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11 ----------------------------------------------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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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이어 시티 최고급 레스토랑에 도착한 준은 먼저 자리를 잡고 기다리고 있다는 서은설을 찾았다. 굳이 이름을 말하지 않아도 이 정도 급 되는 식당에서 준 알스버그와 서은설 같은 VIP의 얼굴을 모른다는 것은 말이 안되는 일.
막 스카이라운지에 들어선 준을 향해 점장으로 보이는 이가 긴장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준 알스버그 님이십니까?”
“아아. 예약이 되어있을 텐데.”
“네. 서은설 님이 기다리고 계십니다. 이쪽으로.”
“굳이 불편하게 따라오지 않아도 되는데.”
“죄송합니다. 제가 불편하시면 다른 사람을 붙여드리겠습니다.”
점장이 허리를 90도로 숙이며 사과했다. 그리고 뒤에서 눈이 번쩍 뜨일 정도의 미녀가 다가왔다. 하지만 그녀는 마치 뭐 마려운 강아지처럼 걸음도 제대로 걷지 못할 정도로 비틀거리고 있었다.
“호, 홀 마스터, 데, 데, 데바입니다. 제, 제가 안내해드릴까요?”
“아니. 그냥 점장이 낫겠어. 적어도 말은 안더듬으니까.”
“네? 네. 그럼 제가 안내하겠습니다.”
애초에 이런 대우가 익숙한 것도 아니고, 그냥 혼자가려고 했다가 홀 전체가 들쑤신 것 처럼 직원들이 우왕좌왕하는 걸 보자 준은 한숨이 나왔다. 보통의 식당도 아니고, 어지간한 VVIP들은 모두 만나보았을 이들이 긴장하는 걸 보자, 자신의 악명도 보통은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헌터 4천명이 모인 조직을 단신으로 뚫고 들어가 해산시켜버렸으니, 란도넬의 어린아이들이 준의 이름만 듣고도 울음을 멈춘다는 소리가 과장이 아니었다.
지금까지는 델타스피릿 내에서만 활동했기에 외부에서 어떻게 보이는지를 실제로 체감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나 마찬가지였다.
“저기입니다. 저희 가게에서 가장 전망이 좋은 곳입니다.”
“아아. 뭐.”
준은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가장 좋은 전망이라고 해봤자, 자신이 매일 보고 있는 200층 짜리 빌딩의 전경만큼 좋지는 않을 것이다. 따지고 보면 스카이라운지라고 해도 집에서 먹는 밥보다 나을 것도 없었다.
‘그냥 집에서 상 펴놓고 먹으면 될 걸 굳이 밖에서...’
그래도 약속을 했으니 준은 군말하지 않고 천천히 점장이 안내해준 자리로 다가갔다. 자신과 마주보는 위치에 있던 서은설이 살짝 손을 흔들었다.
준도 마주 손을 들어 인사했다. 그리고 다음 순간 세 개의 작은 머리가 튀어나오는 걸 보고는 걸음을 멈추었다.
“아빠. 거기서서 뭐해?”
“얼른 와요. 배고파요.”
“넌 어차피 아무것도 안먹잖아.”
“풀은 먹거든?”
“너 그거 동족살해 아니냐?”
“넌 그럼 생선 안먹냐?”
그렇게 셋 이서 투닥거리는 걸 보면서 준이 의아한 눈빛으로 서은설을 쳐다보았다. 그녀가 웃으며 입을 열었다.
“요즘 바빠서 엘라를 잘 돌봐주지도 못했거든. 그래서 겸사겸사 같이 밥이나 먹으려고. 왜 실망했어?”
“아니. 그런게 아니라. 의외로 기특한 생각을 했다 싶어서.”
준은 피식 웃으며 서은설의 옆자리에 앉았다. 맞은편에는 세 아이들이 있었다. 비주얼로 보면 여전히 엘라가 가장 어려보였다. 그 사이에도 엄청난 성장을 했지만 아직 초등학생 저학년 정도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에 비해 시미나 펄은 10대 중반 정도는 되어보였다.
‘이녀석 대체 언제까지 자랄려나.’
빠른 성장이 걱정되는 부분도 있었다. 만약 이 성장속도가 계속 지속되어서 갑자기 성인이 되어버리면 그건 그거 나름대로 서운할 것 같았다. 물론 지금 상태에서도 이미 평범한 초등학생의 사고력을 아득히 뛰어넘은 상태이지만, 어쨌든 너무 빨리 성장하는 것은 그다지 바라지 않았다. 어린 시절을 좀 더 오래 보냈으면 하는 마음이 있는 것이다.
시스템에 질문을 했을때 나온 대답으로는 델타가 계약자 신체를 최적화 하는 과정에서 보이는 빠른 성장이라고 했다. 시스템으로서도 어디까지 성장할 지는 아직 제대로 예측하지 못하고 있었다. 다만 빠른 노화는 없을 거라고 하니 그 부분에 있어서는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당장 다른 계약자들만 보더라도 오히려 젊어지면 젊어졌지 늙지는 않는 걸로 봐서 그 말은 충분히 신빙성이 있었다.
“주문하시겠습니까?”
“너희들 뭐 먹을거냐?”
“난 스테이크.”
“난 야채샐러드.”
“난 아구찜.”
“메뉴만 봐도 정체성이 느껴지는구만. 그리고 아구찜은 안 돼.”
“왜?”
“딱봐도 안될 거 같이 생긴 식당이잖아. 그냥 다른 생선 요리로 시켜줄게. 넌?”
준은 서은설을 향해 입을 열었다.
“전 준이 먹는 걸로요.”
“흠... 그럼 추천메뉴로 두 개.”
어차피 이런 식당은 와본적이 없기 때문에 알아서 주문하도록 했다. 가격이 얼마인지는 모르겠지만, 최고급 식당이라고 하니 뭘 시켜도 맛이 없을 것 같지는 않았다.
식사는 제법 괜찮은 편이었다. 눈이 번쩍 뜨일 정도는 아니었지만 마스터에 비해서도 그다지 밀릴 것이 없는 훌륭한 요리였다. 준이 식사를 마치고 와인을 쭉 들이키고는 입을 열었다.
“그러고보니 검둥이는?”
“스위니랑 산책나갔어요. 근처 공원에 예쁜 강아지들이 많다고.”
“그런데 검둥이가 진짜 원래 사람이었던 거야?”
“어. 원래 이름도 있었는데... 뭐였더라...”
아무리 생각해도 이름이 떠오르질 않았다. 프로필에도 그냥 검둥이라고만 되어있지 본명은 적혀 있지 않았다.
-야. 너 이름이 뭐지?
-검둥이요.
-아니. 원래 이름. 사람이었을때.
검둥이는 한참이나 대답을 하지 않았다.
-너 설마 자기 이름을 까먹은 건 아니겠지?
-줄리앙입니다. 자기 이름을 까먹는 바보도 있습니까?
검둥이는 그렇게 항변했지만 준은 믿지 않았다. 애시당초 알았으면 바로 대답을 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줄리앙이래.”
“이름은 멀쩡하네. 그런데 왜 알카트뢰즈에 있었던 거야?”
“듣기로는 살인죄라고 하던데.”
“헐... 그런 녀석을 애완동물이라고 데리고 다니는 거였어?”
“나도 자세히는 기억이 안나는데 뭔가 사정이 있었다고 하더라고. 그리고 어차피 외도가 된 이상 인간보다 위험한 건 마찬가지인데 뭐 어때?”
“하긴 그렇지... 하고 안심할때가 아니잖아. 그런 녀석을 딸아이에게 붙여도 되는거야?”
“펠로우쉽 계약이 되어있으니까. 그 녀석이 설령 무언가 나쁜 마음을 먹어도 방법이 없지.”
“나쁜 마음을 먹으면 방법은 어떻게든 나오는 법이야.”
“됐어. 그 녀석 도움을 받은게 얼마나 많은데. 그보다는 슬슬 그 녀석을 다시 인간으로 돌릴 방법이 없나 고민을 해야할 때라고.”
“외도화 된 인간이 다시 돌아갈 수 있는 방법이 있어?”
“글쎄. 그건 아직 찾고 있는 중이야. 멀쩡한 인간이 외도가 됐다면 그 반대도 가능하지 않을까하고 생각하는 것 정도지.”
“나중에 혹시라도 방법을 찾으면 본인에게 물어보고 해. 별로 인간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을 수도 있으니까.”
가만히 듣고 있던 펄이 입을 열었다.
“넌 별로 인간이 되고 싶지 않은거냐?”
“굳이. 그래야할 필요도 모르겠고. 지금이 훨씬 좋은데.”
“하긴 넌 초록색 정예외도였지. 그정도의 힘이 있는데 다시 힘없는 인간소녀로 돌아가라고 하면 그게 더 무리지.”
“그러니까. 검둥이에게도 본인의 의사를 꼭 물어보라고.”
“흠... 그렇긴한데... 아무래도 녀석은 외도가 된지 얼마 안되기도 했고.”
준은 고민했다. 사실 검둥이는 지금의 생활에 그다지 불만이 있는 것 같지 않았다. 사실 그 녀석이 인간으로 돌아가지 않는다면 가장 이득을 볼 사람이 준이었다. 그는 제법 전력이 되는데다가 충성심도 상당하기 때문이었다.
어찌해야 할까 하고 생각하고 있는데 갑자기 레스토랑 한쪽에서 소란이 일었다.
“내 지정석을 왜 못주겠다는 거야!”
“그, 그것이... 오늘은 선객이 있습니다.”
“선객? 웃기고 있네. 언제는 선객 없었어? 당장 쫓아내! 돈이라면 얼마든지 있으니까!”
“중요한 고객이라...”
“나보다 더 중요한 사람이 있단 말이야? 좋아. 그 중요한 고객이 누군지 얼굴이나 한번보자고!”
“아, 안됩니다! 그 분은 델타스피릿의...”
점장이 무언가 다급하게 설명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가만히 사태를 관망하던 준의 미간이 구겨졌다. 어딜가든 저런 사람은 있게 마련이지만, 하필 자신이 온 날에 이런 일이 벌어질 거라곤 생각지 못했다.
‘그냥 잡아서 감옥에 처넣어버릴까...’
하지만 점장이 자신의 이름을 댈테니 곧 물러날 녀석이었다. 굳이 오랜만에 엘라까지 함께한 저녁식사에 귀찮은 일을 더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쿵. 쿵. 쿵.
헌데 잔뜩 화가 난 사람의 발걸음소리가 점점 준이 있는 곳으로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준은 잔뜩 화가난 얼굴로 자신을 향해 다가오고 있는 젊은 사내를 보았다. 처음보는 사내였다. 나이는 한 이십대 중반 정도로 보이는데, 옷차림등으로 보아선 상당한 재력가로 보였다.
“네가 준 알스버그냐?”
그리고는 그는 당돌하게 준을 향해 입을 열었다. 홀안의 모든 사람들이 숨을 들이삼켰다.
“자기소개부터 하지?”
준이 피식 웃으며 입을 열었다. 란도넬 행성에서 자신이 누군지 알면서 이렇게 당돌하게 나오다니 이쯤되면 그의 배경이 궁금해질 지경이었다.
“나는 갤럭시 인더스트리의 란도넬 행성 지부장 성기용이라고 한다. 지금 자네가 내 지정석에 앉은 것 같은데 자리를 좀 양보해주면 안되겠나?”
“안 되는데.”
“그래. 잘 생각했어. 자릿값은 내가 적당히 계산해서 줄테니까...”
“아빠. 저사람 귀가 먹었나봐. 말귀를 못알아 들어.”
“뭐, 뭐라고?”
갑작스런 엘라의 폭언에 성기용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준이 입을 열었다.
“갤럭시 인더스트리의 지부장이라... 생각보다 별로 대단한 직위도 아닌데 배짱은 좋군. 그 나이면 임원급도 아닐텐데 말이야.”
“저기... 저분은 성상민 현 갤럭시 그룹 회장의 아들이십니다.”
그때 점장이 조용히 준에게 다가와 입을 열었다. 준은 그제서야 이해가 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아. 제법 배경이 좋으시구만.”
“내가 누군지 알았으면 자리를 좀 비켜줬으면 좋겠는데.”
“점장.”
“네.”
“경찰불러서 저 녀석 당장 치워.”
“네. 네? 하, 하지만 저분은...”
“내가 직접 치울까?”
준이 귀찮다는 듯 입을 열었다. 점장이 저렇게 벌벌떠는 이유도 이해는 갔다. 아무리 란도넬 행성이 델타스피릿의 관할에 있다고 해도, 갤럭시 인더스트리라는 이름이 주는 압박감은 절대로 무시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만큼 연합 전체에서 갤럭시 그룹의 영향력은 엄청나기 때문이다.
아무리 준이 강력한 세력을 구축하고 있다 하더라도, 아직 갤럭시의 발끝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은 사실이었다.
“하... 최근에 제법 목에 힘이 들어간 모양인데. 까불지 말고 자리나 비워. 여자도 어디서 저렇게 못생긴 걸 데려다가...”
“준.”
“응?”
“저 자식 내가 손 좀 봐도 될까?”
“애들 교육에 안좋으니까 적당히 해.”
“노력할게.”
달그락.
서은설은 그렇게 말하고는 테이블 위에 있던 포크를 손에 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