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로젝트 델타-436화 (436/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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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일리 행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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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밤. 아무도 없는 칠흑같이 어두운 시추시설의 한 쪽에서 온몸을 가리는 검은색 강화특수복을 입은 인물 네 사람이 조심스럽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들 모두는 등에 커다란 백팩을 매고 있었는데 상당히 무거워 보임에도 발소리가 나지 않는 것으로 보다 상당히 훈련받은 헌터인듯 했다.

그중 리더로 보이는 자가 손을 들어 주먹을 쥐고는 곧바로 검지를 세워 한바퀴 돌렸다. 목적지에 도착했으니, 이곳에서 작업을 시작하자는 뜻이었다.

스륵.

조심스럽게 가방을 내려놓은 그들은 가방의 끈을 풀어 안에 있던 은백색 기기를 꺼내들었다. 그것은 다름아닌 델타스피릿의 로고가 찍혀 있는, 루나의 자신작인 ‘어그로시스템’이었다. 최근 레이드팀들 사이에 상당히 퍼지고 있는 물건으로 외도를 찾아다니는 수고를 덜 수 있어서 제법 호평을 받고 있었다.

탁.

제법 무게가 나가는 물건임에도 거의 소리가 나지 않을 정도로 가볍게 기기를 내려놓은 그들은 조심스럽게 스위치를 올리고는 기계를 작동시켰다. 특정 엑조틱에너지의 파장을 이용하는 것이니 만큼 인간은 절대로 눈치를 챌 수 없다.

거기다가 이 물건은 어그로시스템에 걸려있는 락이 풀려있는 버전이었다. 외도가 지나치게 몰려오는 것을 막기 위해 걸어놓은 안전장치였는데, 갤럭시 인더스트리의 기술진들이 그것을 해제하는 방법을 알아낸 것이다.

현재 그들이 풀어놓은 네 기의 어그로시스템이면 인근 수 킬로미터 이내에 있는 모든 외도를 불모을 수 있을 정도였다.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이미 알 히맘까지 오는 길목에 이러한 방식으로 기기를 설치해둔 상황이었다.

빠르면 내일 아침, 늦어도 오후쯤에는 대규모 외도의 습격을 받게 될 것이다.

우우웅-

가벼운 진동과 함께 모든 기기가 활성화 되었다. 네 사람은 서로 눈빛을 교환하고는 조심스럽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시추시설의 깊숙한 곳에 숨겨두었으니 발견 될 일은 없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했다.

“저기...”

“!”

그때 그들의 뒤편에서 누군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당연히 아무도 없을 것이라 생각했던 곳에서 갑자기 튀어나온 소리에 네 사람의 침입자는 화들짝 놀라며 몸을 틀었다. 하지만 소리가 들렸던 곳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네 사람은 황급히 시선을 교환했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그들은 자신들이 잘못듣지 않았음을 확신하고 허리춤에서 무광처리 된 텅스텐 검을 뽑아들었다. 소리하나 내지 않는 민첩하고도 은밀한 동작이었다.

스슥.

네사람은 천천히 움직이며 어딘가 있을 사람을 찾았다. 하지만 아무리 감각을 확장해도 전혀 인기척을 찾을 수 없었다.

‘환청?’

그렇게 생각할 무렵이었다. 어디선가 몽환적인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그대 근원으로 향하는 힘. 그대 모든 것을 정화하는 순수한 에너지. 그대 불에서 나 불에서 살아가리라. 그대 끝없이 변화하는 힘을 가졌노라.

“...뭐?”

그것이 마법사의 주문이었음을 깨닫는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하지만 대체 그 목소리가 어디에서 흘러나오는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하나는 확실했다. 그자리에 계속있는 것은 결코 좋은 선택이 아니었다.

“도망쳐!”

누군가 외쳤고, 미리 약속된 대로 네사람이 서로 다른 방향으로 뛰었다. 하지만 너무 늦은 판단이었다. 그들이 유일하게 도망칠 수 있었던 기회는 처음 목소리를 들었을 때뿐이었다. 네 사람은 미처 건물을 빠져나가기도 전에 폭발에 휘말리고 말았다.

콰아아아앙!

델타스피릿 천여명의 밤잠을 깨우는 엄청난 폭발음이 시추시설에서 터져나왔다. 수십미터 이상이나 치솟는 화염과, 대지를 진동하는 충격파가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하루종일 제작을 하다가 잠시 쉬기 위해 숙소에서 자고 있던 준도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바깥을 내다보니 자신이 대흉근과 해체를 했던 석유시추시설이 화염에 휩싸여 있었다.

“뭐지?”

자고있던 모습 그대로 준은 황급히 폭발의 현장으로 달렸다. 풍운보로는 모자라 관성제어까지 써가면서 날아가니 5백미터 정도 떨어져 있던 시추시설까지 도착하는 데 30초도 걸리지 않았다.

콰아아아-

주변은 엄청난 화염과 열기로 인해 대기가 들끓고 있었다. 붉게 타오르는 화염속에서 한 인영을 발견했다.

검은색 후드를 눌러 쓴 소녀, 오펜하이머가 옷에 붙은 불꽃을 털어내며 천천히 걸어나오고 있었다.

“뭐한거냐?”

준이 눈을 가늘게 뜨며 입을 열자 그녀가 불타오르는 시추시설 안쪽을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악당들이 있어서.”

“침입자?”

“응.”

오펜하이머가 고개를 끄덕이자 준이 깊은 한숨을 쉬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전차 제작은 숙소의 앞마당에서 진행하고 있었기 때문에 다른 피해는 없다는 점이었다.

“설명해봐.”

오펜하이머는 상황을 간략히 설명했다. 잠이 오질 않아서 인근을 순찰하면서 알람마법을 점검하고 있었는데 누군가 접근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칼을뽑길래 무서워서 그냥 날려버렸다고?”

“응. 전부 죽었을걸.”

“끙. 이래서야 뭘 하려고 했는지 알 수가 없군.”

준은 불타오르는 시추시설을 바라보면서 한숨을 쉬었다.

콰앙!

그러자 다시 한번 폭발음이 일면서 불길이 더욱 거세어졌다. 검은 연기가 엄청난 기세로 뿜어져 나오며 제대로 숨을 쉴 수 없을 정도의 유독가스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준이 오펜하이머를 향해 입을 열었다.

“침입자를 제거한 건 잘했어. 하지만 다음부터는 생각이라는 걸 좀 하고 일을 저지르라고. 여기 바로 아래 유정이 있는데 화염마법을 터뜨리면 어쩌자는 거야.”

“그치만 공격마법은 화염마법밖에 모르는걸.”

“그러면 나에게 이야기를 하던가.”

“도망칠 것 같았어.”

“뭐... 그래. 어쨌든 잘했다.”

일은 좀 복잡해졌지만 오펜하이머의 행동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다만 아쉬운 것은 놈들이 대체 누구고, 무슨 목적을 가지고 접근했냐는 것을 알 수 없다는 점이었다.

“혹시 다른 특별한 사항은 없어?”

“이상한 기계같은 걸 설치하던데?”

“어떻게 생겼는데.”

“이렇게 생겼어.”

오펜하이머가 허공에 손을 휘젓자, 근처의 불길 중 하나가 그녀의 손으로 휙 빨려들더니 이미지를 그려내었다. 준은 신기하다고 생각하면서도 그 이미지를 유심히 살폈다.

“어그로 시스템이군.”

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만으로도 대충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수 있었다.

“대체 무슨 일이야!”

그때 막스가 뒤늦게 허겁지겁 달려왔다. 그의 뒤에 불을 끄기 위해서 양동이에 물을 받아 달려오고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아아. 이 녀석이 사고를 좀 쳤어. 유정에댜가 화염마법을 냅다 박아버린 것 같아. 마법사라는 녀석이 이렇게 생각이 짧아서야...”

“나도 생각할 줄 알거든? 시간이 없었단 말이야.”

“알았고. 그런데 저 뒤에 쟤들은 뭐야? 유정에 붙은 불을 양동이에 든 물로 끄겠다고? 네가 시킨거냐?”

“그... 그게 말이지. 이크.”

막스가 말하다 말고 뒤로 물러섰다. 머리끝이 타들어가기 시작했기 떄문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최근 탈모증상이 사라지고 머리가 다시 나고 있는 중이다. 머리칼 하나가 그에게는 엄청나게 소중한 판국이었다.

“그런데 어떻게 끄려고? 이거 장난 아닌데?”

막스는 한참이나 뒤로 더 물러서고는 입을 열었다. 레벨이 낮은 다른 헌터들은 아예 100미터 이내로는 근접조차 하지 못할 정도로 엄청난 열기가 계속해서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그러게... 물을 부어도 안될거고.”

준은 엄청난 열기를 뿜어내고 있는 유정을 보면서 고민에 빠졌다. 바닷물이 역류하지 않는 이상 이 불이 꺼질리는 없었다. 괜히 어설프게 부었다가는 오히려 폭발만 더 일어날수가 있었다.

그때 막스의 표정이 이상해지더니 준을 향해 입을 열었다.

“준. 지금 인근 10킬로미터 반경에서 외도무리가 몰려들고 있다고 하는데?”

“확실해?”

어그로시스템은 정밀기계이기 때문에 이런 화재속에서는 제 기능을 발휘하기 어렵다. 막스가 입을 열었다.

“확실해. 초비연이 눈으로 봤다고 하니까. 녀석이 확인한 것만 적어도 백 개체가 넘는다고 했어.”

“불을 보고 모여드는 건가.”

어쩔 수 없었다고는 하지만 이 화재는 확실히 너무 시선을 끌었다.

“일단 후퇴한 후에 날이 밝으면 움직이는 게 어때?”

“아니. 이왕 이렇게 된 거 여기서 한 번 붙어보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아. 저 화재덕분에 어느정도 시야도 확보되고 있는 상태고.”

어차피 외도와 싸우기 위해서 온 행성이다. 아무리 밤이라고 해도 외도와 싸우기를 두려워해서 도망칠 이유는 없었다. 아직 D-11전차가 완성되지는 않았지만 오염된 검은대지 위도 아니었고 이런 평탄한 지형에다가 D-2전차를 전부 전개한다면 의외로 손쉽게 전투를 이끌 수도 있었다.

“전원 전투준비 시켜.”

“넷. 명을 따르겠습니다.”

막스가 제법 절도있는 동작으로 경례를 하고는 양동이를 들고 있는 헌터들을 향해 큰 소리로 외쳤다.

“전원 전투준비! 양동이 전부 갖다 버려! 각 소대의 지휘관 들은 지정된 위치로 병력들 소환하고 전차 대기 시켜!”

막스는 그렇게 외치고나서 파티채널을 통해 다시한번 명령을 내렸다. 명령은 순식간에 전병력에 하달되었고 숙소를 등지고 화재현장을 바라보는 형태로 병력이 완전도열했다.

쿠르르릉.

D-2전차 100대가 포신을 앞으로 두고서 엔진을 예열하고 있었다. 초비연은 계속해서 이동하며 외도의 움직임을 전달했다. 풍운보의 원 주인이자, 델타스피릿에서 준을 제외하고는 가장 빠른 이였기 때문에 외도의 추격에도 잡히지 않을 수 있었다.

“후우. 후우.”

란테르트가 심호흡을 하며 환하게 빛나고 있는 대지를 바라보고 있었다. 화재가 워낙 크다보니 밤이었음에도 시야는 충분했다. 곁에 있던 위웅비가 피식 웃으며 입을 열었다.

“긴장되냐?”

“아니라면 거짓말이겠죠. 적이 얼마나 된다고 했었죠?”

“글쎄... 대충 백여마리라고 하는 건 들었는데. 그보다 많을 수도 있겠지.”

“결정도는요?”

“그것까지는 모르겠다나봐. 밤인데다가 멀리서 보는 거니까. 붉은색 외도면 금방 처리할 수 있겠지만, 그 이상이면 좀 골치아파질 수도 있겠지.”

붉은색 외도라면 손발이 맞는 하급헌터 다섯이면 처리할 수 있다. 현재 이곳에 있는 헌터의 숫자가 총 천명이 넘으니 정면 충돌 한다고 해도 순식간에 삭제 시킬 수 있었다. 하지만 만약 노란색 이상이라면 이야기가 달랐다. 하급헌터 일천으로는 순식간에 썰려나갈 뿐이다. 애초에 일격조차 막을 수 있으면 다행일 정도로 힘의 차이가 크기 때문에 초장부터 엄청난 인명피해를 입을 수 있었다.

물론 믿는 구석은 있었다. 어쨌든 이곳에는 준 알스버그와 카렌, 그리고 오펜하이머라는 얼굴을 본적도 없는 상급헌터가 있는 것이다.

“대표님이라면 혼자서 이길 수 있겠죠?”

“아마도. 로버라고 알지?”

“그 로봇 말이죠?”

란테르트도 영상을 통해서 본적이 있다. 새크리파이스의 전함들을 검으로 두쪽 내버리는 가공할 위력의 병기였다.

“그거만 꺼내도 끝날걸?”

“하지만 그 병기는 지상에서 쓸 수 없다고 하던데요.”

“누가 그래?”

위웅비가 코웃음을 치며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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