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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일리 행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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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너 처럼 우리도 로오나의 유산을 얻었고, 그곳에서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새로운 기술을 획득할 수 있었다. 물론 해석에 어려움이 따랐기 때문에 지난한 연구과정이 필요했지. 그과정에서 우리는 특정기업과 손을 잡아야만 했다.”
“갤럭시 인더스트리인가?”
“그렇지. 그들에게 기술을 제공해주는 조건으로 우리는 연구를 지속할 수 있었지. 그리고 어느정도 연구결과가 나오기 시작할 무렵 문제가 생겼다.”
사내의 표정이 돌연 무섭게 변했다. 분노로 부들부들 떨리는 손을 들어 거친 목소리로 소리쳤다.
“그 개자식들! 쓰레기같은 놈들! 지금까지 우리가 그토록 헌신했거늘!”
“조용히 해. 지금 대화중이잖아.”
“어떻게 분노하지 않을 수 있겠어! 나는 도저히 그 녀석들을 용서할 수 없어!”
“저기. 일단 한 사람만 이야기 해줬으면 좋겠는데.”
준이 인상을 찡그리며 입을 열었다. 갑자기 돌변하며 이야기 하는 사내의 모습을 보는 것은 제법 피곤한 일이었다.
“아. 미안하군. 그래. 어쨌든 내가 이야기 하려는 것이 대충 뭔지는 알겠지?”
“갤럭시 인더스트리에 뒤통수를 맞았다는 거겠지? 그래서 나에게 도움을 청하는 거고.”
“정확히 말하자면 우리애게 간섭하지 말아줬으면 하는 거지. 우리가 원하는 것은 아주 단순하다. 그저 기술에 대한 연구를 지속할 수 있으면 그걸로 충분해.”
“아직 설명되지 않은 게 많은 것 같은데? 대체 어떻게 지구라트를 생성했고, 무리어미를 어떻게 장악한거지?”
“우리가 몰래 진행하고 있던 연구 중에서 외도의 정신파를 조작하는 기술이 있었다. 때마침 무리어미가 나타났고, 우리는 그동안의 연구결과를 적용한 것 뿐이지. 결과는 만족스러웠지. 덕분에 갤럭시 인더스트리에서 독립할 계획도 한 걸음 앞당길 수 있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그 자식들이 우리를 죽이려고 했다!”
“아. 그정도는 예상가능한거고. 그렇게 단순하지는 않을거 아니야.”
“제법 복잡한 이야기라 최대한 간단하게 말하자면 이런거지. 갤럭시 인더스트리는 우리의 성과를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고, 우리를 제거하고 자신들이 모든 연구결과를 가로채려고 했다.”
“너무 간단해서 그런지 잘 이해가 안되는데. 연구진을 제거하고 나면 그 연구를 이어받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건가?”
“우리의 모든 연구자료가 들어있는 데이터베이스가 있다. 그걸 손에 넣으려고 한 거지. 시간은 걸리겠지만 인력은 얼마든지 대체할 수 있으니까.”
“그렇다면 알카트뢰즈에 있던 연구시설도 너희들의 것이었나?”
“그런 세세한 부분까지는 알지 못한다. 어쩌면 그럴 수도 있었겠지.”
사내는 모호한 태도로 입을 열었다. 그러자 준은 집요한 태도로 질문을 계속 이어나갔다.
“그래서. 스파일리 행성을 손에 넣은 다음에는 뭘 할 생각인거지? 이런 기세라면 몇달도 지나지 않아서 행성 하나를 통째로 집어 삼킬 수 있을 것 같은데.”
“우리는 그저 일신의 안전을 원할 뿐이다. 갤럭시 인더스트리든, 어디든 위협을 받지 않고 연구에만 몰두할 수 있길 원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 행성의 불순물들을 전부 제거할 필요가 있어.”
“불순물이라. 재미있는 표현이군.”
“우리입장에서는 그렇게 밖에 생각할 수 없지 않나? 다른 적대적인 세력을 행성안에 두고서 연구를 지속할 수는 없다.”
“설령 지상을 정리한다고 해도 궤도폭격에서 자유로울 순 없어. 게다가 여기는 스파일리 행성이다. 지층의 석유를 건드리게 되면 행성 자체가 죽음의 행성이 될 수도 있어.”
“그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사내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입을 열었다.
“그렇군. 너희들은 인간이 아니니 환경에 영향을 받지 않는 건가.”
“오히려 그렇게 되면 이 행성이 연합의 시선에서 벗어나게 될 테고 그 이후에는 조용하게 살 수 있지 않겠나?”
“무리어미가 있는 행성을 그냥 내버려 둔다고? 과연 그게 가능할까?”
“적어도 쉽사리 공격하기는 어렵겠지.”
콰아앙!
드드드.
갑자기 지구라트 전체가 흔들리며 엄청난 폭발음이 들려왔다. 준이 검지손가락을 세워 위를 가르키며 말을 이었다.
“이 녀석들은 절대로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걸.”
“그들은 우리만으로도 상대가 가능하다. 다른 변수가 없다면.”
“다른 변수라면?”
“로오나의 유산을 가지고 있는 존재.”
“나를 말하는 모양인데. 나는 이래봬도 외도에 그다지 호의적인 입장이 아니거든. 옆의 이 친구도 그렇고.”
준은 에피알게나스를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사내의 시선이 처음으로 에피알게나스를 향했다. 그의 깡마른 얼굴에 의아함이 떠올랐다.
“무슨 소리지?”
“이 녀석. 로오나거든.”
“그런가.”
말투는 담담하려 애썼지만 사내의 표정은 적잖이 동요하는 모습이었다. 준이 흥미로운 표정을 짓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뭘 하려고 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더 이상 할 이야기가 없으면 슬슬 결판을 봐야겠어. 네 이야기는 전혀 내 관심을 끌지 못했으니까.”
라이트세이버의 빛이 스산하게 빛났다. 그러자 사내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그러더니 또다시 거세게 고함을 질렀다.
“내가 말했잖아! 쓸데없는 짓 말라고!”
“시끄러워. 그렇다고 이렇게 끝낼 수는 없어.”
“어느 쪽이든 빨리 결정해줬으면 좋겠는데. 더 이상 시간을 주고 싶지는 않거든.”
“자, 잠깐. 제안을 하나 하겠다.”
“이야기 해. 마지막 기회이니 만큼 마음에 들지 않는 내용이면 그걸로 끝이라는 걸 명심하고.”
준은 라이트세이버를 사내를 향해 겨누며 입을 열었다. 두 사람 사이의 거리는 딱 10미터. 라이트세이버의 간격에서는 벗어나 있었지만, 단 한걸음이면 순식간에 접근해서 베어버릴 수 있는 거리이기도 했다.
사내가 창백한 얼굴로 무언가를 중얼거리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네가 이곳에 온 이유는 로오나의 유산 때문이겠지?”
“그쪽도 제법 상상력이 있군.”
“델타스피릿이 갤럭시 인더스트리와 충돌해가면서까지 얻으려고 하는 것이라면 그것 밖에는 없겠지. 그걸 내어주겠다.”
사내는 그렇게 말하며 손을 내밀었다. 그곳에는 투명하게 빛나는 크리스탈이 있었다. 그 얀에서 느껴지는 막대한 에너지로 보아, 틀림없는 오리진의 조각이라고 추정되었다.
“대가는?”
“이곳에서 떠나주는 것.”
“생각해보지.”
“무슨?”
촤악!
준의 라이트세이버가 사내의 몸을 갈랐다. 그러자 사내의 몸이 세로로 갈라지며 피분수를 뿜었다. 준은 차가운 눈동자로 바닥에 쓰러진 사내의 모습을 내려다보았다.
“대체 무슨...”
갑작스런 공격에 놀란 에피알게나스가 입을 열었다. 각자 떨어진 두개의 몸이 바닥을 구르는 모습은 제법 끔찍한 광경이었지만 준은 눈썹하나 까딱하지 않고 천연덕스럽게 녀석의 몸에 라이트세이버를 박아넣았다.
콰득.
“이건 협상 결렬로 생각해도 되는 건가?”
하지만 놀랍게도 사내는 신체가 난도질당한 상태에서도 아무렇지 않게 입을 열었다.
“인형과 대화하는 취미는 없어서. 본체가 있는 곳으로 갈 테니, 자세한 협상은 얼굴을 마주보고 하자고.”
사내의 육신이 검게 타오르더니 검은 재를 남기고는 사라져버렸다.
달그락.
준은 바닥에 떨어진 크리스탈을 주워들었다. 방금전가지 반짝이던 크리스탈은 볼품없는 검은 색 돌덩어리가 되어 아무렇게나 굴러다니고 있었다.
“가짜네.”
에피알게나스가 슬쩍 들여다보고는 입을 열었다. 준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 진짜였을거야.”
“무슨 소리야?”
“방금 느껴졌던 힘은 흉내낼 수가 없는 진짜였어. 지구라트 내에서 자신의 힘을 마음대로 투사할 수 있는 존재라면 인형을 통해서 조각을 가져오는 것 정도는, 그리고 회수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 아니었겠지.”
“그럼 이제 어떻게 할 생각이야?”
에피알게나스의 표정은 복잡해 보였다. 로오나의 유산이, 그것도 단순히 조각이 아닌 그들의 기술이 남아있었고 그것을 일단의 인간들이 연구하고 있었다. 그것도 실패작이라고 여기던 진화프로그램이었다.
로오나의 실패한 유산이 인간들의 세계에 흘러들어온 것이 그녀 입장에서 그다지 반갑지 않은 것이다.
“마음 같아선 그냥 쓸어버려야겠지만, 아직은 아니야. 지구라트는 일종의 증폭기라고 할 수 있어. 대량의 엑조틱에너지를 사용하기 위해서 필요한 거지. 허면 이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 무엇이든 단순한 연구라고 볼 수는 없을 거야. 그리고 그런 것이 7개나 더 있어. 하나는 생성중이고. 충분히 정보를 얻어야 할 필요가 있다는 거지. 혹시 진화프로그램에 대해 더 생각나는 거라도 있어?”
“글쎄. 인펙터들은 거의 대부분 사망했고, 남아있는 자료도 모두 소각된 걸로 알고 있어. 그 이상은 나도 아는 게 없어. 그런데 그건 왜?”
“아무래도 무언가 석연치 않아서. 왜 나와 협상을 하려 드는 걸까.”
“갤럭시 인더스트리에서 자신들을 죽이려 했다고 했어. 위협을 느끼는 만큼, 너에게 기대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오리진의 조각을 내어준다는 것은 그만큼 그들이 이 일을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거잖아.”
“아니. 오리진의 조각은 누가 되었든 함부로 내어놓기 쉽지 않은 물건이야. 한번이라도 그것을 가졌던 이들은 목숨보다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물건이지. 헌데, 놈은 조금의 주저함도 없이 조각을 내어주려고 했어. 그건 무언가 부자연스러워.”
“어쩌면 조각보다 목숨을 더 중요시 할 수도 있는 거겠지.”
“연구를 위해서 자신의 몸을 실험체로 쓰는 녀석들이?”
준은 말라비틀어진 인형의 모습을 떠올렸다. 그것은 분명한 대리인이었지만, 실제 본체와도 큰 차이는 없을 것으로 예상되었다.
“어쩌면 그 연구가 조각보다 중요한 것일 수도 있어.”
“그래. 그 연구. 오리진의 조각보다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그 연구가 대체 뭘까. 나는 좀처럼 짐작이 가지 않아.”
“그래서 이곳이 아니라 직접 보겠다고 한거야?”
“그래. 녀석들의 꿍꿍이가 뭔지. 이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연구가 뭔지 내 눈으로 확인하고 판단해야겠다 싶은거지.”
“...”
에피알게나스는 가만히 준을 바라보았다. 준은 슬쩍 그녀의 시선을 피하며 입을 열었다.
“왜 그렇게 쳐다보는 거야.”
“그 좋은 머리로 생각해 봐.”
“됐고. 얼른 움직이기나 하자고. 시간이 많지는 않은 것 같으니까. 그리고...”
“그리고?”
“...아니. 됐어.”
준은 고개를 저으며 말을 거두었다. 그의 머리 속에 한 가지 가정이 떠올랐지만 아직 말할 단계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현재 간이 플랫폼 역할을 하고 있는 갤럭시 인더스트리의 브륜스타트 수송함에서 성상민 회장이 무거운 얼굴로 보고를 듣고 있었다.
“준 알스버그가 지구라트에 돌입했다고...? 우리팀은?”
“네. 현재 특작부대 4,5팀이 지구라트를 공격하고 있지만 외도들의 반격이 거세어 아직 안으로 진입하고 있지는 못했다고 합니다.”
“젠장. 대체 어떻게... 델타스피릿 전체가 움직인 것인가?”
“움직인 것은 혼자라고 합니다. 주둔지에는 여전히 병력들이 대기하고 있습니다. 곧 외도들의 대규모 공세를 맞이할 거라고 합니다.”
“그자가 없더라도 막아낼 수 있다는 것인가. 우리가 너무 그를 쉽게 생각했군.”
“이제 어쩌시겠습니까? 차라리 제대로 사정을 이야기 하고 도움을 청하는 편이.”
발레리안이 입을 열었다. 하지만 성상민 회장은 고개를 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