 2순위로 밀려난데에는 그것이 대체 뭐하는 곳인지 모른다는 점이 컸다.
엑조틱 상점은 준이 만들고 운영하는 델타스토어와 비슷한 곳이었다. EP를 제공하고 그 곳의 상품을 그 즉시 받아본다. 기본 개념도 같았고, 그곳에서 파는 물건이 하나같이 기묘한 것이라는 점에도 비슷했다.
‘이게 뭐지?’
준은 델타스토어에 올라온 물품들을 하나하나 살펴보았다. 아직 상품이 많지는 않았다. 비교적 작고 간단해 보이는 것들만 나열이 되어 있었는데 하나하나 설명해도 될 정도로 그 수는 몇 개 되지 않았다.
일단 맨 위에서부터 나열해 보면 다음과 같다.
생명력 회복 앰플
마나 회복 앰플
커뮤니티 소드(물질형)
커뮤니티 소드(비물질형)
커뮤니티 실드(물질형)
커뮤니티 실드(비물질형)
커뮤니티 아머(물질형)
커뮤니티 아머(비물질형)
커뮤니티 시리즈가 붙은 무장을 제외하면 남은 것은 생명력과 마나를 회복해주는 앰플이었다. 사용방법은 간단했는데 앰플을 열고 상처부위에 바르거나 마시면 되는 것 같았다. 상처의 양에 따라서 사용양을 조절할 수 있는데 그 효용성에 비해서 가격이 제법 비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