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로젝트 델타-454화 (454/540)

0454 ----------------------------------------------

스파일리 행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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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뭐지?”

“신뢰를 위한 계약이지.”

준은 간단하게 펠로우쉽에 대한 설명을 했다. 가만히 듣고 있던 사내가 믿기 어렵다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런 것이 가능하다는 말인가?”

“궁금하면 계약을 승인해보면 알겠지. 탈퇴는 자유로우니까 걱정말라고.”

“널 어떻게 믿...”

“널 어떻게 믿고 이런 위험한 걸 받아들이라는 거냐!”

갑자기 사내가 버럭 화를 냈다. 두 번째 인격이 튀어나온 것이다. 하지만 준은 전혀 동요하지 않으며 입을 열었다.

“믿기 싫으면 거부하던가.”

“젠장.”

사내는 똥씹은 얼굴로 투덜거리더니 곧바로 펠로우쉽 계약을 받아들였다. 준은 곧바로 녀석들의 프로필을 확인했다.

사용자 : 에든 & 카두라

클래스 : 인펙터

결정도 : 1,130,213

속성 : 암흑, 정신

체력 : 4,510,938/4,510,938

“100만...?”

준은 약간 당황하며 눈앞의 사내를 쳐다보았다. 그 수치는 파란색 외도를 넘어 남색 스펙트럼에 닿아있었다.

“왜 그렇게 놀라는 거지?”

“남색 외도는 처음보는 거라서. 그 정도 힘을 가지고도 갤럭시 인더스트리에 쩔쩔 매고 있다는 건가?”

“내 힘은 지구라트를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벅차다. 실제 전투능력은 그다지 뛰어나지 않아.”

“그런가. 어쨌든 놀라운 일이로군.”

남색의 외도. 처음으로 만난 파란색 외도인 시어도어 대령 이후 겨우 2년만에 만난 더 높은 등급의 외도였다. 결정도만으로 따지면 행성파괴급의 외도. 존재가 확인 된 것만으로도 행성을 비우고 퇴거해야할 정도로 여겨지는 특급의 외도였다.

자신은 전투능력이 뛰어나지 않다고 했지만 어떤 식으로든 싸움이 벌어지게 된다면 쉬운 상대가 아닐 거라는 것만은 확실했다.

“그럼 이걸로 협상은 완료된거겠지?”

“잊은 물건이 있지 않아?”

“아. 그렇군.”

사내가 손을 움직이자, 준의 발밑에서 찰랑거리던 검은액체에서 빛나는 하얀크리스탈 하나가 떠올랐다. 준이 그것을 낚아채자, 곧바로 시스템메시지가 떠올랐다.

-시그마의 조각을 획득하셨습니다. 경험치로 환산하시겠습니까?

‘흠... 이미 가지고 있는 것과 같은 조각은 경험치로만 사용할 수 있는 건가?’

조금 아쉽긴 했지만 다른 말이 없는 걸로 봐선 특별한 능력은 없는 듯 했다. 하지만 오리진의 조각은 경험치만으로도 충분히 가치가 있었다. 준이 조각을 경험치로 환산하자 곧바로 시스템 메시지가 주르륵 떠올랐다.

-시그마의 조각을 경험치로 환산합니다. 총 1억의 경험치를 얻으셨습니다. 레벨업을 위해 필요한 경험치를 초과하셨습니다. 레벨업 하시겠습니까?

“헛?”

준은 자신도 모르게 헛숨을 내뱉었다. 많아야 몇천만이라고 생각했다. 1억이라는 수치는 생각해본적도 없었다.

‘경험치가 1억이면... 이걸 돈으로 환산하면 얼마가 되는거야?’

현재 델타스피릿은 결정도 감별시스템을 구축하여 결정도 10에 100만원이라는 환산치를 적용하고 있었다. 즉, 1억이면 10조에 달하는 금액이었다. 경험치가 가지고 있는 범용성까지 생각해보면 그 이상의 가치가 있었다.

“왜 그러지? 마음에 들지 않는 건가?”

“아니. 조금은 그쪽을 신뢰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준은 약간 얼떨떨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당연하지만 오리진의 조각은 귀한 물건이다. 거기다가 예상치 이상의 경험치까지 얻고 나니, 준은 사내를 조금은 더 신뢰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다행이군.”

“참. 내가 그쪽을 뭐라고 불러야 하지? 에든? 카두라?”

사내의 몸에는 두 사람의 인격이 들어있었다.

“대화하고 싶은 상대를 부르면 되겠지.”

“좋아. 어느쪽이 에든이지?”

“내가 에든이다.”

“그쪽을 부를 일이 많겠군.”

성질이 급한 쪽이 카두라인 모양이었다. 그쪽은 기본적으로 대화라는 것이 성립하기 어렵기 때문에 가급적이면 부르지 않을 생각이었다.

“그럼 갤럭시 인더스트리는 나에게 맡기고. 혹시 다른 지구라트를 공격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겠나?”

“그건 계약조건에 없는 내용이다.”

“어쩔 수 없지. 그럼 네 통제 하에 있는 외도들만 잘 관리하고. 참. 이곳에서 약 100킬로 미터 지점에 있는 우리 주둔지에 외도들이 집결하고 있는데, 그 녀석들을 좀 물려줘.”

“알겠다. 거기까지는 명령이 닿을테니 문제없다.”

에든은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푸하. 이거 엄청 빠르군.”

준과 에피알게나스는 에든이 안내해준 좁은 통로를 통해 지상으로 빠져나왔다. 일종의 숨구멍 같은 것이었는데, 아래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통해 순식간에 지상까지 올라올 수 있었다. 바깥은 의외로 잠잠했다. 지구라트를 공격하던 갤럭시 인더스트리의 병력들이 철수한 모양이었다.

“그 녀석들 왜 물러난 거지?”

“그보다. 정말 괜찮은거야? 인펙터와 같은 편이 되겠다고?”

에피알게나스는 이번 결정에 제법 불만이 있는 모양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는 외도에 대한 증오가 상당하다. 그들에 의해서 자신들의 삶의 터전을 잃었던 사람이라면 당연한 반응이었다.

“굳이 적을 늘일 필요가 없지. 도움이 된다면 그 상대가 설령 외도일지라도 이용해야한다고 생각해.”

“속셈이 있을 수도 있어.”

“그건 그때가서 처리하면 돼.”

“정말로 넌 외도와의 공존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거야?”

“글쎄. 하지만 좀 더 시간을 두고 지켜볼 필요는 있다고 생각해.”

외도는 인간을 공격한다. 그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명제였다. 하지만 유일한 예외가 있다면 바로 펠로우쉽 계약을 맺은 외도였다. 그들은 자신의 본능을 놀라울 정도로 통제하면서 준의 명령을 따랐다.

지금까지는 단지 호감도 시스템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준은 외도가 인간을 공격하는 것이 단순한 적개심이나 증오심 때문은 아니지 않을까 하는데 생각이 미쳤다. 펠로우쉽 계약을 한 외도들의 특징은, 다름아닌 생존에 필요한 에너지를 델타로부터 받는다는 것이다. 그들의 결정도는 전투를 통해 얻는 경험치와 결정체 섭취를 통해서 증가하고 그를 통해 스스로를 진화시킨다.

적어도 그러한 사이클이 유지가 되고 있는 하에서는 그들은 준의 명령에 충실했다.

한편으로 에든과 카두라의 경우는 처음부터 준과 협상을 시작했다. 그들이 효과적으로 이성을 유지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 밑바탕엔 엑조틱에너지를 자급자족하고 있는 시스템이 큰 힘을 발휘하고 있었다.

그들은 딱히 인간을 공격하지 않고서도 검은대지를 통해 엑조틱에너지를 빨아들였고, 그힘을 바탕으로 스스로 생존을 도모했다. 그것은 로오나의 진화프로그램의 일환일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그렇게 되면 어쩌면 인간과의 공생도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 것이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이것은 추측에 불과한 영역이었다. 앞으로 에든과 카두라를 계속해서 감시할 필요는 여전히 존재했다. 그를 위해 연구 성과를 공유하겠다는 조건도 걸어두었다. 그들이 자신만의 아지트에서 시행하고 있는 연구가 무엇을 위한 것인지는, 조만간 알게 될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 누굴 보낼 생각이야?”

“일단 아이작을 적임자로 생각하고 있어. 그라면 외도들 사이에 사는 것도 익숙할거고.”

아이작은 준의 4번째 귀속던전에 살고 있던 연금술사였다. 현재는 루나의 외도연구소에서 일하고 있으며 눈알외도에 대한 연구에 상당한 도움을 주고 있었다. 정규교육을 받지는 않았지만 오백년에 걸친 자체적인 외도연구와, 그를 통해 쌓은 지식을 바탕으로 새로운 기술과 정보를 빠르게 흡수했고 지금은 빠르게 기존 연구원들의 수준을 따라잡고 있었다.

준이 에든과 타협을 보고 나자, 델타스피릿을 공격하던 외도들이 일제히 물러났다. 인근의 지구라트는 그것 하나 뿐이었고 그들의 영향력은 반경 수천킬로미터에 달했다.

“일단 돌아가자.”

“응.”

돌아갈 때는 로버가 필요없었다. 이제 근방의 외도들은 적어도 델타스피릿에 대해서는 적대적이지 않기 때문이었다.

준이 셔틀을 꺼내들고 막 탑승하려 하는 순간, 준은 어쩐지 불길한 기운을 느끼고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수십개의 불꽃이 하늘에서 떨어져내리고 있었다. 동시에 서은설의 메시지가 미친듯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긴급! 갤럭시 인더스트리에서 수폭을 30기를 발사! 지면에 도착하기까지... 10분! 카운트

다운 시작 합니다!

“아... 이게...”

준은 제법 당황한 표정으로 하늘을 바라보았다. 설마 갤럭시에서 이렇게 무식한 짓을 할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나를 죽일 셈인가? 증거를 완전히 없애지는 못할텐데.”

“지금 남 걱정 할때는 아닌 것 같아.”

에피알게나스가 입을 열었다. 준은 대답대신 서은설에게 통신을 보내었다.

-조만간 알바트로스를 공격할거야. 일단 궤도에서 벗어나 있어. 여차하면 도망쳐도 좋아.

-하지만 그렇게 되면 함장님의 도주경로가...

-난 어떻게든 도망칠 수 있어. 공간이동 능력도 있고, 그 능력을 이용하면 다른직원들도 피해없이 구할 수 있어.

-알겠습니다.

서은설은 그제서야 수긍했다. 그렇지 않아도 근처에서 얼쩡거리는 함선들이 신경에 거슬리던 차였다. 준이 없는 상황에서는 카모플라쥬가 제대로 걸리지 않는다. EX필드도 수폭이나 원자탄 같은 전략병기에 대해서 완벽한 방어를 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준이 없이는 전투를 전개하기가 어려웠다.

에피알게나스가 묵묵부답으로 하늘만 바라보고 있는 준을 향해 입을 열었다.

“막을 수 있어?”

“힘들 것 같은데.”

준은 고개를 저었다. 이 공격은 지구라트를 향하는 것이 아니다. 지구라트는 건물 자체가 생명체로 구성되어 있다. 즉, 그 자체로 외도의 특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쪽으로 날아오는 무기가 수폭이든 원자탄이든 순수한 물리력으로는 피해를 입힐 수 없었다.

하지만 준은 달랐다. 현재 준의 EX필드는 레벨업을 하면서 1000까지 늘어나 있는 상태였다. 하지만 일전의 전투에서 확인 했듯, 지나치게 강력한 무기에는 충분한 방어능력을 보이지 못했다. 한 눈에 보아도 십여기가 되어보이는 저 수폭을 몸으로 맞고서 버틸 수 있을리 없었다.

준은 일단 도망치기로 마음을 먹고, 에든을 향해 통신을 넣었다.

-에든. 지금 네 머리위로 수폭이 떨어질 예정이다.

-갤럭시인가.

-그래. 미안하지만 이것까지는 막기 힘들 것 같다. 아무리 나라도 수폭을 막는 건 무리야.

-이해한다. 그건 알아서 하지.

에든은 의외로 별다른 걱정을 하지 않는 듯 했다.

-괜찮겠나? 지구라트 자체는 피해가 없을 수 있다고 해도, 인근은 완전히 초토화가 될 텐데. 적어도 반경 수십킬로미터는 불바다가 될거다. 근처에는 유정이 넘치고 흐르니, 그 피해는 상상을 뛰어넘을 정도로 커질 수도 있어.

-걱정은 그쪽이나 하지.

쿠르릉-

갑자기 땅이 거칠게 흔들렸다. 그리고 다음 순간, 지구라트가 하늘로 떠올랐다.

준은 아연한 표정으로 허공으로 떠오르고 있는 지구라트를 보았다. 지상 100미터 지하 300미터에 이르는 표족한 쐐기모양의 이 건축물은 그 크기와 본래 용도와 상관없이 현재 계속해서 하늘로 날아오르고 있는 상황이었다.

“대, 대체 이게 무슨. 에피알게나스. 넌 이런거 본적 있어?”

“아니. 지구라트가 하늘을 나는 것은 처음이야.”

에피알게나스도 제법 놀란 듯한 얼굴이었다. 하물며 준의 입장에서는 상상조차 하지 못한 일이었다. 그저 오래된 집 같은 거라고 생각했던 지구라트가 하늘로 솟아오르다니.

-어떻게 한거야? 어떻게 하늘을 날 수 있는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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