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로젝트 델타-430화 (430/540)

0430 ----------------------------------------------

델타스피릿

*

*

*

준은 멀리 보이는 지구라트를 향해 걸음을 빨리했다. 근처에는 델타스피릿의 정복을 입은 군인들이 물샐틈없이 경비를 하고 있었다. 헌터는 아니었고, 일반인 들 중에서 군대출신들만을 따로 모아 경비로 세워둔 것이다. 헌터들을 경비업무에 세우는 것보다는 총기를 사용하는 군인들을 세우는 것이 여러모로 효율적이었다.

화력면에서도 총기를 든 군인이 재래식 냉병기를 사용하는 중급헌터에 비해서 약하지 않았다. 여러모로 일반인 출신 군인들은 필요한 존재였다.

“전승!”

“전승.”

자신의 얼굴을 단박에 알아본 병사들이 준을 향해 경례를 올렸다. 준이 가볍게 응수하고는 군인들 사이를 지나쳐 지구라트의 입구 안으로 들어섰다. 지구라트는 눈알외도의 능력을 극대화하기 위한 일종의 증폭기 같은 역할이었다.

그 구조나 원리에 대해서는 루나가 잠시 연구를 한 적이 있지만, 제대로 밝혀 낸 것은 없었다. 다만 지구라트를 이루는 재질 자체는 근처의 지질과 유사하다는 점을 보았을 때 인근에서 구할 수 있는 것을 원료로 삼는 모양이었다.

“여기에 오는 건 오랜만이네요. 그동안 뭔가 약간 변한 것 같지 않습니까?”

카심이 휘파람을 불며 걸었다. 통로는 제법 넓었다.

“눈알녀석에게 좀 넓혀놓으라고 했어. 사람들이 자주 다녀야 하니까.”

이스카야에서 돌아온 루나는 지난 시간 동안 새로운 연구진을 꾸리기 위해서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였다. 연구시설을 만들기 위한 자원은 충분했고, 남은 것은 그 연구소에서 연구를 할 재원이었다.

그녀는 알카트뢰즈에 있던 연구자들 중의 몇몇과, 브라운 대학 출신 동기 중 포스닥(Post-doc, 박사후 과정)을 밟고 있는 이들을 스카웃해 델타엔진의 공장시설들이 모여있는 아제라 근처에 연구소를 차렸다.

위치적으로 지구라트와도 가깝고 프라이어시티에서도 멀지 않아 가장 최적의 장소로 판단한 때문이었다. 거기에서 주로 연구하는 것들은 다름아닌 그녀의 전문분야인 외도학이었다. 눈알외도가 주요 연구 대상이었고 종종 시미나 펄이 들러 간단한 실험을 받기도 했다. 단 몇 개월 만에 눈에 띄는 성과가 나오고 있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지구라트에 있어서 만큼은 상당한 성과를 쌓고 있는 상태였다.

한참을 걸어가자, 커다란 방이 나타나고 눈알 외도의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그 곁에 거의 상주하다시피 하고 있는 한 사람의 모습이 있었다.

“아이작. 연구는 잘 되가?”

“그럭저럭 최근에는 이 녀석의 정신파 능력에 대해서 논문을 쓰고 있다네.”

“제법 빠르잖아. 벌써 거기까지 간 건가?”

“외도에 대해서는 꽤나 오래 연구를 했으니까. 새롭게 알아야 할 것들만 빠르게 익히고 나면 그 다음은 하던대로 하면 될 뿐이라네.”

아이작은 눈알을 살피며 그렇게 입을 열었다. 그는 꽤나 오랜 시간 동안 던전안에서 생활하며 연금술에 매진했다. 그러면서 외도에 대한 연구도 병행했는데, 그것이 루나의 연구진과 합쳐져서 꽤나 괜찮은 결과를 내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런데 무슨 일이지? 이곳까지 직접 오는 일은 그리 없었던 것 같은데.”

“아. 이 녀석에게 물어볼게 있어서.”

준은 눈꺼풀을 닫은 채 잠들어 있는 눈알괴물을 보며 입을 열었다. 외도라고는 해도 인간과 동일하게 휴식이 필요했다. 야행성인 녀석은 지금이 한창 잠들어 있을 시간이었다.

“그럼 깨우도록 하지. 잠든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 금방 일어날게야.”

아이작은 그렇게 말하며 눈알외도의 뒤에 있는 촉수를 살짝 당겼다. 그러자 눈알괴물이 움찔 하며 몸을 비틀었다. 그렇게 아이작이 몇 번 더 건드리자 약간 충혈된 눈으로 녀석이 정신파를 쏘아보냈다.

[무슨 일이냐?]

“물어볼게 있어서.”

[빨리. 어제도 하루종일 실험을 돕느라 피로가 쌓여있다.]

“그새 인간의 말이 제법 늘었군.”

준은 어깨를 으쓱였다. 문장 하나를 제대로 완성시키지 못했던 것을 생각하면 장족의 발전이었다.

[나는 뛰어나니까.]

“됐고. 이거나 봐.”

준은 그렇게 말하고는 스마트패널을 펼쳤다. 홀로그램보다는 여전히 스마트패널쪽이 선명한 화질을 보일 수 있었다.

[이건 뭐냐?]

“스파일리 행성이라고, 여기서는 제법 먼 곳이지. 아무리도 다른 무리어미가 행성을 장악한 것 같다. 헌데 얼마나 시간이 걸렸는지는 모르겠는데 현재 행성의 상당부분이 이렇게 침식된 상태다. 뭔가 알고 있는 것이 없냐?”

[이것만 봐서는 모른다.]

“최소 삼개월 전에는 행성이 멀쩡했다면...?”

[삼개월만에 이렇게 불가능하다. 행성 하나를 전부 지구라트의 영향권에 두기 위해서는 최소한 몇 년의 시간은 필요하다. 하지만 여러마리의 무리어미가 있다면 가능하다.]

“대규모 무리어미 드랍이 있었을 수 있다는 말인가?”

[그렇다.]

“그 외의 다른 가능성은 없나?”

현재로서는 그것이 가장 가능성이 높은 결론이었다. 눈알은 잠시 고민하는 듯 하더니 입을 열었다.

[지구라트의 확장을 인위적으로 촉발시키는 방법이 하나있다.]

“뭔데?”

[진화가속기를 사용하는 경우다.]

“그게 뭐지?”

[방대한 양의 엑조틱에너지를 사용하여 생명체의 진화를 촉진하는 장치다. 변이형 외도와 상성이 좋은편이다. 특히 지구라트같은 생체 건물을 올릴 때 강한 시너지를 보인다.]

“외도에게 그런 기술력이 있단 말이야?”

[없다.]

눈알 외도의 말에 준이 가볍게 미간을 찌푸렸다.

“그럼 그 진화가속기라는 건 대체 뭐지?”

[로오나들이 사용하던 기술이다.]

“로오나?”

갑자기 튀어나온 이름에 준이 의아하다는 듯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로오나는 인위적으로 진화를 조절하는 기술을 연구했다. 진화가속기는 그 여러 가지 시도중 하나였다.]

“그들이 진화가속기를 외도에게 사용한 이유는 뭐지? 그건 오히려 외도에게 도움이 되는 거 아닌가?”

[진화가속기를 사용한다. 인위적으로 개체수를 증가. 그들을 정신파로 조종하여 적을 죽인다.]

“정신파 사용법을 이미 알고 있었던 거군.”

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인류보다 앞서 외도와 전쟁을 벌였다. 기술력마저도 압도적으로 뛰어난 그들이 눈알외도와 같은 녀석들의 정신파를 이용할 생각을 못했을리는 없었다.

“그 실험은 실패로 돌아갔겠지?”

[그렇다. 진화가속기는 다량의 엑조틱 에너지를 필요로했고, 효율성이 낮아 최종폐기되었다.]

하지만 결국 그런 다양한 시도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외도에게 패배했다는 사실은 그다지 좋은 소식은 아니었다. 준 역시 눈알괴물을 이용해서 다른외도를 사냥할 생각을 해보았기 때문이었다.

“너는 잘도 그런 걸 알고있군.”

[태어날때부터 알고 있었다. 지식의 전승은 우리에게 유전자단계에서 이어지는 것이다.]

“그러냐... 그거 왠지 진화론을 정면에서 거부하는 것 같지만 어쨌든.”

“눈알의 말이 틀린 것만은 아니네.”

아이작이 입을 열었다.

“정말로 후천적으로 습득한 형질이 자식세대에게 이어진다는 건가?”

“정확히 말하면 정보가 이어지는 것이지. 외도도 여러 가지 종이 있지만, 특히 눈알같은 고등개체의 경우 정보자체가 유전자에 각인되어 그대로 후대에 유전되는 것을 확인했지.”

준은 신기한 얼굴로 눈알외도를 바라보았다. 녀석이 어쩐지 오만한 눈빛을 빛내며 입을 열었다.

[인간 하등하다. 아직 이해할 수 없다.]

“뭐 임마?”

준이 눈에 힘을 주자, 눈알이 찔끔하며 뒤로 물러섰다. 아이작이 웃음을 흘리며 입을 열었다.

“재미있는 녀석이지? 농담도 할 줄알고.”

“이게 농담으로 들리는 건가? 저 녀석 제법 진심인거 같던데.”

“진심이면 뭐 어떤가. 아주 틀린말도 아니고.”

“외도가 인간보다 진화된 개체라는 게 틀린말이 아니라고?”

“진화의 갈래로 보면 완전히 다른 계통이니 비교를 할 수는 없겠지만, 생존과 변영이라는 생명체 본연의 목적에 최적화 되어있다는 점에서 아주 틀린말은 아니라고 할 수 있지. 어쨌건 간에 환경에 적응하는 능력, 생존능력, 번식능력 등은 인간을 아득히 뛰어넘으니 말이지.”

“외도는 번식이 안되지 않나?”

“이곳에서는 그렇다고 하더군. 내가 있던 곳에서는 아니었지만. 하지만 이 지구라트 내에는 원래 산란장이 있었다고 하니 그 말도 틀린 것이 되어버린 셈이지.”

“그렇긴 하군.”

준은 고개를 돌려 눈알외도를 보며 말을 이었다.

“어쨌건 간에 이 일에는 로오나의 기술이 얽혀 있을 가능성이 있다는 거지?”

[가능성은 낮다. 하지만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그거면 충분해. 제법 시나리오가 그려지고 있으니까 말이지.”

갤럭시 인더스트리는 스파일리 행성을 얻기 위해 전쟁까지 불사했다. 아무리 석유자원이 중요하다고는 해도 기업의 사활까지 걸어가면서 벌여야 했을일이었을까 하고 생각하면 제법 의문이 드는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만약에 그곳에 로오나의 기술이 잠들어 있었다면 이야기는 다르다. 준 자신이 델타에 의해서 얻게 된 온갖 기술들을 생각해보면 그것을 욕심내지 않는다는 것이 이상한 일이다. 어쩌면 준의 기술이 인류문명의 것이 아니라 로오나의 것이라는 사실도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쩐지 지나치게 호의적으로 군다는 느낌이긴 했지.’

아무리 기술력이 뛰어난 물건일지라도, 입증도 되지 않은 준의 물건들을 마구잡이로 사들인 다는 것은 그 기술에 대한 어느정도 확신이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로오나에 대해서 준만큼은 아니더라도 분명히 정보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스파일리 행성이라...’

준의 눈빛이 반짝였다. 아무래도 그곳에 직접 가서 확인해야 할 일이 생긴 것 같았다.

프라이어 빌딩으로 돌아오자 마자 준은 원정대를 조직했다. 무엇이 있을지 모르다 보니 혼자간다는 것은 위험했고, 가능한 한 최정예 멤버로 꾸려서 움직일 생각이었다. 데리고 갈 수 있는 모든 상급헌터와, 알바트로스의 주요 운용인원들도 모두 포함시키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이례적으로 1천명의 계약직 헌터들도 모두 원정대에 포함시킬 예정이었다. 스파일리 행성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지역이 이미 지구라트에 잠식당한 상태라면 이쪽에서도 충분한 화력을 갖추어야만 했다.

“그정도 인원구성이라면 한 대의 전함으로는 불가능합니다.”

“그렇지 않아도 수송함 하나 만든거 있잖아.”

“아직 시범 운행도 하지 않았습니다만...”

제임스가 걱정스럽다는 듯 입을 열었다.

“내가 만든게 고장난 적 있어?”

“없습니다.”

제임스도 그 점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델타의 제작시스템에 의해서 만들어진 물건들은 불량률 0퍼센트를 자랑한다. 개중에 내구도가 다소 떨어지는 녀석은 있을지 몰라도 기계적 결함으로 인해서 문제가 생긴적은 없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부족하지 않겠습니까?”

“일단 내리기만 하면 돼. 그곳에서 무기를 생산할 생각이니까.”

“현지에서 무장을 공급하겠다는 생각이시군요. 나쁘진 않습니다만...”

준이 현재 움직일 수 있는 병력은 많지 않다. 그 부족분을 전차와 셔틀, 헬기 등의 병기들로 벌충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상당히 먼 거리에 있는데다가 그 병기들을 직접 수송한다는 것은 상당히 비효율 적이었다.

차라리 행성에 내린 후에 직접 본진을 꾸리고 제작에 나서는 쪽이 훨씬 더 효율적으로 병력을 운용할 수 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