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25 ----------------------------------------------
성기용
*
*
*
“훈련병들 상황은 어때?”
바닥에서 흙투성이가 되어 굴러다니는 사람들을 보며 준이 물었다. 굳은 얼굴로 그들을 바라보고 있던 장민성이 입을 열었다.
“하나같이 썩어빠졌지. 근성이 있는 놈들이 없어.”
“그러냐... 솔직히 여기까지 버틴 것도 대단하다 싶은데.”
“다들 죽기 싫어서 발악하는 것 뿐이지. 자발적으로 열심히 하는 놈들이 하나라도 있을 줄 알았는데 말이다.”
장민성이 고개를 저으며 혀를 찼다. 기본 하루 열두 시간, 심할 때는 열여덟 시간 이상 굴리면서 혹독하게 수련을 시켰다. 그러다 보니 훈련의 막바지에 이른 지금에 와서 남아있는 인원들은 총 331명. 예상보다 적은 수치였지만 준이 실제로 그들이 훈련을 하는 모습을 보니 그정도라도 남아있는 것을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할 정도였다.
“검술훈련 준비!”
“준비!”
장민성의 호령이 방금전까지 바닥을 구르고 있던 훈련병들이 번개같이 일어나 검을 뽑아들었다.
“1번부터 10번까지 천번씩 반복한다. 실시!”
“실시!”
장민성의 명령에 따라 훈련병들이 일제히 검을 휘둘렀다. 마치 한사람이 하는 행동처럼 약간의 오차도 없었다. 그것만 봐도 장민성이 그들을 얼마나 지독하게 굴렸는지 알 수 있었다.
“네가 지독한 인간이라는 건 알았지만 정말 이정도일 줄은 몰랐다.”
준이 혀를 내두르며 입을 열었다. 훈련은 전적으로 장민성에게 맡겨놓고서는 다른 일을 하느라 그동안 제대로 이들이 훈련하는 모습을 지켜보지는 않았다. 마음만 먹으면 던전 안에 들어가지 않고서도 안쪽의 상황을 볼 수 있긴 했지만, 그냥 믿고 내버려 둔 것이다. 그리고 장민성은 그의 믿음에 넘칠 정도로 훌륭하게 훈련병들을 조련했다.
문제아닌 문제라면 너무나도 지독하게 그들을 다루었다는 정도. 하지만 장민성의 입장에서는 평소 자신이 하는 훈련의 절반정도 밖에 효율이 나오지 않는다며 오히려 불평어린 말을 내어놓고 있었다.
“어떤 훈련이든지간에 스스로 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어야 효율이 좋다. 하지만 이들은 그저 시키는대로 따르기만 하고 있지. 그래서야 제대로 된 훈련의 효과가 나지 않아. 동작 하나하나에도 집중을 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시간이 가면서 그 차이가 벌어지게 되어있다.”
“저 친구는 어때? 제법 괜찮은 것 같은데.”
훈련병들은 현재 검을 꺼내어 정해진 투로를 따라 움직이고 있었다. 오로지 실전용으로 만들어진 절제된 검술은 장민성이 직접 만들어 낸 것으로 상급의 검술이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하지만 여러사람을 한꺼번에 가르치기에 특화 되어 있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본기는 철저하게 닦을 수 있기 때문에 상급 헌터들도 제법 괜찮다며 인정을 하고 있었다. 본래 정해진 이름은 없었지만 훈련병들 사이에서는 델타스피릿에서 따온 ‘스피릿소드’라고 부르고 있었다.
“2912번 말이군.”
“다 똑같아 보이긴 하지만, 그래도 제법 안정적이잖아.”
준도 목숨을 건 전투를 제법 치러온 데다가, 상급헌터들과의 전투경험도 많다보니 보는 눈은 어느정도 있었다. 이곳에 있는 이들은 거의 대부분 일반인 출신이었고, 개중 몇몇 최하급 헌터들이 섞여 있었다. 하지만 장민성이나 준이 봤을때는 초심자나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었다. 결국 모든 훈련을 수료할때쯤에는 이곳에 들어올때의 능력이 아니라, 얼마나 훈련을 집중해서 받았느냐에 따라서 그 수준이 결정나게 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작은 차이의 수준은 이곳을 나간 후에 점점 더 커지게 될 것이다. 훈련에 얼마나 매진했느냐는 곧 그의 성실함의 척도이기 때문이었다. 이곳에서 열심히 한 이들일수록 밖에서도 더 열심히 몸관리를 할 것이다.
“처음에는 거의 훈련을 따라오지 못하다가 한달 쯤 지나서야 조금씩 보조를 맞추기 시작하더군. 지금에 와서는 거의 탑이라고 할 수도 있겠어.”
“그럼 엄청난 거잖아? 그런데도 마음에 드는 녀석이 없다는 거냐?”
“말했잖아. 내 기준에는 못미친다고. 만약 나에게 이런 기회가 있었다면 지금보다 몇배는 더 열심히 했을 거다.”
“그건 너같은 인간이나 그런거고.”
준은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의 말대로 장민성의 근성은 무서울 정도였다. 노력이라는 말로는 부족할 정도로 자신의 모든 시간을 오직 수련에 쏟아붓고 있었다. 훈련병들을 하루종일 굴리고서 남는 시간에는 개인수련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수면시간은 하루 두 시간. 던전안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긴 했지만, 육체피로 이전에 정신적으로 너무나도 괴로운 스케쥴임에도 그는 즐겁게 그 과정을 수행해내고 있었다. 훈련병들이 뒤에서 욕을 하면서도 그에게 대들 수 없는 이유였다. 자신들을 굴리는 것보다 더 지독한 훈련을 하는 이를 어찌하겠는가.
그런 노력을 바탕으로 몇 년 동안 최하급에 머물렀던 장민성은, 현재는 중급에서도 탑을 바라보는 위치에까지 이르러 있었다. 시간만 충분하다면 상급에도 충분히 오를 수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었다.
물론 중급과 상급의 차이는 단 한단계 뿐이었지만 그 격차는 상당히 컸다. 일반인이 노력만으로 도달할 수 있는 것이 중급 헌터라면 상급은 완전히 다른 경지였다. 괜히 원밀리언이라고 부르는 것이 아니었다. 그 경지는 엄청난 재능과, 운이 따라주지 않는다면 구경조차도 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자타공인 재능없기로는 원탑인 장민성이 과연 노력만으로 그 벽을 뚫을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것은 델타스피릿 직원들이 내기까지 할 정도로 엄청난 관심사였다.
“어쨌든 다들 여기까지 왔으니 더 이상의 중도 탈락은 없겠군.”
“처음부터 탈락자는 없어. 포기한 사람만 있을 뿐이지.”
“그거나 그거나. 어쨌든 오늘 날 부른 이유는 뭐야? 내가 딱히 별로 할 것도 없어보이는데.”
“수료하기 전에 저 녀석들에게 반드시 가르쳐 주고 싶은 게 있어서.”
“응? 뭘 가르쳐 준다는 거야?”
준이 되묻자 장민성이 입을 열었다. 그의 표정은 한없이 진지했다.
"자신들이 얼마나 약한지."
꿀꺽.
“저, 정말로 공격해도 되는 겁니까?”
위웅비가 입을 열었다. 최연장자는 아니지만 그래도 초기에 훈련을 거의 제대로 따라간 유일한 인물로서 위웅비는 이곳 훈련장에서 암묵적인 리더로 인정받고 있는 상황이었다.
“물론이다. 이미 알고 있겠지만 이 수련장 안에서는 죽을 정도로 상처를 입어도 죽지 않는다. 그러니 마음놓고 공격하도록.”
“아니 그런게 아니라...”
위웅비는 긴장으로 침을 꿀꺽 삼켰다. 그의 앞에 서 있는 자는 파리새끼 하나도 죽이지 못할 정도로 유약하게 생긴 인물이 서 있었다. 다름아닌 준 알스버그였다. 그의 얼굴은 이제는 아는 사람은 아는정도로 알려져 있었고, 위웅비도 그 중 한 사람이었다.
“대표님이시잖습니까...? 혹시라도 상처를 입게되면...”
“그런 걱정은 할 필요 없다. 만약 저 인간 몸에 조금이라도 상처를 입히는 사람이 나온다면 훈련을 마치는 대로 델타스피릿에 정직원으로 채용시켜 주겠다.”
“정말입니까?”
놀란 것은 위웅비 뿐만은 아니었다. 이 프로그램은 무료로 진행되고 있었고 정상적으로 수료를 한다고 해도 별다른 미래가 보장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헌터가 되어 새로운 길을 스스로 찾을 수 있다는 희망 정도가 그들이 가질 수 있는 전부였다.
하지만 델타스피릿에 입사한다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였다. 설령 비정규직이라고 해도 급료가 제법 괜찮은 편이었고 어지간한 문제가 일어나지 않으면 해고도 거의 없다고 들었다. 하물며 정규직이면 그 대우부터가 다르다. 무엇보다도 현재 성장하는 회사이기 때문에 빠른속도로 진급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었다. 이 곳에 모인 이들의 대부분이 미래가 없는 낙오자 인생들이었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한 번에 인생역전을 하는 셈인 것이다.
준 알스버그가 얼마나 강한지에 대해서는 다들 알고 있었다. 원밀리언이라는 상급헌터만 해도 그들이 감히 쳐다볼 수도 없는 높은 경지에 이른 존재다. 헌데 준 알스버그는 그런 상급헌터를 쥐잡듯이 때려잡는다는 소문이 있었다. 들리는 이야기에 따라면 현존하는 헌터들 중 열손가락안에 들거라는 이야기도 있었다.
진짜 무서운 것은, 준은 애초에 전투쪽이 전문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그는 어디까지나 공학자였다. 그가 만들어낸 물건들은 엄청난 가격을 받으며 팔려나갔고 그 자금원을 통해서 델타스피릿을 여기까지 성장시켰다. 종합적인 능력을 따져본다면 원탑이라고 손꼽아도 이상할 것이 없는, 그야말로 최고의 헌터였다.
“하겠습니다!”
하지만 훈련병들은 주저하지 않았다. 보상이 달콤하기도 했지만, 지금이라면, 어쩌면, 조그마한 상처 정도는 낼 수 있지 않을 까 하는 생각이 있었다. 지난 4개월간의 훈련은 지독했고, 그것을 어떻게든 견뎌온 그들의 가슴속엔 엄청난 자신감이 들어차 있었다.
‘혼자라면 불가능하겠다면 모두와 함께라면...’
‘331명이다. 상처정도는 낼 수 있어.’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혼자야. 혼자서 우리를 이길 수는 없다.’
‘우리는 수없이 많은 죽음을 견뎌내면서 여기까지 왔다. 상대가 누구라도 이길 수 있다.’
훈련병들 개개의 자신감이 모이니 한없이 커보이던 준의 모습이 초라해 보이기 시작했다. 마치 준을 당장 죽일 수 있을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졸지에 3백명의 살기를 맞닥뜨리게 된 준은 머리를 긁적이며 장민성을 노려보았다. 사실 적당히 하고 빠지려고 했는데 저런 조건을 멋대로 걸어버린 탓에 이쪽에서도 전력을 다해야 할 판이다. 현재 훈련병들의 수준은 최하급을 간신히 넘어선 수준. 하지만 바깥시간으로 한달 전만 하더라도 일반인 들이었다는 사실을 생각해보면 엄청난 고속성장이었다.
게다가 지금은 한창 훈련을 받아 신체기능이 절정으로 치닫고 있는 상황이었다. 거의 기계나 다름없는 수준으로 반응하는 삼백명의 헌터를 상대해야 하는 것도 이만저만 피곤한 일이 아니었다.
-너 나중에보자.
-던전에 대한 복수다. 이런 게 있으면 진즉 말해줬어야지.
-깜빡하고 말안한 것 뿐이야.
-내 생각은 아예 안하고 있었던 거로군. 그러고도 친구인가?
-바보냐. 내가 남자놈 생각을 왜 하고 있겠냐.
-어쨌건 간에 멍청하게 당하지는 마라. 약속은 지켜야 하니까.
-그런데 난 체술은 별로인데.
-기술 다 써서 상대해야지. 설마 내가 너보고 몸으로 싸우라고 하겠나?
-그럼 너무 미안해져서.
-그러라고 하는 대련이다.
-오케이. 어쨌든 이 녀석들 전부 의욕상실에 빠져도 내 책임 아니다.
준은 통신을 마치고는 두 손을 활짝 펼쳤다. 어차피 삼백명이다. 처음부터 화끈하게 나갈 생각이었다.
“인벤토리 개방!”
부우우우!
가죽부대가 떨리는 듯한 소리와 함께 준의 뒤편에서 일렁이는 원형이 물결파가 생성되었다. 인벤토리의 입구가 넓혀지면서 생기는 간섭현상이었다.
“저게 뭐지?”
“나 알아. 저거! 들어본적 있어?”
“그래서 뭔데?”
“몰라. 그냥 저런게 있다고만 들었어.”
“물어 본 내가 병신이지.”
훈련병들은 약간 두려워 했지만 아무도 물러서지 않았다. 어차피 대련이고, 이곳에서는 죽지 않는다. 조금 다칠 수는 있더라도 준은 혼자고 자신들은 331명. 어떻게든 그의 몸에 조그마한 상처라도 내게 되면 인생이 달라지는 것이다.
“전략은 없어?”
누군가 위웅비에게 물었다. 위웅비가 입을 열었다.
“우리가 언제 전략같은거 배운 적 있냐? 닥치고 검이나 뽑아.”
차앙!
모두의 검이 허공을 가리켰다. 준의 인벤토리에서 막 거대한 골렘이 머리를 끄집어내고 있었다. 위웅비가 큰 소리로 외쳤다.
“돌격!”
“와아아아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