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로젝트 델타-455화 (455/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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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일리 행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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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대한 양의 엑조틱에너지가 있으면 불가능한 일 따위는 없지. 외도는 어떻게 우주공간을 유영한다고 생각하지?

-그렇다고는 해도 이정도 규모의 지구라트를 움직이기 위해서는...

-백만에 이르는 결정도를 가지고 어디다가 쓰겠나.

에든의 말에 준은 절로 고개가 끄덕여 졌다. 남색 스펙트럼에 해당하는 백만의 결정도. 그 온전한 힘이 전투에 쓰인다면 그야말로 행성파괴급의 위력을 보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에든은 그 힘을 지구라트의 이동을 위해서 사용했다. 즉, 이 지구라트는 살아있는 플랫폼인 것이다.

일단 자리를 이탈하고 나면 수폭의 폭발 범위는 신경쓰지 않아도 되었다. 지구라트의 경우에는 그 어떤 물리적 현상으로 부터 자신을 보호한다. 딱 하나 걱정되는 것이라고는 폭발로 인한 유정의 소실과 그로 인한 지반침하로 지구라트 자체가 무너지는 것이다. 하지만 저렇게 공중이동이 가능하다면 그런 피해는 전혀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우리도 슬슬 이동하자.”

준은 머리속으로 계산을 해보았다. 지금 머리위로 떨어지고 있는 수폭은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함대함 미사일일 것이다. 순수한 파괴력으로 따지면 현재 인류가 사용할 수 있는 수폭중에서는 가장 강력한 것들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우주공간에서는 후폭풍이 일어나지 않기 떄문에 전함을 파괴하기 위해서는 폭발력을 극대화 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대기가 존재하는 곳에서 그 파괴력은 주변 수백킬로미터까지 영향을 미칠 것이다. 델타스피릿의 주둔지까지 후폭풍의 반경안에 들어갈 것은 자명한 일이었다.

계산 끝. 셔틀을 타고갈 시간은 없다. 준은 경험치를 소모하고는 허공에 공간이동용 웜홀을 만들었다. 맞은 편에는 델타스피릿의 주둔지로 설정했다. 좌표를 찍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맵에 표시해 둔 곳으로 설정하면 끝이었다.

천명을 수용할 수 있는 델타스피릿의 막사 앞에 헌터들이 이동준비를 마친 채 대기하고 있었다. 그들의 머리위로 수십개의 수폭이 불꽃을 뿜이며 하강하는 모습이 보였다. 정확한 위치는 이미 서은설을 통해 파악했다. 준이 있는 지구라트를 목표를 삼은 수폭이지만 그 여파가 이곳까지 미칠 것이라는 것쯤은 막스도 모르지 않았다.

“그나마 갤럭시 인더스트리는 머리가 제법 돌아간다고 생각했는데, 저렇게 무식하게 나올줄은 몰랐군.”

막스가 허탈한 듯 한숨을 내쉬었다. 곁에 서 있던 카렌도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되면 갤럭시와는 적이 되는 건가? 적당한 선에서 타협할 수 있을 것이라고 계산한 것 아니었어?”

“아마도 저 안에 있는 것이 우리 생각보다 더 중요한 것이었던 것 같다. 그게 무엇이든 간에 준과 우리를 제거하고는 모른척 할 생각이었던 것 같아.”

“이번 기회에 거슬리는 존재를 지워버리고 싶었던 것일 수도 있지.”

카렌의 말이 좀 더 그럴듯하다고 여긴 막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껏 갤럭시와 델타스피릿은 긴밀한 공조관계를 유지해왔지만 이쪽에 돈을 퍼다주면 줄수록 그들은 위기감을 느꼈을 것이다. 자신들이 가지지 못한 고도의 기술력으로 무장한 델타스피릿이 언제 성장해서 자신들의 자리를 차지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이번 일을 만든 것이라고 추정하는 것이 합리적이었다.

“그런데 여기 서서 뭐하는 거지?”

카렌이 입을 열었다.

“기다려야지. 준이 곧 이곳으로 올거야.”

“사장이? 아. 공간이동 능력이 있다고 했었지. 깜빡잊었군.”

카렌은 회사내에 머무르는 시간이 길지 않다. 거의 대부분 이스카야 행성에서 외도를 사냥하면서 지냈고, 특별한 일이 없으면 그곳에서 계속 머물렀다. 그러다보니 준의 능력에 대해서 아는 바가 많지 않았다. 공간이동능력도 알고는 있었지만 실제로 가능한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을 가지고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우리모두를 이동시킬 정도의 능력이 있는 건가?”

“던전이 있잖아. 그곳에 들어가면 돼. 천명이나 되는 사람이 들어가야 하니까 시간이 촉박할 수도 있어.”

“서둘러야 겠네.”

“말을 잘 들어서 다행이야.”

막스는 정연하게 줄을 서 있는 헌터들을 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헌터들이라는 종자는 기본적으로 규칙을 좋아하지 않는다. 외도를 상대한다는 기본적은 포지션은, 소수의 팀으로 모였을때 가장 효율적이었고 그렇다 보니 개개인의 에고가 강해질 수밖에 없다. 스스로의 힘으로 죽을 고비를 넘겨오는 동안 쌓아온 자존심은 규율이나 규칙으로 제한할 수 없는 것들이었다.

하지만 델타스피릿에서는 달랐다. 펠로우쉽으로 강하게 엮인 그들은 델타스피릿에 대한 소속감이 강했고, 특히나 이곳에 파견된 헌터들의 상당수는 헌터양성프로그램을 통해 만들어진 병사들이었다. 시작부터 헌터보다는 군인의 마인드가 강하게 자리잡았고, 그들에게 있어 상급자의 명령에 따르는 것은 그다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만약 평범한 헌터들이었다면 이토록 질서정연하게 움직일 수 없었을 것이고, 준이 나타나서 던전의 입구를 연다고 해도 서로 먼저 들어가겠다면서 또 한바탕 난리가 일어났을 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면 시간 안에 모두가 대피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막스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사이, 막사 앞의 빈 공터가 일렁이며 웜홀 하나가 나타났다. 그리고 곧바로 준과 에피알게나스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헌터들 중에서는 그녀를 처음보는 이들도 제법 있었다. 갑자기 나타난 인외의 아름다움을 지닌 여성의 등장에, 머리위로 수폭이 떨어지고 있다는 긴장감도 잊은 병사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전원 이동준비! 정신차리고 상급자의 인도에 따라 신속히 움직인다!”

막스가 큰 소리로 외치자, 그제서야 현실로 돌아온 헌터들이 빠릿빠릿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준은 공간이동을 하자마자 가지고 있던 던전의 입구를 모두 열었다. 현재 가지고 있는 던전은 총 열두 개로 각기 용도에 따라 구분해 둔 상태였지만 지금은 그런 것을 신경쓸때가 아니었다.

퍼억!

볼테르의 주먹이 성기용의 관자놀이를 때렸다. 성기용은 볼품없이 바닥에 쓰러졌지만 곧바로 땅을 짚으며 몸을 일으키며 오른발을 내뻗었다. 퍽, 하고 볼테르의 옆구리를 걷어차자 녀석은 신음을 삼키며 뒤로 물러섰다.

두 사람은 3번던전의 칠흑같은 어둠속에서 소리만으로 상대의 위치를 파악해야 했다. 익숙하지 않은 일이었고 그러다보니 상대방의 공격을 피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결국은 빗나가거나 맞추거나 둘 중 하나였다.

쉭.

성기용의 귓전으로 볼테르의 주먹이 스쳤다. 상대의 실수는 이쪽의 기회. 그는 재빨리 소리가 들린 쪽으로 주먹을 휘둘렀다.

덜컥.

무언가 주먹에 걸렸다. 예상된 타격지점이 아니라 제대로 충격을 주지는 못했지만 그는 그대로 힘을 주어 볼테르를 밀어뜨렸다.

“헛?”

쿵.

쓰러진 볼테르를 향해 달라붙은 성기용은 녀석의 안면을 향해 그대로 두 주먹을 내리쳤다.

쾅! 쾅!

“그만!”

앉은 자세로 볼테르를 깔아뭉개고 그대로 파운딩을 하자, 녀석이 버티지 못하고 항복을 선언했다. 하지만 성기용은 항복선언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해서 주먹을 내리쳤다.

“시끄러워! 언제부터 항복이 있었다고!”

성기용은 어두컴컴한 공간 속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몸 이곳저곳이 상처로 가득했고 뼈가 부러진 곳도 상당히 많았지만 극도로 발산되고 있는 아드레날린과 펠로우쉽의 영향으로 거의 통증은 느껴지지 않았다.

“이. 개자식아!”

볼테르가 버럭 소리를 지르며 성기용의 주먹을 어거지로 막아내고는 녀석의 손을 물어뜯었다. 아무리 통증이 약화되었다고는 해도 생살을 씹히는 고통은 결코 작지 않았다.

“이 개자식아! 이건 반칙이야!”

“반칙같은 소리하네! 퉷!”

살점을 한웅큼이나 물어뜯은 볼테르는 가까스로 성기용에게서 빠져나와 바닥에 살점과 함께 피를 뱉었다.

“젠장. 누가 먼저 죽나 보자고.”

성기용이 이를 뿌드득 갈면서 상처입은 주먹을 감쌌다. 고통은 조금씩 잦아들었지만, 겨우 잡은 승기를 놓친 것이 못내 아쉬었다.

“어느쪽이 되었든 적어도 하루는 조용하겠지.”

볼테르도 마찬가지였다. 두 사람이 이렇게 죽일 듯이 싸우는 이유는 별다른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었다. 전투에서의 항명으로 3번 던전에 갇힌 그들은 빛 한점 없는 이곳에서 지루함과 싸워야 했다.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조명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결국 거의 보름이 넘는 시간 동안을 그들은 서로의 목소리만 듣고 있어야 했고 그들이 지루함을 달래기 위해 선택한 방법은 서로를 도구 삼아 전투훈련을 하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그저 간단한 수련이었다. 서로 주먹을 뻗고 피하는 것이었고, 어둠속이다 보니 조심스럽게 이루어졌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대방의 안면에 주먹이 틀어박히는 일은 일어날 수밖에 없다. 먼저 맞은 것은 볼테르였고, 볼테르도 곧바로 반격했다. 두 사람은 더 이상 조심스럽지 않았고 나중에는 아예 대련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3번 던전에 들어온지 단 하루만에 성기용이 죽었다. 다음날은 볼테르였다. 그렇게 서로 주고받으면서 보름이 넘는 시간동안을 버텨온 것이다. 심심할 겨를은 없었다. 부활하자마자 상대방을 찾아서 죽이려 들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미쳤다고 너같은 놈을 구하려고!”

“누가 구해달라고 했냐? 쓸데없이 참견해 놓고 왜 지랄인거냐!”

“다음부터는 절대로 그럴일이 없으니까 걱정마라!”

“그것 참 고마운 말이다!”

두 사람은 쉴새없이 입을 놀리면서 공격을 교환했다. 주먹이 빠른지 입이 빠른지 분간이 되지 않을 정도였다. 어차피 이 곳엔 둘 밖에 없었고 대화 상대도 서로뿐이었다. 목숨을 건 대련은 두 사람의 능력을 제법 키워주었다. 게다가 앞이 보이지 않는 어둠속에서의 전투는 시각에 의존하는 버릇을 버릴 수 있게 만들었다.

징계때문에 들어온 곳에서 생각지도 못한 기연을 얻고 있는 것이다. 물론 현재로서는 성기용이든 볼테르든 그런 생각은 조금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저 상대방을 때려눕혀야만 직성이 풀린다는 생각으로 혼신의 힘을 다해 싸우고 있었다.

“내가 다른 놈들에게는 져도 너한테만은 꼭 이긴다.”

성기용이 코피를 줄줄 흘리면서 외쳤다.

“내말이!”

볼테르도 평소에 비해 말이 많았다. 그렇게 서로 피터지게 싸우고 있는 데 갑자기 주변이 밝아졌다. 그들의 근처에서 은회색의 웜홀 입구가 생성 된 것이다.

“어? 자, 잠깐만.”

성기용이 입을 열었다. 볼테르는 못들은체 성기용의 안면에 주먹을 휘둘렀다. 입구에서 뿜어져 나온 빛으로 인해 타격점이 아주 잘 보였다.

뻐억!

“커헉!”

성기용은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바닥을 굴렀다.

“이 개자식아. 타임이라고 했잖아.”

“미안. 못들었다.”

“너 이자식...”

“잠깐. 누가 들어온다.

열받은 성기용이 공격을 감행하려 하는 순간 입구에서 우르르 사람들이 쏟아져 들어왔다. 다들 아는 얼굴이었다.

“어? 니들 왜 여기로 오냐? 혹시 단체로 사고라도 쳤냐?”

“으악! 괴물이다!”

“나라고. 성기용.”

코피를 줄줄 흘리는 성기용을 보고 기겁을 하며 물러섰던 헌터들이 조심스럽게 그의 얼굴을 확인하고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얼굴이 그게 뭐냐. 대체 여기서 뭘 했길래. 저건 볼테르냐? 쟤도 얼굴이 만만치 않네.”

“지금 그게 중요한게 아니잖아. 왜 다들 여기에 들어오냐고.”

“밖에서 수폭이 터질거야.”

“뭐? 갑자기 왜.”

“너네 아버지가 우리 사장님 죽인다고 날렸던데.”

상대는 성기용의 정체를 어느정도 알고 있었다. 사실 모르기가 더 힘들었는데, 훈련받는 내내 자랑을 해대었기 때문이었다. 자신은 금수저라 여기에 있지 않아도 충분히 먹고 산다면서 당장 이라도 때려치울 것처럼 굴었다. 실제로도 여덟 번이나 때려친 전적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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