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로젝트 델타-440화 (440/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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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일리 행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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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보병전차도 없이?”

“가는 건 나혼자야. 너희들은 여기서 외도를 상대하면서 기다리고 있어. 내가 없어도 충분히 막아낼 수 있을거야. 정 위험하면 그냥 도망치라고.”

“혼자서 지구라트를 박살내겠다는 거냐? 아무리 네가 강하다고 해도 그건...”

“로버를 데리고 갈 생각이야. 경험치 소모가 극심하긴 하지만 눈뜨고 조각을 내주는 것 보다는 그편이 낫겠지.”

“하긴... 헌데 그럴거면 차라리 너 혼자 지구라트를 전부 박살 내는 쪽이 낫지 않아? 굳이 우리까지 투입할 필요가 없을 것 같은데.”

막스는 솔직하게 이야기 했다. 어쨌건 간에 헌터를 총괄하는 입장에서 자신들이 필요없다고 말하는 것은 제법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이었다. 준은 그 마음씀씀이에 고마워하면서도 고개를 저었다.

“로버를 기동하는 건 경험치 소모가 너무 커. 특히 중력권 내에서는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엑조틱 에너지가 낭비되니까. 가능하면 함께 움직이는 쪽이 나아. 그 녀석이 왜 공장지하에 짱박혀 있었겠냐?”

“로오나도 감당하지 못할 만큼 에너지 소모가 크다는 말이군.”

막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가만히 이야기를 듣고 있던 카심이 입을 열었다.

“그 로오나라는 게 뭡니까?”

“외계인.”

“하하하. 누굴 바보로 아는 겁니까? 외계인이라니.”

막스의 대답에 카심이 웃음을 터뜨리며 입을 열었다. 하지만 막스와 준이 웃지 않자 점점 웃음소리가 잦아들었다. 그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저, 정말입니까? 정말로 외계인이 존재하는 겁니까?”

“아직은 기밀이야. 이 이야기가 밖으로 새나가면 어떻게 되는지 알지?”

막스가 목에 손을 그으며 서늘한 표정을 지었다. 카심이 결의에 찬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 카심. 절대로 비밀을 발설하지 않겠습니다. 목숨을 걸고 맹세합니다.”

“그래. 좋은 태도다. 그럼 이제 돌아가서 쉬고있어. 너도 오늘 밤에는 전투를 해야할테니까. 준이 없으면 상급헌터인 네가 해줘야 할게 많아.”

“알겠습니다.”

카심은 그렇게 말하고는 준을 바라보았다. 준이 고개를 끄덕이자,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숙소로 돌아갔다.

그의 뒷모습을 보며 준이 피식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리 대단한 비밀은 아니잖아? 에피알게나스를 아는 사람도 많고 외계인에 대한 정보는 사실 조금만 파면 나올텐데.”

“놀리는 쪽이 재미있잖아? 그리고 굳이 알려서 좋을 것 없는 정보이기도 하고.”

“하긴. 어쨌든 통신을 넣어뒀으니 에피알게나스가 곧 도착할거야. 내가 출발하고 나면 혼란이 없게 잘 통솔하고 있으라고.”

“걱정마. 네가 없다는 사실 조차 모르게 할테니까.”

막스가 가슴을 탕탕 치며 입을 열었다.

“늦어.”

셔틀을 타고 사람들의 눈을 피해 숙소에서 약간 떨어진 지역에 내려앉은 그녀는 약간 차가운 태도로 입을 열었다. 하얀 머리칼이 모래바람에 휩쓸려 거칠게 흩날리고 있었다. 평소 감정표현을 잘 하지 않는 그녀였기에 상당히 화가 났음을 알 수 있었다.

“아. 미안. 잠깐 처리할 일이 있어서. 바로 출발하자.”

“어디로 가면 되는거야?”

“저기 보이는 산 너머. 금방 도착할거야. 한 시간 정도 걸릴 걸.”

“로버를 타고 가려는 거야?”

“그래. 아무래도 위험하니까.”

100킬로미터는 상당히 먼거리였다. 로버의 이동속도는 우주공간에서는 이론상 무한히 빨라질 수 있지만, 대기권에서는 공기의 마찰 때문에 한계속도가 존재한다. 구조자체가 대기권에서 비행하기에 적합하지 않다보니 시속 500 킬로미터를 넘지 못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엑조틱에너지의 소모량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근처까지는 셔틀을 타고 움직일까 하고 생각했지만, 위성을 통해 비행형 외도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녀석들을 셔틀 한기로 전부 막아내기는 버거웠다. 게다가 검은대지 곳곳에 또 다른 정보로는 대공공격이 가능한 포탑 비슷한 것도 있다고 들었다.

장갑이 빈약한 셔틀로는 몇 대만 맞아도 버티지 못하고 추락 할 것이다. 그럴바에는 처음부터 로버를 타고 날아가는 쪽이 나았다.

“경험치 소모가 크잖아.”

“감당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야. 그리고 나는 그렇다 쳐도 네가 위험할 수 있으니까.”

“나는 괜찮아. 내 완전회복능력은 어떤 상황에서도 발동되니까. 설령 죽기 직전이라도 다시 되살아날 수 있어.”

“경험치 얼마 아끼자고 널 그런 위험에 빠뜨리고 싶지는 않아.”

“....”

에피알게나스가 가만히 준을 쳐다보았다. 침묵이 부담스러운 준이 먼저 입을 열었다.

“왜 그렇게 쳐다보는 거야?”

“서은설에게 들었어.”

“뭐, 뭘?”

“...아무것도 아냐.”

“그러냐.”

말은 그렇게 했지만 준은 그녀가 하고자 하는 말을 알 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을 통해 로오나의 혈통을 유지하려고 한다. 준의 육체는 오리진을 통해 로오나의 유전적으로 가까워진 상태. 아이를 갖는 것도 어렵지 않은 일일 것이다.

그녀를 잡아 둘 수 있다면 그 이상의 일도 할 수 있는 준이다. 하지만 아직은 때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너무 구식인거겠지.’

준은 복잡한 생각을 접어두고 로버를 불러내었다.

[공기가 좋지 않은 곳이군. 덥기도 하고. 이건 뭐야? 기름 타는 냄새인가?]

녀석은 나오자마자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 평소에는 귀찮았지만, 지금은 오히려 반가운 상황이었다.

“근처에 유정이 타고 있어. 딱히 끌 방법이 없어서 그냥 내버려 둔 상태야.”

[바보녀석. 근처를 진공상태로 만들면 될 것 아니냐.]

“좁은 공간이라면 몰라도, 저렇게 광범위한 지역의 공기를 전부다 빼라고?”

[실드전개를 하면 가능하지 않은가? 실드내부의 공기를 모두 소모하고 나면 천천히 꺼지겠지.]

“그게 가능할까...?”

준은 가만히 생각에 잠겼다. 화재범위 자체는 상당히 넓다. 거기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 범위도 넓어져 지금에 와서는 거의 수백미터에 걸쳐 불이 타오르고 있는 상황이다.

[나와 함께 하면 가능하다.]

“흠... 좋아. 일단 가보자고. 에피알게나스.”

“응.”

그녀는 조심스럽게 누워있는 로버의 가슴에 올라탔다. 뒤를 따라 준이 올라탔고, 기잉, 하는 소리와 함께 로버의 가슴이 닫혔다.

파팟-

형광등이 밝혀지듯 어두웠던 내부가 한 구획씩 밝아졌다. 단순한 조명이 아니라, 바깥의 상황을 보여주는 디스플레이였다. 준은 직접 고개를 돌리는 것만으로 후방까지 확인할 수 있었다.

“로버다.”

그때 숙소 창을 통해서 로버가 일어나는 모습을 본 장이삼이 입을 열었다. 그러자 같은 방에 있던 사람들이 전부 창문을 향해 달라붙었다. 다들 영상으로는 본적 있지만 실물로 본 것은 처음이었다.

“진짜 저게 움직이는 구만...”

위웅비가 감탄하며 입을 열었다.

“20미터가 넘지 않습니까? 대체 저런 물건이 어떻게 걸어다니는 거죠?”

“보통의 강철로 만들지는 않았겠지. 저정도면 무게만 수백톤인데 저렇게 얇은 다리로 움직일 수 있을리 없잖냐. 걷기만 해도 관절이 뚝뚝 부러져 나갈걸.”

“여하튼 좋은 구경... 어, 어디로 날아가는 거지?”

유관덕이 깜짝 놀라며 외쳤다. 허공으로 훌쩍 떠오른 로버가 숙소를 넘어 유정이 있는 쪽으로 날아가는 것이다.

황급히 위웅비 일행이 정문쪽으로 달려나왔다. 로버는 정면 공터 앞쪽 수킬로 미터 지점에 있는 불타고 있는 유정을 향해 날아가고 있었다.

위웅비 일행의 곁으로 헌터들이 모여들었다. 그들 역시 숙소에서 쉬고있다가 로버를 보고 뛰어나온 것이다.

파앗!

그리고 순간적으로 로버에서 뿜어져 나온 빛이 불타오르고 있는 유정 전체를 감싸안았다. 육각형의 실드가 넓게 펼쳐졌고, 지금까지 계속해서 바람에 실려오던 뜨거운 공기가 잠시지만 확실하게 사라진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설마... 저 불을 끈건가?”

위웅비가 믿을 수 없다는 듯한 눈으로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눈이 좋은 란테르트가 황급히 입을 열었다.

“아직은 아닌 것 같습니다. 저 안쪽에는 여전히 불타고 있는 것 처럼 보이는데요.”

“그렇군. 대체 뭐하려는 거지?”

웅성웅성.

지켜보던 사람들이 로버의 행동에 대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 사이, 실드의 크기가 점점 작아지기 시작했다. 처음 수백미터 크기로 펼쳐져 있던 실드가 점점 작아지더니 직경 50미터 이내까지 줄어들었다.

까맣게 그을린 대지는 더이상 불길을 내뿜지 못한 채로 연기만 뿜어내고 있었다. 짧은 사이 광범위한 지역의 화재를 진압한 것이다.

“산소를 차단한 것 같습니다.”

란테르트가 입을 열었다. 그러자 사람들의 시선이 그를 향했다. 대부분 기초교육과정을 거치지 못한 이들이라, 이런 간단한 이야기에도 설명이 필요했다. 란테르트는 잠시 멋적은 웃음을 짓고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불이 나기 위해서는 반드시 산소가 필요합니다. 불이라는 건 격렬한 산화반응의 일종인 ‘연소’의 과정에서 발생하는 고열과 빛의 방출현상이니까요. 연소를 하기 위해선 세가지가 필요한데 산소, 가연물, 열입니다. 이 중 하나만 없어도 불은 일어나지 않지요.”

“그러니까 저 실드가 산소를 차단하고 있다는 말이야?”

위웅비가 입을 열었다.

“아마도 그런 것 같습니다. 원리는 모르겠습니다만. 게다가 저런 넓은 범위에 실드를 걸 수 있다니요.”

준 알스버그는 함대전을 벌일때 알바트로스 전체에 실드를 전개한 적도 있다. 하지만 그 경우는 준이 직접 제작한 물건이기 때문에 비교적 수월한 편이었다. 준의 제작품은 사실상 신체의 확장이라고 해도 다르지 않은 상황이니, 마나가 다수 들긴 하지만 불가능한 건 아니었다. 하지만 이번 경우에는 중간 매질 없이 오로지 자신의 힘으로 넓은 공간을 커버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본래 그 능력을 가지고 있던 시어도어 대령의 능력을 이미 뛰어넘는 수준이었다. 그 역시 이렇게 넓은 공간을 실드로 막아내지는 못했다.

거의 10여분에 걸쳐 불은 계속해서 타올랐다. 그 사이 거의 대부분의 헌터들이 숙소앞 공터에 모여들었고, 막스도 맨앞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저거 경험치 엄청 먹을텐데. 쩝. 아깝군.”

로버를 운용하는데 정확히 얼마의 경험치가 들어가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일전에 함대전에서 소모한 경험치의 양이 백만을 가볍게 넘어갔던 것을 생각해보면 적어도 적은 양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었다.

“하지만 덕분에 외도의 숫자는 줄어들겠군.”

자신있게 말은 했지만 아직 세번이나 남은 몬스터 웨이브를 준 없이 치뤄낸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닐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유정의 불이 꺼지면 그만큼 몰려오는 외도의 숫자는 줄어들게 된다. 어쩌면 더 이상의 몬스터웨이브가 없을 수도 있다.

그것때문에 굳이 무리해서라도 저 불을 끄려고 하는 모양이었다.

치이이-

준은 칠흑같이 어두운 공간에서 집중을 놓치지 않으려 애쓰면서 계속해서 실드를 전개하고 있었다. 약 10분간의 실드 전개로 벌써 10만에 달하는 경험치가 날아갔다. 하지만 이대로 내버려 두면 영원히 불타오를 것이고, 그로인해 행성 자체가 받는 피해를 생각해보면 저렴하게 먹히는 것이다.

게다가 몬스터웨이브의 숫자도 줄어들 것이다. 퀘스트를 완료하지 못한다는 것은 아쉽지만, 이미 상당한 경험치를 축적하고 있는 상황에서 한두 개의 퀘스트를 버린다고 해서 큰 손해는 아니었다. 중요한 것은 아군병력을 보존하고 조각을 얻는 것.

이번 스파일리 행성 원정의 목적은 그것이었고, 퀘스트는 어디까지나 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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