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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이 던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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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레벨? 한 번에 이 정도나 올릴 수 있는거야?”
엘라가 깜짝 놀라며 입을 벌렸다. 그녀가 이번 한 번의 전투로 얻은 경험치는 대략 5만 가량. 스위니가 그보다 조금 적은 4만 정도를 가져간 상태였다. 그리고 준이 가져간 것이 대략 3만. 아예 전투에 참여하지 않았음에도 그정도를 가져갔다. 계산공식이 어떻게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레벨 때문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나머지 8만은 펄과 오펜하이머가 절반씩 나눠가졌다. 모두 합해 얼추 20만 가량이 나왔다. 애초에 경험치 효율이 100퍼센트가 아님에도 20만에 준하는 경험치가 나온 것은 운이 좋은 것도 있었지만 준이 가져간 경험치가 뻥튀기 된 덕분이었다.
‘흠... 잠깐만. 만약 이 상태라면 나 혼자서 던전을 클리어하면 투자한 경험치 보다 많이 가져오는 거 아닌가?’
보통 던전의 경험치 효율은 80퍼센트 언저리. 이번이 유독 경험치 효율이 높은 편이었긴 하지만, 어쨌든 이런 식이면 높은 레벨의 던전을 클리어 함으로서 공짜로 경험치를 얻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각 레벨의 던전클리어는 하루에 한 번이 한계입니다.
하지만 준의 그런 생각은 곧바로 시스템에 의해 저지되었다.
-그런 제한은 없었잖아.
-난이도 조절이 가능하면서 생긴 제한입니다.
-거짓말하네. 경험치 뺏길까봐 그러는 건 아니고?
-아닙니다.
시스템은 단호하게 대답했다. 하지만 오히려 저렇게 까지 정색하니 오히려 더 의심이 가고 있었다.
‘없던 경험치가 어디서 나올리는 없고. 분명히 추가 경험치는 델타가 가지고 있는 경험치에서 나눠주는 걸 텐데, 그래도 그렇지 준다고 해놓고 안주려는 건 좀 치사하네.’
델타의 목적이 오리진의 조각을 모아서 본체로 각성하기 위함이라고 추측해보면, 그런 행동이 마냥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델타는 조각을 모으기 위해서라도 사용자를 강하게 만들어야 할 필요와, 동시에 스스로의 능력을 강화시키기 위해 대량의 경험치를 보유하고 있어야 할 필요가 있었다. 이 두 가지가 서로 충돌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애초에 그런 건 준이 걱정할 일은 아니었다. 어차피 델타시스템을 완벽히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외도를 제거하기 위해서라는 목적이 합치된다면, 어느쪽이 되었든 나쁠 것은 없다는 것이 준의 생각이다.
“흠. 저는 8레벨이네요. 그리고 뭔가 자질구레 한 것들이 잔뜩 생겼는데... 이거 거슬리는데 없앨 방법 없나요?”
스위니가 눈앞에 손을 휘저으며 텍스트 덩어리들을 치우려는 시늉을 했다. 아무래도 비교적 최근에 계약을 한 때문인지 아직도 증강현실 시스템에 익숙해지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거 다 쓸모 있는 것들이니까 제대로 숙지해 둬. 한 두 번 정도만 더 가면 둘 다 10레벨 찍을 수 있을테니까 그때까지는 도와줄게.”
“10레벨 되면 뭐가 달라져?”
“일단 인벤토리를 100칸까지 늘일 수 있으니까. 그것만으로도 도움이 되겠지. 특히 너는.”
“그럼 프랜들도 많이 넣을 수 있겠네.”
엘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현재 그녀가 운용하고 있는 프랜시리즈는 대략 20기 정도. 그중에서 10기 정도만 인벤토리에 넣고 다니고 있었다. 나머지는 전부 따로 보관하고 있다보니 제법 번거로운데다가 정작 필요할때는 쓸 수 없다는 단점이 있었다. 하지만 인벤토리의 크기가 늘어나면 그녀가 소환할 수 있는 로봇들도 많아지기 때문에 그만큼 전력이 강화된다. 직접 공격능력이 없다보니 그녀는 인벤토리의 크기가 곧바로 전투력으로 치환되는 것이다.
“그럼 오늘은 이걸로 끝. 다들 가서 쉬고 있어.”
“아빠는?”
“나는 두 번째 던전을 좀 돌 생각이야.”
“나도 가면 안 돼?”
“다음에. 이건 방금 갔던 곳 보다 더 힘든 곳이라 뭐가 나올지 모르거든. 내가 일단 가보고 나서 안전하다고 생각되면.”
“우웅... 알았어.”
엘라는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그녀는 패밀리(?)들을 이끌고 사라졌다. 준은 오펜하이머를 보며 입을 열었다.
“넌 안가냐?”
“저기... 나 새직업으로 스토커라는게 생겼는데 이거 나쁜거 아냐?”
“기분은 좀 나쁘네.”
“장난치지 말고.”
오펜하이머가 볼을 부풀리며 입을 열었다. 준은 그녀의 프로필을 열어 확인했다.
사용자 : 오펜하이머
레벨 : 8
클래스 : 마법사. 스토커
칭호 : 펠로우쉽의 대상자(모든 능력치 +1)
능력치
체력 2456/2456 마나 47147/47147 경험치 21147 잔여 스탯 0
힘 13(+1) 민첩성 17(+1) 지능 56(+1) 정신력 39(+1)
기술
은폐(상급) : 자신의 몸을 완벽하게 감춥니다. 빛의 왜곡이 거의 일어나지 않습니다. 소리와 냄새는 감출 수 없습니다.
파이어스트라이크(상급) : 엄청난 불길의 소나기를 광범위한 지역에 소환합니다.
인페르노(상급) : 사용자를 중심으로 넓은 반경에 원형의 화염데미지를 가합니다. 그 불길은 무엇으로도 꺼뜨릴 수 없습니다.
크로마틱블링크(상급) : 사용자의 위치를 순간적으로 여러곳으로 분산하여 이동합니다. 실체는 그중 하나입니다.
마법진제작(상급) : 특정마법을 사용할 수 있게 하는 마법진을 제작할 수 있습니다. 제한용량은 1000마나입니다. 한 번 사용한 마법진은 사라집니다.
직업기술
상급은폐(초급) : 자신의 기척을 감춥니다. 소리와 냄새도 옅어집니다.
추적(초급) : 특정인의 정보를 바탕으로 그의 위치를 추적합니다. 정보가 많아질수록 위치의 오차범위도 줄어듭니다.
제발 좀 꺼져줄래?(지속) : 추적 상대에 대한 사용자의 호감도가 감소합니다. 추적시간이 길어질수록 지속효과는 강화됩니다.
“호감도 하락...? 나쁜 효과를 주는 기술은 처음보네.”
“그, 그렇지? 이거 안좋은 거겠지?”
“완전히 미운털 박히는 거지. 너 맘에 드는 사람 생긴다고 함부로 추적걸면 안되겠다.”
“흐음...”
오펜하이머는 아쉽다는 듯 낮은 한숨을 쉬었다. 호감도 시스템은 제법 정직하게 반응한다. 특히 그 상대가 펠로우쉽 계약에 엮여있다면 그 효과는 확실하다. 루나가 어떻게 준과 엮였는지를 생각해보면 답은 나온다. 물론 호감도가 감소한다고 해서 그 사람을 무턱대고 미워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이런 것은 장기간에 걸쳐 사람에게 영향을 미친다. 머리로는 그 사람의 잘못이 없다고 생각해도 본능이 이를 거부하게 되는 것이다.
심지어 오펜하이머처럼 귀찮게 구는 인간이라면 그 효과는 몇 배로 증폭된다. 그렇지 않아도 짜증나는 인간이니 자신의 감정에 의문을 가질 이유가 없기 때문이었다.
그러다보니 추적능력이 뛰어난 기술이라곤 해도 제한적으로 사용할 수밖에는 없다. 그때는 정말로 스토커 취급을 받을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오펜하이머는 제법 뻔뻔한 인간이니 별로 상관없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긴 했지만, 어쨌든 미움받는 걸 좋아하는 사람은 없었다.
오펜하이머는 잔뜩 풀이 죽은 채 준의 방을 빠져나갔다.
‘그럼 두 번째 던전을 열어볼까.’
첫 번째 던전은 붉은색. 이제부터 열려는 것은 경험치가 40만이나 들어가는 주황색 레벨 던전이었다.
거기다가 이번에는 일반 던전이 아닌 특이 던전을 열었다. 그러자 웜홀의 색이 달라졌다. 일반 던전은 투명한 푸른 빛이 일렁였다면, 특이 던전은 은은한 붉은 색이 일렁였다. 확실히 뭔가 다르긴 다른 모양이었다.
준은 약간의 긴장감을 느끼며 웜홀 안으로 발을 들였다.
주변은 넓은 구릉지였다. 멀리 중세시대에나 존재했을 법한 성이 보이고, 가는 길에는 평화롭게 풀을 뜯고 있는 외도들이 있었다. 일단 풀을 뜯는 외도가 특이한 편은 아니니 그건 상관없었다. 실제로 초식형 외도도 보고된바 있는데다가 심심찮게 발견 되는 편이었다.
다만 문제가 되는 것은 그 숫자였다. 확실히 레벨 자체가 높다보니 눈에 보이는 것만 백여마리였다.
퀘스트 ‘고성함락’이 발동됩니다.
사용자는 외도에 점령된 고성을 발견했습니다. 그곳에는 잊혀진 보물들이 다수 묻혀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곳을 점령하여 잠자고 있는 고대의 보물들을 발견하십시오.
고대의 보물획득(0/10)
“보물...?”
지금까지와는 사뭇다른 퀘스트가 생겨났다. 기껏해야 외도를 잡거나, 던전핵을 파괴하라는 정도였던 퀘스트가 완전히 다른 형태로 변화된 것이다. 그것도 다름아닌 보물찾기였다.
‘대체 무슨 보물이기에... 설마 나중에 전부 뺏어 가는 건 아니겠지?’
일단 퀘스트를 완료하기 위해서는 보물을 찾아야했다. 지금까지의 델타가 보여준 행보로 봤을때는 아이템으로 예상되는 저 보물을 빼앗아 갈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뚜둑.
준은 몸을 가볍게 풀고는 눈앞에 보이는 초식형 외도들을 향해 천천히 다가갔다. 대부분 붉은 색 외도였다.
준은 니들건을 꺼내기 위해서 인벤토리를 열었다. 아니, 열려고 했다.
“어...?”
하지만 인벤토리는 열리지 않았다. 아무리 인벤토리 소환을 명령해도 제대로 들어먹질 않는 것이다.
-뭐야? 이거 왜이래?
-특이 던전은 각 던전마다 제한이 있습니다. 이번 던전의 제한은 인벤토리 사용금지입니다.
-뭐? 그런게 있으면 진작 말해야지.
준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하지만 시스템의 대답은 냉정했다.
-튜토리얼에 자세히 나와 있습니다. 확인하지 않은 것은 사용자의 실수입니다.
-이제와서 누가 튜토리얼 같은 걸 본다고!
-갱신된 정보는 항상 확인하는 습관을 들이시도록 하세요.
“끙...”
준은 어쩔 수 없다는 듯 가벼운 한숨을 내쉬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포기하시겠습니까?
-이게 얼마짜리 던전인데 그럴 수는 없지.
자그마치 경험치 40만을 들인 던전이었다. 무슨수를 써서라도 클리어 할 작정이었다.
-만약 내가 클리어 하기 전에 던전을 나가면 어떻게 되지?
-사라집니다.
-만약 다른 사람이 남아 있으면?
-사용자가 생성한 던전은 귀속 전까지는 반드시 사용자가 함께 있어야 유지가 가능합니다.
-즉, 내가 없으면 안에 누가 있더라도 사라질 가능성이 있다는 거군.
-그렇습니다. 추천하지 않는 방법입니다.
-꼼수는 철저하게 차단하는 구만.
-꼼수는 데이터에 없는 단어입니다.
-없을 리가... 어쨌든 알았어. 결국 맨손으로 해결하라는 거구만.
-사용할 수 없는 것은 인벤토리 뿐입니다. 그 외에는 무엇이든 제한이 없습니다.
-던전에 들어오기 전에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은 없어?
-안타깝게도 없습니다.
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쨌거나 특이던전인 만큼 뭔가 있을 거라는 예상했다. 그것이 상상할 수 있는 최악의 방향으로 드러나긴 했지만, 인벤토리의 무장을 사용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그에게는 수많은 기술이 있었다.
주황색 레벨 정도는 충분히 클리어할 자신이 있었다.
그래도 골렘형제들이 없는 건 좀 아쉽군.’
인벤토리를 사용하지 못하게 되면 대흉근도 불러낼 수 없다. 탱커가 아닌 준에게 반드시 필요한 녀석이었기에 아쉬운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럼 시작해볼까?’
초식형 외도들은 대부분 아르마딜로를 닮아 있었다. 단단해 보이는 비늘갑옷을 온몸에 두르고 단단한 이빨로 풀과 나무를 뜯고 있었는데, 턱힘이 어찌나 강한지 제법 굵은 나무들도 쉽게 뜯어먹고 있었다.
탁.
준은 두 주먹을 서로 가볍게 마주치고는 무릎을 꿇고는 바닥에 두 손을 가져다 대었다. 그리고는 낮은 소리로 입을 열었다.
“광물탐색.”
반경 100킬로미터의 광물위치를 파악할 수 있는 기술 ‘광물탐색’이 시전되었다. 그러자 던전내부의 광물이 존재하는 지형을 모두 파악할 수 있었다.
‘현재 이곳에서 약 5킬로 미터 떨어진 언덕지형에 철광석이 있다.’
산화철 형태이겠지만 별 상관없었다. 일단 철이기만 하면, 준은 거기에서 경험치를 보태어 충분한 무기를 생산할 수 있었다.
눈앞에 고성이 보이긴 하지만, 무기도 없이 뚫고 가기에는 적들의 수가 너무 많았기 때문에 내린 결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