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00 ----------------------------------------------
파워버프걸
*
*
*
델타 엔진은 다용도 전략물품이기도 했다. 전함에 달아서 전력을 키울 수도 있고, 행성전체의 에너지원을 해결하는 데 사용할 수도 있었다. 그리고 효용성이 뛰어난 만큼 가격도 비싸다. 권장소비자가가 2억 가량이니 화물선 하나에 꽉 채울 정도로 물건을 실어가면 최소 조단위의 물건이 화물선 하나에 들어가는 셈이다.
그 배를 노리는 놈들이 없다면 이상한 일이다. 때문에 호위함이 필요했고, 장원삼은 그 비용을 준에게 은근슬쩍 떠넘길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걸 눈치챈 준이 사전에 차단한 것이다.
“혹시 호위를 델타스피릿에서 맡아주실 생각은 없으십니까? 그에 대한 비용은 지불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병력이 부족한가?”
“현재 모든 전함을 총동원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정도 물건이면 호위함의 규모도 상당해야 하는데 그만한 전력을 후방으로 빼기는 힘듭니다.”
“흠... 다른 곳에 부탁할 수도 있을텐데.”
“기왕이면 한꺼번에 해결하려는 것이지요.”
“내가 따라가는 걸 전제로 하는 거겠지?”
“물론입니다.”
해적들이라고 해도 우습게 보면 안된다. 제대로 조직된 놈들은 최소 10기의 전함을 최소 단위로 하는 함대를 구성하고 있는 경우도 많았다. 델타스피릿의 전함에 EX필드가 있다고는 해도 준이 없는 상태에서 그 정도의 함대를 마주치게 되면 화물선의 안전을 보장하기는 힘들었다.
하지만 현재 란도넬 행성의 정상화를 위해서 해야 할 일이 많은 준의 상황에서 그런 시간을 내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럼에도 준이 갈등하는 이유는 갤럭시 인더스트리와 파티마 제국의 전황을 눈으로 확인해보기 위해서였다.
준은 펠로우쉽 통신을 통해 제임스에게 사정을 설명하고 조언을 구했다.
-...이렇게 됐는데.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적진에 목숨걸고 들어가는 건 새크리파이스만으로도 족합니다. 갤럭시 인더스트리에서 자기 우리에 들어온 멧돼지를 곱게 놓아줄거라고 생각하십니까?
-뭐 그렇긴 한데. 솔직히 도망치고자 마음만 먹으면 누구도 날 잡을 수 없을거고.
-만에 하나라는 게 있는 법입니다. 혹시라도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어쩌시려고 그러는 겁니까?
제임스는 준의 돌발행동을 상당히 경계했다. 항상 그가 움직이면 일이 커지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만약 그런 상황에서 준의 신변에 문제가 생기면 델타스피릿 자체가 붕괴할 위험이 있기 때문이었다. 다른 기업들과 달리, 델타스피릿은 준이라는 사람이 없으면 유지가 불가능하다. 모든 것이 그의 능력에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 만큼 생각같아서는 그를 독방에 가두어두고 절대로 밖에 나가지 못하게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오케이. 알았어.
준은 수긍했다. 갤럭시의 내부상황을 알 수 있는 좋은 기회였지만, 사실 그다지 돈이 되는 일도 아니었고 굳이 무리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도 루나와 아이들을 란도넬에 데리고 온지 얼마되지도 않았다. 당분간은 이 행성에 머무르면서 엘라의 성장을 지켜볼 생각이었다.
준이 거절하자 장과장은 아쉽다는 눈빛을 보였다. 아무래도 준을 원하는 것은 그가 아니라 갤럭시 인더스트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위에서 날 만나자고 한 모양이지?”
“그런 셈입니다.”
“대화하고 싶으면 통신회선을 열자고 해.”
“해킹가능성이 있으니까요.”
“뭐, 그래봐야 얼굴정도 공개되는 것일텐데.”
“테서렉트가 아니면 대면이 기본입니다. 간단한 대화라고 해도, 주가에 영향을 줄 수 있으니까요.”
4차원 테서렉트. 우리 우주는 눈에 보이는 것과 달리 물질과 물질이 연결되어 있다는 근본개념을 기반해서 만들어진 공간이었다. 차원의 경계를 넘는 방식으로 사용하기 때문에 어떤 해킹도 통하지 않으면서도 마치 대면을 하듯 바로 앞에서 서로를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을 유지하는데 들어가는 비용이 그야말로 천문학적이기 때문에 백인회라는, 연합의 핵심사안을 결정하는 권력의 중심에 들어가지 않으면 사용할 수 없는 방법이었다.
“그럼 그때가서 인사하도록 하지.”
100인회의 일원이었던 새크리파이스를 보기좋게 격파한 델타스피릿은 차기 백인회의 주요후보로 떠오르고 있었다. 수라드 행성과 란도넬 행성을 잃고, 핵심 사업이 붕괴된 새크리파이스가 다음번 백인회 선출에서 탈락할 것은 자명한 일이었다. 그 빈자리를 델타스피릿이 채울 거라는 전망을 대부분의 애널리스트들이 내어놓고 있었다.
갤럭시 측에서 요구한 1차 생산분은 델타 엔진 1만개였다. 원자력 발전기를 대체할 정도의 출력을 내기 위해선 전함 하나에 총 10기 이상의 델타 엔진을 장착해야 했다. 알바트로스에 들어가 있는 엔진과는 다른 물건으로, 일반판매를 위해서 크기도 작고 출력도 낮은 대신 범용성을 높인 물건이기 때문이었다.
물량은 문제없이 뽑아낼 수 있었기 때문에 서두를 필요는 없었다. 재고도 상당히 많았다. 아직 일반에 판매되기엔 비교적 비싸다보니 그런 것이었다.
하지만 일단 금수조치가 해제되면 산업용으로 쓰일 일은 많았기 때문에 폭발적인 수요의 증가가 예상되었다. 그를 위해서 준은 설비를 늘이고 원래 계획의 10퍼센트 정도였던 공장시설을 30퍼센트까지 늘리는 일에 착수했다.
그렇게 한달 정도의 시간이 지나 일차로 델타엔진 1만기를 넘기고 나자 2조라는 거금이 손에 들어왔다. 마진으로 따지면 약 30퍼센트 정도 남았으니 약 6천억 가량의 순익을 본셈이다.
무엇보다도 고무적인 것은 기존의 다른 물품들과 달리 델타 엔진은 지속적인 수익을 보장해 주는 물건이라는 점이다.
루나의 작품인 어그로시스템과 개량형 워프엔진등도 수익을 꾸준히 내고 있긴 했지만, 델타엔진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띠리리리-
“으음...”
준은 시끄러운 알람소리를 들으며 잠에서 깼다. 안방에 딸려있는 샤워실에서 물소리가 들렸다. 루나가 벌써 일어나 씻고 있는 모양이었다. 엘라, 시미, 펄은 199층을 사용했고, 200층은 오로지 준과 루나가 사용하는 방이었다.
“일어났어요?”
“응.”
샤워를 하고 나온 루나를 보며 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물기에 젖은 머리칼을 닦으며 하얀 가운 하나만을 입고 있는 모습에 준은 아침부터 힘이 불끈 솟아올랐다. 준이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를 뒤에서 끌어안았다. 하얀 목덜미에 부드럽게 키스를 하자, 루나가 신음처럼 입을 열었다.
“으음... 준.”
두 사람 사이에 뜨거운 기운이 흘렀다. 전날 밤에도 이미 수차례 사랑을 나누었지만, 두 사람의 체력은 그 정도로는 고갈되지 않았다.
“아침부터... 뭐하는 거에요...”
“그 동안 너무 떨어져 있었잖아. 참느라 혼났다고.”
“저 지금 막 씻었는데...”
루나가 고개를 슬쩍 숙이자 준이 그녀를 품에 안고 다시 침대로 향했다. 그때였다.
“주, 준?”
“응? 왜그래?”
“창, 창문이요!”
루나는 그렇게 말하며 얼른 준의 품에서 벗어났다. 200층이다 보니 바깥은 전혀 신경쓰고 있지 않던 준은 깜짝 놀라며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서는 엘라와, 시미, 그리고 펄이 창문에 얼굴을 바싹 붙이고는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빠. 동생 만드는 거에요?
-나도 만들 수 있는데.
-에이. 걸렸잖아.
차례로 엘라, 시미, 펄이 입을 열었다. 준이 이마를 짚으며 한숨을 쉬었다. 당장 카심에게 연락해 블라인드를 사오라고 해야할 것 같았다.
-니네 아침부터 뭐하는 거냐?
-산책이요.
엘라가 입을 열었다.
-산책을 무슨 그런데서 해?
-심심한걸요. 놀이공원 만들데도 없고.
이미 199층은 녀석들이 만들어 놓은 잡동사니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준이 직접 공간확장을 걸어 놓긴 했지만 이 세 녀석을 만족시키기에는 턱없이 좁았다,
그렇다고 엘라도, 서은설도 없는 알파시티에 녀석들을 다시 데려다 놓을 수는 없었다. 외곽도시에 새로 집을 만들기에도 안전상의 문제가 있었다.
‘흠... 이 녀석들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
제법 신경을 썼다고 생각했지만, 아무래도 한계가 있었다. 보모를 들인다는 것도 현실적으로는 무리였다. 서은설이 가끔 봐주기는 하지만 그녀도 자신의 업무가 있었고, 일반인들이 저 셋을 감당한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지금까지 몇 명이나 고용해봤지만 전부 그만두고 나간 것이다.
결국 사고만 치지 않게 검둥이를 붙여 놓는 것이 준이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적당히 놀아.
-네에. 오늘은 멀리 나가도 돼요?
-검둥이 데리고 가면. 도시밖으로 나가지는 말고.
-네에!
세 사람은 200층에 이르는 건물의 옥상으로 훌쩍 날아올랐다.
“꺄악!”
인구 500만의 도시 프라이어 시티. 란도넬 행성 내에서는 그나마 치안이 잡혀 있는 곳이긴 했지만, 다른 곳에 비해 비교적 나을 뿐이지 이곳도 불법과 범죄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는 지역이다.
그리고 도심의 구석진 곳에는 낮부터 범죄가 들끓고 있었다. 어느 골목길 구석. 높은 빌딩과 상가들 사이 아무도 가지 않는 골목길에서 젊은 여성하나가 비명을 지르며 도망을 치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앞을 가로막은 것은 막다른 길. 더이상 도망칠 곳이 없다는 것을 깨달은 그녀가 공포에 질린 모습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세 명의 사내가 숨을 헐떡이며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다.
“우라질 년. 발은 더럽게 빠르구만.”
“크크. 그래봤자 막다른 골목이니 도망칠 곳은 없어.”
“자자. 얼른 잡아가자고. 아침부터 이게 무슨 개고생이냐.”
그들은 저마다 툴툴대며 겁에 질려있는 여성을 향해 걸어갔다. 그들은 담당하고 있던 유흥업소에서 도망친 여성을 잡으러 온 것이다. 준이 인신매매와 미신고 된 성매매를 금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도시 곳곳에는 이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다. 현지의 경찰력으로 모든 곳을 뒤질 수 없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경찰들 역시 여전히 그런 일들에 관여하는 조직들과 연계하고 있기 때문에 쉽사리 근절되기는 어려운 일이었다.
“사, 살려주세요.”
“누가 죽인대? 네가 죽으면 우리도 손해라고. 그냥 적당히 벌만 주고 끝낼테니까 걱정마.”
“뭐, 조금 아프긴 하겠지.”
“꺄악!”
사내들은 우왁스럽게 여성의 머리채를 잡아끌었다. 이쪽에는 이쪽 나름대로의 룰이 있었다. 업소에서 도망친 여성들을 그냥 곱게 돌려놓을 경우 유사한 일이 자주 발생하기 때문에 본보기로 삼아 보통 며칠에 걸친 정신교육이 이루어진다. 정신교육이라고는 하지만 대부분은 구타와 욕설로 이루어진 고문이었다.
그런식으로 두 번 다시 도망칠 생각을 하지 못하도록 그녀들을 옭아매는 것이다.
“이익!”
콱!
“으악! 씨발. 이년이 날 물었어!"
젊은 여성을 잡아끌던 사내가 팔에서 피를 철철 흘리며 비명을 질렀다. 그사이 여성은 재빨리 도망치려 했지만 결국 다른 사내에게 붙잡히고 말았다.
"등신같이 그런거 하나 제대로 못하냐?“
짜악!
“아악!”
마른 사내가 여성의 뺨을 후려치고는 그녀의 머리채를 잡아 얼굴을 들게 했다. 그녀의 얼굴이 점점 붉게 부어오르고 있었다.
“여기서 죽고 싶냐?”
“그...아...”
“어차피 여기서 죽어도 아무도 뭐라고 하는 사람없어. 세상이 바뀌었다고 잠시 방심했던 모양인데. 그래봤자 너같은 밑바닥 인생을 돌봐줄 사람 따위는 없다고. 알겠어?”
그녀는 몸을 부르르 떨며 사내의 눈을 피했다.
“퉷! 이 년 때문에 아침부터 기분만 잡치는 구만. 따라와!”
“아아...”
여성은 힘없이 질질 끌려가며 멍한 눈으로 하늘을 바라보았다.