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39 ----------------------------------------------
스파일리 행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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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평범한 헌터를 단숨에 상급헌터로 만들 수 있는 강력한 무언가가 있다고 하더군. 그것도 일회용이 아니라. 무슨 말인지 알겠어?”
“상급헌터로 이루어진 헌터부대를 만들 수 있다는 말입니까?”
“그래. 그러니까 그렇게 위에서 난리겠지.”
“어떻게 그런 것이...”
“확실치는 않은데 말이지.”
크로울리가 목소리를 낮추며 말을 이었다.
“외계인의 기술이라고 하더군.”
“외계인이요?”
부하가 말도 안된다는 듯 그를 쳐다보자 크로울리가 어깨를 으쓱하며 입을 열었다.
“외도가 존재하는 판국에 말이 안되는 건 아니잖아.”
“하지만...”
“됐고. 어쨌든 그 이야기가 사실이라면 반드시 우리가 얻어야 해. 혹시 알아? 이번 기회에 우리도 상급헌터가 될 수 있을지.”
크로울리는 아직 중급헌터였다. 갤럭시 소속의 상급헌터들은 다른 이들과 달리 저기 보이는 전차에 걸터앉아서 편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크로울리의 명령도 받지 않고, 상황에 따라서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는 권한이 있었다. 솔직히 말해 꼴보기 싫은 놈들이었지만 그만큼 실력은 확실하니 뭐라고 할 수도 없었다.
들썩.
그때 검은대지가 들썩이며 헌터들이 휘청거렸다. 3개 팀 3천여명이 일제히 걸음을 멈추었다. 크로울리가 급히 정지궤도에 있는 함선에게 통신을 보냈다.
[특작부대 1팀장 크로울리다. 인근에서 땅이 울릴 정도의 강력한 충격파를 감지했다. 정찰을 부탁한다.]
[전방 5킬로 미터 부근, 30미터짜리 대형 웜이 포착되었다. 빠른 속도로 접근하고 있으니 전투준비하도록.]
“이런 젠장...”
크로울리의 입에서 욕설이 흘러나왔다. 30미터짜리 웜. 최소한 파란색 외도였다. 그는 고개를 돌려 전차위에 걸터앉아 있는 상급헌터들을 바라보았다.
‘저 녀석들에게 기대하는 수밖에...’
그는 니들건을 매고 있는 줄을 단단히 조였다. 델타폰이라는 이름의, 델타스피릿에서 만든 것이 분명한 기기를 통해서 대량구매한 제품이었다. 자사의 엑조틱웨폰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니들건을 전 헌터들에게 보급한 것이다. 그만큼 갤럭시 인더스트리는 자존심까지 버려가며 이번 작전에 동원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동원하고 있었다. 겨우 파란색 외도 하나에 포기할 수는 없었다.
두번째 외도의 공격은 매서웠다. 수는 백여마리로 처음보다 적었지만, 대부분이 주황색 외도였고, 노란색 외도도 심심찮게 섞여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덩치가 크다보니 포격에도 더 잘맞았고 숫자에서 델타스피릿의 헌터들에 비해 압도적으로 적었기 때문에 이번에도 큰 피해없이 물리칠 수 있었다.
연거푸 두번의 전투를 치른 준은 일단 병력들을 뒤로 물렸다. 밤새도록 전투를 한 바람에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지만 불타는 유정근처에서 휴식을 취할 수는 없기 때문이었다.
“덥구만.”
막스가 손 부채질을 하면서 입을 열었다. 병력들은 숙소 안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현재 1천명을 수용할 수 있는 대형막사는 델타엔진을 새롭게 설치하여 중앙냉방장치를 가동하고 있었다.
덕분에 안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병력들은 쾌적한 환경에서 떨어진 체력을 회복하고 있었다.
하지만 상급자들과 몇몇 정찰조들은 외도의 움직임에 기민하게 반응하기 위해서 숙소 밖에서 진을 치고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평균온도가 30도에 육박하는 기후였는데 거기에 유정까지 타오르고 있었으니 거의 50도가 넘는 대기 온도가 유지되고 있었다. 막스도 펠로우쉽 계약자였기에 버텼던 것이지 일반인이었다면 한시간도 채 버티지 못하고 탈수증으로 쓰러졌을 것이다.
“그러게 들어가서 쉬라니까.”
준이 땀을 줄줄 흘리는 막스를 보며 입을 열었다. 그는 볼을 실룩이며 대답했다.
“사장이 나와있는데 내가 아무리 뻔뻔해도 그렇겐 못하지.”
“네가 여기 나와있어봐야 딱히 할일도 없잖아.”
“말동무 정도는 해 줄 수 있어.”
막스의 말에 준이 피식 웃음을 흘렸다. 알카트뢰즈에서부터 막스는 준의 가장 가까운 벗을 자처했다. 사실 둘 사이에 그렇게 강렬한 교감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근본적으로 살아온 배경이 다른 두 사람이 잘 통하기란 힘든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막스는 항상 준의 곁에 머물렀다.
‘직업으로 정치인을 달고 있는 게 우연은 아니로군.’
하지만 굳이 나쁘게는 보지 않았다. 본능적으로 이득에 이끌리는 것은 인간의 당연한 본성이다. 그리고 만약 준이 모든 것을 잃었을 때 막스가 그의 곁을 떠난다면, 그것은 준 자신의 잘못이기도 했다. 그토록 오랫동안 곁에 사람을 두고서도 마음을 얻지 못한다면 그 쪽이 오히려 더 문제이지 않을까.
“무슨 생각을 그리 하고계십니까?”
이제는 제법 준의 손발 노릇에 익숙해진 카심이 준의 표정을 읽고 입을 열었다.
“갤럭시 인더스트리에서 이쪽으로 외도를 몰이하려는 이유가 뭘까하고.”
“그냥 겁주려는 것 아닐까? 완전히 실패했지만 말이야.”
막스가 대수롭지 않다는 듯 입을 열었다. 준이 고개를 가볍게 끄덕였다. 그런 의도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카심도 동의하듯 입을 열었다.
“아마도 함부로 끼어들지 말라는 메시지 일 겁니다. 그들이 지금까지 줄곧 통신을 거부한 걸 보면 어느정도 알 수 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내 생각도 크게 다르진 않지만, 한 가지 더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어.”
“뭐지?”
“뭡니까?”
두 사람이 동시에 입을 열었다. 두 사람 사이 시선이 잠시 얽혔다. 막스가 입을 열었다.
“이 녀석 너무 믿지마라. 보니까 딱 배신하기 좋은 상이다.”
“흥. 대장님이야 말로 아부 솜씨가 장난이 아니시더만요. 제 경험상 그런 사람은 별로 믿지 못하겠던데요.”
“뭐 임마?”
“뭐요? 한판 붙으시게요?”
두 사람 사이에 가볍게 불꽃이 튀었다. 준이 한숨을 쉬었다.
“남자들 사이에 끼이고 싶은 생각은 없는데.”
“뭐. 진짜 싸우겠다는 건 아니고.”
막스가 먼저 물러섰다. 자존심 때문에 상급헌터와 싸울 정도로 바보는 아니었다. 카심도 지위가 더 높은 막스가 먼저 물러서자 무안한 듯 머리를 긁적이며 입을 열었다.
“죄송합니다. 잠시 흥분해서.”
“아니. 뭐. 젊은 친구가 그럴 수도 있지.”
“누가 들으면 노인인 줄 알겠네.”
준이 피식 웃으며 입을 열었다. 막스는 처음 만났을 때에 비해 확연히 젊어진 상태였다. 무엇보다 탈모가 진행중이던 머리가 다시 나기 시작했다는 점이 컸다. 사십대 중반을 향해 달려가는 나이였지만, 이제는 삼십대 중반정도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너보다 두 배는 더 살았거든?”
“나이 많아서 좋겠다.”
“쳇. 더러워서 내가 나가던지 해야지.”
“막스님이 나가면 그 자리는 어떻게 되는 겁니까?”
카심이 재빨리 치고 들어왔다. 준이 입을 열었다.
“왜? 관심있어?”
“사실 헌터들을 총괄하는 자리는 실력도 겸비하고 있어야 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명실공히 델타스피릿 최강자인 저라면 충분히 그 역할을 역임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카렌이 너보다 세. 임마.”
“끄응... 그건 그렇습니다만.”
준이 란도넬 행성에서 여러 사업에 집중하고 있는 동안에, 델타스피릿 내부의 헌터들 사이에서 검술시합이 개최되었다. 이전에 꾸준히 진행되고 있던 이벤트성 대회가 공식적인 대회로 만들어 진 것이다.
이름하여 델타 챔피언쉽 아레나(DCA). 그리고 그 대회의 초대 우승자는 다름아닌 여성헌터인 카렌 입스위치였다. 2미터가 넘는 키를 이용한 리치와 완벽한 공수밸런스를 바탕으로 당당히 우승을 차지한 것이다. 카심은 8강에서 카렌을 만나 1분 만에 떡이되어 탈락했다. 같은 상급헌터 사이에도 압도적인 실력의 차가 존재한다는 것을 그녀가 입증한 것이다.
결승전은 장민성과의 대결이었는데, 제법 버티긴 했지만 역시 1라운드를 넘지 못했다. 그것도 장민성이 근성으로 버틴 것이지 사실상 승패는 시작하기도 전에 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대회 영상은 현재 델타스토어에서 절찬리에 판매중이었다. 거기서 나오는 수익은 차기 대회의 상금으로 걸릴 예정이었다.
“그런데 무슨 이야기 중이었지?”
막스가 준을 돌아보며 입을 열었다.
“갤럭시 인더스트리가 무슨 꿍꿍이가 있다는 데까지. 솔직히 말하면 추측이라고 할 수도 없어. 녀석들이 겨우 우리에게 겁이나 좀 주자고 그런 짓을 벌일리는 없으니까. 외도가 포자번식을 하지 않는 이상, 이쪽으로 몰려드는 만큼 어딘가는 비게 마련이고 그것을 이용하려는 생각일거야.”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군.”
“너는 참모장이라는 녀석이 그정도도 생각을 못하면 어떻게 하냐?”
“제임스 말고 너에게 조언을 해 줄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다고 그러냐?”
“하긴...”
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애초에 막스를 참모장으로 세운데는 이런 전술쪽 보다는 병력운용에 도움을 받기 위해서였다. 적의 움직임을 예측하는 것은 부족해도 아군 병력을 추스르는 데는 그만한 인물이 없었다.
“그래서 결론은?”
“여길 보라고.”
준은 스마트 패널을 펼쳐 인근의 위성사진을 띄웠다. 방금 전 갱신 된 지도로 불타는 유정이 위성에서도 보이고 있었다.
“여기가 우리가 있는 곳. 그리고 여기서 약 10킬로 미터 지점부터 검은 대지가 시작되잖아.”
“그렇지.”
“그리고 여기서 100킬로미터 지점에 지구라트가 하나 있고.”
준은 스마트 패널위로 손가락을 움직였다. 그러자 붉은선 하나가 따라서 그어졌다.
“우리가 여기에 온 이유가, 저 지구라트를 공략하기 위해서였지. 헌데 여기 150킬로미터 남쪽에 갤럭시 인더스트리의 주둔지가 하나 있거든.”
준이 가볍게 터치하자 그곳에 푸른 동그라미가 쳐졌다. 그리고 그곳에서 주욱 선을 그려 지구라트쪽으로 그었다. 그러자 지형을 따라 하나의 선이 그려졌다.
“아마 놈들도 지구라트를 공략하려고 준비중일거야.”
“헌데 왜 지금까지 가만히 있었던 거지?”
“검은대지를 가로질러 가야할테니까.”
“아. 검은대지위에서는 헌터가 제대로 힘을 쓰기 힘들다고 했었지?”
막스가 맞장구 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파티마제국측에서 받은 정보였다. 그것때문에 준도 일단 검은대지 바깥에서 주둔을 했던 것이다. 일단 땅에 직접 몸이 닿지 않게 기계화보병부대를 꾸리려고 했던 것도 그 이유 때문이었다.
“그래. 단순히 그 것뿐만은 아닐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여러가지 이유로 진격이 늦어졌고 마침 우리가 도착한 시점에서 어느정도 해결이 되었을 거라고 생각해. 하지만 아직 전력을 투입할 정도는 아니었겠지.”
“그래서 이쪽으로 외도를 몰아서 자신들의 진격로에 있는 위험을 줄이려고 했다는 건가? 하지만 우리가 이곳에 도착한 건 며칠 되지도 않았잖아.”
“파티마 제국의 영역에서 검은대지와 맞닿아 있고, 지구라트와 가장 가까운 위치는 여기가 유일해. 예상하기는 어렵지 않았을 거야.”
“그렇군. 그래서 결론은?”
“결론은 뭐. 서둘러야 한다는 거지.”
“하지만 일단 여기서 몬스터웨이브를 막아야 하는 거 아니야?”
“경험치가 아깝긴 해도 시키는 대로 다 할 필요는 없어. 여기서 시간을 축내느니 빠르게 외도무리를 돌파해서 지구라트로 진격하는 게 나아.”
“그럼 제작이 완료되면 바로 출발해야겠군.”
“아니. 지금 바로 출발할 생각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