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37 ----------------------------------------------
스파일리 행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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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그 역시 같은 소리를 장민성에게 했다가 깨끗하게 무시당했던 경험이 있었다. 나중에 막스에게 슬쩍 물어봐서 알게된 사실이었다. 델타스피릿 자체가 신생기업인데다가 태생이 헌터들의 조직이다 보니 위계라는 것이 그다지 강조되지 않았다. 단지 상급자와 하급자가 있을 뿐, 일상에서는 뜻만 맞으면 서로 친구처럼 지내기도 했다. 그런면에서 위웅비는 막스와 성격이 잘 맞는 편이었다. 실제로 만난 것은 원정대에 들어온 이후였지만 스파일리로 가는 도중에 훈련을 함께 하면서 제법 죽이 맞아 자주 함께 다니기도 했다.
“하지만 그정도 크기의 병기라면 중력권에서는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것 아닌가요?”
인간형 로봇이라는 건 어디까지나 디자인 적 측면에서만 보기 좋을 뿐이다. 실제로 덩치를 키워보면 중력이라는 힘때문에 하체가 제대로 버티질 못한다. 하지만 로버는 오리진 기술의 결정체였다. 로오나도 자체적으로 만들지 못하고 완전한 오리진이 있을 경우만 생산할 수 있는 로봇이었다.
로버는 애초에 EX필드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핵무기에서도 파괴되지 않으며 양전자포를 튕겨낼 정도의 내구력을 지니고 있다. 다만 현시점의 로버는 개조된 상태이기 때문에 가슴부위에 약점이 있었다. 그곳을 직격당한다면 로버는 파괴되지 않아도 안쪽의 파일럿이 버틸 수 없었다.
“막스 대장님께서 그러는데, 자기가 두 눈으로 똑똑히 봤대. 오히려 우주공간에서는 전함 같은게 있으니까 위험할 수도 있는데 지상에서는 막을 게 없다더군.”
“그런 병기라면 걸어다니는 것만으로도 어지간한 외도들은 버티질 못하겠네요.”
“파란색 이상의 외도를 상대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물건인 모양이더라고.”
“파란색이라... 하하. 설마 그런 놈이 나타나진 않겠죠?”
“설마. 하나만 떠도 행성을 비워야 할 판인데 여기서 나타날리가 없지.”
위웅비가 고개를 저으며 입을 열었다. 긴장감을 풀기위해서 던진 농담인데 이거 진짜 파란색 외도가 나타나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안 나타날 겁니다. 걱정마십시오.”
“시끄러 임마. 방금전까지 잔뜩 긴장하던 녀석이 입만 살아서는.”
“옵니다.”
그때 멀리서 일렁이는 형체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근처 대기가 워낙 뜨겁다 보니 형체가 일그러지는 것이다. 조금 더 기다리자 녀석들의 형체를 알아볼 수 있었다. 장이삼이 입을 열었다.
“거 놈들. 되게 징그럽게 생겼네.”
“다리가 뭐 저렇게 많아...?”
위웅비도 한마디 거들었다. 외도들의 생김새가 보통 그 행성의 환경에 따라서 달라진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하지만 거주가능행성이라는 것은 대체로 그 환경이 유사하기 때문에 생김새도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외도마다 이름을 붙일 수 있는 것도 그 때문이었다. 디테일하게 보면 조금씩 다르지만 동물의 종구분 처럼 대체로 어느정도의 경향성을 띄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번은 달랐다. 완전히 처음보는 녀석들이었는데, 그 모습도 동물이 아니라 벌레에 가까웠다. 그중에서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바퀴벌레를 닮은 녀석들이었는데 거의 십여미터를 점프하면서 달려오고 있었다. 그럴때마다 등딱지를 부르르 떨면서 날개를 펼치는데 덩치가 커진만큼이나 더 혐오스러웠다.
-주포 장전.
-주포 장전.
-주포 장전.
막스가 파티채널을 통해 일제히 명령을 내렸다. 그러자 각 소대장들이 일제히 명령을 받아 하급자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100여기의 전차들이 몬스터웨이브를 방불케하는 엄청난 수의 외도들을 향해 주포를 조준했다.
“흠... 제법 수가 많은데?”
준이 눈을 가늘게 뜨며 입을 열었다. 천리안이라고 해도 어두운 밤을 꿰뚫어보지는 못한다. 때문에 준도 녀석들이 어느정도 근거리로 접근한 다음에나 녀석들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벌레를 닮은 녀석들은 얼핏보기에도 수백마리에 이르렀고, 하나하나의 크기가 최소 3미터 이상이었다. 다행인 것은 가장 큰 녀석도 10미터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최대 주황색 외도 정도인가. 이 정도면 화력 시범으로는 나쁘지 않군.’
준은 오른 손을 들었다. 그러자 막스가 준을 대신해서 주포 장전 명령을 내렸다. D2전차의 주포유효사거리는 그다지 긴 편이 아니었다. 애초에 구세대 전차를 모델로 만들었기 때문인데 외도를 상대로 장거리 포격이 그다지 필요없기 때문에 딱히 개조를 하지 않은 이유도 있었다. 그럼에도 유효사거리가 최소 3킬로미터는 되었다.
-퀘스트, ‘몬스터 웨이브를 막아라’가 생성됩니다. 다수의 외도가 유정의 불빛에 이끌려 몰려들고 있습니다. 모든 웨이브를 막아낼 경우 경험치가 지급됩니다.
목표 : 몬스터웨이브 방어(0/5)
‘퀘스트인가.’
제법 많은 수의 외도가 모여든다 했더니 델타시스템에서 여지없이 퀘스트를 발동시켰다.
‘다섯번이라... 가능하면 피해없이 막았으면 좋겠군.’
준은 그렇게 생각하며 고개를 들어 외도들의 모습을 확인했다. 수백마리에 달하는 외도들이 먼지를 일으키며 질주해오고 있었다.
준은 외도들이 사거리 안에 들어오는 것을 확인하고는 손을 그어내렸다.
뻥! 뻐엉! 뻥!
동시에 100기의 전차가 불을 뿜었다. 인마살상용 고폭탄을 사용하다보니 폭발 반경 10미터 이내는 완전히 초토화가 되면서 외도들이 우수수 터져나갔다. 각기 지정된 위치에 정확하 착탄된 포탄은 넓은 범위에 불벼락을 때리며 단 일격에 백여마리에 가까운 외도를 그야말로 찢어발겼다.
멀리서 붉은 색에서 주황색에 이르는 빛들이 터져나가더니 대기로 흩어졌다.
“아까워라... 저거 몇 개 못건지겠네.”
막스가 혀를 차며 입을 열었다. 외도가 터질때마다 보이는 스펙트럼은 결정체가 파괴되면서 나타나는 것이다. 전차의 포격이 너무 강력하다보니 결정체까지 한꺼번에 파괴되는 것이다. 던전이었다면 전부 준에게 경험치로 돌아왔겠지만, 일반 필드인데다가 거리가 상당히 멀다보니 그대로 대기중으로 산화되고 있었다.
“어차피 우리 목적은 조각이니까 너무 아쉬워하지마. 어차피 전투수당은 나갈테니까. 게다가 퀘스트도 떴고.”
“퀘스트는 너만 뜬거잖아. 그리고 내가 돈때문에 그러냐. 그냥 아까워서 그러지.”
막스가 입맛을 다시면서 대답했다. 그러는 사이 두번째 포격이 시작되었고, 이번에는 처음보다는 그 피해가 다소 줄어들었다. 하지만 그건 애초 외도의 숫자가 줄었기 때문이었고, 여전히 유효한 타격을 입히고 있었다.
그렇게 세 번 정도 포격을 시전하고 나자, 수백 마리에 이르던 외도의 숫자가 백 마리 이하로 현격하게 줄어들었다.
“근접전 준비시켜.”
“오케이.”
준의 말에 막스가 명령을 내렸다. 그러자 포격을 마친 전차들이 슬금슬금 앞으로 나서기 시작했다. 백 미터 이내로 근접한 외도에게는 포격보다는 기관총난사가 더 효과적이었다. 포격으로 인해 흐려진 시야 때문에 다른지상병력이 제대로 화력을 발휘하기 어렵기 때문이었다.
“거 새끼들 무지하게 징그럽게 생겼네.”
성기용이 어깨에 매고 있던 니들건을 외도들을 향해 조준하며 입을 열었다. 그의 곁에 있던 볼테르는 양손에 니들건을 하나씩 들고서는 외도를 향해 들었다. 탄창을 모두 비우고 나면 재장전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니들건을 양손에 하나씩 드는 것은 그다지 효율적이지 않았다. 게다가 니들건은 반동이 적은 대신 일반 소총보다 무거운 편이라 조준도 쉽지 않은 편이었다.
하지만 볼테르는 그다지 개의치 않는 듯 집중하며 외도를 관통할 기세로 녀석들을 노려보았다.
-발사.
그때 상급자로 부터 명령이 떨어졌고 성기용은 방아쇠를 당겼다.
퉁! 퉁! 퉁! 퉁!
비교적 묵직한 소리와 함께 쇠못이 약간의 텀을 두고 발사되었다.
현재 그들이 가지고 있는 니들건은 준이 개량한 두 번째 버전으로 약 분당 30발 정도를 발사하는 물건이었다. 기존의 분당 200발짜리 니들건보다 오히려 연사속도는 떨어졌지만, 한 발 당 파괴력은 훨씬 더 높았다. 투사체인 쇠못의 크기가 약 두 배가량 커졌고, 한 발당 전력소모량도 기존에 비해서 훨씬 더 커졌다. 그러다보니 평균적으로 입히는 데미지는 기존에 비해서 약 두 배 가까이 상승했다.
이런식으로 개조한 이유는 막스의 조언 때문이었다. 외도는 비교적 덩치가 크고, 니들건은 화망을 만들어서 적을 제압하는 목적이 아니라 외도를 격살하기 위한 물건이었다. 쇠못을 많이 소모하는 것보다 차라리 한발 한발의 파괴력을 높이는 쪽이 훨씬 더 효율적인 것이다.
그렇게 준은 니들건 MK-2라고 명명한 이번 작을 이번 원정을 나서는 헌터들에게 보급했고, 그 결과는 제법 만족스러웠다.
투타타타타!
키에에에!
거기에 전차의 동축기관총 역시 압도적인 화력을 쏟아붓고 있었다. 100기의 전차에서 뿜어내는 기관총의 화력이 나머지 헌터들이 발사하는 니들건 MK-2만큼이나 강력하게 적들을 제압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도를 죽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꾸르륵!
“에이! 시발것들 더럽게 안죽네!”
철컥. 철컥.
성기용은 빈 탄창을 버리고 재빨리 등에서 박스형 탄창을 꺼내들어 니들건에 삽입했다. 거의 코앞에까지 다가온 바퀴벌레의 머리에 스무 발이 넘는 쇠못을 먹이고 나서야 겨우 죽일 수 있었다.
“죽어라. 이 벌레새끼야1”
퉁! 퉁! 퉁! 퉁!
부르르!
성기용은 체액을 흘리며 죽어있는 거대바퀴벌레에게 확인사살을 위해서 다시한번 니들건을 발사했다.
키에엑!
아니나 다를까, 죽은 척 하고 있던 바퀴벌레가 다시 상체를 치켜 세우며 고통에 몸부림쳤다. 십여미터 정도의 거리가 있었으니 망정이지 근거리에서 발사했다면 갑작스러운 공격에 치명적인 공격을 당할 수도 있었다.
성기용은 이마에 흐르는 식은땀을 닦았다. 전투는 제법 일방적이었고, 아직 아군측에서는 단 한명의 사상자도 나오지 않았다. 첫 전투라 긴장한 것 치고는 꽤 수월하게 전투가 흘러가고 있었다.
볼테르를 보니 그는 잔뜩 상기된 얼굴을 하고는 니들건을 발사하고 있었다. 양손으로 번갈아 발사를 하면서 빠르게 탄창을 갈고 다시한번 외도를 향해 니들건을 발사한다. 그 동작은 기계처럼 정확했고 빨랐다. 마치 한마리라도 더 죽이고 싶어서 안달이 난 녀석 같았다.
“체질이구만 체질이야.”
철컥. 철컥.
어느새 볼테르의 탄창이 모두 비워졌다. 두개의 니들건을 가지고 사용하다보니 다른 헌터들보다 빠르게 탄창이 동난 것이다. 그는 등에 매어두었던 박스형 탄창이 모두 소진되었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허리춤에서 검을 뽑아들었다.
“자, 잠깐!”
그리고는 성기용이 말릴 틈도 없이 니들건이 쏟아지는 전장 한 복판으로 뛰어들었다. 성기용이 기겁을 하면서 큰 소리로 외쳤다.
“야. 이 개자식아! 위치 사수하라고!”
타타타타탕!
기관총의 소음속에서 성기용의 목소리는 금세 묻혔다.
“응?”
준은 전진하는 전차들 사이에서 갑자기 튀어나가는 한 인영을 보고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처음보는 인물이었는데, 양손에 단검을 하나씩 쥐고 외도를 향해 쇄도하는 모습이 제법 매서웠다.
“저 새끼 뭐야?”
“아는 놈이야?”
“볼테르라고 있어. 또라이.”
막스가 황당하다는 듯 입을 열었다. 지금 전장은 포탄과 니들건이 비처럼 쏟아지고 있었다. 물론 펠로우쉽 계약자들끼리는 전투중에 서로 피해를 입지 않게 조정해둔 상태였다. 때문에 니들건이나 포탄이 쏟아지는 곳에서도 미친놈 처럼 움직일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이제 갓 훈련프로그램을 이수한 헌터가 붉은색과 주황색 외도들이 우글거리는 곳의 한가운데로 뛰어들어간 것은 자살행위나 마찬가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