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46 ----------------------------------------------
스파일리 행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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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 알스버그. 이곳은 갤럭시 인더스트리의 영역이다. 당장 물러서도록.]
준이 이곳에 와 있다는 정보를 이미 입수한 모양이었다. 준은 대답하지 않았다. 여기서 굳이 대화를 해봐야 이득볼 것이 없다는 생각에서였다.
“어떻게 할 생각이야?”
“먼저 움직여야지.”
준은 흘깃 지구라트를 바라보았다. 저 안에 조각이 있다. 원래 생각은 로버를 이용해 지구라트를 해체할 생각이었다.
‘느긋하게 바깥에서 부수고 들어가는 건 어렵겠군.’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그러려먼 그 전에 뒤에서 자신을 향해 사격을 하고 있는 병사들을 제거해야 했다.
하지만 그것은 가능하면 마지막까지 미뤄두고 싶은 선택이었다.
‘지금은 아직 싸울때가 아니야.’
명분은 있다. 파티마제국 측으로 외도가 넘어오지 못하도록 주둔지를 꾸렸고, 그곳에 외도가 먼저 공격을 했다. 외도의 공격을 선제 방어하기 위해서 지구라트를 제거했다는 핑계정도를 만들어 내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게다가 갤럭시 인더스트리에서 델타스피릿의 주둔지에 외도를 몰아넣었다는 간접적인 증거도 있다. 그정도로 명분을 쌓아두었으니 괜히 여기서 전면대결을 할 필요는 없었다. 준이 필요한 것은 전쟁이 아니라 오리진의 조각이었으니까.
“간다! 꽉 잡아!”
“무, 무슨?”
준은 로버를 움직여 지구라트를 향해 돌진했다. 에피알게나스가 당황하며 콘솔을 강하게 쥐었다. 로버와 로켓런처에 의해서 상당수가 썰려나가긴 했지만 여전히 외도의 숫자는 수백이 넘게 남아있었고, 녀석들은 지구라트를 보호하듯 근처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키에엑!
갑자기 돌진하는 로버를 향해 외도들이 달려들었다. 동시에 갤럭시 인더스트리 진영에서도 로켓런처가 발사되었다. 준은 몸으로 외도를 뚫고 지나가면서 지구라트의 입구까지 달렸다. 숨구멍이자, 외도들이 출입하는 용도로 쓰이는 작은 구멍들이 눈에 보였다.
“내려!”
“뭐?”
“시간없어!”
준은 로버의 가슴을 열고는 그대로 에피알게나스를 안고 뛰어내렸다. 다음 순간 로버를 인벤토리에 집어넣고 준은 그대로 날카로운 가시가 나있는 지구라트의 구멍으로 몸을 던졌다.
촤자작!
가시들이 날카롭게 바짝 서며 준의 앞길을 막았지만 그는 라이트세이버를 휘두르며 그대로 구멍 안으로 뛰어들어갔다. 에피알게나스가 준의 목을 강하게 끌어안았다.
콰과과광!
저쪽에서 발사한 로켓런처로 인해 지상이 화염으로 뒤덮였다. 수백마리의 외도가 검은 대지위에서 불타올랐다.
“후... 어떻게든 들어왔군.”
준은 라이트세이버를 들어 어두컴컴한 주변을 밝혔다. 온통 검은 사방의 벽은 끈적한 진액으로 뒤덮여 있었다. 준은 조심스럽게 몸을 일으켰다. 아니, 일으키려 했다. 그는 고개를 숙이고는 에피알게나스를 향해 입을 열었다.
“이제 좀 떨어져도 되는데.”
“싫은데.”
“불편해.”
준은 떨어지지 않으려는 그녀를 억지로 떼어내고는 몸을 일으켰다. 에피알게나스의 불만스러운 시선이 느껴졌지만 애써 무시했다.
쿠웅! 쿵!
위에서는 전투가 계속되고 있는 모양이었다. 갑자기 로버가 사라지면서 외도들의 타겟이 헌터들에게로 향했을 거라고 생각되었다.
“덕분에 외도들을 더 상대하지 않아도 되니 고맙다고 해야하나.”
갤럭시 인더스트리의 병력들은 얼추 수천이 되어 보였다. 외도들의 수는 그보다 훨씬 적었지만 개개의 전투력으로 따지면 비등하다고 봐도 되었다. 하지만 변수는 그들이 무장하고 있는 로켓런런처였다. 결정체 폭탄을 발사 할 수 있는 그 물건은 외도의 실드를 효과적으로 벗겨낼 수 있었다.
“너무 낙관하지마. 안에도 외도는 있을거야.”
“나도 알아. 그래도 수월해진 건 사실이지. 빨리 움직이자. 제법 규모가 큰 편이라 오래 걸릴거야.”
란도넬에 있던 지구라트에 비해서도 몇 배는 되는 규모였다. 늦장을 부리다가는 외도를 정리하고 진입한 헌터들에게 따라잡힐 수도 있었다.
꾸륵. 꾸륵.
신경다발이 어지럽게 얽혀 있는 생체조직이 가득 찬 넓은 공간. 그 한가운데 한 사람이 있었다. 그는 눈을 감은 채 신체의 절반 정도가 바닥에서 솟아오른 살덩어리에 파붇혀 있었는데 숨을 쉬고 있는 것으로 보아 생명활동을 유지하고 있는 것 만은 틀림없었다.
모세혈관이 확장되어 피부에 거미줄처럼 붉은 혈선이 그어져 있었고, 몸은 거의 2미터에 달하는 크기였지만 오랫동안 움직인 적이 없는 듯 비쩍 마른 몸을 하고 있었다.
“지독히도 말을 듣지 않는 놈들이군.”
석상처럼 꼼짝않고 있던 그의 입이 열리면서 쇳소리같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듣는 사람은 없었지만 그는 계속해서 입을 움직였다.
“진화프로그램은 아직인가.”
“아직이다.”
“얼마나 시간이 필요하지?”
“조만간.”
“그들이 도착하기 전에 끝낼 수 있을까?”
“최대한 저지해봐야지.”
“그자는 강하다.”
“허나 이곳은 우리의 영역이다.”
“다른 형제들은 어떻지?”
“순조롭게 진행중이다. 하지만 아직 시간이 필요하지.”
분명히 말하는 사람은 한사람이었지만 그는 마치 대화를 하듯 입을 열고 있었다. 말투와 목소리까지 달랐다. 한 사람의 몸속에 두 사람의 인격이 들어있는 듯, 그는 계속해서 혼자 대화를 이어나갔다.
“기분나쁜 곳이야.”
에피알게나스가 꾸물거리는 통로벽에 손을 가져다 대며 입을 열었다. 통로는 제법 넓었다. 준은 맵을 열어 목적지를 확인하며 방향을 움직였다. 이전과 달리 3차원 매핑이 가능했기 때문에 넓다고는 해도 길을 헤매지는 않을 수 있었다.
“지하로 50미터 정도는 내려가야해. 엄청나게 깊군.”
지구라트의 안은 언제 뭐가 나올지 모른다. 곳곳에 작은 방이 있었고, 그곳은 외도들이 휴식을 취하는 곳이라고 생각되었다. 기본적으로 구조는 개미굴과 비슷했지만 방과 방들이 촘촘하게 연결되어 있는 것을 보면 인간의 건축물에 뒤지지 않는 효율적인 공간활용을 하고 있는 듯 보였다. 다만 대부분의 외도들이 현재 밖에 나가 있는 상태다보니 거의 대부분 비어 있었다.
“확실히 기존의 지구라트와는 다르군.”
잘 정리된 구획과 효율적인 공간활용은 이전에는 볼 수 없는 특징이었다. 적어도 인간 이상의 지성체가 만든 생체건물인 것만은 틀림없었다.
에피알게나스는 꿈틀거리는 벽에 살짝 상처를 내었다. 그러나 검은 진물이 흘러내더니 순식간에 상처가 아물었다. 그녀는 흥미로운 얼굴로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엄청난 회복속도야. 이정도의 재생력이면 보통의 신진대사로는 불가능해. 필요한 에너지도 막대할 거고. 대체 어디서 이만한 에너지를 보급하고 있는거지?”
“오리진의 조각이야. 말했잖아. 이 지구라트의 중심에는 조각이 잠들어 있다고.”
“하지만 조각의 에너지를 생체에너지로 환원시킨다는 것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닌데.”
“진화프로그램이라고 알아? 로오나의 기술이라고 하던데.”
갑작스런 준의 물음에 에피알게나스가 의아해 하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전쟁의 말미에 외도를 상대하기 위해서 개발중이던 프로젝트야.”
“그게 뭔지 자세히 설명 해줄 수 있겠어?”
“인위적으로 진화를 조절해서 로오나의 신체를 외도와 맞설 수 있는 강력한 개체로 바꾸기 위한 실험이었지. 물론 공식적으로 인정받는 연구는 아니었어. 무엇보다도 생체병기에 대한 연구는 당시의 로오나에게도 비윤리적이라고 여겨졌으니까. 그리고 결국 실패하기도 했고.”
“눈알외도의 말로는 그 진화프로그램이라는 것이 여기서 행해지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하더군.”
“그럴리가. 외도가 스스로 우리의 기술을 흡수해서 실험을 진행하고 있다는 말이야?”
에피알게나스는 믿을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글쎄. 아직 확실한 건 없어. 하지만 적어도 지구라트의 성장세가 예상을 웃도는 것은 확실해. 그게 로오나의 생체실험프로젝트던, 아니면 외도의 새로운 진화인지는 결국 눈으로 봐야 알 수 있는 거겠지만. 눈알녀석이 그 사실을 알고 있다는 것부터가 외도가 로오나의 기술을 흡수했다고 봐야하는 것일 수도 있어.”
“그다지 좋은 소식은 아니네.”
에피알게나스의 표정이 어둠속에서 더욱 창백하게 보였다. 외도에 의해 종족 전체가 몰살당한 기억이 다시금 떠오르는 모양이었다.
준과 에피알게나스는 계속해서 이동했다. 대부분 바깥에 있다고 하지만 지구라트의 내부에도 제법 외도가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 작은 녀석들이었고 강력한 녀석이라고 해도 최대 노란색 외도정도 였기 때문에 어렵지 않게 해치우면서 움직일 수 있었다. 하지만 길 자체가 일직선으로 나있지 않고 미로처럼 얽혀 있어 좀처럼 목적지에 가까워지지 않았다.
거의 삼십여분을 이동한 끝에 준은 걸음을 멈추었다.
“왜?”
“아니. 이런식으로는 끝이 없을 것 같아서.”
3차원 매핑시스템은 인근의 지형을 확실하게 그려주고 있었다. 때문에 지도만 보면서 움직여도 길을 잃을 염려는 없었다. 문제는 가는 길 자체가 무척이나 길다는 것이다. 미로처럼 얽힌 길을 일일이 따라가면서 수시로 나타나는 외도를 정리하면서 이동하면 며칠이 아니라 한달이 지나도 목적지에 도착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준은 곰곰이 생각하다가 라이트세이버를 휘둘러 벽에 상처를 내었다.
촤악!
벽에 상처가 생기며 검붉은 피가 튀었다. 상처는 제법 깊었지만 벽 자체가 두꺼워 반대편이 보인다거나 하지는 않았다.
“역시 순식간에 회복하는 군,”
상처입은 벽은 눈깜박할 사이에 완전히 수복되어 원래의 상태로 돌아갔다. 검으로는 어렵다는 생각에 준은 인벤토리에서 쇠못 하나를 꺼내들었다.
“뭐하려고?”
“굳이 만들어진 길을 갈 필요는 없잖아. 이대로 목적지까지 직행할 생각이야.”
준은 쇠못을 허리높이 정도에 띄운 다음 에피알게나스를 뒤로 물렸다.
파직!
전류가 튀며 준의 머리칼이 솟아올랐다. 쇠못의 주위에 전자기레일을 깔고, 발휘할 수 있는 최대출력으로 전류를 밀어넣었다.
콰앙!
굉음과 함께 쇠못이 불꽃을 뿜으며 그대로 대각선 아래로 파고들었다. 생체조직으로 된 통로는 레일건의 위력을 버티지 못하고 커다란 구멍을 내며 아래쪽 통로를 만들어 내었다.
단숨에 아래층으로 향하는 길을 만들어 낸 준은 에피알게나스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이쪽으로.”
“...”
“뭐해?”
“아무것도 아니야.”
에피알게나스는 준의 손을 잡았다. 준은 그녀와 함께 구멍난 통로를 통해 아래쪽으로 내려섰다.
통로 아래는 상당히 넓은 공간이었다. 경험상 지구라트에서 넓은 공간의 의미는 그만큼 강력한 존재가 있다는 뜻이었다.
크르르-
그리고 어둠속에서 푸른빛을 발하는 눈동자가 번득였다. 준이 혀를 차며 입을 열었다.
“파란색 외도가 있는 건가?”
라이트세이버를 높이 들어 광량을 높이자, 공간 전체가 눈에 들어왔다. 꿈틀대고 있는 웜들이 빼곡하게 공간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하나하나가 수십미터는 되어보이는 대형웜이었다. 준은 몸을 부르르 떨고는 입을 열었다.
“이것들 전부 파란색 외도인건가?”
“그런 것 같은데. 이길 수 있겠어?”
“로버를 불러낸다면 불가능할 것 같진 않지만...”
준이 천장을 올려다보고는 고개를 저었다. 공간 자체는 넓었지만 높이는 채 10미터가 되지 않았다. 이런 곳에서는 로버를 제대로 기동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