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로젝트 델타-422화 (422/540)

0422 ----------------------------------------------

성기용

*

*

*

“그럼. 나를 좀 도와줄 수 있겠나? 이 시대의 연금술에 대해서 좀 배우고 싶은데.”

“내가 가르칠 수는 없고 알아봐 줄 수 는 있어. 이 행성에도 어딘가에는 있을테니까.”

준은 그렇게 말하고는 카심을 불렀다. 그는 현재 프라이어 시티의 경비총책임자이자, 준의 비서로서 역할을 하고 있었다.

“부르셨습니까?”

“이 사람에게 연금술사를 좀 소개시켜 줄 수 있겠어?”

“이 분은...?”

“던전에서 만난 사람인데, 딱히 위해를 가하거나 하지는 않을거야. 계약자이기도 하고. 그리고 연금술 연구를 할 수 있게 도시 외곽에 건물 하나 정도 내어주고.”

준의 말에 아이작이 눈을 크게 떴다.

“그렇게 까지 도와주는 건가?”

“대신 연금술의 연구 결과는 공유하는 걸로.”

“그 정도는 어렵지 않지. 후원자에게는 당연한 일이네.”

어차피 이 세계에 대해서 아는 것도 없었다. 그에게는 준의 도움이 절실한 상황이었고, 지금이라면 어떤 조건을 내걸더라도 받아들일 의향이 있었다.

“잘 적응하고 있는 것 같아?”

“별다른 문제를 일으키지는 않습니다. 다만 다른 학자들이 그를 그다지 탐탁치 않게 여기고 있긴 합니다만.”

“뭐, 그런 것 까지 내가 해결해 줄 수는 없겠지.”

란도넬에도 연금술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상당수 있었다. 연금술 자체가 과학이 하지 못하는 여러 가지 일들을 하게 해주기도 하고, 무엇보다도 대 외도용 무기제작에 상당히 특화되어 있는 직업이다 보니 제법 돈을 쏠쏠하게 버는 학문이기 때문이었다. 그도 이제는 갤럭시 인더스트리에서 생산하는 엑조틱 웨폰과, 준의 델타폰으로 생산하는 무기들에 위협을 느끼고는 조금씩 방향을 전환하려고 하고 있었지만 하루아침에 되는 일은 아니었다.

어쨌든 그런 상황에서 준이 보내온 아이작이라는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고울리 없었다. 그런 태도는 아이작이 연이어 실험에 실패하면서 더욱 심해졌다.

하지만 아이작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좌절하지 않았다. 그에게 있어 연금술 실험을 할 수 있다는 것은, 그리고 그것이 실제로 눈앞에서 구현되고 있다는 사실은 그 어떤 것 보다도 그의 성취욕을 높여주고 있기 때문이었다.

준도 그에 대해서 별다른 기대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엑조틱 웨폰이 풀리는 현 시점에서 당장 연금술로 낼 수 있는 성과가 그리 많지는 않을 것으로 생각되었기 때문이었다.

새 던전에서 가져온 물건들은 전부 엘라에게 빼앗겼다. 제법 능력이 있긴 했지만 준에게는 장난감이나 마찬가지인 물건들이었기 때문에 그다지 아쉬울 것은 없었다. 그 이후 몇 번의 던전을 더 돌면서 귀속을 시켰고, 엘라와 스위니는 레벨을 10까지 올릴 수 있었다.

파티마 제국과 갤럭시 인더스트리의 전쟁이 소강상태로 접어들었다. 결국 예정된 종전협상에 들어갔는데, 역시나 가장 중요한 스파일리 행성의 소유권에 대한 문제는 갤럭시 인더스트리가 7할을, 파티마 제국이 3할을 가져가는 쪽으로 결론이 내려졌다.

행성전체를 보았을때는 갤럭시가 충분히 이득을 보고 있는 것 같지만, 실질적으로 그어진 육지와 바다를 포함한 영토안에 매장된 석유의 양은 5:5로 양측이 비슷한 수준이었다. 결과적으로 전쟁에서 승기를 잡고도 협상에서 밀린 것이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말이 많았지만, 대체적으로 파티마제국의 2차 침공에 대해 경계하기 때문이라는 설이 사실처럼 떠돌고 있었다.

연방이 뒤를 봐주긴 했겠지만 이번 전쟁에 사활을 건 갤럭시 입장에서는 2차전을 꺼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사장님... 이러시면 곤란합니다.”

장원삼 과장이 식은땀을 흘리며 사정조로 입을 열었다. 그는 성기용 지부장이 구금되었다는 소식을 뒤늦게 듣고 황급히 준을 찾아온 상황이었다. 통신사들의 통신망 단절로 인해서 한동안 연락이 안되고 있는 상황이라 한참이나 지나서 알게 된 것이다.

“장과장. 내가 굳이 당신을 만난 이유는 징징거리는 소리를 듣기위해서가 아니야.”

준은 단호한 말투로 입을 열었다. 그는 어쨌든 간에 상당한 규모로 성장한 기업의 대표였고, 갤럭시 인더스트리라고 해도 일개 과장과 면담을 할 짬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를 만난 것은 이 일을 확실하게 하기 위해서였다.

“성기용 지부장님은 성상민 회장님의 셋째 아드님이십니다. 지금처럼 분위기가 좋을 때

굳이 문제를 일으킬 이유는 없지 않습니까?”

“문제는 내가 아니라 그 녀석이 일으켰지.”

“사정은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제 얼굴을 봐서라도 한번만 용서해주시면 안되겠습니까? 이렇게 되면 두 기업간에 서로 사이만 나빠질 뿐입니다.”

“아니. 내가 알아보니까. 성기용이라는 그 녀석, 아버지에게 단단이 미운털이 박혔나 본데? 하긴 그러니까 이런 곳 까지 좌천 당한거겠지만.”

새크리파이스의 중심행성이었던 란도넬은, 그 규모에도 불구하고 그다지 평이 좋은 곳은 아니었다. 온갖 불법이 난무하고 인권은 연합내에서도 바닥을 찍는 수준. 치안도 좋지 않아 대낮에도 심심찮게 강도를 당할 정도였으니, 누구도 가고 싶어 하지 않는 곳이었다.

“그건 아닙니다. 성기용 지부장님은 자원해서 이곳에 오신겁니다.”

“그래? 여기 뭐 먹을 게 있다고 온거지?”

“그건... 갤럭시 인더스트리의 시장을 넓히고자...”

장원삼이 더듬거리며 입을 열었다. 애초에 그는 탁월한 협상가도, 그럴듯한 거짓말쟁이도 아니었다.

“웃기지 말고 솔직히 말해봐. 내가 그 녀석 관상을 봤을 때, 그런 기특한 이유로 여기까지 올놈같아 보이진 않았거든.”

“후... 그것이...”

장원삼은 잠시 고민하더니 목소리를 낮추어 입을 열었다. 어차피 듣는 사람도 없었지만, 대놓고 이야기 하기에 부끄러운 사안이었던 것이다.

“성기용 지부장님은 상습적으로 마약을 복용하셨습니다. 거기다가 이쪽 사업이 돈이 된다며...”

“직접 마약사업에 손을 댔단 말인가? 참 대단한 녀석이로군. 새크리파이스에서 가만히 두고 보고 있지는 않았을 텐데. 아무리 그래도 자신들의 주력 사업인데 말이지.”

“적당한 선에서 눈감아줬던 것 같습니다. 저도 자세한 것은 모르지만, 아무래도 눈치를 봤다거나 아니면 모종의 거래가 있었던 거겠지요.”

“그 녀석 나에게 고마워 해야겠군.”

“네...? 그건 무슨 말씀이시죠?”

“중독치료를 공짜로 해줬으니 말이야.”

성기용은 현재 1번 던전 안에 있었다. 어지간한 상처는 하루면 낫는 던전 안에서는, 질병이나 중독증상등도 금방 낫는다. 거기다가 시간이 지나면 헌터가 될 수 있는 재능도 얻게 될테니 벌을 받는 다기보다는 오히려 상을 받는 모양새가 될 수도 있었다. 물론 준이 그 녀석을 그냥 풀어줄 생각은 없었다.

상당한 액수의 몸값을 받거나 아니면 그냥 엘라 행성으로 보낼 생각이었던 것이다.

“어쨌든 아직은 이 일이 알려지지 않았으니 적당한 선에서 물러서시는 것이 서로에게 이득입니다.”

“서로에게 이득이라니? 난 이득본게 하나도 없는데?”

“그 정도면 충분히 복수는 되셨을 거라고 생각합니다만.”

“장원삼 과장.”

준은 테이블 위에 팔꿈치를 기대고는 깍지 낀 손으로 턱을 괴었다. 준의 태도변화에 움찔한 장원삼이 황급히 자세를 바로했다.

“네?”

“같은 말 반복하게 하지 말지. 성기용이라는 녀석은 직접적으로 나와 내 사람들을 모욕했고, 그만하면 충분히 구금할 만한 이유가 된다고.”

“그, 그렇습니다만...”

장원삼 과장은 땀을 뻘뻘 흘리며 말을 잇지 못했다. 지금 준의 말에 토를 달아서는 안된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으면서도, 본사에서 벌어질 일을 생각하면 또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어떻게 되었든 이 사건을 중재할 ‘의무’가 그에게는 있었다.

“개, 갤럭시 지부 건물을 넘겨드리겠습니다.”

“장난해? 그거 얼마나 한다고.”

란도넬 행성 전체를 장악한 준에게 있어서 건물 하나 쯤은 눈에 차지도 않았다.

“시가로 한 오백 억 정도 할 겁니다.”

“호? 생각보다 상당한데? 그정도 가치가 있는 건물을 네 마음대로 처분이 가능하다고?”

“대신 성기용 지부장님과 만나게 해주십시오. 그분의 재가가 있어야 하는 만큼 제가 설득해 보겠습니다.”

“직접 만나서 해결을 보시겠다? 하지만 어쩌지? 천억으로는 모자란데?”

“그, 그럼 얼마나...?”

“두 배 정도로 하지. 갤럭시 인더스트리 회장의 아들인데 살려보내주는 조건으로 이정도면 충분하지 않겠어?”

“알스버그님... 마음은 알겠습니다만, 이건 사실상 갤럭시 인더스트리에 대한 선전포고나 마찬가지입니다. 눈에 띄는 피해가 없는 이상, 그 정도 시비로 천 억이라니요.”

“그 정도라... 그 녀석은 입에 담지 못할 말로 나와 내 여자를 모욕했다. 애초에 살려보내주고 싶지도 않을 정도야. 그런데 겨우 천억이 아까워서 이렇게 나오는 건가?”

“그게 아닙니다. 아예 완전범죄라면 모를까. 이미 말이 흘러나오는 상황에서 양측에 물리적인 피해가 없는데도 위자료로 천억을 내어놓으라고 하면 위에서는 당연히 공연한 시비라고 밖에 받아들일 수가 없습니다. 감정적으로 접근하면 크게 일을 그르치는 상황이 될겁니다.”

장원삼 과장은 거의 목을 내어놓는 심정으로 입을 열었다. 사실 이 말이 먹히지 않는다면 그는 더 이상 준을 설득할 자신이 없었다.

그리고 기적적으로, 준의 마음이 흔들렸다.

“흠... 네 말도 일리가 있긴 하군.”

준도 지금 상황에서 굳이 돈 몇푼 때문에 갤럭시 인더스트리와 분쟁을 일으키고 싶진 않았다. 하지만 어쨌거나 이쪽에서도 물러설 명분이 필요했던 것이고, 그 대가로 오백 억 짜리 건물이면 그럭저럭 충분히 면을 세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네가 직접가서 설득해.”

준이 허공에 손을 휘젓자, 웜홀이 생성되었다. 1번 던전의 입구였다. 장원삼은 잠시 당황했지만 더 이상 묻지 않고 웜홀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성기용은 동굴 속에서 멍하니 누워 있었다. 벌써 아무도, 아무것도 없는 동굴 속에서 지낸지 몇 개월이 지난 상태였다. 대화할 사람도 없었고, 화낼 사람도 없었다. 그나마 공장지대에 있을 때는 좀 나았다. 무섭긴 해도 도른이라는 대화할 상대가 있었고 햇빛도 들고 제법 산책을 할만한 곳도 있었다.

하지만 이 동굴은 정말 어두컴컴하고 습한데다가 바닥도 딱딱했다. 그나마 전에 살던 사람들이 놓고간 침낭 비슷한 물건이 있어 어떻게든 자는 것 까지는 문제가 없었지만, 그렇다고 해도 심심하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었다.

그나마 델타폰이라도 손에 쥐고 있어 심심함을 달랠 수 있었다. 대화할 사람도 없는 데 그것까지 없었다면 정말로 버틸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1,2번 던전 모두 합해 총 반년 가량을 혼자 지낸 그는 어쩌다 자신이 이런 신세가 되었는 가 한탄하는 것에도 지쳐있었다. 처음 한달 간은 준에 대해서 끝없이 저주하고 욕설을 퍼부으며 시간을 보냈다. 그러나 그것도 시간이 지나니 심드렁해 질 뿐이었다. 최근 들어서는 오늘 하루를 또 어떻게 보낼까 하는 생각만으로 가득한 상황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