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12 ----------------------------------------------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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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걸로 뭐 찌르기라도 하겠다는 건가? 이거 원 무서워서 온몸이 떨리는 군.”
성기용이 어처구니 없다는 듯 입을 열었다.
“그러게. 이런 걸로 찔러서 그 두꺼운 뱃가죽이 뚫릴 리가 없지.”
서은설이 천천히 포크의 날카로운 부분을 왼손바닥에 가져다 대고는 힘을 주어 누르기 시작했다. 그러자 포크가 천천히 구부러지기 시작하더니 이윽고 완전히 90도로 꺾인 상태가 되었다. 성기용은 생각지도 않았던 서은설의 괴력에 약간 움찔 한 듯 했지만, 그정도 무력시위에 겁을 먹을 위인은 아니었다.
“차력시범은 끝난 거냐?”
“아직 안 끝났는데.”
그녀는 그 구부러진 포크를 두 손으로 쥐고는 우그러뜨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맞잡은 두 손의 사이에서 돌연 푸식, 하고 하연 연기가 치솟아 오르더니 붉은 쇳물이 흘러내렸다.
뚝. 뚝.
치이익!
“읏?”
성기용은 바닥을 태우고 들어가는 붉은색의 쇳물을 보며 황급히 뒤로 물러섰다. 자칫 잘못하다가는 신발이 아니라 발등에 까지 구멍이 날 상황이었다.
“와아... 포크를 녹인거에요? 철은 녹는점이 천오백도가 넘는데...?”
엘라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입을 열었다. 제법 뛰어난 마법사라고 할지라도 쇠를 녹이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자. 그럼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우리 악수나 한번 할까?”
서은설이 방금에 포크를 쇳물로 만들어 버린 손을 성기용에게 내밀었다. 그가 움찔 하며 한발 더 물러섰다. 만약 지금 서은설의 손에 닿기라도 한다면 순식간에 몸이 잿더미로 변할 수도 있는 온도였다.
“이... 이 미친년이. 누굴 죽이려고! 지금 너희들 이러는 거 아버지에게 말하면 어떻게 될지 모르는 건 아니겠지?”
“와아. 무서워라. 아빠한테 이르겠대. 어쩌지?”
서은설이 고개를 돌려 준을 쳐다보았다. 준이 입을 열었다.
“애들 교육에 안좋다니까. 그냥 곱게 보내는 게 나은데... 후...”
준은 고개를 저으며 오른 팔을 쭉 뻗었다. 그러자 허공에 스파크가 일더니 일렁거리는 웜홀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그것을 본 성기용의 얼굴이 와락 구겨졌다. 저게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저곳에 빨려들어가게 되면 좋지 않은 일이 벌어질 것이라는 사실만은 확실했다.
그는 뒷걸음질을 치며 입을 열었다.
“내, 내가 지금은 물러나지만 오늘일은 절대로 잊지 않을 것이다. 각오하는 게 좋을거야.”
“가긴 어딜 간다는 거야?”
“뭐, 뭐라고?”
준이 손을 들자, 막 도망치려던 그의 몸이 마치 덫에 걸리기라도 한 듯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의지대로 움직이지 않는 몸을 움직이려고 애쓰며 큰소리로 외쳤다.
“대체 무슨 짓을 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만약 내 몸에 조금이라도 이상이 있으면 회사에서 절대로 가만히 있지 않을걸?”
-준. 그건 그의 말이 맞아요. 재수없는 놈이긴 하지만 지금은 그냥 보내주는 게 나을 것 같아요. 이미 소란도 커져서 이 이야기도 금방 퍼져나갈 거고요.
서은설이 펠로우쉽 통신을 보내왔다. 성기용이라는 자가 갤럭시 그룹 회장 성상민의 몇 번째 아들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핏줄인 만큼 그가 실종되기라도 한다면 란도넬 전체가 발칵 뒤집힐 만큼의 대사건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가 이 곳에 왔다는 사실을 모를리 없을테니, 조사가 진행되면 결국 준과 마찰이 있었을 거라는 것 까지도 추측이 가능했다.
그렇게 되면 갤럭시 측에서 어떤 회답이 오게 될지, 그 부분을 우려하는 것이다. 하지만 준은 그다지 개의치 않았다.
“뭐 어때. 죽이지만 않으면 되겠지.”
“뭐, 뭐라고? 그게 대체 무슨 말이냐!”
성기용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반문했지만 준은 더 이상 그와 말을 섞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준은 염동력을 이용해 성기용을 그대로 2번 던전으로 던져넣었다. 최근에 그 안에 있던 사람들을 전부 엘라 행성에 내려놓고 온 상황이라 꽤나 심심하기는 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괜찮을까요?”
“안 괜찮으면. 그렇다고 내 행성에서 주인인 양 행세하는 걸 두고 볼 수는 없지.”
준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을 하고는 다시 자리에 앉았다. 하지만 점장과 종업원들의 얼굴은 여전히 하얗게 탈색되어 있었다. 갤럭시 인더스트리 란도넬 지부의 지부장을 어디론가 날려버렸으니, 그 불똥이 자신들에게 까지 튈까봐 걱정하고 있는 것이다.
“뭘 그렇게 걱정해? 뭐 죄지은거 있어?”
“아, 아닙니다.”
“죄 지은거 없으면 신경쓰지 말고 하던일이나 해. 이번일로 여기가 불이익을 받는 일은 없도록 할테니까.”
준은 그렇게 말하고는 유리잔에 와인을 따랐다. 괜한 말다툼을 했더니 갈증이 느껴졌다.
저벅. 저벅.
서은설과 준, 두 사람은 조용히 프라이어 시티의 밤길을 걸었다. 벌써 엘라와 아이들은 검둥이와 스위니가 와서 집으로 데려간 상황. 눈치 빠른 스위니가 두 사람만 있을 수 있도록 배려해 준 것이다.
“아까 그거 말이야.”
서은설이 먼저 입을 열었다.
“뭐?”
“포크 녹인거. 그거 사실 알루미늄이라서 그렇게 뜨겁지 않아.”
철의 녹는점은 1560도. 알루미늄은 600도다. 결코 안전한 온도는 아니다. 준은 의지와 상관없이 떠오르는 지식을 애써 지우며 입을 열었다.
“아니. 별 상관없는데. 그보다 뜨거워도.”
그렇게 말하며 서은설의 손을 잡았다. 그녀의 몸이 순간 뻣뻣하게 굳었다.
“천하의 서은설이 왜 이렇게 굳어 있는거야?”
“아니. 네가 먼저 손을 잡아 주는 건 처음이라서. 무슨 심경의 변화라도 있었던 거야?”
“마냥 기다리게 하는 것도 못할 짓이다 싶어서. 루나에겐 미안하지만. 어느쪽이든 선택을 해야한다면, 내 선택은 이쪽이야. 아마도 처음부터 그랬겠지. 그저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것일 뿐이고.”
“그동안 노력한 보람이 있네.”
“물론 나도 노력할 생각이야. 이제와서 물러설 생각은 없으니까 각오하라고.”
“무, 무슨 각오?”
“뭐라니. 이제와서 도망칠 건 아니겠지?”
준은 그녀를 바짝 끌어당겼다. 두 사람의 몸이 가까워지자 그녀의 몸이 바르르 떨리는 것이 느껴졌다. 평소에 대가 센 녀석이었던 만큼 이렇게 아무것도 못하고 숨죽이고 있는 것이 묘한 기분을 느끼게 했다.
“아... 아직 마음의 준비가.”
“먼저 덮친 게 누구더라?”
“그때도 엄청난 준비와 각오가 필요했다고. 그냥 내키는 대로 한 거라고 생각하면 오산이
야.”
서은설은 붉어진 얼굴을 감추려 고개를 숙이고는 입을 열었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흘깃 두 사람을 살폈다.
“그리고 사람들이 보잖아.”
“지금 다른 사람들이 눈에 들어오는 거야? 나는 너 밖에 안보이는데.”
준의 말에 서은설이 입을 쩍 벌리고는 그를 쳐다보았다.
“재, 재수없어. 어디서 그런 느끼한 말을...읍?”
그녀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두 사람의 입술이 조용히 겹쳐졌다.
델타폰의 프로모션 영상이 란도넬과 이스카야, 그리고 수라드 행성에 방영되기 시작했다. 마냥 최악이라고 생각했던 그 광고는 제법 컬트적인 인기를 얻어서 인터넷에서 꽤나 화제가 되고 있었다. 물론 그만큼 델타폰에 대한 관심도도 엄청나게 높아졌다.
적어도 기존의 스마트패널과의 차이점을 다소 우스꽝스럽긴 하지만 확실하게 드러내보인 광고는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할 수밖에 없었다. 음식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스마트패널이라는 것을 상상조차 하지 못한 이들은 대리점을 찾아 물건을 구입하기 위해서 발매전날 줄을 서기까지 했다.
그리고 그날 대형사고가 터졌다.
“통신사에서 사업철수를 하겠다고?”
준이 어처구니 없다는 말투로 입을 열었다.
“그렇습니다. 현재 란도넬에 들어와 있는 세 통신사 모두가 자신들의 서비스를 중지하겠다는 선언을 했습니다.”
“말도 안되는 소리. 하루아침에 그런게 가능할 리가 없잖아. 통신위성은 어떻게 할거고, 지상시설들은 어떻게 할거야? 그걸 전부 폐쇄한단 말이야?”
“그렇다고 하는군요. 저로서도 이렇게 까지 강경한 반응을 보일거라는 예상은 미처 하지 못했습니다. 제 불찰입니다.”
제임스가 이렇게까지 낭패감을 느끼는 모습을 처음보는 지라, 준도 제법 심각한 상황이라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다.
“원래 예상은 항의나 뒷거래 정도가 들어 올거라고 생각했는데 말이지.”
“아마도 사전에 모의가 있었던 듯 합니다. 어쩌면 내부 정보가 흘러나갔을 수도 있습니다. 역시 그 여자가...”
“아니. 그 녀석은 아니야.”
“사장님은 어린여자에게 유독 약하신 경향이 있습니다.”
“사람을 그런쪽으로 몰고가지 말라고. 애초에 그 녀석은 너를...읍읍!”
그 순간 준의 뒤에서 손 하나가 불쑥 튀어나와서 그의 입을 틀어막았다. 준은 어느정도 기척으로 오펜하이머가 이 방안에 들어와 있음을 알 수 있었지만, 제임스는 약간 놀란 모양이었다.
물론 준도 정확한 위치까지는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어쨌거나 상급은 상급인 것이다.
“푸핫! 너 임마! 일부러 모른척 하고 있었는데 적당히 하고 나갈 것이지.”
“그, 그래도 네가 기밀을 말하려고 하니까.”
“그래. 그건 내가 사과할게. 몰래 이 방안에 들어와 있는 것도 뭐라고 하지 않을테니까. 당장나가.”
“이왕 들킨 거 그냥 여기서 있으면 안될까?”
“대놓고 스파이 짓을 하겠다는 겁니까? 아무리 이 회사가 사장님 마음대로 굴러가는 곳이라지만, 적어도 제가 있는 곳에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제임스가 차가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오펜하이머가 목을 움츠리자 준이 혀를 차며 입을 열었다.
“봤지? 저 녀석 피도 눈물도 없는 인간이라니까. 그러니까 너도 얼른 다른남자 찾...읍!”
“너 일부러 그러는 거지?”
오펜하이머가 눈을 무섭게 뜨고는 준을 노려보았다. 딱히 무섭지는 않았지만 굳이 이런 일로 원한을 살필요는 없었기에 준도 적당한 선에서 물러섰다.
“하하. 농담이야. 어쨌든 이제 정말로 가라. 너 있으면 신경쓰여서 할 말도 못하니까.”
“쳇.”
오펜하이머는 툴툴거리며 회의실을 빠져나갔다. 제임스가 가볍게 한숨을 쉬며 입을 열었다.
“여자는 귀찮습니다.”
“그래도 좀 봐줘. 다 너 좋다고 그러는 건데.”
준은 서슴없이 기밀을 까발렸다. 제임스는 고개를 저었다.
“저랑 나이차이가 얼마나 나는지 아십니까?”
“그런 게 중요해? 그냥 서로 좋으면 그만이지.”
“그러니까 제가 별로 안좋습니다. 저 나이의 여자에게 휘둘리는 건 개인적으로 절대로 피하고 싶습니다.”
제임스는 혼자 지내는 데 익숙했다. 알카트뢰즈에서 몇 년을 근무했고, 직원의 대부분이 남자다보니 딱히 연애를 할 기회가 없었다. 델타스피릿에 들어온 이후로는 그야말로 눈코뜰새 없이 바쁘다보니 그런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그러다보니 어느순간 혼자가 익숙해진 상태가 되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처음보는 여자가 좋다고 쫓아다니는 것이 오히려 불편하게 여겨지는 것이다. 어떤 교감도 없고, 대화한번 제대로 나눠보지 않은 상태에서 얼굴만 보고 좋다고 접근하는 여자를 그냥 받아들일 정도로 급한 것도 아니었다.
“뭐, 그건 네 결정이니까 난 존중하겠어.”
“그런 사소한 문제는 상관없습니다. 지금 중요한 건 통신사 문제입니다.”
“직접적인 문제는 뭐가 있지?”
“전화는 당연하고 인터넷, 방송, 그 외의 모든 통신관련 업무들이 중지됩니다. 이 정도면 사실상 선전포고나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왜 이렇게 극단적인 선택을 했는지는 일단 교섭단을 꾸려봐야 알 수 있을 듯 합니다.”
“내가 나가야 하는 건가?”
“제가 나가겠습니다. 교섭단에 굳이 대표가 나갈 필요는 없습니다. 서로 어느정도 레벨을 맞춰줘야 이야기가 빠르게 진행되니까요.”
“그럼 좀 부탁해. 나는 최악의 경우를 대비해서 미리 준비를 하고 있을게.”
“네.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제임스는 그렇게 말하고 회의실을 빠져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