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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옥행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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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들 대부분이 펠로우쉽 계약자라는 점이었다. 준을 습격했던 암살자인 사라센에게 맺어두었던 계약이 전원에게 퍼진 것이다. 준이 굳이 계약을 종용한 것은 아니지만 생존을 목적으로 하다보니 스스로 계약자를 늘려 지금에 와서는 도시내에 거주하는 모든 헌터들이 펠로우쉽 계약을 맺은 상태였다.
엘라의 동상이 있는, 도시 가운데의 분수광장에 내려선 준은 일단 주변을 둘러보았다. 대체로 평화로워 보였다. 인간이 적은 행성이니 가급적이면 자신들끼리 문제를 일으키지 않으려 했고, 설령 그렇다 할지라도 계약자들끼리는 서로 죽이는 것이 불가능하니 다툼이 일어도 크게 번지지 않았다.
강제된 평화에 답답해하는 이들이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이곳은 어디까지나 감옥의 역할을 하는 곳이다. 제한없는 자유를 누리게 해줄 이유 같은 것은 없었다.
“뭐, 그럭저럭 나쁘지 않군.”
갑자기 광장 한 가운데 나타난 준을 보고 몇몇 헌터들이 델타폰으로 누군가에게 연락을 하는 모습이 보였다. 그곳에 있는 이들은 모두 준의 얼굴을 기억한다. 자다가 꿈에도 나올 정도였으니, 갑자기 등장했다고 해서 못알아볼리가 없었다.
준은 분수 앞에 조악하게 만들어진 나무 벤치에 앉았다. 준이 만든 것은 아니고, 이곳에 사는 사람들이 휴식을 위해서 스스로 나무를 베어 만든 모양이었다.
“흠. 어디서부터 시작해야하나...”
준은 일단 2번 웜홀을 열었다. 그곳에는 일전에 가두어 놓은 사람들이 잔뜩 있었다. 적게는 상하이케미컬의 인원들부터, 많게는 최근 몰아서 잡아넣은 반란군들까지. 얼추 모두 합하면 8백명 정도, 그중 남자가 6백이었다. 기존의 헌터들의 수에 비해서 많은 수이기 때문에 갑작스러운 상황에 기껏 만들어진 질서가 흔들릴 가능성도 있었다.
“알아서들 적응해야지.”
그들도 살아남기 위해서는 선배들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사실정도는 알 것이다.
웅성웅성.
“여기가 어디야...?”
헌터들이 주변을 둘러보며 웅성거렸다. 던전안에서 오랫동안 생활했다고는 하지만 1번 던전에 비해 2번 공장지대 던전은 오픈된 공간이다보니 환경이 그다지 나쁘지 않았다. 공장 바깥에서는 햇빛도 비추었고 공간 자체가 넓어 답답하다는 느낌도 덜했다.
그렇다보니 비교적 바깥세상에 대한 적응이 빨랐다. 다만, 어느정도 던전안의 생활에 익숙해진 상태에서 갑자기 바깥으로 나오게 되니 다소 두려워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었다.
“다들 줄 선다.”
쿵.
움찔.
붉은거인 도른이 바닥을 거칠게 내리찍자 모두들 겁을 집어먹고는 재빨리 줄을 서기 시작했다. 2번 던전에서 치안을 담당하고 있던 녀석이라 이곳까지 자동으로 딸려온 것이다.
“별 문제없지?”
“없어. 이제 이 녀석들 다 내보내는 거야?”
“일단 남자들만. 여자들은 다른 곳으로 보내려고.”
“알았다. 난 다시 들어간다.”
도른은 그렇게 말하고 다시 던전안으로 들어갔다. 바깥보다는 엑조틱 에너지가 충만한 던전안이 그에게는 더 편한 공간이었다.
그렇게 6백 정도의 헌터들이 나란히 줄을 서고 있는 상황이 신기한지 다른 헌터들이 주위로 몰려들어서 구경을 하기 시작했다. 대부분은 사냥을 나가 있어서 그런지 그 수가 수십을 넘지는 않았다. 대충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눈치 챈 몇몇은 긴장을 놓지 않고 흠잡 힐 행동을 하지 않으려 애쓰고 있었다. 어차피 같이 살아야 한다면 잘 보이는 편이 좋기 때문이다.
“오셨습니까?”
멀리서 허겁지겁 달려오는 인물이 있었다. 베를루스 대위였다. 그는 현재 행성 엘라에서 헌터들을 전반적으로 관리하는 일을 하고 있었다. 정기적으로 준에게 보고를 하는 것도 그였다. 그런 점을 참작해서 준은 그에게 인벤토리를 열어주고 정기적으로 결정체를 지급하고 있었다. 그렇게 그는 사냥을 나가지 않고도 헌터들의 관리를 용이하게 할 수 있었다.
“신입들이야. 교육은 알아서 하고. 문제 생기면 바로 이야기 해. 다시 던전에 넣고 굴릴테니까.”
“굳이 그러실 필요야... 우리쪽에서 알아서 하겠습니다. 이 녀석들도 살고싶으면 따르겠죠.”
“그렇게 말을 잘 듣는 녀석들이면 반란을 저지르지도 않았겠지.”
“아. 얼마전에 란도넬 행성에서 헌터들이 반란을 일으켰다고 하더니, 그 자들입니까?”
베를루스 대위가 줄지어 늘어서 있는 헌터들을 보며 눈을 가늘게 떴다. 외부와의 접점이 없는 엘라 행성이지만, 그곳의 헌터들은 델타포럼을 이용하며 정보를 충분히 얻을 수 있었다. 마음만 먹으면 가족들과도 연락을 취할 수 있는 상황이니만큼 자칫하면 외부에 이 행성의 존재가 발각될 우려가 있었지만, 준은 딱히 그에 대해서 제재를 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어차피 이곳에 대한 위치정보는 준을 제외하고는 몇몇을 제외하면 아는 사람이 없었다. 행성을 구매하는 과정에서 정보누출이 있었을 가능성도 있지만, 그런 가능성을 생각해서 엘라 행성외에도 몇곳의 저렴한 행성을 구입해서 연막을 쳐두었다. 게다가 실질적인 이득이 없는 이상, 이들을 구출하는데 신경을 쓸 사람이 없기도 했다.
연합정부에서는 각 기업의 독자적인 규약을 존중하는 편이기 때문에 충분한 사유만 있다면 이런일에는 관여하지 않았다. 준이 무작위로 사람들을 납치하는 것도 아니고, 이곳에 와 있는 이들은 그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 막말로 즉결처형을 해도 상관없는 상황에서 목숨을 붙여놓은 수준이니 누군가 연합정부에 정식으로 재판을 요청한다고 해도 이길 수 있는 가능성은 극도로 낮았다.
그리고 그렇게 승리를 한다고 해도, 결국 그들이 갈 곳은 알카트뢰즈였다. 차라리 엘라 행성에 있는 것이 나은 상황이니 굳이 그런 식으로 사고를 칠 이유도 없었다.
“사나운 녀석들이니 신경 좀 써.”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지금에 와서 베를루스는 준의 명령을 충실히 듣는 부하나 다름없는 상황이 되었다. 정기적으로 급료를 받았고, 굳이 이제와서 새크리파이스에 충성할 이유도 없었다. 란도넬 행성까지 집어삼키며 실질적으로 새크리파이스를 몰락시킨 그에게 반항하는 것도 의미가 없는 일이다.
“사라센은?”
“그럭저럭 잘 지냅니다.”
“사고는 안치고?”
“아주 안친다고 보기는 힘듭니다만. 어떻게든 해나가고 있습니다.”
사라센은 현재 이 곳에서 가장 강력한 헌터였다. 베를루스와 공동대표 비슷한 형식으로 행성 엘라를 움직이고 있지만 기분파로 움직이는 그의 행동을 베를루스만으로 제어하기란 쉬운 일은 아니었다.
“지금 어디에 있는데?”
“솔로잉을 나간 상태입니다. 혼자 움직이는 것을 좋아하는 녀석이라서요.”
“그렇군. 참. 이번에 상급헌터도 몇명이 있는데 알아서 대우해 줘. 혹시 모르니까 계약도 맺어두고.”
펠로우쉽 계약을 맺어두면 계약자끼리는 서로 죽일 수 없다. 그것이 일종의 족쇄역할을 해줄 것으로 기대했다.
“이봐. 대체 이곳은 어디지?”
아니나다를까, 반란군들을 이끌던 이든 베넷이 입을 열었다.
“행성 엘라에 대해서는 이미 다들 정보를 받았을텐데? 거기에 써있는 그대로다. 앞으로는 이곳에 있는 사람들과 잘 적응해서 살아야 할거야.”
“이곳이 감옥행성이라고...?”
이든 베넷은 약간 놀란 얼굴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는 사실 감옥행성이라는 말에 최악의 환경을 상상하고 있었다. 알카트뢰즈에 대한 악명도 들어서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곳 출신이라는 준 알스버그가 만든 곳은 그보다 나쁘면 나빴지 좋지는 않을거라고 생각한 때문이다.
하지만 그가 처음 본 도시의 인상은 전혀 나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깨끗하고 살만한 곳이라는 인상까지 있었다.
잘 구획된 거리와 넓고 깨끗한 광장. 물이 뿜어져 나오는 분수. 그리고 공기도 맑고 햇빛도 적당한 것이 거주환경으로는 최적의 공간이라고 할 수 있었다. 자신들을 둘러싼 사람들의 시선도 그렇게 위협적이지 않았다.
“베를루스를 따라서 시청건물로 이동하도록 해. 그곳에서 살 건물을 배정받게 될테니까.”
“서, 설마 집도 주는 건가?”
“그럼 바닥에서 자려고 한건가? 그렇다면 뭐 난 수고를 더는 편이니까 거부하지는 않겠지만.”
“아, 아니다.”
이든 베넷은 입을 다물었다. 환경도 나쁘지 않고 집도 준다. 모르긴 몰라도 이정도로 깨끗하게 지어진 건물들이라면 상수도나 하수도가 깔려있을 가능성도 높았다. 적어도 문명인으로서 생활하기에 부족함은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행히 새로 건물을 만들 필요는 없었다. 이전에 만들어 놓은 집들이 아직 많이 남아있던 덕분이었다. 한 건물에 대여섯 명 씩 배치를 완료한 다음, 준은 델타엔진을 이용해 발전소를 하나 만들었다. 기존에 사용하던 것은 태양광 발전인 만큼 야간에 사용할 전력이 부족하다는 단점이 있었다.
준은 델타 엔진 열개를 이용해 발전소 하나를 세웠다. 그 정도면 1만 인구가 사는 도시 하나 정도는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전력이었다.
‘생각해보면 이거 출력이 너무 과하잖아.’
개당 2억 정도의 델타엔진은 하나만으로도 어지간한 마을 하나를 돌릴만한 전력이 나온다. 그걸 차량용으로도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소형으로 만들었으니, 개인이 사용하기에는 지나치게 높은 전력생산량이었다.
‘더 소형화를 해도 괜찮겠어.’
현재의 크기도 사실 줄일만큼 줄인 것이긴 했다. 그래도 가능한한 더 줄일 방법을 찾아볼 생각이었다. 지금은 자동차 엔진정도의 크기라고 한다면, 출력을 줄이는 대신 그 크기를 줄여 휴대가능한 크기 까지 만들면 범용성에서도 지금보다 훨씬 더 나아질 것으로 기대되었다.
“이건 결정체를 이용해서 전력을 생산하는 겁니까?”
베를루스 대위의 질문에 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신기한 듯 기계들을 살펴보았다.
“에너지 효율은 어떻게 됩니까?”
“엄청나게 싸. 결정체 하나면 100명 정도가 한달내내 펑펑사용해도 모자라지 않을걸.”
“부, 붉은색 결정체로 말씀이신겁니까?”
“그렇지.”
“그건 너무 저렴한거 아닙니까? 이런식이면 화석연료는 더 이상 필요가 없을 것 같습니다.”
“그거야 유통마진 같은 걸 제한 금액이라서 그렇지. 초기 설치비용도 빠진거고. 따지고보면 핵융합발전이라던가, 원자력발전이라던가 하는 것도 그보다 효율이 좋으면 좋았지 나쁘진 않을걸.”
“그렇긴 합니다만. 이건 초기비용이 낮으니까요. 개당 2억짜리 엔진 열 개. 그러니까 겨우 20억이라는 금액으로 이정도 규모의 발전소를 세울 수 있다니요. 거기다가 환경문제도 없고.”
“요즘 환경문제를 신경쓰는 사람이 있는지는 몰랐네.”
준은 피식 웃었다. 사실 거주가능행성이 계속해서 발견되는 요즘은 환경에 대한 관심이 예전에 비해 많이 식은 것이 사실이었다. 아무리 환경이 더러워져도, 결국 살기 힘들어지면 다른 행성으로 이주하면 그만이었다. 원자력발전소는 계속해서 현역으로 사용되고 있었고, 화석연료도 무한정으로 소모되고 있었다.
특히 원자력발전소의 문제인 방사능물질은 우주로 투척해버린다는 간단한 방법을 통해서 해결가능했기에 오히려 청정기술로 인정받을 정도였다.
“예전보다 중요성은 줄었다고 하더라도, 장점은 장점이지요. 어쨌건 간에 이런 물건이 가능할거라곤...”
“앞으로는 더 많이 사용하게 될거야. 델타스피릿의 미래는 밝다고.”
“그...래서 말입니다만.”
베를루스 대위가 약간 긴장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