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로젝트 델타-447화 (447/540)

0447 ----------------------------------------------

스파일리 행성

*

*

*

꾸르륵. 꾸륵.

갑작스런 폭발음에 잠에서 깬 웜들이 조금씩 꿈틀대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대형웜들 사이사이에 조그마한 벌레들이 움직이고 있었다. 작다고는 해도 준보다는 큰 녀석들이었다.

얼추 세어보니 대형웜은 약 십수마리, 그리고 작은 벌레들은 백여마리가 넘었다. 그리고 작은 녀석들이 준과 에피알게나스를 향해 빠른 속도로 달려오기 시작했다.

준은 다시한번 쇠못을 꺼내었다.

“도망치자.”

콰앙!

다시한번 바닥에 구멍을 낸 준은 에피알게나스와 함께 바댝으로 뛰어내렸다. 머리위에서 벌레들이 우수수 따라서 내려왔지만, 곧 구멍이 메워지며 더이상 준을 따라서 쫓아오는 놈들은 없었다.

가볍게 녀석들을 제거한 준은 반복해서 지구라트의 벽에 구멍을 내면서 이동했다.

탁.

서은설은 알바트로스의 함교에서 커피를 마시며 오퍼레이터 석에 앉았다. 그녀의 임무는 다름아닌 위성카메라를 통해 지상에서 일어나는 이상현상을 관찰하는 것이다. 지금은 델타스피릿의 주둔지와 준이 돌입한 지구라트의 영상을 띄워놓고 계속해서 지켜보고 있었다.

“흐음. 세 번째 이동인가.”

그녀는 델타스피릿의 주변으로 외도들이 집결하고 있는 것을 확인했다. 위성영상을 분석하는 것은 컴퓨터가 했지만 실제로 눈으로 보고 정보를 전달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었다. 그녀는 펠로우쉽 통신을 통해 막스에게 연락을 넣었다.

-아저씨. 주둔지 10킬로미터 지점에 외도들이 집결하고 있어요.

-숫자는 얼마나 되냐?

-한 500마리 정도? 결정도는 확인이 안돼요. 초비연에게 직접 탐사를 지시하는 편이 나을거에요.

지상에 있는 외도의 결정도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정밀한 기계가 필요하다. 하지만 그정도로 정밀한 기계는 좁은 지역을 탐사하기 어렵기 때문에 이런 경우 발이 빠른 사람을 보내어 직접 근접한 거리에서 눈으로 확인하는 쪽이 더 정확했다.

-네가 대장이냐? 어쨌든 알았다. 지금 준은 어때?

-지구라트에 들어간 이후는 아직 모르겠어요. 준이 주기적으로 상황을 알려주기는 하는데 아직까지 큰 위험은 없는 것 같아요.

-하긴 그 녀석에게 무슨 일이 생길리가. 가끔이지만 한 번 제대로 봉변을 당해봤으면 싶을 때가 있다니까.

-농담으로라도 그런 소리 마세요. 그렇지 않아도 걱정되는데.

-농담이야. 그건 그렇고 요즘 둘은 어때? 벌써 잤냐?

-지금 그런 얘기 할때에요?

-궁금하잖아. 란도넬에서는 거의 자주 붙어있던데.

-됐어요. 사생활은 비밀입니다.

-아직이구만.

-젠장. 눈치는 더럽게 빠르다니까. 진짜.

-엘라가 있는 걸로 봐선 그 녀석 고자는 아닌데 말이야. 왜 그렇게 진도가 더딘거야?

-제가 거절한거거든요.

-뭐? 왜 그런거야? 준이랑 잘되고 싶은거 아니었어?

-그게... 그동안 너무 들이댔더니 정작 중요할때 주저하게 된달까... 어쨌거나 지금 연애상담할때는 아니잖아요. 외도가 온다니까요?

-이미 준비완료하고 있어. 초비연도 보냈고. 하던 얘기나 계속해봐.

-쳇. 어디가서 이야기하면 죽는거 알죠?

-날 뭘로보고. 내가 다른 건 몰라도 입 하나는 정말 무겁잖냐.

-그것이... 제가 사실 처음이라서...

-그럴리가.

-뭐라고요?

-아니. 알았어. 그런 문제였구만. 그런거라면 카렌에게 조언을 얻는게 어때? 그 밝힘증녀라면 네 고민을 어느정도 들어줄 수 있을 것 같은데.

-괜히 이상한 걸 가르쳐 줄 것 같아서 좀 그런데요.

-걱정마. 그 녀석도 분별이라는 게 있을테니까.

-그것도 그렇겠네요. 어쨌든 전 이만 통신 끊을게요. 외도들이 움직이기 시작했어요.

-오케이. 잘해보라고.

펠로우쉽 통신을 마친 그녀는 외도들의 움직임을 막스의 델타폰에 전송했다. 그 정도면 그녀가 할일은 전부 마친 것이다.

“후. 카렌이라. 일단은 전투가 끝나기 까지 기다려야겠지.”

남에게 조언을 듣는 일이, 그것도 상대가 카렌이라니 주저되긴 했지만 그녀는 이내 마음을 다잡았다. 무엇보다도 현재 준이 에피알게나스와 단 둘이 있는 게 마음에 걸렸다.

‘아무리 그래도 외계인에게 밀릴 수는 없잖아.’

두 사람은 주위를 경계하며 천천히 걷고 있었다. 웜이 있던 층을 돌파한 이후에는 그다지 위험한 녀석들을 만나지는 않았다. 다만 그 이후부터 벌집을 쑤신듯 여기저기서 외도들이 튀어나오고 있었다. 방금도 십여마리의 외도를 정리하고서는 이동하는 중이었다. 에피알게나스를 보호하며 이동해야 하는 어려운 일이었지만 지금까지는 별다른 문제는 없었다.

준이 문득 입을 열었다.

“외도가 인간의 지식을 흡수하는 일이 가능할까?”

“그건 왜?”

“아무리 봐도, 이 건물을 외도가 지었다고 생각하는 건 무리야. 눈알외도같은 지성체가 있다고는 하지만 아직은 초보단계라고, 이런 설계는 분명히 건축에 지식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해.”

“글쎄. 내가 알기로는 없어. 외도는 유전자 변이와 진화를 통해서 힘을 길렀으니까.”

“그럼 이 건물을 외도가 스스로 지식을 축적해서 만들었다는 거야?”

준은 제법 잘 구획된 복도를 보며 입을 열었다. 사람의 손이 닿지 않았다고 생각하기 어려웠다.

“몰라.”

말은 그렇게 했지만 그녀의 낌새가 다소 이상한 것을 준은 느낄 수 있었다.

“뭔가 짚이는 거라도 있어?”

“확실하진 않아.”

“뭐라도 괜찮아. 생각나는게 있으면 이야기 해봐.”

“진화프로그램의 막바지에 로오나의 몸에 외도의 유전자를 결합하는 실험이 있었다고 들었어. 만약 그것이 다시 재현된 거라면 아주 불가능한 일은 아니야.”

“왜 그런 짓을 한 거지?”

“적의 힘으로 적을 물리치겠다는 생각이었을거야. 멍청한 생각이지만.”

“결과는 어떻게 되었었지?”

“외도의 유전자와 로오나의 유전자는 기본적으로 융합될 수 없어. 애초에 서로 다른 종인데다가 유전적으로 조금의 유사함도 없으니까. 그걸 억지로 이어붙이기 위해서 대량의 엑조틱 에너지가 필요했어. 하지만 실험은 실패로 돌아갔고, 그 결과 인펙터가 생성되었지.”

“인펙터?”

“감염된 로오나를 그렇게 불렀어. 원래의 의도와는 달리 외도에 먹혀버린 거지.”

“반대로 되어 버린 셈이군. 그래서, 그들은 어떻게 되었지?”

“인펙터는 겉으로 보기에는 로오나와 별로 다르지 않아. 하지만 외도의 공격성을 그대로 가지고 있는데다가, 엑조틱 에너지를 적극적으로 사용할 수 있었어.”

“적극적으로 사용한다는 건 무슨 뜻이야?”

“일반적인 외도는 본능적으로 엑조틱 에너지를 사용해. 아까 봤던 웜 처럼 모든 힘을 물리력으로 치환하거나, 아니면 시미처럼 특정 기술에 올인 되어 있는 방식이거나. 헌데 인펙터들은 다른 로오나들 처럼 엑조틱 에너지를 능숙하게 사용할 수 있었어.”

“그러니까 기술 같은 걸 사용할 수 있다는 거야?”

“응.”

에피알게나스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로오나 처럼 생각하고 로오나처럼 행동하는 외도가 존재한다는 건 제법 심각한 문제였어. 하지만 대부분은 유전자 결합과정중에 사망했고, 살아남은 이들이라고 해도 그다지 강하지는 않았어. 게다가 본능에 이끌리는 외도의 특성상 지능도 심각하게 떨어지는 편이었고 그래서 사태의 심각성에 비해서 큰 영향력은 없었지.”

“하지만 그런 녀석들이 사회에 섞여드는 건 문제가 있었을 텐데.”

“지능이 떨어지는 개체들이야. 충동적이고 공격성을 제어할 수 없다는 점에서는 그저 흔한 사이코패스 살인마와 구분하기 힘든 정도에 불과해. 게다가 그런 존재는 준에게도 익숙하잖아?”

“무슨 소리야?”

“검둥이가 바로 인펙터의 한 종류야.”

“아...”

준은 지금쯤 엘라와 함께 있을 녀석을 떠올렸다. 녀석은 생체실험에 휘말려 외도의 신체를 가지게 되었다.

“아니. 잠깐. 펄도 원래는 인간이었는데. 그럼 그 녀석도 인펙터인건가?”

“어쩌면.”

에피알게나스도 거기까지는 잘 모르겠다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준은 가만히 생각에 잠겼다.

‘생각해보면 자연발생적으로 인간이 외도로 변화할 리는 없어. 펄도 어쩌면 검둥이처럼 실험대상이었을 수도 있겠군.’

알카트뢰즈에서 있었던 실험, 그것이 어쩌면 멸망 직전의 이스카야 행성에서도 동일하게 이루어지고 있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과 외도의 융합은 계속해서 시도되고 있었고, 이번 일 역시 그 연장선상에서 일어나는 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갤럭시 인더스트리가 이 일에 어디까지 연관되어 있을지 궁금하군.”

알카트뢰즈에서는 오래전부터 유사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었다. 어쩌면 그 연구 자체가 로오나의 진화프로그램을 차용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곳의 기술력이 갤럭시에 흘러들어간 것만은 명확해진 지금, 생각보다 깊숙이 이 일에 개입하고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녀석들은 진화프로그램을 통해서 대체 뭘 하려고 했던 걸까.”

“일차적으로는 항력의 비밀을 풀려고 했던 것에서 시작되었지.”

“누구냐!”

준은 목소리가 들려오는 쪽을 향해 몸을 돌렸다. 그곳에는 비쩍마른 사내가 기이한 눈빛을 하고 준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렇게 가까이 다가올때까지 눈치채지 못하다니.’

준의 감각은 상당히 뛰어난 편이다. 민첩스탯이 높게 찍히면 찍힐수록 감각이 예민해 지는 데다가, 각종 관련 패시브 스킬들도 가지고 있어 어지간한 상급헌터들은 아무리 기척을 죽여도 준의 눈을 피할 수 없었다.

하지만 저 사내는 준과 겨우 10여미터 정도 되는 거리에서 갑자기 나타났다. 마치 처음부터 그자리에 있었다는 듯, 아무런 위화감 조차 느끼지 못했다.

“가능하면 기다리려고 했는데 말이야. 기껏 공들여서 만든 집을 마구잡이로 부수고 있는 걸 그냥 두고보고 있진 못하겠더군.”

“네 녀석이 이 지구라트의 주인이냐?”

“그런 셈이지. 주인이라는 말에 어폐가 있긴 하지만.”

사내는 거의 살점이라는 것이 없었다. 하지만 그 뼈가 앙상하게 드러난 육체는 기이하게도 활력을 띄고 있어서 살아있는 사람이라기 보다는 보다 고차원의 다른 존재라는 느낌을 주게 만들었다.

“굳이 찾는 수고를 덜어줘서 고맙군.”

준은 조명 대신으로 들고 있던 라이트세이버를 사내에게 겨누었다. 그는 표정을 굳히더니 갑자기 이전과 다른 말투로 입을 열었다.

“거봐. 이 녀석은 말이 안통한다고 했잖아. 그냥 죽여버리자니까.”

“아직 성급한 판단을 내릴때는 아니다.”

“제기랄. 넌 너무 신중해서 탈이야.”

“...뭐하는 거지?”

갑자기 혼잣말을 하는 사내를 향해 준이 미간을 찡그리며 입을 열었다.

“아. 미안하군. 다소 혼란스러울 수 있겠지만 이해해주게. 우리도 익숙해지기 어려우니 말이야.”

“이중인격 같은 건가?”

“정확히 말하면 우리는 두 개체가 하나로 합쳐진 상태라고 할 수 있겠군. 어쨌건 중요한 건 그게 아니라, 우리가 왜 네 앞에 나타났느냐 하는 거겠지.”

“말해봐.”

준은 일단 상대가 싸울 의향이 없다는 것을 느끼고는 입을 열었다.

“어디까지 말했었지? 아. 그래 항력에 대한 연구에서 부터라고 했었지. 너도 잘 알고 있겠지만, 우리는 로오나의 유산을 획득한 이들이다. 우연이라고는 하지만 사실 그리 기적적인 확률은 아니었다. 언젠가부터 이 은하 곳곳에 로오나의 함선들이 등장하기 시작했으니까. 어쩌면 너도 그 중 하나를 얻은 거겠지.”

그의 말에 준은 약간 흠칫 하며 입을 열었다.

“어떻게 알았지?”

“그 로봇을 보고도 모른다면 바보겠지.”

“하긴...”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