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10 ----------------------------------------------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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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됐고. 이번 한 번은 봐줄테니까 투명화는 금지. 제임스 사무실에 들어가는 것도 금지야. 그 안에는 네가 보면 안될 정보들도 잔뜩 있으니까. 만에 하나 우리측 정보가 새어 나가게 되면 네가 일 순위로 의심대상이 될거야. 그때가 되면 나도 널 그냥 봐줄수가 없어.”
“쳇. 말 되게 많네.”
“뭐 임마?”
“어쨌든 사무실에만 들어가지 않으면 되는 거지?”
“제임스 쫓아다니는 것도 금지야.”
“왜? 내가 좋아서 쫓아다니겠다는데?”
“그 녀석은 연애할 시간도 없다고. 바쁜거 안보여? 네가 달라붙는 바람에 제임스가 시간을 뺏기면 그건 그거대로 엄청난 손해라고.”
“와... 진짜 피도 눈물도 없네. 지금 이거 녹음해서 그대로 오빠에게 들려주고 싶을 정도야.”
“흠흠. 어쨌거나, 지금은 네가 끼어들때가 아니야. 사람도 조만간 더 뽑을테니까 그 녀석도 좀 여유가 생긴 다음에는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릴 시간이 있을테니까.”
“자기는 마누라에 둘째마누라까지 있으면서.”
“두, 둘째 마누라라니 그게 무슨 소리야?”
“어? 아니야? 물어보니까 다 알던데. 그러고보니 여기와서 실제로 본적은 없지만.”
“그 녀석은 지금 플랫폼에서 근무하는 중이야. 직원 전원이 엄청나게 바쁘다고.”
란도넬 행성 점령 이후, 행정쪽 관련 업무를 볼 사람이 지나치게 적은 바람에 서은설까지 동원되어서 관리직을 맡고 있는 상황이었다. 문제는 제임스에게 훈련을 받은 이들이 아닌, 일반 직원들은 대부분 제대로 교육을 받지 않은 이들이라는 것이다.
어쩔 수 없이 관리직을 맡고 있기는 하지만 당장은 일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았고, 그나마 서은설이 그들을 통솔해서 이끌고 있는 상황이었다. 알카트뢰즈 출신이 대부분인 직원들 가운데서는 그녀가 가장 제대로 교육을 받은 인물이었기 때문이었다.
“흐음... 또 있다고 그러던데.”
“누, 누구...?”
“그 왜. 광고에 나오던 여자. 엄청 예쁘던데. 그 여자도 델타스피릿 사장이랑 그렇고 그런 사이라던데? 또 말해줄까? 그 왜 머리 녹색인...”
“그만. 거기까지만 해.”
준은 손을 들어 그녀의 입을 틀어막었다.
“이제 자기가 무슨 잘못을 하고 있는지 알겠어?”
“아... 뭐. 원래부터 모르진 않았는데. 너 대체 며칠동안 뭘 하고 다닌거냐?”
“그냥 가만히 숨어있으니까 사람들이 다 수군거리던데. 아무도 날 신경쓰는 사람이 없어서 그런지 그냥 이야기 하더라고.”
“그거야 니가 투명화를 하고 다니니까 그런거고.”
“어쨌건 빨리 교통정리하라고. 개인적으로 우유부단한 남자는 최악이니까.”
“아니... 일단 나에게는 여자친구가 있는 걸. 딸도 있는데. 너도 봤으니까 알거 아니야.”
“그래서 네가 하고 싶은 말이 뭔데? 나는 어쩔 수 없으니까 니들이 알아서 떨어져 나가달라 그거야?”
오펜하이머의 송곳같은 말에 준이 움찔하며 고개를 저었다.
“아, 아니 그건 아니고...”
“그럼 알아서 안겨라 뭐 이런거?”
“누, 누가!”
“솔직히 이정도면 우주급 쓰레기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이든도 밥맛이었지만 넌 더 밥맛이야.”
“이든은 네 존재자체를 모른다고!”
“어떻게 그런 말을... 최악.”
“아니... 애초에 왜 내 성토대회가 된거냐? 잘못은 네가 저지른거잖아.”
“이제 깨달았어?”
오펜하이머는 허공에서 딸기우유를 꺼내고는 빨대를 꽂았다. 그녀가 평소에 입에 달고 사는 물건이었는데, 아직 인벤토리를 활성화 시키지 않았다는 걸 생각해보면 아공간을 활성화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 모양이었다.
“후. 어쨌건 이번 일은 그냥 넘어가는데. 다음부터는 조심해. 제임스의 심기에 거슬릴 만한 짓을 하지말란 말이야. 나도 그 자식 어렵다고.”
“하는 일은 전부 군소리 없이 다 들어주는 것 같던데? 그 오빠 엄청 성실하다고.”
“그러니까 더 미안하지. 적당히 요령이라도 피우면 모르겠는데.”
“월급은 많이 주고 있어?”
“제일 많이 받을걸. 본인이 본인에게 주는 거니까. 적당히 조절하는 것 같긴 하지만. 일단 뭐가되었던 제일 많이 받게끔 해두긴 했는데.”
“그런데 입고 다니는 옷은 영... 스타일이 좋으니까 망정이지.”
“네가 할 말은 아닌 것 같긴 하지만.”
준은 그렇게 말하면서 오펜하이머의 모습을 훑었다. 구질구질한 검정색 후드가 달린 마법사용 망토를 뒤집어 쓰고 있는 그녀의 모습은 패션센스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나, 나는 어차피 안보이니까 괜찮거든?”
“계속 투명인간으로 살거면야 상관없겠지만. 제임스 좋아한다는 거 아니었냐? 언제까지 스토커 짓을 할거야.”
“그보다 당신 걱정이나 하시지.”
“내 일은 내가 알아서 해. 물론 시간은 좀 걸리겠지만.”
준은 한숨을 길게 쉬었다. 사실 고민이 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그 문제는 알바트로스에 옹기종기 모여서 살때부터 있어왔던 일이다. 이제 수라드, 이스카야, 란도넬의 세 행성을 보유한 상황에서 다들 조금씩 떨어져 있다보니 한동안 잠잠했을 뿐이다. 에피알게나스는 로버의 운용을 위해서도 반드시 곁에 두어야 했고, 서은설이 그걸 가만히 보고 있을 리가 없었다. 시미는 한동안 엘라와 함께 다니면서 영웅놀이에 심취해 있는 중이었다.
하지만 이 평화가 오래 지속 될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조언이 필요하면 언제든 연락해. 보아하니 딱히 이야기 할 상대도 없는 거 같으니까.”
“누가 너 같은 스토커에게 이런 상담을 하겠냐?”
“싫음 말고. 어쨌든 할 말 다했으면 난 이만갈게.”
“일은 똑바로 해라.”
“할당량은 채우고 있거든?”
오펜하이머는 그렇게 말하며 모습을 감추었다. 투명화 마법을 주문도 없이 사용하는 걸 보면 확실히 상급은 상급인 듯 했다. 스티커 제작에도 성실하게 임하는 편이었다. 델타스토어에는 제법 쓸만한 버프용 스티커가 계속해서 업데이트 되고 있었다.
개중에는 헌터들이 전투에 사용할 만한 물건들도 있었지만, 생활에 도움이 되는 간단한 물건들도 많이 있었다. 개중에 잘 팔리는 것은 보온팩과, 피로회복용 스티커였다. 몸에 붙이는 것만으로도 효과를 보다보니 수험생 자녀를 둔 부모들에게 인기였다.
그런 일반 물품이 잘 팔린다는 건, 어느정도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델타폰이 풀리기 시작했다는 뜻이었다. 입소문이 퍼지는 속도만큼 델타폰의 숫자도 엄청난 기세로 늘고 있었다.
프라이어 시티의 한 가정집.
“여보. 그게 뭐에요?”
“이거? 델타폰이라고 얼마전에 아는 사람에게 구입한거야.”
“델타폰? 그럼 델타스피릿에서 나온거에요?”
“글쎄. 그건 나도 잘 모르겠더라고. 그런 것 같기는 한데 대리점에서 파는 물건이 아니라서.”
“그런데 스마트패널은 가지고 있잖아요. 뭐하러 또 산거에요?”
“그렇지 않아도 보여주려고 했지.”
그는 그렇게 말하며 델타스토어에 접속했다. 그곳에서 가장 싼 물품 중 하나인 마스터의 요리 들 중 하나를 선택해 결재를 눌렀다. 그러자 미리 충전 되어 있던 EP가 소모되며 두 사람의 눈앞에 그럴듯한 요리가 생성되었다. 그걸 지켜보던 여성이 눈을 크게 뜨며 입을 열었다.
“이... 이게.”
“봤지? 가격이 좀 세긴 하지만, 별의 별게 다 되더라고. 이거 말고도 신기한 물건들이 많아.”
“당신. 내 요리가 그렇게 마음에 안들었어요?”
“아니 그게 아니라.”
“그게 아니면! 무슨 이런 장난까지 쳐가면서 음식을... 흑!”
쾅!
여성은 눈물을 뿌리며 문을 거칠게 닫으며 밖으로 뛰쳐나갔다. 남자는 당황하며 아내를 쫓아나갔다.
“나참. 그런 게 아니라니까! 여보! 여보!”
그렇게 두 사람이 집밖으로 나가고 실내에는 잠시 정적이 맴돌았다. 누군가 큰 소리로 외쳤다.
“컷! 오케이!”
“수고하셨습니다.”
방금 눈물을 뿌리면서 나갔던 여성이 고개를 숙이며 다시 모습을 드러내고는 촬영하고 있던 스탭들에게 일일이 인사를 했다. 그녀는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한 남성을 향해 입을 열었다. 다름아닌 준 알스버그였다.
“어때?”
“이 콘티를 짠 놈 얼굴을 좀 보고 싶을 정도야.”
“그렇게 감동적이었어?”
“그렇게 생각해?”
“아니구나... 그래도 모델이 예쁘니까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아내 역할을 맡은 모델, 서은설이 입을 열었다. 그녀는 현재 델타폰의 광고모델로 낙점되어 촬영을 진행중이었고, 그 현장을 준이 잠시 들른 것이었다.
“됐고. 그럼 난 이만.”
“벌써가게? 오랜만인데 식사나 같이 하지?”
“대여배우께서는 촬영스탭과 뒤풀이 하셔야 하는거 아냐?”
“여배우는 무슨. 이제 광고 두 개 찍었는데. 그리고 저번엔 에피알게나스 때문에 완전히 묻혔잖아.”
“하긴. 너 알아보는 사람도 없지?”
“그래도 추종자 수가 좀 생겼어.”
추종자의 수만큼 그녀는 경힘치와 마나에 이득을 얻게 된다. 기본적으로 마법사인 그녀에게 마나는 숫자가 곧 화력이나 마찬가지.
“오? 그래? 얼마나?”
“열 명. 대박이지?”
“전국망을 타고 CF가 나갔는데 겨우 열명?”
“야... 김빠지는 소리 할래? 그것도 얼마나 큰 건데.”
“대단해. 넌 앞으로 대스타가 될거야.”
“적당히 하시지.”
“서은설씨?”
“네. 잠시만요~ 그럼 너 저녁 시간 비워둬라. 루나도 없겠다. 지금이 기회니까.”
“그런 아침드라마 대사같은 소리를 꼭 해야겠냐?”
“내가 뭐 틀린말 했나?”
“나 오늘 시간 없어. 저녁에 제임스랑 회의해야 돼.”
“웃기시네. 오늘 쉬는거 뻔히 다 아는데. 스케쥴 체크했거든?”
“끙... 제임스가 넘겨줬냐?”
“그 사람이 그런거 신경 쓸 시간이 어디있어? 그 카심인가 뭔가 하는 사람에게 받았지. 몇마디 하니까 그냥 내주더라. 참. 그 사람이 내 팬클럽 회원이야.”
“그 자식. 별로라더니...”
“응? 뭐라고?”
“아, 아무것도 아니야.”
“어쨌든 시간 내. 싫으면 이 자리에서 싫다고 하고.”
“싫은 건 아니고.”
“그럼 약속했다. 나 간다~”
서은설은 그렇게 말하고는 감독에게로 달려갔다. 준은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델타폰을 본격적으로 프로모션 하기로 결정했다. 사실 기존 통신사와의 마찰을 피하기 위해서 그동안은 대놓고 판매하고 있지 않았지만, 사실상 지금에 와서 그것이 델타스피릿의 물건이 아니라고 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제임스도 이건에 대해서는 긍정적이었다. 란도넬 행성이라는 거대 시장이 있으니 그것을 믿고 일을 추진해도 나쁘지 않겠다는 판단이 선 것이다. 그 자신감에는 새크리파이스를 날려버렸다는 사실을 밑바탕에 두고 있는 것이니 만큼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
호라이즌과, GT, 그리고 텔레뱅크. 이 3사의 견제를 생각하면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기존 통신사를 거치지 않는 델타폰은 이들 통신사의 존재에 큰 위협을 줄 수 있었다. 물론 제조사라고 가만히 있지는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갤럭시 인더스트리의 자회사인 갤럭시 모바일과, 파인애플 사의 주력 제품이 스마트패널인 것을 생각해보면 이 양측에서 집중공격을 받을 위험도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일을 추진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델타엔진의 존재 때문이었다. 현재 파티마제국과의 전쟁판도를 뒤집어 놓을 정도의 파급력을 가진 물건이 이미 시판되고 있는 마당이다. 핵폭탄 급의 폭발 뒤에 수류탄을 터뜨린다고해서 눈에 보일리가 없었다.
물론 현시점에서는 아직 델타스피릿의 관리하에 있는 행성에서만 일을 진행할 생각이었다. 적당히 묻어가려는 생각이었으니 연합전체에 광고를 해댈 필요는 없었다. 중요한 것은 란도넬 행성의 스마트패널 시장을 잡는 것이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