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로젝트 델타-452화 (452/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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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일리 행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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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그냥 지켜봐야 되나.”

준은 점점 형체를 갖추어 나가는 검은덩어리를 보면서 답답한 듯 입을 열었다. 물리적인 데미지가 전혀 먹히지 않는 저 기묘한 형체는 서서히 인간에 가까운 무언가로 변하고 있었다.

준은 무기들을 전부 인벤토리에 넣고, 이번에는 매크로 어택 2번을 시전했다.

준이 내뻗은 손에서 각양각색의 공격마법들이 뻗어나갔다. 화염, 물, 대기, 대지, 전격등의 속성마법들이 총천연색으로 빛을 발하며 어지러운 궤적을 이루며 검은형체에 틀어박혔다.

쩌어엉!

수십개의 마법이 귀를 찢을듯한 소음을 만들어냈고, 처음으로 검은형체가 휘청거렸다. 준의 눈이 반짝였다.

“마법에는 영향을 받는군.”

“에테리얼 체 인 것 같아.”

“에테리얼? 그게 뭐야?”

“순수한 에너지 덩어리로 이루어진 물체를 말하는 거야. 정해진 형체가 없기 때문에 물리량에 피해를 입지 않아. 그에 상응하는 에너지로만 상쇄시킬 수 있어.”

“그럼 마법으로만 상대해야 한다는 건가?”

“아마도.”

에피알게나스가 알고 있는 것은 거기까지였다. 준은 다시한번 매크로어택을 시전했다. 한번에 수십개의 마법을 동시시전하는 것이기 때문에 한번 시전할때마다 상당수의 마나가 소모되었다. 다른 공격수단에 비해서 가성비가 떨어지는 편이라 라이트세이버나 니들건을 본격적으로 운용하면서부터는 한동안 쓰지 않고 있었던 기술이었다.

쩌저정!

귓전을 찢을듯이 울리는 소음이 넓은 공간을 가득채웠다. 마치 불꽃놀이처럼 준의 손에서부터 뻗어나가는 마법들은 검은형체에 유효한 타격을 계속해서 입히고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계속해서 인간의 형상을 만들어가고 있었고, 준의 마나가 절반가까이 고갈 되었을 무렵에는 7미터 가량의 거인형태가 완성되었다.

비대한 상체에 비해 갸날퍼 보이기까지 한 하체를 지닌 그 검은거인의 머리부분에서 붉은 색의 커다란 눈구멍 두개가 번득였다.

쿠오오오!

그리고는 이윽고 허리를 한껏 뒤로 젖히며 포효성을 내뱉었다. 귀를 틀어막아야 할 정도로 엄청난 굉음이었다.

“에피알게나스. 일단 뒤쪽으로 물러서 있어. 아무래도 마법만으로는 충분치 않은 것 같아.”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조용히 뒤쪽으로 빠졌다. 그들이 뚫고 들어온 구멍은 이미 막혀 숨을 곳이 마땅치는 않았지만 다른 외도들은 모두 죽은 듯이 움직이지 않고 있었기 때문에 안전한 공간을 찾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여차하면 도망쳐야겠군.’

준은 빠르게 주변을 훑어보았다. 반대쪽 벽에 나있던 구멍은 벌써 메워진 상태였다. 바닥은 검은액체로 가득찬 상태라 구멍을 뚫어서 그쪽으로 빠져나간다는 것은 힘들어 보였고, 벽에 구멍을 뚫는 것이 그나마 나아보이는 선택이었다.

하지만 가급적이면 이 녀석을 먼저 해치우고 움직이는 편이 나았다. 목적지에 거의 도달해 있는 상황에서 이런 적을 뒤통수에 남겨두고 온다는 것은 그다지 좋은 선택은 아니었다.

크오오!

거인이 거대한 상체를 움직여 팔을 휘둘러왔다. 거의 이십미터는 넘는 거리였음에도 녀석의 팔이 주욱 늘어나더니 순식간에 준이 있는 곳까지 다가왔다.

탓.

준은 몸을 허공으로 띄우고는 마법을 난사했다. 마나소모량이 걱정되긴 했지만, 일단은 놈에게 데미지를 입힐 방법으 현재로서는 이것밖에 없었다.

콰아!

녀석의 커다란 주먹이 준을 향해 직선으로 찌르고 들어왔다. 준은 관성제어를 이용해 더욱 더 허공으로 뛰어올랐다. 하지만 곧 천장에 머리가 닿는 것을 느끼고는 황급히 몸을 틀었다.

퍼억!

거인의 주먹이 천장을 때렸고, 그 충격에 바닥의 검은 액체들이 파도처럼 출렁거렸다.

‘빨라.’

콰콰콰!

거인은 두 주먹을 폭풍처럼 휘두르며 별다른 공격무기나 기술없이도 준을 궁지로 몰아넣고 있었다. 원거리라고 할 수 있는 거리에서 그는 계속해서 주먹을 휘둘러댔고, 준이 마법을 퍼부을때만 잠시 주춤하다가 다시 회복하고는 공격을 시도했다.

분명히 데미지는 누적되고 있는 듯, 마법이 적중할때마다 거인의 크기는 조금씩 작아졌다.

‘이대로라면 내 마나가 먼저 고갈되겠는데.’

준의 마법은 대부분 초급아니면 중급이었다. 뛰어나지 않은 화력을 물량으로 때우는 것이 매크로어택의 기본 개념이었고, 그런만큼 방대한 양의 마나가 소모된다. 상급에 이르는 마법기술은 보다 적은 마나로 강력한 공격을 할 수 있었지만, 그동안 마법을 거의 도외시하다피 한 상황이다보니 충분한 화력을 보이지 못하고 있었다.

‘진작 연습 좀 해둘걸 그랬군.’

탓.

준의 몸이 허공에서 방향을 틀며 뒤로 물러섰다.

후웅!

코앞을 스쳐가는 거대한 주먹에 준의 머리칼이 강하게 흩날렸다. 물리력이 통하지 않는 신체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녀석의 몸을 구성하고 있는 물질은 무겁고 또 단단해 보였다.

-총마나량이 30퍼센트 이하로 줄어들었습니다.

시스템의 경고음이 들려왔다. 지금까지 쏟아부은 마법만 해도 수백 발은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녀석의 크기는 처음에 비해서 5분의 1 정도만 줄어든 상태였다.

‘이대로는 힘들 것 같은데. 역시 도망쳐야 하나.’

준이 그렇게 생각하면서 도주로를 구상하고 있을 무렵, 검은거인이 돌연 준이 아니라 에피알게나스를 향해 주먹을 뻗었다.

“아?”

“헛?”

그 속도가 너무나도 빨리 마법으로는 막을 수 없었다. 준은 급한 마음에 라이트세이버를 뽑아 마나를 최대한 밀어넣었다.

쑤욱!

순식간에 채찍처럼 늘어진 라이트세이버가 검은거인의 주먹을 휘감았다.

파삭!

그리고 그 순간 거대한 주먹이 마치 먼지처럼 바스라졌다. 준은 내심 놀라면서도 재빨리 에피알게나스에게 다가가 그녀의 앞을 막아섰다.

“괜찮아?”

“응. 그런데 그건...?”

“녀석이 의외로 라이트세이버에 약한 것 같은데.”

준은 다시 1미터 크기로 줄어든 라이트세이버를 수평으로 눕히고는 거인을 향해 마주섰다. 녀석은 날아간 주먹을 다시 만들었지만 눈에 띌 정도로 확연히 녀석의 덩치가 줄어든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에피알게나스가 입을 열었다.

“라이트세이버의 에너지가 저 검은에테리얼 체에 극성인 것 같아.”

“이 검도 일종의 에너지 덩어리라고 할 수 있으니까. 지금에라도 늦지 않게 깨닫게 되어서 다행이군.”

쿠웅! 쿵!

검은 거인은 상당히 분노한 것 같았다. 갑자기 땅을 거칠게 내리치더니 엄청난 기세로 준을 향해서 돌격해 왔다.

“힘으로 맞서겠다는 건가? 받아주지.”

라이트세이버가 유효한 타격을 입힐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이상 두려울 것은 없었다. 준은 남은 마나를 최대한으로 불어넣으며 검의 크기를 늘렸다. 준의 키를 훌쩍 넘어 3미터 이상 자라난 그검은 검이라기 보다는 빛의 기둥이라고 하는 편이 나아 보일 정도였다.

“하아앗!”

크오오오!

이글거리는 붉은 눈동자가 두 배는 커진듯 했다. 준은 오직 분노로 가득찬 거인의 눈동자를 마주보며 그대로 검을 휘둘렀다. 거인의 거대한 주먹과 준의 라이트세이버가 허공에서 맞부딪혔다.

쩌엉!

거대한 강철 구조물이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거인의 주먹에서 균열이 일었다. 균열에서 마치 피처럼 붉은 빛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쩌적.

이윽고 거인의 주먹에서부터 본체에 이르기까지 커다란 균열이 생기더니 한순간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제법 상대하기 까다로운 적이었지만 라이트세이버의 힘에 기대에 수월하게 물리친 셈이었다.

준은 바닥에 흩어지고 있는 검은거인의 잔해 중 하나를 주워들었다. 결정체는 따로 생성되지 않았지만 녀석의 힘으로 생각해 봤을때는 최소한 파란색 외도 이상이라고 추정되었다. 하지만 이런 형태의 외도는 본적이 없었기 때문에 외도를 측정하는 기준으로 판단하는 것이 정확하다고 할 수는 없었다.

준은 손 끝에서 바스라지기 시작하는 검은결정을 보면서 입을 열었다. 금속성이라고 추정되는 그 결정은 서서히 분자간의 결합력을 상실하는 듯 하더니 기화되어 완전히 사라졌다.

“신기하군. 이거 대체 무슨 물질이지?”

“애초에 에테리얼은 물질이라고 할 수 없어. 본래 에너지의 형태였으니 다시 에너지로 돌아가는 것 뿐이야.”

“에너지를 결정화 하는 건가? 이정도면 단순히 진화의 산물이라고 할 수는 없는 거겠지?”

준은 다시 넓은 검은액체의 연못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그 중의 일부를 유리병에 담에 인벤토리에 넣었다. 연구를 하면 뭔가가 나올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서였다.

꾸르륵.

그때 준의 발밑에서 커다란 기포하나가 올라왔다. 준이 황급히 뒤로 물러서자, 그곳에서 뿐만 아니라 연못 여기저기에서 방금과 같은 기포덩어리들이 하나둘씩 생기기 시작했다. 마치 물이 끓기 시작하는 것 처럼, 검은연못 전체가 맹렬하게 끓어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준. 빨리 이곳을 벗어나야해.”

“안그래도 그럴 생각이야. 끝난 줄 알았더니 끝이 아니었어. 어쩐지 쉽더라.”

준은 투덜거리며 쇠못을 꺼내들었다. 가까운 벽을 향해 조준한 준은 전자기장레일을 깔고 전력을 불어넣었다.

쾅!

준의 측면에 있던 벽에 구멍이 크게 뚫렸고, 준은 그곳을 통해 에피알게나스와 함께 뛰어들었다. 점점 아물기 시작하는 벽을 통해 검은연못에서 일어나기 시작하는 수십마리의 검은 거인들이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콰악!

그 중 한 녀석이 아물어가는 벽에 손을 집어넣고는 크게 벌렸다. 점점 작아지던 구멍이 넓어지며 5미터 짜리 검은거인들이 그 틈으로 몸을 비집고 빠져나오기 시작했다.

“집요한 녀석들이구만.”

준은 인벤토리에서 레일건을 하나 꺼내어 구멍으로 빠져나오는 녀석들을 향해 발사했다.

쾅!

굉음과 함께 복도 전체가 울렸고, 구멍난 벽을 통해 빠져나오려던 녀석들의 형체가 일그러졌다. 실질적인 타격은 없지만, 녀석들이 구멍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게 하는 데는 레일건만으로도 충분했다.

콰앙! 쾅!

몇발의 레일건을 더 발사하자, 녀석들의 움직임이 극도로 느려졌다. 준은 그정도에서 만족하고 에피알게나스와 함께 복도를 달렸다. 미니맵을 보면서 움직이고 있기 때문에 길을 잃을 염려는 없었다.

꼬리에 붙은 검은거인들은 계속해서 준을 추적했지만, 미니맵을 이용해 길을 환하게 보고 있는 준은 녀석들을 떨어뜨리는데 성공할 수 있었다.

“5분만 쉬자.”

탁.

준은 품에 안고 있던 에피알게나스를 바닥에 내려놓고는 벽에 기대어 앉았다. 소모된 마나를 회복하기 위해서 최소 30분 이상은 쉬어야 했지만 검은거인들이 여전히 추격하고 있었기 때문에 아쉬운대로 5분이라도 명상을 하면서 마나를 회복해야했다.

준의 기술 중 하나 인 ‘명상’은 마나회복속도를 빠르게 해주는 능력이 있었다. 준은 여러가지 생각들을 정리하며 가만히 앉아 하나의 생각에 집중했다. 그편이 잡생각을 없애주고 마음을 가라앉히는데 도움이 되었다.

하지만 좀처럼 집중이 잘 되지 않았다. 준은 명상에 돌입하는 것을 포기하고는 그냥 편하게 몸을 벽에 기대었다.

‘엘라는 잘 있겠지?’

뜬금없이 엘라의 얼굴이 떠올랐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너무 빨리 성장한 그녀를 생각하면 준은 항상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겨우 두살을 넘었지만 몸도, 마음도 십대소녀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을 정도로 성장한 그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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